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51화-----------------
실무자로 보이는 남자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검색해 보니 정명, 쿠론, 벨라, 메테오, 석진. 팀원이 이렇게 다섯 명인 것 같네요. 식스맨은 없고.”
“예, 그런데요?”
“팀원 중 세 명이 외국인이에요. 외국인 용병 제한에 의해, 외국인은 두 명으로 제한되어야 합니다. 아시죠?”
“아…….”
외국인 용병 제한.
원래는 해외에서 날뛰는 한국인 용병을 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였지만, 그게 역으로 한국에서도 적용되었던 것이다.
정명은 그제야 직원의 생각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벨라가 팀에서 나가기로 한 걸 발표하지 않았지, 참.’
창피한 일도 아니고, 숨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굳이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을 뿐이다.
정명이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입을 닫고 있자, 실무자는 정명이 당황했다고 생각했는지 씩 웃으며 서랍 안에서 파일 하나를 꺼냈다.
“곤란하신 것 같은데, 제가 도움을 하나 드릴게요. 이거 한번 보실래요? 선수들의 이력서인데.”
“이력서요?”
“예. 실력은 괜찮은데, 팀을 찾지 못한 선수가 조금 있어서요. 개중에는 인기 있는 한국 선수도 있으니, 정명 씨의 팀에서 같이 활동하면 팀이 자연스레 한국에 녹아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정명은 직원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이력서를 살폈다.
파일에 있던 첫 번째 사람은 요즘 폼이 많이 떨어졌다고 평가받는 나이 많은 선수였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 둔 게 있기에 인기만은 좋은 그런 선수.
두 번째 사람은 역시 인기는 괜찮지만 운 나쁘게 팀이 망해 버려, 오갈 데 없게 된 그런 선수였다.
정명은 거기서 파일을 덮었다. 기분이 조금 나빠진 것이다.
‘선수들이 부품도 아니고, 팀원을 교체하라는 말을 어떻게 그리 쉽게 할 수 있는지? 거기다가 소개시켜 줄 거면 1티어 선수를 소개시켜 주든가. 이 사람들은 인기 빼면 시체인 그런 선수잖아.’
살짝 기분이 나빠진 정명은 조금 심술을 부려 보기로 했다.
“그걸 생각 못 했네요. 그런데 팀원을 바꾸는 걸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생각 좀 해 보고 다시 올게요. 어휴, 이거 어쩌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네.”
“네, 네? 저기, 잠깐만요!”
사무실에서 나온 정명은 곧장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커피를 한 잔 비울 때쯤, 정명은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사무실에서 나오고 10분인가?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정명은 그들이 슬슬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정명 이전에 한국에 진출했던 유럽 팀의 이야기를 미리 듣고 왔기에 할 수 있는 확신이었다.
‘아예 팀 연습실을 지원받았다고 했던가?’
한국에 도전한 유럽 팀 덕분에 한국 리그의 시청률은 두 배로 뛰었고, 업계 관계자들은 그때 재미를 꽤 많이 봤다고 들었다.
그렇게 한 시즌이 끝난 후.
협회 사람들은 그 유럽 팀에게 조금만 한국에서 더 뛰라며 이것저것 혜택을 제시했지만 유럽 팀은 한 시즌을 끝으로 유럽에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때 재미 본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아마 필사적으로 매달리겠지.’
때문에 이번 밀당은 누가 아쉬운 사람인지 확실히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5분 뒤.
정명에게 한 여자가 다가왔다.
정장을 말끔하게 갖춰 입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40대로 보이는 여자는 조금 프리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정명은 그 때문에 오히려 이 여자가 협회에서 꽤 높은 직책을 갖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안녕하세요. 정명 선수 맞으시죠?”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명함을 건넸다.
[김예민. AU e스포츠팀 총괄 팀장]
‘흠, 대기업 쪽 사람이 협회직까지 겸업하고 있나 보군.’
예상대로 실무자가 아닌, 꽤 높은 사람이었다.
정명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을 내비치자 부랴부랴 온 것이 분명했다.
“방금 전 있었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직원이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세요.”
정명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실무자에게는 툴툴대며 다시 미국으로 떠날 듯 애간장을 태웠지만, 이제는 못이기는 척 넘어가 줘야 할 순간이었다.
“제가 빙빙 말 돌리는 것 굉장히 안 좋아하거든요? 우리 솔직히 까놓고 말하죠.”
“그러십쇼.”
“북미에서 건너온 팀. 이것만으로도 화제성이 충분한데 북미에서 우승한 북미 최강의 팀이라니, 분명 엄청난 화제가 될 겁니다. 광고 수입도 엄청나겠지요. 협회장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들조차 이번 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찌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지…….”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핸드폰에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문자가 오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됐어? 오겠대?
-이따가 호진이한테 말 좀 해라. 왜 일을 그따위로 하는 거야?
-걔네 스폰서 없다는 거 진짜야?
-이야기 끝나면 바로 연락 줘요, 예민 씨!
“이건?”
“이해 관계자들의 문자라고 해 두겠습니다. 아까 솔직히 말하겠다고 했으니까, 정말 솔직하게 오픈하는 거예요. 우리는 정명 씨의 팀이 한국 리그에서 꼭 뛰어 주길 바라고 있거든요?”
이런 것까지 보여 주다니, 정말 겉모습대로 정말 털털한 성격의 여자였다.
때문에 정명은 복잡하게 밀당을 하기보다는, 자신 역시 직구를 던지기로 했다.
“한국 리그에서 뛰면 뭐 사은품 같은 것 줍니까?”
예민이라는 여자는 이제야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웃었다.
“예. 연습실 임대료를 1년간 지원해 드릴 겁니다. 그리고 또…….”
예민은 정명이 받을 혜택에 대해 이것저것 늘어놓기 시작했고, 정명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많아도 공짜로 받는 건 기분 좋은 법이니까.
“시드권은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아, 우리가 외국인을 2명으로 줄여서 조건을 채우면요.”
“먼저 파는 사람하고 얘기를 해 봐야겠죠. 제가 먼저 연락해 놓을게요.”
*
여러 일을 하다 보니 벌써 오후 5시가 되었다.
애매한 시간이었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시드권을 판다는 팀의 연습실로.
‘미래의 일을 몰라도, 그 기업이 망한다는 걸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았지. 응.’
이번에 망해 버린 후원 스폰서는 나름 큰 기업이었다.
신발을 만들고 있던 업체였는데, 품질은 뒷전이고 마케팅비에 과도하게 돈을 쓰는 바람에 망해 버렸다고.
그래서 시드권이 나온 것이다. 더 이상 구단을 운영할 수가 없으니.
예민의 말로는 원래 시드권은 구단에게 넘어가는 것이 원칙이나, 구단이 임금을 체불한 채 야반도주해 버려서 운 좋게 선수들이 시드권을 먹었다고 한다.
잠시 후.
정명은 자그마한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두드렸고, 곧장 한 남자가 정명을 맞이했다.
“얘기 들었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누추하지만…….”
현관으로 들어온 정명은 무심코 그들의 신발을 쳐다봤다. 선수들의 신발은 전부 망해 버린 그 스폰서 업체의 신발이었다.
그리고 연습실 안쪽에서는 게임을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정글 탑 간다. 빼, 빼.”
“알았어. 그러면 눈치 보다가 용타임 잡아 봐.”
SVEN이라는 팀의 선수들은 팀이 해체 직전에 몰렸음에도, 한창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명이 놀란 부분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거… 완전히 닭장이네.’
정명은 맨 처음 나왔던 남자를 정말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연습실이 정말로 누추했던 것이다.
정명은 연습생 시절, 팀 NPG의 연습실을 닭장 같다고 느끼고는 했는데, 딱 그 모습이었던 것이다.
“지금 비시즌인데, 오늘도 연습하시나 보네요?”
“예. 그냥 버릇이 돼서.”
사실 이 말은 거짓말이었다.
버릇이라기보다는 혹시나 스폰서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다시 리그로 돌아갈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업계에서 잔뼈 굵은 사람에게 통할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정명은 그냥 ‘그렇습니까.’ 하고 말았다. 상대방의 상처를 후벼 파 봐야 좋을 게 없다.
연습 게임이 끝나자, 정명이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밥 드셨어요?”
“아뇨. 혹시 진라면 좋아하세요?”
물 올릴까요, 하고 조심스레 묻는 남자의 말에, 정명은 엄지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나오세요. 제가 저녁 사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팀 SVEN의 선수들은 오랜만에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이 아닌, 제대로 된 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먹자 골목으로 나온 뒤.
우리 뭐 먹을 거냐는 물음에 정명은 선택권을 넘겼다.
“드시고 싶으신 것 고르세요. 비싼 것도 되니까.”
“그럼 짜장면?”
“짜장면에다 탕수육?”
정명은 살짝 어이없다는 듯 선수들을 쳐다봤다.
“비싼 거 된다니까요. 또 면 요리 드시게요?”
“그럼… 삼겹살?”
“초저녁부터 무슨 삽겹살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난 아침에도 삼겹살 먹을 수 있는데?”
선수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보통 팀이 이런 이유로 공중 분해되면 팀 분위기가 썩어 들어가기 마련인데, 꽤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듯했다.
결국 멀리 나가기도 귀찮고 해서 선택한 것은 고깃집이었다.
선수들은 외식을 처음 하는 것처럼 고기가 다 익지도 않았는데, 고기를 허겁지겁 흡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맛이 없는 건지 먹는 둥 마는 둥, 마늘만 깨작대는 사람이 있었다.
정명이 처음 봤던 사람이자 팀의 리더, 이성진이었다.
“그럼 시드권 매각은…….”
“일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드시는 게 어때요?”
하지만 성진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정명과 눈을 마주쳤다
“저… 한국에는 왜 오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음, 어떤 걸 물어보고 싶으신지 정확하게 질문해 주실래요? 너무 포괄적이네요.”
성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미국에서 돈 많이 버시던데, 굳이 한국에 올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 같으면 계속 거기서 돈 벌 텐데.”
“실력 쌓는 데는 여기가 더 좋잖아요. 괜히 월챔 시즌에 다른 팀들이 전지훈련 오는 거 아니잖아요?”
“하지만 돈이…….”
“돈이 많아지면요.”
정명은 성진의 말을 끊었다.
“돈이 어느 수준까지 많아지면, 그다음 것이 눈에 들어와요.”
돈. 지금의 성진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이었지만, 정명에게는 2순위, 혹은 3순위인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가치였다.
성진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자, 정명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 왜, 명예욕이라든가, 권력욕, 아니면 여자라든가 그런 것 있잖습니까. 저에게는 이제 돈보다는 더 잘하고 싶다는 그런 욕구가 있었을 뿐이죠.”
“아…….”
그 뒤로도 성진은 이것저것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연습 시간은 얼마쯤 되냐, 팀원들하고 소통은 잘되냐.
자신은 실패했지만 정명은 무척이나 성공한 게이머였으니 무언가 조그마한 팁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명은 성진의 질문에 성실히, 그리고 친절히 답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그러세요.”
“정명 씨는 나이가 참 많은 프로게이머시죠.”
“예. 이제 30살이 코앞이에요.”
그리고 정명의 눈앞에 있는 성진 또한, 나이가 꽤 많은 프로게이머였다.
“요즘 엄청 고민하고 있는 건데… 프로게이머를 언제 은퇴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영록이 형은 퇴물이 되었을 때라고 하고, 성수 형은 더 이상 불러 주는 팀이 없을 때라고 하고, 그리고 저는… 나이가 많이 찼을 때 은퇴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정명은 그 말을 듣고 꽤나 놀라, 눈이 살짝 커졌다.
정명의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나이를 먹어 팀의 감독이 되었을 때, 남겼던 꽤나 유명한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것을 나에게 물어보다니.’
정명은 대답해 주기로 했다. 먼 훗날, 이성진이 후배 프로게이머에게 해 줬던 대답 그대로.
“게임에서 졌는데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을 때…….”
“네?”
“패배에 익숙해진 것을 느꼈을 때 은퇴하면 됩니다.”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한참 쌈을 싸던 팀원에게 옆에 있던 사람이 눈치를 주자, 그 팀원은 조용히 쌈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시선은 쌈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군요. 사실… 제가 그래요. 게임에서 져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습니다. 스폰서가 망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월급을 못 받아서, 이런 건 다 변명이겠죠. 사연 없는 팀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진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고민이 풀리는 것 같네요. 아, 배고프다. 저, 근데 조금 비싼 부위 시켜도 되죠?”
성진은 그제야 허겁지겁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관계자들을 전부 모아 놓은 채, 시드권 매각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시드권은 어차피 매각할 사람을 찾지 못하면 공중분해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정명은 시세보다 훨씬 높게 가격을 쳐주었다. 이제는 백수가 된 SVEN 선수들의 앞날을 후원하는 의미에서였다.
*
정명은 한 피시방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는데, 알바만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앞 건물, 그리고 뒤 건물에 각각 대형 피시방이 생긴 후, 단 세 달 만에 이렇게 된 것이었다.
‘망했군, 이거.’
정명은 씁쓸하게 웃으며 졸고 있던 알바를 깨웠다.
“야, 민지야, 일어나. 오늘부로 여기 장사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