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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68화 (168/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68화-----------------

천재란 그런 것이다.

똑같은 시간을 들여 연습하는데 그 결과물이 터무니없다.

그것과 비교당한 평범한 사람은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따질 수도 있지만, 따져도 뭐 어쩔 것인가? 억울하다면 재능 있는 사람으로 환생이라도 할 수밖에.

하지만 지금 정명의 앞에 서 있는 이성진은 그런 생각이 싫다 말하고 있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재능 없는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다고. 재능에 따라 차별하는 코치가 아닌, 선수를 정말 제대로 키우는 코치가 되고 싶다고.”

“음, 그래요. 무척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하하,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재능이 없는 선수였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요.”

무척이나 좋은 말이다. 재능에 상관없이 전력으로 선수를 키워 주고 싶다는 말은.

하지만 그런 좋은 말을 들은 정명은 속으로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뭐? 재능이 없는 사람도 잘 키워 줘? 저 녀석을 데리고도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이야? 하하.’

정명은 성진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메이커… 역사상 최고의 미드 라이너라고 꼽히는 사람이지.’

성진이 식스맨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로 유명했던 선수, 이혁이었다.

정명은 호기심이 들어, 메이커의 상태창을 열었다.

[이혁]

피지컬(91/99)

판단력(89/98)

정신력(82/98)

오더(87/97)

‘와… 이게 대체 뭐냐? 포텐셜이 엄청 높잖아!’

정명은 역시 될 놈은 떡잎부터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야 현 연습생이라는 이혁의 포텐셜이 지금껏 봐 왔던 선수 중 제일 높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명은 이 이혁이라는 선수가 지금은 연습생 신분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곧장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금이야 세체미가 아니라지만, 이상진의 천재적인 코칭이 시작되면 무섭게 성장할 게 뻔했으니까.

‘아니면 다른 팀으로 갈 수도 있겠지. 예를 들면 역대 최강의 팀이라고 불리던 KAO라든가.’

그런데 단 한 가지,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역대 최고, 최강이라고 평가받던 이혁조차 피지컬 포텐셜이 99에서 멈춰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 또한 정명이 지금까지 보아 왔던 수백 명의 선수들 중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정명은 ‘그럼 대체 피지컬 100을 찍으면 어떤 괴물이 탄생하는 거야?’ 하는 궁금증이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흠, 내가 피지컬 100을 찍으면 알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내가 능력치 100을 찍는 날이 오기는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포인트 수급 상황으로 봐서는 확신은 못 했다.

스탯이 올라갈수록 점점 필요 포인트가 극악한 방향으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래의 세체미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상당히 흥미로웠다.

정명은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면 혹시… 응?”

좀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하던 그때, 정명을 뒤에서 툭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야, 우리 언제까지 여기에 배경으로 세워 둘 건데?”

정명을 툭툭 치고 있던 것은 쿠론이었다.

이상진은 정명의 팀원들이 차를 타러 이동하던 도중 정명을 불러 세웠고, 그 때문에 다른 팀원들은 근처에서 멀뚱멀뚱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뒤를 보니 송하니까지 뾰로통해져서는 볼을 부풀리고 있었기에, 정명은 머쓱하게 웃었다.

“미안, 지금 갈게. 성진 씨, 그럼 다음에 만나요.”

“예. 다음에 또 봬요. 다음에는 무대에서 뵈었으면 좋겠네요.”

잠시 후.

정명이 쿠론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차 문을 탁, 닫았다.

“그래서, 뭔데? 쟤네는.”

“EXA에 새로 온 코치랑 식스맨. 얼굴 조금 아는 사람이었는데, 나한테 인사하겠다고 찾아왔어.”

그 말에 에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엥? 그래? 근데 왜 이번에 그런 코치가 부스에 들어왔대? 제대로 된 코치가 있으면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나 봐. 뭐, 하지만 이젠 내보내겠지. 한번 호되게 당했으니까.”

하지만 둘의 이야기에 쿠론이 혀를 쯧쯧 찼다.

“둘이 사회생활을 잘 모르네. 그 꼴을 기존에 있던 코치가 내버려두겠어? 새로 들어온 코치가 활약을 하면, 그만큼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텐데.”

“설마… 그 코치도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텐데.”

“무능하니까 더 악착같이 디펜스하겠지. 두고 봐, 그 새로 들어왔다는 코치, 경기에 한 번도 못 나올 테니까.”

*

그 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연습, 대회, 연습, 대회.

반복된 일정 속에 팀원들이 조금 지치는 게 눈에 보였지만 멈출 수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팀원들이 아침부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연습실에 들어왔다. 막 아홉 번째 경기를 치른 다음 날이었다.

에리는 살짝 피곤한 표정으로 연습실 내의 화이트보드를 고쳐 적었다.

“으음, 5승 4패, 5위로 1라운드 마무리. 딱 중위권이네.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은근히 많이 졌네…….”

“괜찮아요. 우리 실력도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2라운드에서 조금만 더 힘내서 3위까지 올라가 봐요.”

한 달을 바쁘게 달렸더니, 어느새 1라운드가 끝났다.

총 9번의 경기. 즉, 정명이 모든 팀과 한 번씩 경기를 치렀다는 뜻이었다.

이제 여기서 한 사이클을 더 돌리면 정규 리그가 끝나고 플레이오프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2라운드를 시작하기 전에, 선수들에게는 딱 일주일의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팀 재정비 시간이었다.

정명은 잠깐 주어진 쉬는 시간 동안 그동안의 결산을 시작했다.

[잔여 포인트: 231,000]

[쿠론이 올린 스탯: 10]

[차석진이 올린 스탯: 15]

…….

‘다른 애들이 짧은 시간 동안 크게 성장했어. 성장세가 이대로 지속될 수 있다면, 남은 시간동안 3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것도 꿈은 아니다.’

이제는 확실히 정명 혼자서 캐리하는 팀이 아닌,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진정한 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정명은 앞으로의 팀 운영에 대한 고민을 하며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런 정명의 무릎에 머리통 하나가 올라왔다.

“그럼 우리 일주일은 쉴 수 있는 거지? 응, 응?”

“무슨 소리야. 한참 실력이 물오른 상황에서 쉬긴 뭘 쉬어? 이미 내일 연습 경기도 잡아 놨어.”

“뭐? 이잉… 놀고 싶은데!”

하니가 정명의 무릎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하니는 몸만 다 컸지 행동은 완전히 애들처럼 애교를 부렸는데, 정명이 집에 한번 간 이후로 그 증세가 더 심해진 듯했다.

물론 애교를 부려 봤자 연습에 관련된 일이라면 어림없었지만.

“오늘은 쉬엄쉬엄할 테니까 이만 일어나렴. 솔로 랭크 1위가 얼마 안 남았단 말이야.”

“오빠, 왜 그렇게 솔로 랭크 1위에 집착하는 거야… 그거 꼭 안 해도 되잖아.”

솔로 랭크 1위.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큰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좀 그런 게 바로 솔로 랭크 1위였다.

하지만 정명은 자투리 시간을 틈틈이 활용하여 솔로 랭크를 돌리고 있었고, 정명에게 붙잡혀 솔로 랭크를 하는 하니는 우는 소리를 했다.

‘왜 하냐고? 당연히 퀘스트 때문이지. 요즘 가뜩이나 포인트가 빡빡한데, 모을 수 있는 포인트는 최대한 모아야 하지 않겠어?’

패배를 꽤 경험했기 때문인지, 리그가 시작되고 나서는 조금 더 독해진 정명이었다.

“자, 이제는 일어나. 이제 1위까지 거의 다 왔어. 오늘 내로 끝장을 보자!”

“앗…….”

정명은 하니의 겨드랑이에 슥, 손을 넣어 하니를 일으켜 세웠다.

“자, 잠깐… 내가 일어설게, 내가…….”

그러자 하니는 말을 더듬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얼른 놔 주니, 하니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바보! 멍청이! 아저씨! 세체미!”

얼굴이 붉어진 하니가 주먹으로 정명의 등을 팍팍 때렸다. 물론 아프지는 않지만, 정명은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송하니, 솔로 랭크 해야지 어디 가?”

“오줌 싸러!”

그 말을 끝으로 방문이 쾅, 닫힌다.

송하니의 빠른 태세 전환에 정명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야. 쿠론, 너 방금 봤지? 쟤, 왜 저래?”

송하니의 이름이 적힌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던 쿠론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정명은 이건 또 무슨 신개념의 성희롱인가 했지만,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닿을 뻔했으니까.”

“뭐, 진짜? 느낌도 없었는데… 아니, 사과해야겠지? 응?”

“됐으니까 그냥 입 닫고 평소처럼 행동해. 걔가 진짜 빡쳤으면 넌 이미…….”

“이미 뭐?”

“쩝, 쟤는 뭐 이런 아이스크림을 사 먹냐. 비비빙? 이거 맛없어.”

쿠론의 뒷말이 궁금했지만 정명은 쿠론의 말대로 입을 닫은 채,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그 어느 때보다 솔로 랭크를 빨리 끝내 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

솔로 랭크에서는 방송에서 절대 볼 수 없었던 캐릭터도 곧잘 풀리고는 한다.

상대가 누구인지를 모르니, 강한 캐릭터 위주로 대충 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 강철 여제 살았다. 나 이거 한다?”

“응, 그래. 나도 환영술사 살았으니 이거나 해야겠다. 잘만 하면 게임 금방 터지겠는데?”

게임 내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있다.

리메이크되거나 관짝에 처박혀서 통 보이질 않는 캐릭터들도 있지만, 그런 와중에도 신규 캐릭터와 스킨은 계속해서 출시되고는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볼 만한 문제가 있다.

게임이 오래될수록 게이머들의 평균적인 숙련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캐릭터는 점점 컨트롤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설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지컬이 뛰어난 게이머들은 그러한 캐릭터의 잠재력을 100%, 120% 이상 끌어 낼 수 있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킬러 송, 더블 킬!]

-아, 저거 개사기네, 진짜. 저거 대체 왜 풀어 줬냐?

-인간적으로 입체 기동에 달려 있는 스턴은 너프하자. 부들부들…….

정명의 예상대로 게임이 쉽게 터졌다.

상대방이 OP캐릭터를 해 보겠답시고 밴을 풀어놓았기에 정명 또한 OP캐릭터를 밴에서 풀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프로들이 없으니까 쉽긴 한데… 다들 뭐 하기에 솔로 랭크에서 안 보이는 거지?”

“다들 쉬고 있겠지! 그러라고 있는 휴식기니까!”

정명에게 잡혀 있는 송하니가 쉬고 싶다는 듯 소리를 빽 질렀지만, 정명은 간단하게 무시했다.

그리고 다시 솔로 랭크를 돌리려던 그때, 뜻밖의 퀘스트가 떴다.

[세체미]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로 불리는 사람이 당신 앞에 있습니다. 우연히 만난 세체미를 꺾어, 당신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달성 조건 : 정글러의 개입 없는 순수한 솔로 킬 달성

‘세체미라고?’

정명은 순간 친구 목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랭크 순위를 어느 정도까지 올리면 게임에서 보던 사람을 계속 보게 되는데, 그 사람들을 친구로 등록해 놓으면 상대편에 누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명은 친구 목록에서 세체미의 아이디를 발견하기는커녕 세체미와 친구 등록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맞아. 지금은 세체미가 황제훈이지…….”

“응? 세체미가 상대편에 있어?”

정명은 혼잣말이었다고 말하려 했지만, 친구 목록을 보던 송하니는 이내 깜짝 놀랐다는 듯 모니터를 가리켰다.

“어! 진짜다! 황제훈 아이디 지금 ‘게임 준비 중’ 상태에 있어!”

“뭐? 진짜? 허, 진짜네…….”

프로들은 보통 듀오로 랭크를 돌린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황제훈뿐만 아니라 최고의 구단이라 불리는 KAO의 선수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결국 정명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런, 점수 깎이겠네.”

“우씨, 벌써부터 우는 소리 할 거야? 상대방이 세체미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아하하, 알았어. 열심히 할게.”

그리고 다른 팀원들 또한 그 사실을 알았는지, 시끄럽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헉, 황제훈 누가 잡음 ㄷㄷ…….

-우리 팀에도 프로 있음. 유정명이랑 송하니.

-오, 진짜? 유정명 잘하는 거 알지. 그러니까 미드 가서 버텨만 주세요. ㅎㅎ…….

“이것들이 진짜, 버티긴 뭘 버텨. 라인전에서 이길 거거든?”

“오, 정명 오빠 허세 나왔다.”

“허세 아니거든?”

정명은 자신이 세체미에게 무조건 이길 수 있다 자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세체미]퀘스트를 눈뜨고 놓칠 생각도 없었다.

세체미를 잡으면 준다는 보상이 탐나고, 또 솔로 랭크에서는 프로들도 조금 마음을 풀고 게임을 하니 이만큼 좋은 기회는 또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아, 조금 포인트를 써서라도 황제훈을 잡는다.’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곧장 시스템 창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 소심한 채팅이 들려왔다.

-hide in bush : 저기, 저 미드 주시면 안 될까요? 잘해 볼게요.

-뭐임 쟤는. 객기 부리지 말고 프로한테 맡기셈.

-맞아, 맞아. 나 이기고 싶다고!

다른 팀원들이 격하게 반응했다.

그도 그럴게, 상대는 세계 최고 미드 라이너라 불리는 사람이다.

웬 듣도 보도 못한 아마추어보다는 검증된 프로를 붙이는 게 훨씬 믿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어라, 저건?’

황제훈에 시선이 팔려 미처 보지 못했지만, 이제 보니 아는 사람이 같은 팀에 들어와 있었다.

정명이 기억하고 있는 세체미, 메이커의 아이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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