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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71화 (171/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71화-----------------

[축하합니다! C등급 아이템, ‘싸움의 비법’을 획득했습니다.]

‘또또또 이놈의 확률 아이템이 또!’

내심 기대하며 아이템을 뽑았지만, 또다시 쓰레기 아이템이 나왔다.

정명은 이로써 총 5개의 상자를 깠는데, 전부 싸움의 비법 아이템. 즉, 쓰레기가 나온 셈이었다.

화병에 걸리기 직전이었던 정명은 결국 끙끙대며 책상에 머리를 박았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하니는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책상에 엎드려 있던 정명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기 시작했다.

“왜, 어디 아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정명은 고개를 들며 팀원들을 바라봤다.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석진, 이번 연습 경기의 밴픽을 정리하고 있는 에리와 자신의 손을 멀뚱히 바라보며 손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하니까지.

팀원 모두 경기 준비가 끝난 것 같았기에 곧바로 채팅을 보냈다.

-준비 끝났습니다. 시작해도 됩니다.

동시에 정명은 방금 얻은 쓰레기 아이템을 곧바로 정리해 버렸다.

[싸움의 비법 아이템을 사용했습니다]

[싸움의 비법 사용 시간이 24시간 늘어났습니다.]

[라인전 능력이 소폭 증가했습니다.]

‘응? 사용 효과가 소폭 증가했다고?’

효과가 중첩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똑같은 아이템을 두 번 뽑은 것, 그리고 똑같은 아이템을 연속해서 사용하는 것 모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이템 상자라는 게 등급에 상관없이 얻기 힘들기도 하고, 이렇게 같은 아이템이 나오는 일 또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혹시 한 번 더?’

정명은 다시 한 번 아이템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싸움의 비법’ 사용 시간이 24시간 늘어났습니다.]

[라인전 능력이 소폭 증가했습니다.]

아이템이 중복되어 사용되었다는 것도 꽤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강화되었다니!

깜짝 놀란 정명은 허겁지겁 아이템을 중첩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 개의 아이템을 전부 중첩시킨 정명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상태창을 열었다.

[싸움의 비법 +5]

*잘 들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아니, 이 개소리는 필요 없고, 효과, 효과를 보자.’

*효과: 286시간 동안 라인전 능력이 일정 부분 강화됩니다.

‘이건 뭐지? 애매해.’

라인전 능력이 ‘소폭 강화된다’에서 ‘일정 부분 강화된다’로 말이 바뀌었다.

조금 알 수 없는 말이긴 하지만, 정명은 ‘똑같은 아이템을 5번 중첩했으니 괜찮아졌겠지.’ 생각하며 연습 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밤.

정명은 조금 뜻밖의 상대와 연습 게임을 하게 되었다.

“형, 엄청 여유 넘치시네요.”

“너야말로 뭘 그리 긴장하고 있냐? 실전이 아니라 연습 게임인데.”

“그래도요……. 아무리 연습 게임이라지만, 상대가 NAV잖아요.”

이번 연습 상대는 물경 세계 2위 팀, NAV였다.

몇 시간 전, 팀원들이 TV에서 봤던 바로 그 팀.

NAV와의 연습 경기가 처음인 것은 아니지만, 팀원들은 마치 실전을 뛰듯 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NAV와 연습 경기를 하여 이긴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NAV에서 새로 나온 캐릭터나 뉴메타와 같은 전략을 연습할 때나 몇 번 이겼지, 그들이 맘먹고 덤볐을 때 이긴 적이 거의 없었고, 그 때문에 팀원들은 NAV를 한 번만 이겨 보자고 벼르고 있었다.

‘정말 괴물 같은 녀석들이다. 그러니까 이 퀘스트는… 그만 좀 떠라. 당장은 못 이기니까.’

정명은 또다시 나온 [하늘 위의 하늘] 퀘스트를 파리 쫓듯 치우며, 석진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미드라이너, 박성준이라는 사람 말이야. 전투의 신이라고 했던가, 싸움의 신이라고 했던가?”

“싸움의 신일걸요? 라인전 시작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몰아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래요.”

싸움의 신.

조금은 오글거리는 별명에 정명이 킥킥 웃었다.

“싸움의 신이라. 나도 저런거 하나 갖고 싶어. 석진아, 네가 하나 붙여 줘 봐.”

“하하. 그런 거 괜히 기대하지 마세요. 별명은 없는 게 나을 때도 있으니까.”

석진은 그렇게 말하며 GOO TV로 옮겨 간 피닉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피닉스가 달풍선의 신이라는 이상한 별명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뭐냐, 그 구질구질한 이름은?”

“시청자한테 하도 달풍선을 구걸해서 달풍선의 신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형도 그런 추잡한 별명 생길 바에는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명이 웃으며 말을 하려 했으나, 바로 그 순간. 게임 로딩이 끝났다.

정명은 하려던 이야기를 삼키며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라인전이 이거… 좀 빡세네.’

박성준이라는 선수는 정말 소문대로였다.

괜히 싸움의 신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었고, 정명은 소문대로 단 1초도 방심할 수 없는 라인전을 보내야만 했다.

그로부터 10분이 지났다.

어느새 정명의 손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나 아이템 썼잖아. 라인전 능력이 어느 정도 상승한 거 아니었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다지 달라진 점은 없었다.

결국 정명은 인정했다. 자신이 뽑은 아이템이 쓰레기라는 것을.

‘역시 이건 쓰레기야. 난 뭘 기대한 걸까. 0에 5를 곱해 봐야 0인 것을.’

정명이 NAV와 연습 게임을 진행하며 깨달은 것은 ‘싸움의 비법’ 아이템이 쓰레기라는 사실뿐만이 아니었다.

현 세계 2위 팀과 연습 게임을 진행한 정명은 이제는 깨달을 수 있었다.

OMA에 몸을 담고 있던 시절, 당시 세계 2위 팀이었던 팀 아서스와 경쟁한 일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도전이었던 것인지.

이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아직 그들에게 닿는 것은 아직 멀어 보였다.

‘아니, 뭐 그때보다는 많이 성장했으니까, 언젠간 닿을 수 있겠지.’

정명은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이러나저러나 NHG라는 이 팀은 정명이 그동안 옮겨 왔던 여러 개의 팀 중 최강이었으니까.

그로부터 3시간 후, NAV와의 연습이 끝났다.

정명뿐만 아니라 모두 고생을 많이 했는지, 팀원들은 각자 소파, 바닥 따위에 널브러져서 끙끙댔다.

“또 졌어… 젠장. 언젠가는 꼭 해치워 주마!”

“푸히히… 쿠론, 그거 꼭 악당이 지고 나서 하는 대사 같아.”

“뭐얏!”

잠깐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연습이 시작되었다.

체력적으로 힘든 강행군이었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리그의 끝이 보이는 지금, 이제는 총력전이었으니까.

자는 시간도 줄여 가며 연습해야 후회가 없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

그로부터 이틀 뒤.

정명과 팀원들이 방송국에 도착했다.

오늘 경기의 상대는 정명의 팀과 순위권 경쟁을 하고 있는 팀이자 피닉스가 있는 팀, TAQ였다.

‘남은 경기는 3번. 하지만 1, 2위팀에게 진다고 가정하면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만 해. 그래야 3위로 올라갈 희망이 생긴다.’

대기실에 들어온 팀원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잡담도 않은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오늘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기에 다들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해진 대기실에서 정명이 나직하게 말했다.

“시간 됐다. 가자.”

정명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경기장에 온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정명에게 다가왔다.

해설자 이동호였다.

“정명! 오늘 경기 중요한 거 알지? 경기 준비 많이 했어?”

“그럼요, 밤새 가면서 했습니다. 북미 1위 팀이 한국에 왔는데, 3위 정도 하는 것은 보여 줘야죠,”

“하하, 그거 다행이네. TAQ에 물어보니까, 그 팀도 밤새 가면서 준비했다고 하던데.”

이동호의 말에 따르면, TAQ는 현 1위 팀인 KAO와 경기를 주로 준비했다고 한다.

만나기 힘든 세계 최고의 팀이지만, TAQ의 감독은 인맥으로 연습 게임을 성사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그 TAQ 감독님이 그러는데, 이번 경기는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요즘 김준상이 물이 올라서 자신 있다고.”

“김준상이요?”

“응. 김준상하고 같이 연습한 KAO의 선수들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하더라고. 마치 사람이 갑자기 각성한 것 같다나? 흐흐, 덕분에 이번 경기는 아주 재미있겠어.”

“하나도 재미있지 않거든요? 당사자는 엄청 피 마르는구만.”

“하하하. 알았다, 알았어. 그럼 난 가 볼게. 너도 경기 잘하고.”

이동호가 떠나자 정명이 턱을 쓰다듬었다.

‘김준상이가 요즘 날아다닌다고? 하긴, 그 녀석도 원래 팀 아서스에 있던 원 딜러였지. 세계 2위 팀이었던.’

김준상은 팀 아서스에서 나온 이후 폼이 좀 죽은 것 같다는 평가를 듣고는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명의 경기를 앞두고 팀 아서스 때의 폼이 그대로 돌아온 것 같다는 말이 들리자, 정명은 조금 억울해졌다.

‘김준상이라, 잠깐 볼까?’

정명이 반대편 부스로 시선을 돌려 슬쩍 보니, 김준상의 스탯은 거의 변한 게 없었다.

그런데 상태창에서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각성 중]

*퇴물이 되는 것 같다는 위기감, 그 간절함이 실력의 각성을 일으켰습니다.

만약 이러한 선수를 상대하려면 상대방에서도 각성을 한 사람이 나와 줘야 하지 않을까요?

-효과: ???

저 상태창을 보니 김준상의 실력이 물이 올랐다는 말이 과장된 게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정명은 께름칙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런, 역시 EXA랑 할 때처럼은 안 되네.”

밴픽을 진행하던 에리가 쓰게 웃었다.

밴픽 싸움의 결과는 딱 반반이었다. 가져올 거 가져오고, 줄 거 준 그런 상태.

정명은 이 정도로도 잘했다며 웃었다.

“반반이라도 한 게 다행이죠. 저쪽에는 붙어 있는 스태프만 해도 몇 명인데.”

“알았어. 그럼 잘해!”

에리가 나가는 것과 동시에 게임이 시작되었다.

정명의 오더는 딱 하나였다. 바텀 라인은 사릴 것.

하지만 각성이라는 게 뭔지, 김준상은 없는 상황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퍼스트 블러드!]

-퍼스트으 블러드으! 김준상 선수, 완전히 물올랐어요!

-팀 내에서는 카이팅의 신이라고 불린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의 모습을 보니,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쿠론와 차석진은 나름 버틴다고 버텼지만, 김준상이 슈퍼 플레이를 연달아 펼치자 결국 킬을 내주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사린다고 사렸는데…….”

“아오, 저 새끼 뭐 저러냐? 나는 무슨 너 하는 거 보는 줄 알았다.”

“나 하는 거?”

한국어가 서툰 쿠론은 잠시 말을 고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가끔 보여 주는 거 있잖아. 중요한 순간 많이 잘할 때.”

‘5초 영웅을 말하는 건가 보군. 그나저나 피닉스 저놈, 지는 하는 것도 없으면서 무지하게 까부네.’

-우하, 우히, 우헤헤!

피닉스는 캐릭터를 조작하여 깔깔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사자로서는 살짝 기분 나쁠 법하지만, 통상적으로 이 정도의 도발은 허용된다.

정명은 그런 도발을 무시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직 초반이니까 괜찮아. 다시 차근차근 해 보자.”

“네, 형.”

“알았어.”

게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팀원들을 다독였다.

그런데 그 순간, 정명의 화면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게임이 일시 정지되었습니다.]

게임이 정지되자마자 뒤에 있던 직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시만… 아, 피닉스 선수의 오디오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네요. 금방 해결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금방 해결될 것 같다는 직원의 말과는 달리, 시간은 5분이 넘게 지체되고 있었다.

문제 해결을 기다리는 선수들은 뚜두둑, 소리를 내며 손을 풀거나 앞에 놓인 음료수를 마시거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금방 고친다고 하더니, 되게 오래 걸리네.’

경기가 정지되는 순간 팀원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경기가 재개될 때까지 모니터만 쳐다보며 난데없는 묵언수행을 해야만 했다.

‘심심한데 상자나 마저 깔까? 몇 개 남았더라…….’

남은 C등급 선물 상자는 3개. 정명은 곧바로 상자를 열었다.

[축하합니다. B등급 아이템, 상급 경험치 부스터를 획득했습니다!]

‘오, 이거 9만 포인트 짜리잖아! 드디어 하나 떴다!’

정명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쓰레기 아이템만 연속으로 나와서 가졌던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정명은 이 기세를 몰아, 남은 상자를 전부 열기로 했다.

[축하합니다! C등급 아이템, ‘싸움의 비법’을 획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C등급 아이템, ‘싸움의 비법’을 획득했습니다.]

[C등급 선물 상자를 전부 사용했습니다.]

‘아, 진짜, 끝까지 지랄… 아니, 좋게 생각하자. 하나 건지긴 했잖아.’

C급 선물 상자 10개 중 싸움의 비법만 9개가 나왔다.

정명은 확률적으로 이렇게 나오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이건 이거 나름대로 참 대단하다 생각하며 아이템을 강화시켰다.

[싸움의 비법 +6]

[싸움의 비법 +7]

…….

[싸움의 비법 +9]

*잘 들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아니, 이 개소리는 필요 없다니까. 어디 보자, 효과가…….’

*효과: [싸움의 비법] 스킬이 [아레스의 창] 스킬로 업그레이드됩니다.

‘뭐지…….’

“경기 재개하겠습니다.”

“네.”

심판의 말에 멍하니 있던 정명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채팅창에 심판의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5, 4, 3, 2, 1.

-시작합니다.

흑백 화면이 컬러로 바뀌며 게임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5분이 지났다.

-솔로 킬! 정명 선수가 피닉스 선수로부터 솔로 킬을 따내며 분위기를 다시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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