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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72화 (172/226)

< 60. 만신전 (2) >

-이야, 이거 이게 뭔가요! 뜬금없이 미드에서 솔로킬이 나왔습니다!

-킬을 내고 유유히 라인을 미는 독뱀술사! 이걸로 글로벌 골드가 다시 팽팽해집니다!

미드에서의 갑작스러운 솔로킬이 나와버렸다.

김준상의 선전으로 한창 들떠있었던 TAQ의 부스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괜찮아, 아직 우리가 유리하니까 천천히 하면 돼.”

“맞아맞아! 요즘 잘 나가는 우리 원딜러가 곧 캐리해 줄 거니까. 하하!”

1킬 정도야 경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팀원들은 그렇게 말하며 솔로킬을 당한 피닉스를 다독였다.

사실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은 조금 틀린 말이지만, ‘이제 X됐네. 너 덕분에 게임 졌다. 이따 보자.’ 따위로 말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미드는 원딜 캐릭터인 폭격수와 독뱀술사의 대결이었다.

서로 그다지 유리하지도 않고 불리하지도 않은 그런 매치.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서로 무리하지 않은 채 파밍전으로 흐르는 게 대부분이었고, 이번 경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오류로 인하여 경기가 잠깐 멈추기 전 까지는.

-피닉스 선수. 스킬 샷을 조금 신중히 쓸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지금 논타겟 스킬이 전혀 맞지 않고 있거든요?

-에....사실 유정명 선수의 무빙이 좋기는 합니다. 오늘 컨디션 좋은 것 같죠?

스킬을 한 대 정도는 맞아 줄 법도 하건만, 정명은 마치 캐릭터에 빙의라도 한 것처럼 신들린 무빙을 보여주며 일방적으로 딜을 퍼부었다.

일방적으로 딜교환을 당하던 피닉스가 허겁지겁 캐릭터를 뒤로 물렸지만 이미 반피.

하지만 독뱀술사는 1/4 정도의 체력만 빠져 있었다.

“아놔, 한 대 때리고 두 대 맞았네. 형, 갱킹 좀 와 주세요. 이미 주도권 뺏겨서 혼자서는 힘들어요.”

“좋지. 참교육 좀 시켜 줘볼까?”

TAQ는 고작 솔로킬 한 번 내줬다고 게임을 내주는 그런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그동안 리그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곳까지 올라온 경험 많은 팀이었기에 솔로킬에 대한 충격을 순식간에 회복했다.

-딱 와드가 꺼지는 타이밍에 갱킹이 들어옵니다! 줄을 타고 빠르게 달려가는 여왕거미!

정명은 정글러의 갱킹을 발견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점멸을 사용했다.

하지만 미칠 듯이 라인 푸시를 하고 있었기에 라인을 절반이상 넘어온 상태였으므로 결국 뒤를 잡히고 말았다.

“잡아, 잡아!”

피닉스의 외침과 함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정글러가 빠르게 2단 신발을 올렸기에 조금씩 거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피닉스는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열심히 도망가던 정명의 독뱀술사는 뜬금없이 정글 몬스터인 부리부리를 한 마리 잡고 도망갔다.

“저건 또 뭐냐?”

“잠깐, 저 녀석 6레벨.....!”

그리고 독뱀술사가 비명 비슷한 소리를 내며 궁극기를 사용했다.

-순간적인 판단이 아주 좋습니다! 방금은 궁극기를 배우기 위해 도망가느라 바쁜와중에도 새끼 부리부리를 하나 챙긴 모습이죠?

쫓아오던 피닉스와 정글러는 궁극기를 정통으로 맞아 그대로 돌이 되었고, 특히 피닉스는 스턴이 풀리는 시간 동안 정명의 샌드백이 되어야만 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튀어. 튀어!”

정글러는 스턴에서 풀리자마자 혼자라도 살기 위해 열심히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망친 곳에는 어느 새 지원을 온 메테오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쿠!

[적에게 당했습니다.]

-아, 갱승..... 이거 정글러까지 말린 거 아닌가요?

-그렇죠. 그나마 바텀 라인이 버티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겠네요.

심상치 않은 상황에 부스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김준상이 열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폐를 끼치니, 미안한 마음이 든 정글러가 바락 짜증을 냈다.

“아, 자슥아. 그걸 궁을 피해야지 정통으로 맞으면 우짜노!”

“하아....”

피닉스는 살짝 한숨을 내뱉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기도 죽었으면서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TAQ의 정글러는 운동 깨나 한 사람이었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잠깐, 그만해. 지금 그런 소리 해 봐야 도움 안 되잖아.”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가만히 있던 김준상이 입을 열었다.

“아직 경기 안 끝났어. 조금만 힘내면 분명 역전할 수 있으니까 멘탈 붙잡고 하자.”

“맞아, 맞아. 역전 가자!”

팀원들이 애써 으쌰으쌰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 후, 20분이 지났다.

######

-경기 마무리됩니다. TAQ, 초반 기세는 정말 좋았는데 말이죠.

-20분이 지난 시점에서 정명 선수의 킬이 5킬 0데스였거든요. 사실 저 정도로 킬을 먹으면 어떤 캐릭터도 캐리 가능하다고 봅니다.

-어떤 캐릭터도요?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15%의 체력을 소모한다는 피의 검사는어떻습니까?

-그건 좀... 이미 관 뚜껑에 못 박힌 캐릭터를 얘기하시는 건 조금 반칙 아닌가요?

경기가 끝나자 부스의 문이 덜컥 열렸다.

에리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정명에게 다가갔다.

“우와, 나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 했어! 너 진짜 잘한다!”

“하하. 고마워요. 갑자기 전쟁의 신이 빙의해서.”

“뭐래는 거니? 아무튼 잘했어. 엄청 멋있었어!”

에리가 정명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웃었다.

‘쓰레기 스킬을 9번 강화한 덕분인가? 나 참.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네.’

정명은 새삼스레 스킬 창을 불러내어 스킬 설명을 다시 정독하기 시작했다.

[아레스의 창]

수많은 영웅들을 단번에 쓰러트린 전쟁의 신 아레스의 창이 지금 당신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전쟁의 신 아레스는 전략전술에는 그다지 능통하지 못했다전해집니다.

*1:1의 신

-피지컬이 일시적으로 98까지 치솟습니다.

*영웅학살자

-영웅 급의 플레이어를 만나면 피지컬이 99까지 치솟습니다.

*개인플레이 선호

-게임시작 15분이 지나 라인전이 끝나면 모든 효과가 사라집니다.

‘A급 스킬이다. 지난번에 얻은 혈맹 스킬과 같은...’

A급 스킬답게 말도 안 되는 능력치를 자랑했다.

하지만 경기 시작 후 15분이 지나 한타 페이즈로 들어가면 능력이 사라지는 단점도 있었다.

약간 아쉽긴 해도 싸움의 기술 따위와 비교하면 감지덕지한 능력치였으므로, 정명은 투덜거리지 않기로 했다.

화장실 다녀 올 정도의 짧은 시간이 지나자 선수들이 다시 부스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밴픽.

밴픽은 이번에도 반반싸움으로 흘러가는 듯 했으나, 1경기 때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밴 카드 2장을 미드 밴에 쓰네요.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네요. 오늘 정명선수의 컨디션이 무척 좋아보였으니 말입니다.

“미드 2밴이라. 괜찮겠어?”

“상관없어요. 제 캐릭터 풀이 좁은 것도 아닌데 2밴이고 3밴이고 상관없습니다.”

“어...괜찮으면 다행인데, 탈주닌자를 하겠다고? 못 쓸 건 아니지만...”

“괜찮아요. 후반까지 갈 생각 없으니까. 중반에서 터트릴 자신 있어요.”

정명이 고른 것은 탈주닌자. 그리고 정명을 상대하는 피닉스의 캐릭터는 이번에도 폭격수라는 원딜 캐릭터였다.

“오빠, 폭격수대 탈주닌자 붙으면 누가 이겨? 원딜러가 미드에 오면 미니언 먹기조금 고달프지 않아?”

“괜찮아. 딱 1킬만 따면 그 다음부터는 그냥 300원 자판기야.”

“흐응, 그런가?”

“그래. 기다려 봐. 저 주작 놈, 내가 정의구현 시킬 테니까.”

“응? 주작?”

“아, 뭐 그런 게 있어. 나중에 말 해줄게.”

그 말을 끝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NHG는 이대로 경기를 끝내버리기를, 그리고 TAQ는 패승승의 짜릿한 역전승을 기대하며 캐릭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초반에는 사릴까.’

근거리 캐릭터 특성상 초반에는 실컷 뚜드러 맞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정명은 사리기로 마음먹었지만, 몸이 자꾸만 근질거렸다.

‘저거 가만히 보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보통은 사릴 상황이지만, 괜히 몸이 근질거린다.

정명은 3레벨이 되자마자 곧바로 몸을 날렸다.

-오우, 무빙이 아주...

-때릴 만큼 때리고 딱 빠지네요. 정명 선수 오늘 컨디션 정말 좋은가본데요?

‘음, 역시 감이 아주 좋아. 컨트롤이 내 생각만큼 잘 들어.’

피지컬 98. 현 프로게이머 중에서는 가장 높은 경기.

게임을 피지컬만으로 하는 건 아니라지만, 피지컬 92의 피닉스를 떡실신 시키기에는 충분한 능력이기도 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흠, 전에는 왜 이렇게 쉬운 걸 못 했을까.”

킬을 냈지만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이 정도 선수가 상대면 당연히 잡아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학살 중입니다.]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이게 뭐죠? 피닉스선수 지금 멘탈 나갔나요?

-아...피닉스 선수, 애꿎은 물만 벌컥벌컥 마시고 있네요.

10분이 지난 시점에서 피닉스의 스코어는 0킬 5데스. 정명의 궁극기가 차기만 하면 킬을 내준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쿠론은 마음 편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기, 이제 바텀 라인으로 로밍 좀 와줄래? 재미 볼 만큼 본 것 같은데.”

“알았다. 달풍선의 신 다음에는 뭐냐. 카이팅의 신이냐?”

스킬의 남은 사용 시간은 4분 정도.

그 전에 최대한 이득을 봐야 했기에 정명은 용 싸움을 열었다.

“하니, 용 싸움 건다. 텔 타고 와!”

“오키오키! 아, 잠깐만, 이거 이상한 곳에 텔 탔는데...”

텔레포트를 타고 온 송하니의 나무정령이 대책 없이 두드려 맞고 있었다.

카이팅의 신이니 뭐니 하더니, 김준상은 정말로 치고 빠지며 딜을 넣는 데에는 도가 튼 모습이었다.

“헬프, 헬프!”

“기다려 봐. 해결사가 간다.”

정명이 프리딜을 넣고 있는 김준상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한쪽 구석에 메시지가 떴다.

[플레이어 김준상이 5초 영웅 스킬을 사용합니다.]

‘어, 잠깐만. 이거 뭐냐?’

동시에 김준상의 움직임이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해졌다. 송하니는 그런 김준상에게 샌드백일 뿐이었다.

“아, 잠깐만. 타임 타임! 뼈 맞았어. 겁나 아파 이거!”

팀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메시지가 하나 더 떴다.

[영웅 학살자를 발동합니다.]

-피지컬이 99까지 올랐습니다.

피지컬 99.

인간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피지컬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와, 미친. 방금 그거 어떻게 했어?”

“한 대 맞을 때 두 대 쳤어.”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쿠론은 헛소리를 한다며 타박하려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한대 맞을 때 두 대 친다.

정명이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충실히 재현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미드에서 킬을 너무 먹고 와서...김준상 선수도 어떻게 해볼 수 없네요. 서리궁수가 궁 한방에 그야말로 터져버렸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한타는 아니었다. 라인전에서 이미 차이가 많이 벌어져 있었어.’

용 한타가 끝나는 시점에서 딱 15분이 지났다.

15분이 지나자, 한껏 고양되어있던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라인전이 끝나며 스킬의 효과가 끝난 것이다.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현재 정명의 스코어는 8킬 0데스.

킬을 이 정도로 먹었는데도 캐리를 못 하면, 똥 싼 사람보다는 캐리 못 한 사람 잘못이다. 그만큼 쉽다는 이야기였다.

정명은 스킬의 지속이 끝났음에도, 상당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경기를 계속해나갔다.

.......

[강팀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팬뿐만 아니라 같은 프로선수들에게까지 당신의 명성이 퍼집니다.]

-송하니가 당신을 존경합니다.

-쿠론이 당신을 존경합니다.

-김지훈이 당신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이 끝나자마자 메시지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정명에게 호의적이었던 사람은 존경한다는 반응을, 그리고 평소에 교류가 없었던사람들은 실력자의 등장에 경계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스킬에는 제한 시간이 있지만, 당장 내일 없어지는 건 아니다.

정명은 남아 있는 시간동안 최대한 뽕을 뽑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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