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69화-----------------
“라인 양보할게요. 보니까 엄청 가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hide in bush : 감사합니다!
-에잉, 이 판 지겠네…….
과거의 세체미가 미드 라인을 무척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기에, 정명은 흔쾌히 라인을 양보했다. 그래, 어디 (구)세체미 실력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하니야, 혹시 기억 나? 그 왜, 지난번에 복도에서 마주쳤던 사람 있잖아. 저 사람이 그 사람이야.”
“흐응… 그랬나?”
“응. 중국 갔다 왔다던 그 사람. 저 선수, 분명 성공할 거라니까? 내가 확신한다. 진짜로.”
“아, 대체 몇 번을 말하는 거야 정말. 메이커인지 프린세스 메이커인지 관심 없다니까.”
얼마 전, 정명은 이성진에게서 메이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 메이커는 최고의 구단인 KAO로부터 연습생으로 들어오라고 제안을 받았고, 또 그 제안을 수락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한국 선수들을 향한 중국 팀의 러브콜만 없었다면.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때 내가 너무 중국에서 날뛰었는지 중국 구단주들이 한국 선수들 데려온다고 혈안이었지. 메이커도 그때 중국으로 갔다나 봐.”
“캭! 자기 자랑 그만 햇!”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연봉, 연습생 생활과는 다른 주전 자리 약속까지. 중국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중국으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때 중국으로 갔던 게이머들이 많다고 듣긴 했지만 설마 메이커까지 갔을 줄이야.’
자신의 행동이 미래를 바꾼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정명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하니는 구 세체미에게는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고, 그 대신 현 세체미에 주목하고 있었다.
“김지훈이라. 그런데 오빠, 저 사람이랑 꼭 붙어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야 뭐… 다음에 붙어 보면 되지.”
방금 전 받은 퀘스트가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무조건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퀘스트도 아니었으니까.
솔로 킬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갔겠지만 이번 퀘스트는 조금 운이 따라 줘야 하기에 메이커의 실력이나 보자, 하는 생각에서 라인을 양보한 것이다.
결국 정명은 정글, 송하니는 탑으로 가게 되었다. 미드를 가지 않았을 뿐이지, 그럭저럭 캐리 가능한 라인들이었다.
잠시 후 게임이 시작되자, 정명은 미드의 움직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나쁘지 않네.’
현 세체미, 김지훈의 캐릭터는 안정성이 뛰어난 태엽로봇.
그리고 그를 상대하는 구 세체미의 캐릭터는 암살자 캐릭터인 불여우였다.
-미드 한번 가 봄.
정명이 미드로 슬쩍 갱킹을 가 보니, 역시나 거리를 전혀 안 준다.
때문에 미드는 알아서 하라고 하고 송하니가 있는 탑으로 향했다.
송하니는 그동안 정명과 호흡을 많이 맞춰 왔으니, 갱킹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라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송하니와의 결속력 : 89]
*이 팀원은 당신을 부모만큼 신뢰하고 있습니다.
*피지컬 [80] 이하의 선수를 상대로 했을 때 갱킹 성공률은 95%입니다.
‘표시되는 팀워크도 나쁘지 않아. 아니, 무척 좋다. 이대로 팀워크를 올려서 그때처럼 깽판을 치면 딱 좋겠는데.’
정명의 목표는 지난번, 혈맹 아이템을 썼을 때처럼 극한의 팀워크를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할 듯했지만,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빠, 궁 있음?”
“있음.”
“엄한데다 궁 쓰지 말고 탑에다 궁 써 주셈.”
“알았음.”
정글 포지션은 솔로 랭크에서나 가끔 하는 정명이지만, 신기하게 감은 예전 그대로인 것 같았다.
정명은 와드를 통하여 바텀을 노리는 상대 정글러의 위치를 발견하자마자 핑을 찍는 동시에 탑으로 향했다.
“왜 안 와? 지금 딜 교환 해 놨는데.”
“잠깐만, 조금만 있으면 와드 꺼질 것 같아.”
정명이 신호를 보내자마자 송하니가 상대 펜싱여왕의 회피 스킬을 빼 놓는다.
그리고 와드가 꺼졌다고 확신한 정명의 늑대소년이 탑 라이너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 나갔다.
“으아. 오빠, 내가 늑대소년 같은 똥캐릭터 하지 말랬지! 딜이 왜 이렇게 안 나와!”
“하하, 안 미안.”
결국 정명과 송하니, 둘이 동시에 점멸을 썼고, 상대 캐릭터를 아슬아슬하게 잡아낼 수 있었다.
[퍼스트 블러드]
“오, 킬 먹었당. 캐릭터만 정상적이었으면 더 쉽게 잡았을 것도 같지만.”
“축하, 이제 킬도 먹여 줬으니 상대 라이너를 압살하도록.”
사실 1킬 먹은 건 그리 큰 차이는 아니다. 1킬 보상으로 받은 300골드 정도야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니까.
중요한 건 상대방이 미니언의 큰 덩어리인 빅 웨이브를 놓치게 함으로써, 레벨 격차를 벌렸다는 것이었다.
-와, 부스터 땄음. ㄷㄷ
-NHG 님들 엄청 잘하네. 그런데 방송에서는 왜 그렇게 안 함?
팀원들의 채팅을 본 정명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방송에서도 그렇게 하는데요? 우리들 엄청 잘하고 있습니다.”
-님들 요즘 많이 졌잖아요. 이기는 모습 좀 보여 주세요.
“이제부터 많이 이길 예정임.”
‘탑은 이제 유리하고, 바텀은 비등비등. 제일 걱정되는 미드는…….’
미드는 여전히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둘은 과거에는 같은 팀으로 활동한 사람들이었는데 이렇게 라인전을 펼치는 모습을 보니, 미래가 참 이상한 방향으로 바뀌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명이 미드에서 잠깐 눈을 뗀 순간, 미드에서 킬이 났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킬이 나자마자 송하니는 혀를 쯧 찼다.
“뭐야, 불여우 완전 무리하네.”
“보고 있었어?”
“응, 컨트롤은 나쁘지 않은 것 같기는 한데…….”
무리만 하지 않았으면 반반 싸움은 갔을 상황.
하지만 메이커는 킬 욕심이 났는지 조금 무리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솔로 킬을 내주고 말았다.
“저 사람, 잘하는 거 맞아?”
“그렇다니까? 아마도…….”
그리고 그 후, 30분이 지났다.
[승리!]
게임은 정명이 있던 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메이커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팀에서 돋보인 것은 오히려 하니, 정명 듀오였다.
“후아… 점수 너무 안 오른당.”
하니는 고양이가 기지개를 펴듯, 허리를 구부리며 손을 쭉 폈다.
“그래도 우리 조금만 하면 랭킹 1위 찍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그건 그렇지만…….”
정명은 송하니가 조금 쉬자고 할 새도 없이, 자연스럽게 한판을 더 돌렸다. 그리고 게임이 잡히자마자 또 자연스럽게 친구 목록을 살폈다.
현 세체미, 김지훈은 이번에도 ‘게임 준비 중’ 상태에 들어가 있었고, 이번에도 정명의 팀에 김지훈의 아이디는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 또 우리 반대편에 있나 본데?”
“우씨, 우리 편으로 좀 오지! 나도 편하게 버스 타고 싶다구!”
“그러게 말이다.”
정명은 씁쓸한 척 대답했지만, 내심 히죽 웃고 있었다.
-이번엔 님이 미드 하실 거죠?
방금 전에 같이 게임을 했던 사람들이 이번에도 정명의 팀에 있었다.
슬쩍 보니 메이커도 없는 상태. 팀원들의 지지 속에, 정명은 당당히 미드를 잡았다.
-잠깐, 근데 이건 아니지. 곰 마법사?
-방금 전 게임에서도 늑대 소년 같은 똥캐릭터를 하더니… 정명 님, 혹시 스캇 성애자 아님?
생각지도 못한 캐릭터의 등장에 팀원들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정명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솔로 킬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맘대로 해?’
때문에 정명은 안정성을 버렸다.
그리고 그 대신, 한 방에 모든 것을 거는 곰 마법사를 픽하여 끝장을 보기로 한 것이다.
“저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그 캐릭터 자주 해 봤어?”
“아니, 근데 자신은 있어.”
“하, 그래요.”
옆에 있던 송하니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듯 게임에 임했다. 상대가 유명 미드 라이너인데 무슨 연습도 안 된 캐릭터를 꺼내냐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배우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정명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아이템 상점으로 들어갔다.
[캐릭터 빙의]
누가 캐릭터이고 누가 게이머인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주의! 이 상품에는 과장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숙련도 마스터를 한 캐릭터가 상당수 있습니다. 이 아이템에 80% 할인이 적용됩니다.
가격 : 2,000포인트
정명이 사려는 아이템은 캐릭터의 숙련도를 일시적으로 급격히 상승시켜 주는 아이템이었다.
가격은 2,000 포인트로, 이제는 별로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다.
‘그런데 이거 아이템의 설명이 조금… 말 그대로 과장 광고네. 숙련도 레벨을 끝까지 올린다는 게 대단한 거긴 하지만, 빙의니 뭐니 할 정도는 아니야.’
픽이 끝나고, 세체미와의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김지훈의 캐릭터는 가시덩굴이, 강력한 화력이 장점인 캐릭터지만, 그에 비례하는 약한 체력으로 고도의 컨트롤이 필요한 캐릭터였다.
-너… 타는 냄새 나! 우히히히
정명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각을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방금 전 게임에서도 그랬듯, 김지훈은 전혀 스킬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스턴을 한 번만 넣게 해 줘…….”
“그거 조금 무리하는 것 같은데. 차라리 탑으로 로밍이나 오지 그래?”
“무리하고 있는 거 맞다. 지금 어떻게든 한 방 먹이고 싶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중이다.”
각은 안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라인전이 끝나기 직전, 정명은 골드를 탈탈 털어 주문력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그리고 각이 썩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 억지스러운 이니시에이팅을 걸었다. 어차피 믿는 구석도 있었으니까.
[5초 영웅 스킬을 사용합니다.]
*이 스킬을 쓰는 사람을 상대하려면 상대방에서도 영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스킬을 사용하자 정명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에너지 드링크를 먹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집중력이 생겨났다.
‘지금!’
-비버!
정명의 곰 마법사가 점멸궁을 적중시켰다. 상대방이 0.5초 정도 스킬 사거리 안에 들어온 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됐다, 이거 잡았어!’
다른 선수들 같으면 이게 뭔 일이야, 하며 허둥지둥하고 있을 상황.
하지만 김지훈은 정명의 속도를 따라오기라도 했다는 듯, 곧바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오, 스턴 정화로 푸는 속도 좀 보게.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정명은 자신의 비장의 스킬, 5초 영웅에 반응하는 선수는 처음 만났다.
하지만 곰 마법사는 한 방에 모든 것을 거는 캐릭터답게 막강한 화력을 보여 주며, 아슬아슬하게 가시덩굴이를 잡아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상대방이 죽었다는 메시지가 뜨자마자, 정명이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드디어 잡았다…….”
“헉. 오빠, 김지훈을 잡았어?”
-미쳤다, 진짜. 이젠 하다하다 세체미를 솔로 킬 내네.
-님, 컨트롤 좀 쩌시는 것 같은데, 왜 1라운드에선 5위밖에 못 함?
워낙 짧은 순간에 이뤄졌던 전투이기에 사람들은 그저 대단하다, 멋지다 정도로 놀라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김지훈은 그 짧은 공방 속에서도 꽤 많은 것을 느낀 듯했다.
Hooon5 : 와, 진짜 깜짝 놀랐어요. 곰 마법사 컨트롤이 무시무시한데요?
Hooon5 : 혹시 비밀 병기인데 너무 빨리 쓰신 거 아니에요?
김지훈의 당황 섞인 말에, 정명이 능글맞게 대답했다.
“하하, 좀 아껴 둘 걸 그랬나요?”
Hooon5 : 네, 뭐 이번이 곰 마법사의 은퇴 경기라고 봐야죠. 최소한 우리 팀이랑 할 때는 못 꺼내실 겁니다. 하하.
김지훈의 그 말이 빈 말이 아니라는 듯,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게이머 김지훈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 그는 경기에서 당신을 만난다면 무척이나 경계하며 방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허어, 이것 참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굳이 말하자면 무척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두둑한 보상을 주는 퀘스트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세체미 퀘스트를 달성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팬들은 당신이 진정한 세체미라며 정신 승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퀘스트를 일부 달성했습니다.
*나머지 조건을 모두 클리어하여 추가 보상을 획득하십시오.
*숨겨져 있던 보상이 드러납니다.
*대회에서 솔로 킬을 세 번 이상 내는 경우
-A급 보물 상자 1개
*대회에서 솔로 킬을 내는 경우
-B급 보물 상자 3개
*솔로 랭크에서 솔로 킬을 내는 경우
-C급 보물 상자 10개
퀘스트는 조건에 따라 보상이 달랐다.
정명이 달성한 것은 솔로 랭크에서 킬을 낸 것이었기에, 정명은 3개의 보상 중 가장 안 좋은 보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C급 보물 상자 1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C급 보물 상자 10개라. 무슨 악성 재고 떨이하는 느낌인데?’
*
그 후, 며칠이 지났다.
꿀 같은 일주일의 휴식기가 끝나고, 스프링 시즌의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정명의 첫 번째 상대는 EXA.
천재 코치 이성진과 마찬가지로 천재 선수인 이혁이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그런 숨겨진 전력을 모르는 에리는 웃으며 말했다.
“거기 지난번에 우리가 쉽게 잡았던 팀이지? 이번에도 그랬으면 좋겠다.”
“글쎄요. 이번에는 다른 코치가 나올 것 같아서 저번처럼 쉽게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런데 팀 구성이 지난번하고 똑같은 것 같은데?”
그 말에 정명이 반대편 부스로 시선을 돌리니, 에리의 말대로 EXA 팀 구성이 1라운드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이번엔 꼭 나올 것이라고 하던 메이커, 그리고 이성진 코치는 이번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시작된 밴픽은 1라운드 때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