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65화 (165/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65화-----------------

라인을 쭉쭉 민다면 탑 라이너 입장에서는 상당한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

미니언을 끼고 싸우기 때문에 딜 교환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가 타워를 허그하고 있기에 CS 손실도 발생시킬 수 있다. 게다가 텔레포트 주도권까지 갖게 되니, 여러모로 이득인 상황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정글러라는 존재가 없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송하니 선수의 화염방사 요정, 라인을 넥서스까지 밀어 버릴 기세네요. 그런데 이거 조금 위험해 보이지 않나요?

-역시 수도승이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과연 퍼스트 블러드를 낼 수 있을지?

탑 라인에 수많은 핑이 찍히기 시작했다.

목표는 타워 앞에서 얼쩡대고 있는 송하니.

송하니는 타워를 낀 채, 미니언을 힘겹게 받아먹고 있는 나무정령을 화염방사기로 신나게 지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송하니의 뒤에 와드가 박혔다. 와드 방호를 타고 온 수도승이 송하니의 뒤를 점한 것이다.

“우씨, 이럴 줄 알았어. 이놈들은 툭하면 탑으로 온다니까. 메테오, 헬프!”

그 순간, 부시에 숨어 있던 메테오의 전갈이 튀어나왔다.

사실 송하니가 라인을 쭉쭉 밀고 있었던 것은 완벽한 설계였다. 송하니가 평소에 갖고 있던 탑신병자 이미지를 이용한 낚시였던 것이다.

[요정의 혼을 실은 지옥 불이다!]

“크헤헤. 죽어라, 죽어!”

라인을 밀고 있었기에 송하니의 캐릭터가 레벨 업이 더 빨랐던 상황에서 전투가 진행되었다.

하니는 나무정령을 숯불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고, 팀 윈드의 선수들은 혼비백산하여 점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도승을 아슬아슬하게 잡아 낼 수 있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수도승, 나무정령 둘 다 점멸 빠짐. 오, 더블 버프다!”

그 흥미진진한 싸움을 보던 정명은 그 싸움에 대하여 짧게 평했다.

‘탑 라인은 끝났군.’

가뜩이나 송하니의 캐릭터가 상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이렇게 이득을 보다니.

이쯤 되면 정글러가 와서 2킬 정도 따 주지 않는 이상에야 나무정령은 이제 허락받고 미니언을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명은 블루와 레드, 더블 버프를 먹고 희희낙락하는 송하니를 진정시켰다.

“하니야, 조심해라. 정글러 무조건 또 온다.”

“응? 하지만 탑 라인 또 와 봐야 별 재미 못 볼 것 같은데? 또 오면 동선 낭비라구.”

“네가 잘 모르는구나. 더블 버프를 빼앗긴 정글러의 원한은 강력해. 무조건 또 가게 되어 있어. 더블 버프를 다시 뺏어 오지 못하면 화병 나서 죽거든.”

“히히, 혹시 그거 경험담?”

그 말을 끝으로 정명은 다시 자신의 라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미드 라인의 상황은 호각. 1킬도 나지 않았고 CS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과연 한국에서도 자신의 실력이 잘 통할까?’ 라는 의문을 품었던 정명이지만, 이제는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의, 그리고 팀의 실력이 한국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한국 리그가 수준 높은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외계인인 것은 아니었다는 거지.’

다른 라인은 쉴 틈 없이 견제를 치고받는 전쟁터였지만, 미드만은 평온하다.

그렇게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미니언을 먹던 정명은 어느 순간 상대 방랑 마법사의 움직임이 조금 어색해져 있는 것을 느꼈다.

‘잠깐, 저 녀석 무빙이 아까보다 조금 빨라진 것 같은데? 정글러 안 보인 지도 오래됐고, 좀 사릴까…….’

-정명 선수가 각을 전혀 안 내주네요. 혹시 수도승의 모습이 살짝이라도 보인 걸까요?

-하지만 마침 와드도 꺼진 타이밍이니까 보였을 리는 절대로 없거든요. 아, 결국 참지 못하고 들어가는 수도승!

-실패네요. 미니언의 방호를 타고 유유히 돌아갑니다.

갱킹 각이 딱히 보이지 않았기에 상대방에서도 무리하지 않았다.

수도승은 괜히 음파나 한번 던져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정글로 향했다.

일명 ‘지나갈게요.’ 갱킹이었다.

-캬, 역시 정명 선수, 반응속도가 칼이네요, 칼. 외계인도 아니고 저래서야 정글러가 갱킹 갈 마음이 들겠습니까?

-결과적으로 말해서 시간만 날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팀 NHG의 턴이네요.

프로 게임이란 그렇다.

어디선가 시간 낭비를 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정글러가 미드에 있는 것을 확인한 송하니는 곧장 바텀 라인으로 텔레포트를 탔고, 동시에 메테오가 바텀 라인 부시에서 대놓고 모습을 드러냈다.

알아도 못 막는다는 4인 다이브였다.

-메테오의 점멸 꿰뚫기!

-탐험가는 잡히고 서포터만 겨우 도망갑니다. 이거 초반부터 너무 터지는데요? 한 라인도 아니고 두 라인이 이렇게 되면 스노우볼이 급격히 굴러가거든요.

“와, 이번에는 바텀이 핫플레이스네. 나도 좀 끼워 줘라.”

“노노. 늦으면 어시 없음!”

상황이 조금 정리된 상황에서 카메라는 관객석의 모습을 잡았다.

팀 더블의 팬들은 각종 응원 도구에 역전을 바라는 말을 적었다.

[역전 가자!]

[아직 초반이다!]

[원 딜 캐리ㄱㄱ!]

카메라는 이번엔 팀 더블의 선수들의 모습을 잡기 시작했다.

역전을 해 보자며 으쌰, 으쌰, 하고 있는 팬들과는 달리, 선수들은 굳은 표정으로 회색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임에 대해 훨씬 많이 아는 선수들이기에, 상황이 조금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수들의 실력이 급상승했네요! 솔직히 저 설문 조사에서 팀 더블이 이긴다고 해 놨는데.

-저는 이번 경기의 승률을 50 대 50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 압도적이네요.

해설들은 훨씬 매끄러워진 NHG 팀원들의 움직임을 보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때로는 조금 과장하여 NHG를 띄워 주기도 했는데,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활약을 해 줘야 흥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기 35분 경과 후, 1경기가 끝났다.

중반 타이밍에 킬을 주고받으며 비벼지는 듯도 했지만, 정명은 훌륭하게 초반의 스노우볼을 이용하여 게임을 잡아낼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은 휴식과 전략 회의를 위하여 부스에서 나와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고 정명은 부스에서 나오며 관객석을 흘끗 바라봤다.

“아까도 봤지만 이렇게 보니 확실히 알겠어. 석진아, 오늘 여자 팬들 진짜 많이 왔지 않냐?”

“확실히 그래요. 저런 양아치를 뭐가 좋다고 저렇게 빨아 주는지…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 뭐 그런 심리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팀 더블이 1경기에서 패배했지만, 이것으로 팬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팬들은 오히려 더욱더 열심히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패승승 가자!

-집에 늦게 가도 된다! 이기기만 해라!

그 모습을 본 정명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거, 참 시끄럽네. 석진아, 다시 가 보자. 용산을 도서관으로 만들어 주러!”

잠시 후 시작된 2경기는 꽤 오래 이어졌다.

팀 더블이 괜히 자신감을 가진 게 아닌 듯, 상당히 탄탄한 운영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 50분째… 이거 혹시 개막 이후 최장시간 경기인가요?

-아뇨, 60분을 채운 경기가 있습니다. 10분만 버티면 최장시간 경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정명 또한 이곳저곳을 뚫어 보려 애를 쓰고 있었지만 틈이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경기가 길어지자 반갑지 않은 메시지들이 뜨기 시작했다.

[경기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팀원들의 집중력이 일시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쿠론의 정신력이 1 하락했습니다.]

[메테오의 정신력이 1 하락했습니다.]

*

‘아오, 이기든 지든 싸우자 좀!’

팀 더블의 조합은 포킹 조합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전면전은 피하고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조합이었고 정명 또한 틈을 내주지 않았으므로 경기가 이렇게 길어지게 된 것이었다.

“아, 진짜 못 참겠다. 그냥 백작 가 버릴까?”

“그럴까? 아니면 근처 부시에서 낚시라도 해 볼래?”

답답해진 팀원들이 하나둘 조급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기가 이쯤 진행됐으면 집중력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집중력이 부족해져서 맵 중앙을 어슬렁대다가 어이없이 잘리기라도 하면 부활할 때까지 70초.

만약 잘린 게 서포터도 아닌 원 딜이라면? 그대로 게임이 끝나 버린다.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원 딜러는 혼자 다니지 않도록.

그리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는 건 정명의 팀원뿐만이 아니었다.

“형, 형! 여기요 여기!

와드를 박으러 돌아다니던 차석진이 빅 웨이브를 정리하러 라인에 가던 원 딜러, 보안관과 마주쳤다.

차석진은 부시에 숨어서 없는 척하고 있는 상태.

대답할 시간도 아깝다.

정명은 카드맨의 궁극기를 이용하여 악마 사냥꾼이 혼자라는 것을 확인한 후, 곧장 근처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지막 집중력을 불태웠다.

“석진아, 가자!”

[5초 영웅을 사용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강화됩니다.

*슈퍼플레이가 나올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당신의 적을 쓰러트리십시오.

영웅이 되는 시간만큼은 탑 프로 게이머 부럽지 않다.

정명은 시간이 느려진다고 착각할 정도로 집중력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카드를 한 장 뽑았다.

‘첫 장에 골드 카드라니, 운이 좋네.’

-차석진, 데크레센도 적중시킵니다!

-곧바로 연계되는 골드 카드! 골카가 바로 나와서 자칫 못 뽑을 수도 있었는데, 참 반응속도가 좋네요!

윈드의 악마 사냥꾼이 죽기까지는 딱 4초가 걸렸다.

정명은 기회를 잘 포착한 석진을 연신 칭찬하며 호기롭게 외쳤다.

“시간 충분해. 백작 버려! 바로 3억제기 까자!”

결정적인 실수를 한 윈드는 멍하니 입을 벌리다가 이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게임이 끝났다.

-56분 경기, 끝났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윈드 선수. 다른 선수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상집 분위기 같은 팀 더블과는 달리, 반대편 부스에서는 하이 파이브를 하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됐다! 하니야, 우리가 드디어 석진이의 복수를 했어!”

“응! 석진이도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있을 거야!”

“저기, 저 안 죽었는데요? 복수라고 할 것도 없고요.”

곧이어 승자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조 아나운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인터뷰를 시작했고, 팀원들 또한 그런 그녀를 배려하듯 평범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딱 한 명, 정명을 제외한다면.

정명은 자신이 응원하던 팀이 졌기에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관객들을 바라보며 포문을 열었다.

“분위기가 참 좋네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아… 네?”

인터뷰를 하던 조 아나운서가 당황했다. 어지간히 분위기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이런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상대 팀에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분이 계시거든요. 다들 말 안 해도 누군지 아시죠?”

정명의 능청에 일부 남성 팬들이 큭큭 웃었다.

경기를 직접 관람할 정도면 상당한 코어팬일 확률이 높기에, 정명이 말하는 게 무슨 소린지 눈치챈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이 아니라 꽤 마음에 안 들지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자세한 뒷담화는 제 개인 방송에서 하죠 뭐.”

이제 관객들은 큭큭 웃는 것을 넘어, 웅성대기 시작했다.

관객석에서는 간간히 미쳤다고 하거나 미국 스타일이라서 그렇다는 말이 간간히 들렸다.

조 아나운서는 떨리는 눈으로 PD를 바라봤지만, PD는 계속 하라는 신호를 보낼 뿐이었다.

“석진아, 너도 한마디 해라.”

“네? 제가요?”

차석진이 얼떨결에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찌질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야 여자들에게 인기 없어요.”

-오오오!

-남자답다!

잠시 후, 시끌벅적했던 인터뷰가 끝났다.

석진은 괜히 걱정스럽다는 듯, 정명을 바라봤다.

“형, 우리 너무 나댄 거 아닐까요? 조금 걱정되는데.”

“한국에서는 뭐 이 정도 말도 못 하냐? 됐어. 뭐라고 하는 사람 있으면 형이 때려 줄게.”

“아니, 그게 아니라…….”

방송이 끝나자 해설자들 또한 하나둘 퇴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NHG 팀원들은 또한 방송국을 나서려는데, 퇴근을 하고 있는 조 아나운서와 마주쳤다.

“아…….”

조 아나운서는 NHG 팀원들과 마주친 것에 조금 놀랐는지, 감탄사를 내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차석진에게 엄지를 척 치켜 올렸다.

1, 따봉이었다.

*

다음 날.

정명은 핸드폰으로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보다가 입맛을 쩝, 다셨다.

-유정명, 그놈 뭐냐? 완전 싸가지던데.

-우리 오빠 욕하던 거 생각하면 진짜 밤에 잠을 못 자! 우리 화력 모아서 NHG 스폰서 불매 운동 하자! 팬들을 화나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는 거야!

-완전 동의! 그런데 얘네 스폰서 어디지? 혹시 아는 사람?

‘스폰서 없다 이것들아. 그래서 팀 운영하기도 빡빡하다고.’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팀 더블을 잡은 덕분에 상위권으로 치고 나갈 수 있었으니까.

‘일시적인 순위이긴 하지만, 상위권이라니 기분은 좋네.’

3승 1패라고는 하지만, 아직 리그 초반이다. 순위가 바뀔 여지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정명의 팀은 아직 1, 2위 팀 같은 강팀을 만나지 않은 상태였기도 했으므로, 이 순위가 유지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뭐, 상관없지.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웅웅! 열심히 해야지!”

옆에 있던 송하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정명은 그런 송하니를 기특하게 보며 말을 이었다.

“아, 참. 하니야, 내일 모레부터는 아침에도 연습하려고 하는데 괜찮지? 아침에 일어날 수 있지?”

당연히 된다고 할 줄 알았건만, 들려오는 대답은 조금 뜻밖의 말이었다.

“아침에 일어날 수는 있는데… 나, 그날 학교가야 하는데?”

“뭐?”

“자퇴를 고민 중이긴 한데, 부모님은 어차피 고3이니까 그냥 졸업은 하라고 하궁… 아, 오빠가 우리 부모님 설득해 줄래? 나 학교 가기 싫은뎅. 히힛”

정명은 혹시나 하여 똑같이 고3인 석진에게도 물어봤으나, 석진 또한 마찬가지의 대답을 했다.

“저도 부모님이 고등학교 졸업은 꼭 하라고 하셔서… 뭐, 출석도 제대로 못 하고 있지만요. 헤헤.”

그 말에 정명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오, 이 급식충들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