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97화 (197/226)

< 67. 축제가 끝난 후 >

드디어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거머쥐었다.

가장 실력이 뛰어난 프로게이머와 가장 인기 있는 구단이라는 명예를 전부 손에 거머 쥔 것이다.

때문에 우승한 후, 축하한다며 그들의 주위로 수많은 사람이 다가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섯 명의 팀원 모두는 그러한 커다란 파티에 참여하기보다는 고생했던 팀원들끼리 조촐하게 기쁨을 나누는 것을 택했다.

“내가 그때 딱 무아지경으로 신컨을 보여줘다니까! 도망가는 척 하면서 궁 쓰고 역관광을...”

“신컨은 무슨. 그냥 운 좋았던 것뿐이잖아.”

그날 저녁은 당연히 술판이 벌어졌다.

테이블에 비싼 술과 음식이 널려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맛있는 안주는 몇 시간전 그들이 플레이했던 월드챔피언십의 재방송 이라고 할 수 있었다.

3:0으로 이겼기에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경기인 것이다.

-제발 한국 팀이 승리했으면 좋겠는데요!

-선수들이 부스에 있지만, 한국 팬들의 응원만큼은 들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힘내세요!

“응 안 들려.”

“아우, 김준상 쟤는 뭐 저런 말까지 하냐. 너무 손발이 오글거리네.”

“오, 3경기 시작됐다. 이 경기는 참 길었지. 마지막에는 지는 줄 알았어.”

가장 이슈가 되었던 3경기가 나오자, 다들 시선을 집중했다.

-과연 우드의 선택은...보안관이네요.

-전 경기에서 쿠론 선수가 보안관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거든요. 그걸 의식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오리엔탈의 원딜러인 우드는 쿠론이 보안관을 쓰는 것을 보며 그것이 퍽 좋아보였는지 곧바로 보안관을 올려놓았고, 그 모습을 보며 쿠론은 과자를 주워 먹으며 욕을 했다.

“우드 저놈은 여자 캐릭터만 골라서 하는 것 같더라. 기분 나빠.”

“에이, 설마 그런 이유로 캐릭터를 고르겠어? 그냥 네가 쓰는 거 보니까 좋아 보였나보지.”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쿠론과 달리, 에리는 묵묵히 맥주만 들이켜고 있었다.

“언니, 그거 맛있어? 맛있으면 나 한 잔만 주라.”

“음...글쎄?”

에리는 무슨 음료수 마시듯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는데, 그 옆에서 꼬맹이들은 어떻게든 술을 한 입 얻어먹어볼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아직 고등학생인 애들에게 내년에 마시라고 훼방을 놓을까 하다가너무 꼰대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관뒀다.

‘좋은 날인데 괜히 분위기 망치지 말자. 몇 개월 뒤면 어른인데 뭐.’

정명까지 암묵적으로 동의하자, 안전장치가 풀린 꼬마들이 멋대로 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으엑...”

“맛없어...”

그로부터 잠시 후, 맥주 몇 잔을 마신 쿠론이 헤롱헤롱 하다가 제일 먼저 뻗어버렸다. 엄마와는 달리 술을 전혀 못 하는 듯 했다.

쿠론과 마찬가지로 술을 마신 다른 꼬마들도 쿠론과 마찬가지로 금방 곯아떨어졌다.

꾸벅꾸벅 졸던 송하니를 보던 정명은 어느 새 주변이 무척 조용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다들 벌써 퍼졌나?’

긴장이 풀렸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술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팀원들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술이 강했던 에리 또한 벽에 기대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팀원들이 다들 잠든 시각. 정명이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것으로 끝이 아닌 건 알지만...일단 얻고 싶은 건 다 얻었다. 돈, 명예, 그리고...’

정명은 시스템 창을 열어, 들어온 포인트를 살폈다.

[잔여 포인트 : 103만]

‘100만 포인트. 확실히 들어왔네.’

물론 시스템이 포인트를 주겠다고 하고 떼먹은 적은 없지만, 이번엔 워낙 포인트가 커서 혹시나 했다.

‘쓰레기 같던 팀의 연습생 생활에서부터 북미, 중국, 그리고 한국까지...참 길었다.’

쉽게 곯아떨어진 다른 팀원들과 달리 정명은 쉽게 잠들 수 없었고, 결국 새벽까지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겨우겨우 잠들었다.

............

술판을 벌이고 난 다음 날.

어제 그렇게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정명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방 안에 숨소리만 들리는 것을 보니, 다른 팀원들은 아직 잠들어있는 듯 했다.

‘그런데 이건.... 데자뷰인가.’

정명은 지난 번, 한국 리그에서 우승했을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의 옆에서 딱붙어 자고 있는 사람을 손으로 치웠다.

“우응...”

“이건 뭐 얼마나 마셨다고 뻗어 버리냐 쯧. 에리가 벌컥벌컥 마시니 무슨 음료수인줄 알았나보지?”

그런데 이번이 그때와 다른 건, 옆에서 새우처럼 잠들어있는 것이 송하니가 아니라 금발의 꼬마였다는 것이었다.

정명은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는 쿠론을 번쩍 들어올렸다. 자고 있는 사람은 몸이축 쳐지기 때문에 옮기기 어렵지만, 쿠론은 몸집이 작은 편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리고 이 짐덩어리를 어디로 치울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 정명의 눈에 조용히 자고 있는 에리가 눈에 들어왔다.

‘너한테 술은 아직 너무 이르다.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이내 에리의 옆에 갖다 놓자,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제 엄마 품으로 파고든다. 모녀가 아니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자매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음, 보기 좋네.’

정명은 스스로 만족해하며 방에서 나와 세수를 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에리와 쿠론이 자고 있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꺄아악!

정명은 혹시나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인가 1초 정도 생각했지만, 저 방엔 지금 쿠론과 에리밖에 없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건덕지가 없는 것이다.

정명이 조금 어리둥절한 채로 잠시 기다리자, 에리가 방에서 허겁지겁 나왔다.

“에리, 뭔 일 있어요?”

“아니? 일은 무슨 일. 응, 없지. 아무 일 없지...”

그런데 아무 일 없다는 것 치고는 얼굴이 빨개져서 횡설수설을 하고 있다.

곧이어 다른 팀원들 또한 하나 둘 방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쿠론 또한 하품을 하며 태평하게 방에서 나오는 것까지 보자 정명은 자신이 착각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정말 별 일 없었나 보네. 신경 끄자.’

..........

“상금으로 어마어마하게 돈 벌었다던데!”

“이번에 돌아가면 건물 하나 세우지 않을까?”

그날 오후.

카페에서 혼자 앉아 있던 정명은 우연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건물은 무슨. 상금으로는 그렇게 큰돈이 안 된다고.’

정명이 베이징의 어딜 가도 이번 결승전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이번에 NHG가 얼마를 벌었다느니, 아파트를 하나 샀다느니 그런 이야기들.

돈 때문에 프로게이머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사실 우승 상금으로는 그렇게 큰돈을 못 버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신, 다른 곳에서 돈이 많이 들어오지.’

정명은 터져 나갈 것 같은 자신의 메일함을 천천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전에 얘기 되었던 CF건에 대해서.]

[저 김칠성 의원님 보좌관입니다.]

[방송촬영 협조 요청]

‘우리 아직 한 번 우승한 것뿐인데...조금 관심이 과하군. 역시 팀 구성이 조금 특이해서인가?’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다는 것은 금방 한국에도 알려졌다.

때문에 각종 계약, 같은 프로게이머들, 심지어 정치인들까지 정명에게 어떻게든 줄을 대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정치인이랑 프로게이머랑은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았지만, 아는 관계자 말로는 정명이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것을 보고 한류이니 뭐니 하며 정명의 이미지를 앞세워 외교문제를 쉽게 풀어나갈 생각으로 보이니 깊게 연관되지 말라고.

‘으음...어렵다 어려워. 일단 중국에서 오래 활동하는 건 조금 싫으니까 금방 끝낼수 있는 것으로 알아보자.’

정명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고, 그런 정명에게 화장을 짙게 한 여자가 다가왔다.

“저 혹시 유정명씨 아니신지요...”

“쉿.”

갑자기 나타난 팬에게 정명은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며 여자를 밖에서 잘 안 보이는 구석으로 오도록 유도했다.

막다른 곳에 다다르자 여자는 뭘 생각했는지 눈을 질끈 감았고, 정명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네, 네?”

“사람 너무 몰리면 좀 피곤해서요. 여기에서 사진 찍어 드릴게요.”

“아 네...같이 사진 찍어요!”

자신의 오랜 팬이었다던 그 팬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진을 찍어갔고, 정명이 커피도 한 잔 사주자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 팬의 말로는 지난번에 정명이 왔을 때 연락하라며 명함도 주고 갔는데, 연락을안 줘서 슬펐다고.

‘아 그때 그 여자...기억났다. 그 때는 되게 쿨한 척하더니.’

그런데 시끌벅적하던 카페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정명이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보니, 카페 안의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다들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명에게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나 개인방송 켬! 지금 실시간 검색어 1위도 먹음!]

.......

호텔에 도착하니 방이 소란스럽다.

방에 남아있던 팀원들은 전부 송하니가 하는 개인방송을 구경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와 사람 엄청 많다!”

“여기 트이치TV 사장도 들어와 있다는데? 운영자까지 들어와서 현황을 체크하고 있대!”

정명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송하니가 헤헤 웃으며 자랑했다.

“잠깐 인터넷 방송 켰더니...헷. 보이지?”

잠깐 시험 삼아 인터넷 방송을 켜봤더니 시청자가 엄청나게 몰렸단다.

정명은 인터넷TV의 역대 동시접속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오픈빨이라고 해도...이건 참 대단하군.’

쿠론과 바보짓을 할 때면 잊어버리고는 하지만, 송하니는 누가 뭐라도 아이돌 가수로서는 정점을 찍은 유명인이었다.

고양이처럼 귀여운 얼굴과 하얀 피부, 그리고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적당히 부푼 가슴까지. 현역 여고생 아이돌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송하니였던 것이다.

‘입만 닫고 있으면 참 보기 좋은 녀석인데.’

신비주의 컨셉은 개나 줬는지 팀원들에게는 귀찮음, 거만함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팬들에게는 여전히 요정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송하니님, 그 대사 한 번만 더 해 주세요. 결승전 오프더 레코드에서 나왔던 거요.

“게임을 하면 이겨야 한다구!”

팀원들에게 말하는 것이 발랄한 여고생의 목소리라면, 팬들에게 말하는 것은 요정의 목소리 그 자체다.

그 차이를 느낀 팀원들은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팬들에게 애교를 떠는 송하니를 바라보았다.

‘하긴, 사생활의 영역에서 만큼은 긴장 풀고 지내야지.’

사실 정명이 신기해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근데 석진아, 저 기계음은 뭐냐? 사람들의 코멘트를 읽어주는 건가?”

“도네이션이요. 요즘 트이치TV가 밀고 있는 시스템이에요.”

우가우가TV에 달풍선이 있다면 트이치TV에는 도네이션이 있다.

얼마를 기부하면 기계음으로 사용자의 코맨트를 읽어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방송을 처음부터 본 석진의 말로는 처음엔 목소리가 나오는 도네이션의 제한이 10만원이었단다.

하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기계음 탓에 점점 금액을 올렸고, 이제는 100만원까지 올리게 되었다고.

-송하니님 넘나 여신인 것. 제 한달 알바비 다 쏟아 넣을게요.

“어머 누렁이님 200만원 기부 감사드려요~♡”

하지만 그럼에도 도네이션 보이스가 계속 울리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쿠론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방송 잘 되면 나한테 차 한대 뽑아주겠다는데? 아직 면허는 없지만...”

“방송 아니더라도 차 한대는 뽑을 수 있을 거다. 지금 몸값 얼마냐고 묻는 메일이엄청 오고 있거든.”

그 말에, 차석진이 흥분했다.

“우와, 그럼 우리도 CF 찍을 수 있는 건가요?”

“아마도. CF도 있고, 방송도 있고...어휴, 한국 가면 진짜 피곤하겠구만. 리그가 끝났어도 스케쥴이 빡빡해.”

정명의 말에 쿠론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 그래도 한국 가고 싶다.”

“왜? 언제는 돈 잘 벌려서 기분 좋다더니.”

“여긴 공기가 너무 이상하고 또...”

“또?”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김치 먹고 싶어.”

한국 사람이 다 된 것 같은 쿠론의 말에, 정명이 피식 웃었다.

“좋아. 그럼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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