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67화-----------------
“2연패라니, 큰일 났다…….”
“어쩔 수 없지. 상대가 그 녀석들이었는걸.”
경기 다음 날 아침.
연습실에 모인 팀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팀원들의 화젯거리는 바로 어제, 세계 최강의 팀이라 불리는 KAO에게 2 : 0으로 졌던 것에 대해서였다.
보통은 경기 다음 날이면 패배의 아픔을 훌훌 털어 버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너무나 일방적으로 당했기에 충격이 다음 날까지도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그럴 만하지. 북미에서부터 꽤나 승승장구했던 팀이니까.’
정명이 2연패를 당한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지만, 변명 거리는 있다.
이번에 정명의 팀원들이 연달아 상대했던 팀은 1위 팀, 그리고 2위 팀.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대진표였으니까.
특히 1위 팀이면 좀 살살 할 만도 하건만, 정명은 1위 팀인 KAO 선수들이 정말 전력을 다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KAO 팀에서는 픽밴부터 게임 내의 플레이까지, 정명과 정명의 팀원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대응했던 것이다.
‘어떤 팀을 만나도 전력을 다하기에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정명은 그들의 그런 모습에서 1위 팀이 괜히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북미에서 전승 우승한 팀으로서 조금 체면을 구겼지만, 아직 리그가 끝나려면 한참 남았다.
역전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기에 정명은 마음을 다잡았다.
“정명, 잠깐 괜찮아?”
생각을 잠시 정리하고 있는 정명에게 에리가 다가왔다.
에리는 정명의 몫으로 타온 커피를 책상에 내려놓았고, 정명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에리와 눈을 마주쳤다.
“왜요? 사료 떨어졌나요?”
“사료 말고 모래를 사러 가야 할 것 같긴 한데…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팀 말인데, 인원 보강을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인원 보강이요?”
“응. 그 왜, 어제도 밴픽에서부터 식겁했잖아. 다음에 똑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코치의 보강이 필요해.”
“하긴…….”
1위 팀 정도 되면 코치가 몇 명씩 달라붙는다.
기존에 썼던 캐릭터 외에 어떤 캐릭터를 준비해야 하는가, 만약 연습하던 캐릭터가 밴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와 상대 팀의 분석, 새로운 캐릭터의 발굴까지.
모두 코치가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에리가 코치로서 어떤 능력을 보여 줬는지는 둘째치고, 확실히 에리 혼자서 그 모든 걸 다 하기에는 조금 벅찬 감이 있었으므로 정명은 코치진의 보강이 필요하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안 그래도 코치진은 보강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신을 포함하여 최소 두 명, 많으면 세 명까지 할 생각이에요.”
“오오, 정말? 봐 둔 사람 있어? 누구로 할 거야?”
“그것까진 아직 생각 안 해 봤는데, 혹시 괜찮은 사람 보이면 말해 주세요. 최대한 반영할 테니까.”
“와, 와! 신난다! 나 혼자 야근 안 한다!”
에리는 자신의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무척이나 희희낙락하며 돌아갔다.
‘코치를 뽑는 건 이번 시즌이 끝나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정명은 그때까지만 고생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며, 에리의 상태창을 살폈다.
[미어스 에리]
판단력(90/94)
*초보 코치
*겨우 수습 딱지를 뗀 초보 코치입니다.
-선수들이 50%의 추가 경험치를 받습니다.
‘에리가 어리바리하는 것 같아도 제 몫은 확실히 하고 있긴 해. 하지만 앞으로 곧 10밴 시대가 오니까 혼자서는 무리지.’
인원을 추가 보강하려는 이유는 더 있었다.
앞으로 밴픽과 관련된 코치들의 머리싸움이 더 박 터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걸 혼자서 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아, 맞다. 에리, 우리 다음 경기 상대 팀이 팀 EXA라고 했던가요? 거기 코치가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렇다고 하더라. 그게 진짜면 다음 경기는 조금 쉬울지도 모르겠어.”
팀 EXA의 코치는 조금 옛날 사람이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무척이나 예전에 활동했던 프로 게이머라는 것이다.
‘종목이 같으면 또 모르겠는데, 다른 게임을 하다 온 사람을 불렀으니…….’
그랬던 그가 코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예전에 활동했던 게이머인 만큼, 인맥 하나는 무척이나 넓었기 때문이다.
“아. 저, 그 사람 알아요. EXA의 최승일 코치님 말이죠?”
“뭐야, 알고 있는 거 있어?”
차석진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차석진은 한국에서 이미 선수 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정명보다 한국 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선수 생활을 해 봐서 그런가, 엄청 자유롭대요. 구단보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는 분이라고…….”
“그래?”
“네. 억지로 뭐 시키는 일도 별로 없다고. EXA 선수들은 만족하나 보더라고요.”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면 밴픽은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으니, 밴픽은 선수들에게 맡긴단다.
현역 프로 게이머가 게임을 제일 잘 알지, 아무리 코치라고 해도 선수보다 게임을 더 잘 알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일리 있는 말이지, 하지만…….’
코치가 밴픽을 준비한다는 것은 선수보다 게임을 더 잘 알아서 그렇다기보다는 일을 분배한다는 의미였다.
정명은 다음 경기가 어쩐지 조금 쉽게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며칠 뒤.
정명과 팀원들은 경기장에 일찌감치 도착하여 경기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 부스에서 조금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아자, 아자!
-하나, 둘, 셋, 화이팅!
“분위기 좋아 보이네요.”
“그러게.”
부스에서는 코치가 분위기를 주도하며 으쌰으쌰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차석진의 말대로 무척 좋은 코치인 듯 보였다.
호기심이 동한 정명은 코치의 상태창을 살펴보기로 했다.
[최승일]
판단력(69/87)
*수습 코치
*이제 막 코치로서 첫발을 내딛은 애송이 코치입니다.
-선수들이 20%의 추가 경험치를 받습니다.
‘역시, 라고 해야 하나. 1부 리그 코치라고 하기엔 좀 아쉬운 게 사실이군.’
프로 리그 업계의 팀들은 인성 논란이 있었던 선수라 할지라도 거리낌 없이 선수를 영입하고는 했다.
팀 입장에서는 당장 한판 이기는 게 중요하고, 또 성적이 있다면 그런 논란은 금방 사그라드니까.
코치 또한 마찬가지다.
팀 EXA의 운영 팀은 코치의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했기에 미숙한 사람을 코치로 기용했지만, 그 문제점은 잠시 후 이뤄진 밴픽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
“아마 수도승은 밴하겠지?”
“그럴 걸요?”
정명은 에리와 의견을 나누며 밴픽을 주도하고 있었다.
에리가 조금 어리바리하긴 하지만 게임에 한해서는 머리가 꽤 잘 돌아갔으므로,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수도승 밴합니다!
-지난 경기에서 엄청나게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거든요!
메테오의 저격 밴이었지만, 메테오는 오히려 피식 웃었다.
“다행이네. 나 지난 경기 이후로 수도승 연습 하나도 안 했는데.”
“밴 카드 하나 먹었네요.”
수도승이 밴되는 모습을 보며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던 에리는 계획대로라는 듯, 살짝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꼬마마녀 밴하자. 솔로 랭크랑 최근 경기 분석해 보니까, 요즘 저쪽 탑 라이너가 밀고 있는 것 같던데.”
“그럴까요? 그래서 메아리 고르도록 유도할까요? 저 녀석 캐릭터 풀이 좁아서 나올 만한 게 거기서 거기예요.”
“그게 좋겠네.”
-꼬마마녀 밴합니다. 김상필 선수, 표정이 썩 좋지 않은데요.
-김상필 선수, 결국 메아리를 고릅니다. 팀 조합을 고려한 결정 같네요.
-그런데 김상필 선수가 메아리를 골라서 지금까지 별로 재미를 못 봤거든요. 성적이 1승 4패. 인상을 찌푸릴 만합니다.
“좋아. 그럼 우리는 그 카운터로…….”
“으와… 이게 다 뭐야?”
송하니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정명과 에리를 질렸다는 듯 바라봤다.
마치 상대방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밴픽을 진행시켰기에 꽤나 놀란 듯했다.
“혹시 미래에서 왔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괜히 제 발 저린 정명이 눈을 크게 떴다.
정명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는데, 뒤에 있던 에리가 웃으며 하니의 볼을 쭉쭉 당겼다.
“뭐라는 거니? 하니는 만화를 너무 많이 봤어.”
“으그그… 그런데 다 맞추잖아. 천기누설이 아니면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구…….”
‘당연히… 저 녀석들의 생각을 읽기가 너무 쉬우니까 그렇지.’
정명은 괜히 잘난 척하는 것으로 보일까 봐 마지막 말은 삼켰다.
판단력 90이 넘을 정도로 게임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과 인맥으로 들어온 초보 코치는 그만큼 차이가 났던 것이다.
‘선수들은 연습하느라 바쁘지, 밴픽까지 준비할 시간이 어디 있어? 그렇다고 솔로 랭크처럼 막 밴픽하다가는 바로 이렇게 된다고.’
그리고 잠시 후, 게임이 시작되었다.
EXA 선수들 또한, 밴픽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상당히 긴장한 모양새였다.
*
-라인전에서부터 굴러간 스노우볼이 이렇게 커지네요.
-EXA의 조합이 후반 간다고 꼭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거든요. 밴픽에서 OP 캐릭터를 전부 내준 게 너무 아쉽습니다.
밴픽에서 이긴 게 도움이 되었는지, 게임은 무척이나 쉽게 풀려나갔다.
모르는 사람이야 캐릭터가 어쨌건 잘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잘’한다는 것의 허들이 상당히 높았으니까.
결국 경기는 정명의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2 : 0 승리! 추가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45,000포인트]
[잔여 포인트: 80,000]
경기에서 승리하자 포인트가 들어왔다는 것과 함께, 팀원들의 스탯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뜬다.
정명은 경기에서 승리하여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밴픽만 대등하게 되었다면 쉽지 않았을 상대였다고 생각했다.
‘뭐, 밴픽도 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게임이 끝나자 팀원들이 무대에서 내려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실에 모인 팀원들은 집에 돌아가기 위해 대기실을 나섰다.
그런데 방송국 복도에서 정명은 뜻밖의 인물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 기억하세요?”
“어, 혹시 시드권 살 때 그…….”
“이성진입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일부러 정명을 찾아온 손님은 이성진이었다. 정명이 몇 개월 전, 시드권을 살 때 만났던 사람이었다.
이성진은 정명의 조언대로 프로 게이머를 은퇴한 후, 코치의 길을 밟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오, 코치 좋죠. 그런데 그동안 왜 못 봤지?”
“그동안은 수습 코치였거든요. 하하, 머지않아 나올 것 같기도 합니다. 감독님이 허락을 해 주셔야 나오는 거지만요…….”
‘코치라, 전 프로 게이머라고 해도 아무나 하는 자리는 아닌데…….’
정명은 습관적으로 이성진의 상태창을 살폈다.
[이성진]
판단력(88/96)
*숙련 코치
*경험이 쌓여 이제 코치로서 1인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수들이 100%의 추가 경험치를 받습니다.
*코치로서 재능이 천재적입니다.
-천재 특성에 의해 200%의 추가 경험치를 받습니다.
추가 경험치 총합 300%.
선수들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이성진은 게이머로서의 재능은 없어도, 코치로서의 재능은 엄청났던 것이다.
정명은 이성진이 잘되어 살짝 기쁘면서도,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에 긴장해야만 했다.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예요?”
“아, 이번 시즌부터 우리 팀에 들어온 선수입니다. 지금은 식스맨이지만, 연습 결과에 따라 경기에 내보낼 수도 있겠죠.”
“안녕하세요.”
이성진의 뒤에 있던 사람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 대선배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정명은 그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녀석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