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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66화 (166/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66화-----------------

‘나보다 돈 잘 버나 봐. 좋은 데에서 사네.’

평일 아침.

평소라면 연습실에 가기 위해 서두르고 있을 시간이지만, 정명은 오늘 연습실에 가는 대신 한 고급 오피스텔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학교에 가야 하는 급식충 팀원을 챙겨 주기 위해서였다.

[야, 왜 안 나와? 빨리 나와!]

[잠깐만 기다려…….]

하지만 그 뒤로 10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결국 정명이 1분 단위로 재촉 문자를 보내자, 다시 답장이 왔다.

[그냥 여기 와서 기다려. 비밀번호가 뭐냐면…….]

‘899811, 맞지?’

-띠리릭

송하니가 알려 준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정명은 분홍색 토끼 인형과 소파에 걸쳐져 있는 화려한 옷들을 볼 수 있었다.

거기다가 미묘하게 좋은 냄새까지 나는 게, 딱 봐도 여자애의 방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싱크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 거리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게임 CD들만 빼면.

‘뭐가 이리 지저분하냐.’

송하니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원래 송하니가 김민서라는 매니저와 둘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매니저가 급한 일이 있어 잠시 지방으로 가게 되었고, 매니저는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다가 결국 정명에게 송하니를 학교에 좀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명은 학교에 통학시켜 주는 게 뭐 그리 어렵겠냐며 그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물론, 이렇게 난감한 일이 될 줄은 몰랐지만.

여자애의 방에 들어와 괜히 어색해진 정명은 일단 방 밖에서 하니를 깨워 보기로 했다.

“일어나라. 하니야, 학교 가야 한다며?”

“언니, 나 잠깐만. 너무 졸려서… 아침 안 먹으면 조금 더 잘 수 있더…….”

하니는 그렇게 징징거렸지만, 이미 늦은 시각이다. 결국 정명은 하니의 방에 직접 들어가기로 했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송하니.

정명은 성큼성큼 걸어가서 이불을 퍽퍽 쳤다.

“야! 일어나라고!”

“어, 어?”

송하니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이불 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런데 정명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다시 이불에 쏙, 숨어 버렸다.

“뭐얏! 여자애 방에 맘대로 들어오다니! 오빠, 아무리 우리가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지만 이건 좀……!”

“뭔 소리야. 네가 들어오라며?”

“어? 아, 맞다. 그랬지…….”

“그보다 뭘 새삼스레 그러는 거냐? 너 연습실 소파에서 자고 있을 때 침 닦아 준 게 누군데.”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그보다 그런 일도 있었어? 미쳤다, 진짜!”

여자애의 방에 들어왔지만, 별로 이상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정명은 애를 키운다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됐고, 빨리 일어나. 시간 없어.”

“오빠가 나가야 일어나지! 나 지금 속옷만 입고 있다고! 저리 가, 가!”

송하니답지 않게 얼굴이 빨개져서는 바락바락 소리쳤고, 결국 정명은 쫓겨나듯 방에서 나와야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후드를 눌러쓴 송하니가 배를 북북 긁으며 나왔다.

“하암… 아조씨, 나 핸드폰이 안 보이는데, 혹시 못 봤어?”

‘이게, 꼭 지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아저씨라고 부른다니까.’

정명은 소파에 버려져 있던 핸드폰을 주워 송하니의 손바닥에 탁, 올려놓았다.

“옛다. 그리고 밥 먹을 시간 없으니까 세수만 하고 나와. 바로 가자.”

“잠깐만. 나 그래도 연예인인데 조금만 꾸미고…….”

“20분 내로 끝내. 나 먼저 내려가 있을게.”

*

차에 올라탄 송하니는 마치 휴가에서 복귀하는 군인처럼 하염없이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흐어어… 어째서 나에게 이런 시련이…….”

“그렇게 가기 싫으면 그냥 자퇴해, 어차피 수업도 제대로 안 듣잖아.”

“나도 그러고 싶어. 오빠가 울 부모님 설득 좀 해 줘… 아니, 하다못해 언니라도… 정 안 되면 우리 집 고양이라도…….”

“그 정도는 되지.”

“어? 정말?”

“고양이 정도면 설득 가능하지. 내 고등학교 때 별명이 드루이드였다고.”

“캭! 뭐래!”

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내에 있는 한 여고에 도착했고, 송하니는 정명에게 손을 흔들며 차에서 내렸다.

“바이, 바이! 이따 봐!”

송하니가 차에서 내리자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된다.

그리고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 저거 송하니 아냐?

-진짜네? 와, 이 학교에 있다는 소문이 진짜였구나!

‘쯧쯧, 진짜 피곤하겠다. 나 같으면 진작 관뒀을 텐데.’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송하니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송하니의 집에 다시 도착한 정명은 청소, 빨래, 설거지 등 각종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지저분하게 있는 꼴을 도저히 못 봐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정명이 청소를 거의 다 마칠 무렵, 메신저 톡이 왔다.

[나, 지금 집 감! 차 태워조!]

*

‘어쩐지, 맨날 메신저에서 칼답장하더라. 핸드폰만 보고 있네.’

저 멀리서 송하니의 모습이 보였다.

벤치에 앉아 있는 송하니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몇 애들이 용기를 내어 다가오면 웃으며 사진을 찍어 주거나 사인을 해 주거나 하기도 했는데, 연습실에서처럼 개구쟁이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연예인이 이미지 관리하듯 무척이나 의젓하고, 또 말을 아끼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송하니는 정명의 차를 발견하자마자 자신의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얘들아, 안녕! 나 이만 갈게!”

“하니, 안녕! 학교에 자주 와!”

“콘서트 티켓 꼭 보내 줘!”

하니가 교문을 나서자 하니 근처에 있던 애들뿐만 아니라, 저 멀리 창문에서도 하니가 떠나는 모습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물론, 구경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치 기념사진을 찍듯 스마트폰으로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 것은 덤이었다.

곧이어 탁, 소리를 내며 차 문이 닫히자, 송하니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후, 힘들어. 피곤해.”

“오, 송하니, 친구 많네!”

“응? 친구?”

송하니가 뭔 소리를 하냐는 듯 반문했다.

그 모습에 정명은 살짝 당황하여 다시 물었다.

“방금 걔네들 말이야. 친구 아냐?”

“친구? 글쎄, 쟤네들이랑은 그냥 연예인과 팬의 관계지, 친구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 않나?”

송하니는 그렇게 말하며 친구란 대등한 관계에서 성립하는 거겠지, 하고 덧붙였다.

“그런데 하니야, 인상 좀 펴라. 누가 보면 싸운 줄 알겠어.”

“어, 응…….”

“너, 말이야. 이렇게 학교 다닐 거면 그냥 학교는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넌 지금까지 2년 다닌 게 아깝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엔 지금부터 다녀야 할 1년이 더 아까워.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냐.”

“사실… 내 생각도 그래. 의미 없어.”

“그래. 네 부모님한테는 내가 말해 줄게. 2년 다닌 거 아깝지만, 여기서 끊자.”

“그럼 고맙구…….”

그 말을 끝으로 송하니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창밖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차는 곧장 연습실로 향했다.

그런데 연습실 건물 앞에 도착하자마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내일 모레에나 도착한다던 송하니의 매니저가 연습실에 먼저 와 있었던 것이다.

“언니! 서울 오려면 시간 더 걸린다며?”

“너 걱정돼서 미리 왔어. 또 방 개판으로 놔뒀을 것 같아서… 잘 있었지?”

“웅! 당연하지! 쪼금밖에 안 어질렀어!”

‘아주 잘 알고 계셨군.’

반갑게 재회하는 둘을 내버려둔 채, 정명은 먼저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정명은 냉장고에서 빵을 꺼내는 쿠론을 볼 수 있었다.

[하니 거! 아무도 먹지 마!]

먹지 말라고 빵 비닐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건만, 아무렇지도 않게 빵 봉지를 뜯으려 하는 쿠론.

정명은 그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쿠론, 빵 봉지에 먹지 말라고 적혀 있는데?”

“저, 한쿡말 할 줄 모릅니다. 저는 불쌍한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쿠론은 이상한 소리를 하며 빵 봉지를 뜯었다.

그리고는 한입 크게 베어 물더니, 곧장 얼굴을 찌푸렸다.

“맛 되게 없네.”

“그러면서 왜 먹는데?”

“반응 보는 게 재밌잖아.”

그로부터 30분 뒤.

연습실에서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정명은 또 시작이겠거니 하며 한숨을 쉬며 갔다.

“사륜안!”

“아, 이런 #### 같은… 그만 좀 하지?”

정명은 송하니가 또 방방 뛰고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송하니는 푸하하 웃고 있고 쿠론은 영어로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쿠론은 정명을 발견하자마자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야! 유정명! 멀뚱멀뚱 보고 있지 말고, 좀 말려 봐!”

“뭐를?”

둘은 솔로 랭크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듀오 랭크를 돌린 게 아니라 따로따로 돌렸는지 서로 적으로 만난 상태.

정명은 쿠론의 뒤에 서서 그녀의 플레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수도를 따라가면 우리 집이 나오지.]

쿠론이 플레이하고 있는 캐릭터는 역병 쥐. 은신이 가능한 원 딜러 포지션의 캐릭터였다.

서포터와 따로 떨어져서 미니언을 먹던 쿠론은 상대의 포위망이 좁혀 오자 은신을 써서 여유롭게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때, 한 수도승이 다가왔다. 아이디를 보니 송하니의 캐릭터였다.

송하니는 어찌 된 영문인지 쿠론이 은신한 위치를 정확하게 잡아내어 스킬을 사용했다.

“사륜안! 백안!”

[이쿠!]

수도승이 스킬을 사용하자 쿠론의 위치가 곧바로 드러난다.

쿠론은 열심히 도망치는 와중에도 송하니에게 욕을 하기 바빴다.

“아 미친, 보지 말라고! 이거 완전 돌아이 아니야?”

“푸하하하하!”

정명이 뒤를 보니, 송하니가 킥킥 웃으며 쿠론의 화면을 엿보고 있었다.

은신한 위치를 잡아낸 비결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어휴…….’

정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 진흙탕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그때, 송하니의 매니저가 정명에게 다가왔다.

“오늘 하루 고마웠습니다. 등교할 때, 밖에서 하니 오래 기다리셨죠? 그 녀석이 워낙 아침잠이 많아서…….”

“아하. 네, 뭐.”

실제로는 방 안에 들어가서 송하니를 두들겨 깨웠지만, 정명은 굳이 그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보다 매니저님, 송하니 학교 말인데요.”

정명은 송하니 학교에 대한 문제를 언급했다. 저대로 놔둘 거냐는 직접적인 물음이었다.

그러자 매니저는 시원시원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미 가족분들과 얘기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학교는 자퇴하는 것으로.”

“헉, 정말요?”

“예. 의미도 없고, 무엇보다 본인이 힘들어하니까요.”

매니저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며 송하니에게 시선을 옮겼다.

송하니는 활기차게 웃으며 쿠론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니에게 친구가 생긴 건 참 오랜만이네요. 저렇게 웃고 떠드는 건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그런가요?”

“예. 학교에서는 동급생들이 다가오기 힘들어하고, 연예계는 완전히 살얼음판이고.”

“하긴…….”

“그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밤새 게임만 하고 조금 우울해 보였는데, 이 팀에 들어오고 나서 꽤 밝아진 것 같습니다. 대신 감사드려요. 매니저가 아니라, 아는 언니로서.”

‘연예인으로서의 송하니라.’

정명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에서는 송하니는 꾸준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금방 은퇴를 선언했다.

정명으로서는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은퇴 직전 활동에서는 TV에 비칠 때마다 꽤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정명은 새삼스레 자신의 행동이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최소한 이번만큼은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겠지? 아마도.’

*

그로부터 약 2주가 지났다.

정명과 팀원들은 부스 안에서 한숨을 쉬며 무척이나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GG! NHG, KAO에게 2 : 0으로 패배합니다!

-이걸로 NHG는 3승 3패네요. 2연패라,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뭐, 이번에는 어쩔 수 없죠. 상대방이 1, 2위 팀이었는데. 안 그렇습니까?

“아놔, 더럽게 잘하네.”

“아쉽다.”

“웅. 하지만 매번 이길 수는 없으니까.”

승리에 대한 욕심은 당연히 있지만, 매번 이기는 것을 바랄 정도로 욕심이 많지는 않다.

세계 최고의 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가끔씩 질 때가 있는데, 무슨 자만심으로 매번 이기는 것을 바라겠냐는 것이다.

정명과 팀원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하나둘 무대에서 내려왔다.

오늘 경기에서 승리한 KAO 선수들은 승자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고, 팀 KAO의 팬들은 관객석에서 큰소리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역시 세체미!]

[컨트롤 미쳤다!]

‘세체미라. 근데 세체미가 왜 저 사람이지?’

세체미란 세계 최고 미드라이너의 약자였다.

오늘 정명이 상대한 세체미는 세계 1위 팀, KAO의 미드라이너.

사막의 황제라는 캐릭터를 무척 잘 다루는 것과 김남훈이라는 이름을 합쳐 황제훈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게이머였다.

‘물론 저 사람이 못한다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왜 그 녀석이 아니지?’

정명은 새삼스레 자신의 행동이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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