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70화-----------------
EXA와의 첫 번째 경기가 순식간에 끝났다.
정명의 팀인 NHG가 밴픽 단계에서 OP캐릭터를 하나 가져오는데 성공했고, 라인전의 우세로 초반의 스노우볼을 굴림으로써 역전의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짧았던 1경기가 끝나자 에리는 큭큭 웃음을 지으며 부스로 들어왔다. 그리고 정명은 그런 에리와 손바닥을 짝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엄청 수고했어! 똑같이 한 번만 더 하자!”
“좋죠. 만약 오늘 경기 2 : 0으로 이기면, 제가 오늘 삼겹살 쏩니다.”
경기에서 승리한 정명의 팀은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기에서 이겨 기분이 좋아지는 팀이 있다면, 경기에서 져서 기분이 더러워지는 사람도 있는 법.
그리고 EXA 선수들은 대기실로 들어오자마자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내가 그거 밴하자고 했잖냐. OP캐릭터를 풀어 주면 대체 어떡하자는 거냐?”
“그럼 딴 게 풀리니까 그렇지. 어느 정도 밴했으면 네가 좀 버텨 줘야 하는 거 아냐? 차라리 밴을 한 10개쯤 하자고 개발사에 건의하는 건 어때? 응?”
“네가 밴을 이상하게 한 것은 아니고? 왜 저쪽은 OP캐릭터를 하나 가져갔는데, 왜 우리는 아무것도 가져온 게 없지? 자원봉사자야? 그냥 OP캐릭터 막 퍼 줘?”
순식간에 팀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패가 쌓이며 이러다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슬금슬금 피어오르고 있었기에 팀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한 상황이었다.
결국 그들을 보다 못한 코치와 감독이 나섰다.
“이러지 말고 다시 한번 해 보자. 아직 경기 안 끝났잖아.”
“하지만…….”
“형석아, 형 말 안 들을래? 영록이, 너도 마찬가지야. 싸움은 그만 하자.”
결국 코치가 권위를 내세우며 둘을 진정시켰다. 평소처럼 우쭈쭈, 하며 둘을 달래 주기엔 5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으니까.
그러자 선수들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 후, 코치가 팀원들을 다독이며 으쌰으쌰 기합을 넣었다.
그러한 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은 되었고, 선수들은 마음 한구석에 폭탄을 장착한 채로 다시 부스로 올라갔다.
하지만 모두가 떠난 대기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EXA의 예비 코치와 예비 선수, 이성진과 메이커였다.
이성진은 변함없이 진행되는 2경기를 보며 불만을 터트렸다.
“이거 또 밴픽에서 완전히 승부가 나 버렸잖아. 가뜩이나 실력도 저쪽이 우위인데, 저런 어드밴티지까지 주는데 어떻게 이겨? 젠장 내가 부스에 들어갔다면…….”
“들어갔다면요?”
“…최소한 밴픽 싸움에서 지지는 않았을 텐데.”
성진의 소심한 말에, 메이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형이 부스에 들어가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이거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순도 100% 진심이에요.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더 위험하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지 않아요? 매번 밴픽에서부터 지고 들어가도 무엇이 문제인지 본인들만 모를 겁니다.”
밴픽에서 이겼다는 것은 바둑에서 몇 점 깔고 시작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메이커는 그들이 어째서 이성진 같은 코치를 데리고도 실전에 써먹지 않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성진 또한 팀이 메이커 같은 선수를 데리고도 왜 출전 기회를 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감독님도 너무하시지, 출전시켜 줄 것처럼 말해 놓고서는 겨우 솔로 랭크에서 솔로 킬을 당한 걸로…….”
“어쩌겠어요. 결국 제 잘못인데.”
“거기다가 네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체미였잖아. 그 정도는 봐줘야 하는 거 아냐?”
메이커가 솔로 랭크를 했을 당시, 사실 그 뒤에서 감독이 메이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때문에 메이커는 자신의 실력을 어필하기 위하여 조금 떼를 쓰듯 정명에게 미드를 달라 말했고, 라인전에서 조금 무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불행하게도 김지훈에게 솔로 킬을 당하긴 했지만, 메이커는 꽤 괜찮은 실력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감독은 메이커의 출전을 미뤘다.
리그 초반도 아니고, 앞으로 경기가 더더욱 중요해지는데 이제는 안정감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를 대긴 했지만, 사실 메이커가 100번 잘한 것보다 1번 실수한 게 더 눈에 들어왔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결국 이성진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혁아, 우리 차라리 다른 팀으로 가 볼까?”
“다른 팀 어디요?”
“글세,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둘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벽에 걸린 TV에서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GG! 스노우볼이 이래서 무섭거든요.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첫 단추를 잘 끼우라고.
-저도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EXA가 밴픽에 문제가 있네요. 요즘 경기를 보면, 밴픽을 유리하게 가져가는 모습을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2경기 또한 NHG의 승리로 끝났다.
동시에 카메라는 NHG의 부스로 카메라를 돌렸고, 카메라에 잡힌 NHG 선수들은 환호하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경기에 이김으로써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로 나빠지는 사람도 있다.
경기가 끝나자 이성진과 메이커는 또다시 선수 대기실이 시끌벅적해질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다.
물론, 아주 나쁜 의미로.
*
EXA와의 경기가 끝난 후로 몇 주가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리그 경기가 진행되었음에도, 순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한국 리그 부동의 1위인 KAO는 여전히 잘나가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안타까운 2위라 불리는 NAV는 아직까지도 KAO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었다.
하위권도 마찬가지였다.
리그 시작부터 10위를 도맡아 하고 있던 팀 팬텀은 여전히 전패, 그리고 현재 9위인 팀 에디츄 역시 1승 14패로 2부 리그 승강전을 예약해 놓고 있었다.
리그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순위 변동이 무척이나 정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위권, 하위권과 달리 중위권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정명의 팀을 포함한 3위에서 8위까지의 팀들은 박 터지는 순위권 경쟁을 계속하고 있었고, 캐스터는 그런 모습을 보며 과장 조금 보태서 하루마다 순위가 바뀌는 것 같다며 웃었다.
또 다른 경기를 코앞에 둔 어느 날.
에리와 메테오는 심각한 표정으로 앞으로의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우, 공동 3위라니. 너무 아쉽다.”
“그러게. 이제 승패뿐만 아니라, 승점까지 따져 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1, 2위 팀한테 한판이라도 따낼 수 없나?”
“후후, 없을 것 같은데.”
리그가 끝날 때까지 남은 경기는 딱 세 번.
앞으로 세 번의 경기를 더 치르면 스프링 리그의 우승자를 가리는 포스트 시즌으로 넘어가게 된다.
현재 NHG의 순위는 공동 3위로, 언뜻 보면 포스트시즌에 여유롭게 진출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무조건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제는 순위가 떨어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남은 경기 상대가 1위, 2위, 3위 팀이라니. 이거 어딘가 한참 잘못된 것 같지 않아요?”
“옳소! 이 대진표는 미쳤다! 저는 우리 팀의 리더가 공개적으로 항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닷!”
남은 경기 일정이 적힌 종이를 보던 석진과 하니가 정명에게 달려와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1, 2위팀인 KAO와 NAV는 3위 이하의 팀들이 단 한 경기도 따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갖고 있었으니까.
속된 말로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다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앞으로의 대진표를 고려했을 때, NHG의 순위가 떨어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들 막막한 기분이 들어 한숨만을 푹푹 내쉬고 있을 때, 에리가 분위기 전환을 하듯 나섰다.
“벌써부터 졸 필요 없어. 연습하면 한 번 정도는 이길 수 있을지도 몰라.”
“네? 졸아요? 뭘 졸아요?”
“졸… 쪼올?”
“아, 쫄 필요 없다고요? 하하. 네, 그렇죠. 쫄지 말고 딱 한 번만이라도 이겨 보도록 해요.”
그 말에 팀원들이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냥 하소연하듯 해 본 소리였지, 벌써부터 패배 의식에 물들어 있지는 않았기에 분위기 전환이 빠르게 되었다.
연습을 하기 전, 정명은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아 맞다. 나, 전에 뭐 아이템 받은 거 있었지?’
솔로 랭크에서 운 좋게 솔로 랭크를 하고 받은 아이템 상자.
마치 떨이를 하듯, 10개나 받아 버렸다.
‘10개씩이나 있는데, 아끼지 말고 하나만 열어 볼까?’
이제는 기억조차 잘 안 나는 옛날. 정명은 이 아이템 상자에서 A급 아이템, 혈맹을 얻은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정명은 그 아이템으로 무척이나 재미를 많이 봤었다.
‘좋아, 열자.’
그러한 생각이 들자마자, 정명은 곧바로 아이템 상자를 열었다.
[C급 선물 상자를 열었습니다.]
[C급 선물 상자가 9개 남았습니다.]
[축하합니다! C등급 아이템, ‘싸움의 비법’을 획득했습니다.]
[싸움의 비법]
*잘 들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무척 간단해. 상대에게서 1대 맞을 때, 넌 2대 쳐. 간단하지?
-자칭 전국 싸움 신, 강**의 조언 중.
*효과 : 일주일간 라인전 능력이 소폭 강화됩니다.
‘뭐, 이딴 걸 조언이라고…….’
성능은 둘째치고 아이템 설명이 어이가 없다. ‘게임을 이기고 싶다면 잘하면 된다.’급의 말이었기에, 정명은 아이템 설명은 무시하고 효과만 읽었다.
그런데 그때, 멍하니 있던 정명을 에리가 불렀다.
“정명, 뭐 해? 준비됐어?”
“아, 넵. 바로 시작해도 됩니다.”
정명이 OK 사인을 보내자마자 연습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싸움의 비법] 아이템을 사용한 정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딜 교환을 걸어 보았다.
-변해라!
-망치 맛을 봐라!
갑자기 이루어지는 화끈한 딜 교환에 메테오가 깜짝 놀란다.
“정명, 내가 백업 갈까?”
“아뇨, 괜찮습니다. 조금 사릴게요.”
정명은 방금 딜 교환에서 2대 때리고 2대 맞았다.
아이템을 사용했기에 혹시나 했지만,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0.1mg도 들지 않는다.
때문에 정명은 방금 얻은 아이템을 쓰레기라 단정 지었다.
‘C등급 아이템에 너무 많은 걸 기대했다. 됐고, 평소처럼 경기에나 집중하자.’
그로부터 2시간 후, 연습 경기는 순조롭게 끝났다.
그리고 쉬는 시간, 정명은 다시 한번 아이템 상자를 열어 보기로 했다.
“형, 멀리 가는 거 아니죠? 20분 뒤에 다시 시작이에요.”
“그래, 머리 좀 식히고 금방 올게.”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한 정명은 세수를 했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상자를 하나 더 개봉했다.
[축하합니다! C등급 아이템, ‘싸움의 비법’을 획득했습니다.]
‘이런 개 같은…….’
쓰레기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정명은 오기가 생겨서 상자를 더 열었다.
[축하합니다! C등급 아이템, ‘싸움의 비법’을 획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C등급 아이템, ‘싸움의 비법’을 획득했습니다.]
쓰레기가 계속해서 생겼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 쓰레기는 귀찮게 나가서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후, 솔직히 조금 기대했는데.’
현자 타임이 강력하게 온 정명은 상자를 까는 것을 포기한 채, 다시 연습실로 걸음을 옮겼다.
연습실에서 팀원들은 간식을 먹으며 TV를 보는 중이었다.
“어우, 진짜 징그럽다. 저걸 어떻게 이겨요?”
“내 말이. 컨트롤이 완전 날이 서 있는 것 같아.”
팀원들은 현 2위 팀, NAV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정명이 스프링 리그에서 상대할 마지막 상대이기도 했다.
-GG! 압-도적이네요!
-역시 NAV를 꺾을 수 있는 것은 KAO밖에 없다는 걸까요?
순간 연습실이 조용해졌다. 상대의 슈퍼플레이를 보고 은근히 기가 죽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정명은 TV를 끄기 위해 리모콘을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퀘스트가 떴다.
[하늘 위의 하늘]
현 세계 랭킹 2위 팀을 꺾어, 자신의 팀이 최강의 팀 중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보상
-150,000포인트
-신규 A 랭크 스킬
-??? 제한 해제
‘우왓, 이런 깜짝 퀘스트가! 는 아니지.’
새로 받은 퀘스트는 아니다.
정명이 OMA에서 활동하던 시절, 팀 아서스와 경기를 했을 때 받았던 퀘스트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퀘스트는 현 세계 랭킹 2위, NAV의 경기가 나올 때마다 떴고, 그것은 정명의 기분을 무척이나 안 좋게 만들었다.
‘저 괴물들을 이기려면 우리도 괴물이 되어야 하는데, 나를 포함한 우리 팀원들은 의심할 여지없는 휴먼이야 휴먼. 그러니까 그만 좀 떠라.’
정명은 입맛을 다시며 퀘스트창을 껐다.
그리고 화풀이를 하듯, 시스템을 불러 다시 상자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