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98화 (198/226)

< 68. 그 녀석들 (1) >

한국으로 돌아온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각종 행사에 불려가서 바쁘게 지내야만 했다.

정명은 돈을 버는 행사뿐만 아니라 자선 행사에도 종종 참여하고는 했는데, 그러한 수많은 행사 중에서 정명의 기억에 특별히 남았던 것은 [프로게이머 유정명의 1일 과외권 판매] 라는 기부행사였다.

‘아무리 기부라는 좋은 일에 쓴다고 하지만 설마 1000만원까지 가격이 치솟을 줄이야.’

그 행사는 말 그대로 정명이 일일 선생님이 되어 게임 1:1 과외를 해주는 그런 이벤트였다.

그런데 경매가 붙어서 가격이 계속 오르다 보니 무려 1000만원에 팔리게 되었다고.

생각치도 못한 금액 덕분에 그 행사는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같은 팀원들에게도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그래서, 그걸 산 사람이 누구였는데?”

같은 팀이라고는 하지만, 비시즌이나 쉬는 날까지 모두 같이 움직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쿠론의 집과 정명의 집은 거리상 꽤 가까웠기에 정명은 종종 쿠론의 기사 노릇을 해주고는 했는데, 오늘 만난 쿠론은 그 개인과외 이벤트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어보았다.

“그건 알려줄 수 없어. 클라이언트의 비밀은 지켜 줘야지.”

“진짜 치사하게! 후, 좋아, 그럼 너도 나한테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 봐. 뭐든지 알려줄게. 진짜로 뭐든지.”

“궁금한 거 없는데?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데 궁금한 게 뭐가 있겠어.”

“뭐? 내 엉덩이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니까 조금만 때려보게 해달라고? 잠깐만, 그래도 되는지 엄마랑 송하니한테 물어 보고....”

“아 거참 되게 귀찮게 구네. 알았다, 알았어! 내가졌다.”

굳이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쿠론이 옆에서 하도 졸라대기 시작하자 정명이 항복 선언을 했다.

사실 별로 말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기에 정명은 못이기는 척, 비밀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정보를 풀었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마.”

“알았어. 그래서 누구였는데? 혹시 너를 좋아하는 소녀팬?”

“소녀팬은 무슨, 50대 아저씨였다.”

“하, 배불뚝이 아저씨였다고?”

“그래, 배불뚝이 아저씨. 아들이 브론즈리그에서 못 올라간다고 실버까지만 실력을 키워달라고 하더라. 요즘 애들 사이에서 브론즈 리그에 있으면 엄청 무시당한다나.”

“그 아들은 몇 살이었는데?”

“12살.”

“하, 그것 참 고급 과외로군. 그 아저씨가 돈이 많은가봐?”

“그래, 돈 많은 것 같더라. 전직 모델 아내도 있던데. 아, 다 왔다. 그만 내려라.”

정명은 쿠론을 원하는 곳에 내려 준 뒤, 방송국으로 향했다.

잠시 후 간단한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정명은 리그가 끝났는데도 엄청나게 바쁜 것 같아 괜히 지쳤다.

‘다음부터는 스케줄을 줄여야겠어. 이건 뭐 쉬는 것이 쉬는 게 아니니...’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핸드폰을 보니, 방금 헤어진 쿠론이 팀원 단톡방에서 정명의 과외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떠벌리고 있었다. 비밀로 하자는 약속은 개나 줘버린듯 했다.

‘쯧쯧,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응징이 필요한 시점이군.’

10분 후, 정명은 방송국에 도착하자마자 방송국의 리포터와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바쁜 정명을 위해 어느 정도는 세팅을 다 해둔 듯 했다.

“자, 그럼 일단 NHG가 우승을 했습니다. 그러면 팬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와, NHG가 최고구나. 그런데 그 다음은 누구지?’ 라고요.”

“우리 다음 가는 팀이라. 글쎄요, 아무래도 KAO가 아닐까요? 실제로 우리를 가장 고생시켰던 팀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KAO는 리빌딩 중이잖아요? 주력 멤버도 많이 빠져나가고, 제 추측으로는 전력이 많이 약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월드챔피언십이 끝난 뒤, KAO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였던 황제훈을 포함한 KAO의 선수 여럿이 팀을 빠져나갔다.

당연히 월챔에서 떨어졌다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고, 중국에서 선수들을 돈으로 빼간 것이었다.

그리고 정명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긴 하죠. 솔직히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1부 리그 유지도 힘들다고 봅니다.”

정명은 무척이나 솔직하게 답했다. 정명이 이제 누구 눈치 보거나 그럴 짬이 아니니까.

하지만 팬들과 스태프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리포터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제를 넘겼다.

“아하하, 네.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이번에는 시청자 질문인데요, 수입이 정확히 얼마나 되냐는 질문이.....”

그로부터 30분 뒤,

담백하게 진행되었던 인터뷰가 끝났다.

더 이상 볼 일이 남아있지 않기에 곧바로 방송국을 떠나려고 했는데, 멀리서 정명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차석진의 썸녀로 추정되는 조이슬 아나운서였다.

정명은 ‘석진이 애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니 친절하게 대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아,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이신가요?”

“한 가지만 헉, 여쭤보고 싶어서요. 근데 헉, 헉. 잠시만. 뛰어 오느라 힘들어서.”

정명은 조이슬이 헉헉거리며 숨을 돌리는 동안, 조이슬의 전체적인 모습을 슬쩍 쳐다보았다.

‘흠, 이런 미인이 어떻게 석진이의 썸녀가 되었을까. 세상 참 살고 볼 일이야.’

그리고 잠시 후, 조이슬이 본론을 꺼냈다.

“저....제가 듣기로는 메테오 선수가 게이머에서 은퇴한다고 하던데요, 그게 사실인가요?”

‘석진이 이놈, 그 건에 대해서는 발표 날 때까지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제 애인한테 기어코 일러바쳤군.’

조금 꽤씸했지만, 충분히 이해는 됐다.

썸녀의 관심을 끌어보려 이것저것 화젯거리를 던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가 튀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정명은 조이슬의 말에 빙긋 웃었다.

“그건 석진이 친구로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아니면 방송국 리포터로써 물어보시는 건가요?”

“아...석진이...친구요.”

“그렇다면 못 말해드릴 것도 없지요. 사실 맞습니다. 이번 월챔이 끝나고 나갈 예정이죠.”

“그러면 혹시 생각해 두시고 계시는 새로운 선수는.... 아, 별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요...”

석진이에게 온갖 밀당의 기술을 시전하며 석진의 애를 태우던 조이슬은 정명을 무척이나 어려워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정명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며 조이슬을 돌려보냈다.

‘새로운 팀원이라.....’

.......

인터뷰가 끝난 후, 집에 도착한 정명은 양말도 벗지 않은 채,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커뮤니티 언벤에 들어가서 며칠 전부터 올라와 있던 공지사항을 살펴보기시작했다.

[팀 KAO 선수 모집 공고]

*마스터 리그 이상

*전 포지션

*기타 사항은 메일로 문의

?왜 기존 선수들 다 자르고 새로 영입함?

?자른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선수들이 이적한 거잖아 멍청아. 중국이 그렇게 돈을 많이 퍼준다고 하던데.

?아예 다 갈아 치우는구만. 저러면 시드 유지는 되는 건가?

미드, 정글, 탑, 거기다가 코칭스태프까지 전 부분에서 팀원 모집 중.

리빌딩이라기보다는 아예 이름만 같은 새 팀을 만든다고 할 수 있었다.

‘예전의 모습은 정말 흔적조차 찾아볼 수도 없다.’

정명은 원래 이번 시즌 끝나고 나가려는 메테오를 대신하여 메이커를 팀에 넣으려고 했다.

메이커가 있던 팀은 정명의 과거에서 역대 최강의 팀으로 꼽히던 전설이었고, 메이커 본인 또한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한명이었으니까.

‘그런 선수가 팀에 있으면 무척 든든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 생각까지 든 정명은 먼저 하위 팀에 들어간 메이커의 최근 경기를 살펴보기로 했다.

-미드의 성장차이가 너무 나네요.

-저기서 궁이 빠지면 안 되죠!

정명의 예상과는 달리, 메이커는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 했다.

때문에 동영상 댓글에는 안 좋은 평가가 잔뜩 달려 있었다.

-메이커 진짜 호구네.

-CS개수 봐라...

-이번 시즌 끝나고 방출 각.

시청자들의 평가와는 달리, 사실 메이커가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팀의 전략이 바텀 라인 위주로 CS를 몰아주거나 하는 전략을 짜고 있기에 못하는것처럼 보일 뿐인 것이다.

‘메이커라. 솔직히 영입 제안 하면 얼씨구나 하고 올 것 같긴 한데...메이커랑 꼭 붙어 다니던 코치 이성진까지 영입하면 더 좋고.’

아니나 다를까, 이성진의 톡 상태창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팀 구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정명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꽤 긴 시간을 고민했다.

그리고 며칠을 끙끙대며 고민하다 마침내 결정을 내렸고, 결정을 내리자마자 바로 메테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정명이구나! 휴가 잘 지내고 있지?”

“응, 잘 지내지. 그런데 지난번에 얘기했던 것 말인데....”

“와, 드디어 사직서 받아주는 거야?”

척하면 척이라고, 본론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메테오가 곧바로 이야기를 알아들었다.

애인이 임신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프로게이머 생활은 조금 지치기에 슬슬 은퇴를 준비하려 한다.

지난번 메테오와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명은 곧바로 메테오의 사직서를 받아주는 대신,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있잖아, 혹시 옛날에 만화 좀 봤어?”

“뭐, 애들이 보는 거? 아니면 송하니가 보는 거?”

“애들이 보는 거.”

“아하, 그거는 나도 어릴 때 자주 봤지!”

메테오가 자주 봤다며 아는 체를 하자, 정명은 ‘그럼 이해가 빨라서 좋겠다.’며 말을 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악당을 보면 항상 그렇거든. 주인공이 쓰러지면 꼭 말이 많아져. 그리고 방심하지. 그러다가 당해.”

“그렇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니까.”

“그리고 제일 이상한 점은, 주인공이 변신하거나 합체할 시간을 준다는 거야. 그 때 치면 이길 텐데, 계속 기다려 줘. 이상하게도.”

“그렇지. 각개격파하면 금방일 텐데.”

메테오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방송국으로 항의 전화가 갈 것이라며 흐흐 웃었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하던 메테오와 정명은 마지막으로 팀의 구성에 대하여 의견을 나눴다.

“그래서, 다른 팀원은 누구 생각 중이야? 나 나가면 정글러가 비는데. 요즘 쓸만한 정글러가 있나?”

“글쎄. 생각해 둔 사람은 있는데...그 사람은 다른 팀으로 가게 될 것 같아.”

“그래?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 괜찮은 사람은 많으니까.”

정명은 결정된다면 나중에 전화 주겠다고 말하며 메테오와의 전화를 마쳤다.

‘KAO, 그리고 메이커라...’

정명이 기억하는 과거에서 메이커가 활약하던 그 팀은 정말 최고였었다.

이제는 그 전설을 자신이 이어받게 되었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만약 그 팀이 전성기 시절의 모습으로 지금 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명은 그 모습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그 팀과 붙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무척 궁금해졌다.

오랜 생각 끝에 정명이 내린 결론은 ‘난 누구와 싸우던 자신 있다.’ 는 것이었다.

결론을 내린 정명이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프로게임구단 KAO의 김지연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이번 선수 모집에 대해서 말인데요...”

김지연이라는 사람은 정명의 말을 끊으며 짜증스레 말했다.

-글에 분명히 적어 놨는데요. 신청은 이메일 접수만 받습니다.

“아, 잠깐만요. 끊지 말아주세요. 저 유정명입니다. 혹시 모르시나요? 프로게이머 유정명. 애기 드리고 싶은 게...”

-어, 아, 네?

그제야 목소리를 알아본 직원이 허둥지둥하기 시작한다.

김지연이란 직원은 전화를 몇 번 돌리더니 이내 감독과 직접 연결시켜버렸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어, 그래 유정명이. 오랜만이야. 이거 내 전화번호니까 다음부터 볼일 있으면 직접 전화 해.”

“감사합니다. 그런데....요즘 어때요? 새 선수를 찾고 계시다던데.”

“힘들지 뭐. 쓸 만한 선수는 중국에서 다 빼가버리고. 왜, 혹시 정명이가 여기로 오려고? 그럼 좋지. 우리 팀에 배정된 예산 다 걸게.”

감독의 농담에 정명이 킥킥 웃었다.

“하하. 토끼 같은 팀원들이 저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요. 그 대신, 다른 사람을 추천 해드릴까 하고요. 진짜 잘하는 선수에요.”

“세체미의 보증이 찍힌 추천서라. 누군데? 바로 테스트 해볼게.”

정명은 메이커 외에도 평소 봐 왔던 선수들이라며 몇몇 선수들을 더 추천했다.

그들은 전부 정명의 과거에서 메이커와 한 팀을 꾸렸던, 지금은 정명의 기억 속에서만 전설로 남은 그런 선수들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정명은 메테오의 사표를 반려했다.

그리고 KAO는 리빌딩을 거치기 시작했고, 철저한 준비를 마친 끝에 스프링 리그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려는지 이번에는 팀명도 바꾼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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