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200화 (200/226)

< 68. 그 녀석들 (3) >

한국에서의 월드챔피언십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한 대로 NHG는 연승을 이어가며 자신의 명성이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팀이 잘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명은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갔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뭐가?”

“요즘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아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어?”

“음...그게...”

항상 장난스러운 분위기의 하니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명은 괜찮다고 말할까 하다가 솔직한 마음을 조금 털어놓기로 했다.

“....그냥. 우리의 실력이 정점을 찍었다 싶어서. 팀의 전성기라고 해야 할까.”

“성적이 이렇게 좋은데 당연하지! 내 생각에는 팀이 만들어진 이래로 가장 강할 거야. 근데 그게 왜?”

“그게 끝이야.”

“정말? 뭐 다른 거 없어? 집에 쌀이 떨어졌다거나 배 아픈데 화장실 가면 응가가 안 나온다던가...”

“없어. 집에 쌀 많이 있고, 응가도 잘 나와.”

“뭐야, 시시하게! 걱정 시키지 말라구!”

송하니는 어이없다는 듯 정명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니의 농담에 실실 웃고 있던 정명은 다시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점을 찍었다는 말은 이제 내리막길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과 같지. 이제 정말...시간이 없다.’

정명은 자신의 마음을 딱 반만 털어 놓았다. 하니에게 시스템 창에 대한 일을 말 할 수는 없었으니까.

정명은 몇 개월 전 갑자기 나타났던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읽었다.

[나이 패널티]

*사용자의 몸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이제부터 1년이 지날 때마다 모든 스탯이 5씩 감소합니다.

*감소한 스탯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복구할 수 없습니다.

정명은 착잡한 심정으로 시스템 창을 닫았다.

‘나이라.... 많이 먹었지. 그래.’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정명의 나이가 이제 30살이다. 내년이면 만으로 30살. 프로게이머를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 것이다.

‘지금 나보다 나이 많은 프로게이머가 없어. 내가 최고령이지. 겨우 30살인데도.’

나이가 25살이 넘은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손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고 반응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체감하고는 한다.

그것을 경험으로 극복하면 되는 거 아냐? 할 수도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 판단력까지 떨어진다. 손이 굳는 것도 속상한 판에, 상황 대처 능력까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20대 초반이 전성기라는 것은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적용되는 말이기도 했지만, 프로게이머 업계는 그것이 무척이나 두드러졌다.

그리고 그것은 정명에게도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쩝, 더 오래 해먹고 싶었는데, 조금 아쉽다. 하지만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

그렇다고 해서 당장 실력이 어떻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NHG는 여전히 연승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16개의 팀 중 가장먼저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오늘은 4강전 당일이었고, 팀원들은 자신을 믿고 있었기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 봐야지.’

그런데 그 때, 정명의 핸드폰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한국의 캐스터에게서 온 문자였다.

-4강전 하기 전에 SNK 사람들하고 인사라도 한 번 나누는 게 어떠세요? 여기 메이커라는 선수가 정명 씨를 만나고 싶다 하는데.

......

잠시 후.

정명과 팀원들은 무대 뒤편에서 SNK선수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정명은 먼저 가장 앞에 나와 있는 메이커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넸다.

“정말 오랜만에 보네. 그동안 연습 열심히 했어?”

“그럼요. 섬머 리그에서는 NHG에게 계속 졌지만, 이번에는 무조건 이길 생각입니다.”

“뭐야, 비장의 무기라도 개발 한 거야? 쉽게는 안 될 텐데.”

“비장의 무기 같은 것은 없고, 그냥 열심히 했습니다.”

말투는 당당했지만, 자신 있게 말하는 메이커의 눈이 조금씩 떨렸다. 정명을 앞에두고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긴장은 정명과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풀려갔다.

‘이 녀석이...팀원들 긴장 풀어주려고 나를 보자고 했구만?’

정명은 ‘그래, 얼마나 연습했나 한 번 보자.’ 생각하며 메이커의 상태창을 슬쩍 확인했다.

[이혁]

피지컬 (97/99)

판단력 (95/98)

정신력 (92/98)

오더 (90/97)

‘오, 제법인데. 이 정도면 거의 송하니랑 맞먹겠어.’

메이커뿐만 아니라 SNK의 다른 팀원들 또한 그에 못지않은 스탯을 갖고 있다.

상태창을 빠르게 읽어내린 정명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 경기에서 잘 해 보자. 서로 후회 없도록.”

.......

SNK 선수들과 악수를 하고 헤어지자, 에리가 정명에게 은근히 다가와 물었다.

“어때?”

“뭐가요?”

“할 만 한 것 같냐고.”

“악수를 한 것 가지고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경기에서 몇 번 붙어봐야 알지.”

보는 것만으로는 실력을 알 수 없다.

누가 듣기에도 정론이었기에, 자신이 이상한 질문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에리는 얼굴을 붉혔다.

“앗, 그러네...헤헷, 네가 선수들 실력은 잘 보는 것 같아서 혹시나 했어.”

에리는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닫았고, 정명은 속으로 웃었다.

‘미안, 에리. 사실 쟤네가 얼마나 잘 하는지 대충 알아 봤어.’

하지만 ‘쟤네들 스탯 보니까 우리가 이기겠더라. 오키?’ 하고 말할 수는 없었으므로, 적당히 둘러댔을 뿐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경기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스탯을 띄웠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99/100)

정신력 (99/100)

오더 (99/100)

판단력 (99/100)

정명은 그동안 모은 포인트를 전부 탈탈 털어 넣었고, 그 결과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았던 경지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하니와 이야기했던 대로 지금이 실력의 정점을 찍은 상태인 것이다.

‘뭐, 다음 해부터는 곧바로 모든 능력치가 5씩 떨어지지만.’

SNK라는 팀이 정명이 최선을 다 할 만 한 가치가 있는 팀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명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생각이었다.

지금이 게이머로써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일 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4강전 경기 시간이 다가왔다.

정명은 팀원들과 함께 당당히 무대로 올랐다.

.........

[퍼스트 블러드]

-레이저를 기가 막힌 각도로 긁네요! 선수들이 보통 레이저는 잘 피하거든요.

-지금 거의 스킬 샷을 다 맞추고 있지 않나요? 각도나 타이밍이 아주 완벽합니다.

물 흐르듯 스킬연계가 이어진다.

정명은 탈주닌자의 표창 스킬을 코앞에서 피하고 스턴을 꾸겨 넣는 등의 화려한 플레이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선수는 다섯 명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중계하는 옵저버가 계속해서 미드의 모습만 보여 줄 정도였다.

그리고 같은 팀원들 또한 신기하다는 듯 그 모습을 틈틈이 구경했다.

“와, 오빠 오늘 샷빨 좀 받는 듯? 백발백중인데! 예측샷이야?”

“하하, 오늘 따라 좀 잘 맞아주네. 운이 좋았나봐.”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스킬을 날렸고, 당연하다는 듯 스킬을 적중시켰다.

-이야, 메이커 선수가 피지컬에서 밀리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정명 선수의 실력이 그새 또 발전한 느낌입니다. 여기서 더 실력이 올라가면,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 수 있겠어요.

실력이 더 늘어난 느낌이다.

정확한 분석이었다. 그야 정명의 실력은 실제로 지금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늘어나 있었으니까.

[숙련도 보정으로 피지컬이 +1 증가합니다.]

기본 스탯 99에다가 숙련도 보정 +1.

결국 일시적일지라도 피지컬 100을 달성할 수 있었다.

‘피지컬 99도 대단했지만 100은 뭔가 달라. 판단력 100을 넘겼을 때도 그랬지만, 100은 내 인지능력을 조금 벗어난 것 같은 그런....느낌이 있어.’

판단력 100을 찍었을 때 나왔던 이상한 이름의 스킬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일회용이라도 되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피지컬 100을 찍자 하나의 메시지가 하나 더 떴다.

[도우미]

*내 최고기록은 아무도 못 깰걸? (피지컬 100)-피지컬의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이 경지는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를 조금 넘은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도 너프해 보시지!

-개발자들은 당신이 했던 캐릭터가 너무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너프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토의할 것입니다.

*어우 이건 사기야! (피지컬 100 & 판단력 100)-상대의 이동경로와 회피경로를 본능적으로 파악합니다. 그에 따라 논타겟 스킬 적중률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지컬 100을 만든 정명의 플레이패턴은 기존의 플레이 패턴과 조금 달랐다.

그리고 그것은 경기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 또한 알아볼 수 있었다.

-미드 한 번 잡아보겠다고 서포터까지 로밍을 왔는데요, 여기서 끝까지 봤다가 침착하게 점멸 쓰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갱킹을 온 정글러와 서포터를 보자마자 정명이 빠르게 뒤로 빼기 시작했고, 갱킹을 온 선수들은 예측 샷을 날렸다.

그런데 정명의 캐릭터가 스킬에 맞기 직전, 캐릭터가 신호등에 걸린 자동차처럼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앞으로 창과 채찍이 스윽, 하고 지나갔다.

-아, 이건 조금 흥미롭네요. 무빙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보통은 뒤돌아서 피하거나 할 텐데 갑자기 딱 멈춰서 피하는 건 참...신기하네요. 예, 신기해요. 그동안은 보지 못 했던 플레이 방식이에요.

정명이 움직이는 걸 보며, SNK 사람들은 ‘저게 뭐지?’ 하는 생각에 어이없어했다.

스킬샷을 많이 날렸지만, 정명은 항상 살짝만 움직여서 피했다. 크게 움직이는 법이 없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생존력을 최대한 높이고 딜로스를 최소화 시켰다.

메이커는 SNK에서 가장 돋보이는 선수라는 기존의 평과 달리, 2경기 연속으로 라인전에서부터 터지며 패배의 1등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를 탓하는 시청자는 거의 없었다.

정명은 그냥 보기만 해도 신기할 정도로 기묘한 움직임을 보여줬으니까.

3경기마저 라인전에서 터지자 카메라가 메이커의 모습을 잡았다.

메이커는 정말 못해먹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이 마무리되었다.

경기 내내 변수가 없었던 3:0 승리였다.

######

4강에서 쉽게 SNK를 치운 정명은 기세등등하게 결승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 상대는 중국 팀을 잡고 올라온 NAV.

한국에서 3위로 올라온 팀이었다.

결승까지 올라온 팀은 NAV지만, 정명은 결승전을 치르며 NAV의 실력이 SNK만 못하다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NHG는 이번에도 3:0으로 승리하며 한국에서 열린 월드챔피언십의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다.

이것으로 월드챔피언십 2연패.

이제 사람들은 NHG가 세계 1위 팀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

결승전이 끝난 뒤.

이번에도 팀원들은 방에 삼삼오오 모여 조촐한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에는 꼬마들 또한 술을 마실 수 있었으므로, 쿠론, 하니, 석진 세 명은 오늘 상당히 흥분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잠시 뒤. 음식과 술을 앞에 두고 팀원들이 둥글게 앉았다.

정명은 술을 마시기 전, 과자를 하나 집어 먹으며 담담히 말했다.

“잠깐만. 놀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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