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50화-----------------
결승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정명과 그 팀원들은 오늘도 바쁘게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준결승전이 치러졌던, 방송국에서 가장 큰 그 무대에서.
“역시 5원딜 조합은 무리였나? 야, 이거 누가 이런 조합 짜자고 했어? 쿠론이었나?”
“그… 그건 또 무슨 트집이야? 네가 하자고 우겼잖아!”
그런데 팀원들은 경기 중에 한눈을 팔거나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진지한 경기가 아니라, 연예인들과 함께하는 자선이벤트 경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정명과 한 팀이 된 유명 가수, 코난은 정명과 쿠론이 옥신각신 하는 모습을 보며 큭큭 웃기 시작했다.
“정말 두 분, TV에서 보던 것과는 무척 다르시네요. 특히 쿠론씨는 무척 말 걸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였는데. 마치…….”
“마치 뭐요.”
코난이 적절한 단어를 고르기 위해 애쓰기 시작하자, 정명이 도움을 주었다.
“엄청 싸가지 없는 녀석인 줄 알았다고요?”
“아뇨, 그게 아니라… 사실 네. 그래요. 큭큭.”
결승전에서 우승한 후.
정명을 만난 팬들은 마치 정명과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였던 것처럼, 정명을 스스럼없이 대하며 친근감을 드러냈다.
그러한 현상은 유명한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는데, 덕분에 정명은 길가다가 사진을 찍히거나 공짜로 뭘 얻어먹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 결승전에서 한 번 이겼다고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벤트 경기가 끝났다.
그리고 같이 게임을 했던 유명 가수, 배우들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팀원들과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명, 이거 아웃스타에 올려도 되죠?”
“아웃스타요?”
“아웃스타그램이요. SNS. 정명씨랑 같이 찍은 사진 올리면 팔로워 많이 늘어날 것 같은데.”
“그러세요.”
정명은 코난과 사진 찍은 것을 끝으로,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부스로 들어갔다.
그러자 코난은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아우, 아쉽네. 이번에 정명이 한국 가면, 이젠 만나기 힘들 텐데. 한국에서 실패하고 다시 북미로 오길 바라는 건 팬으로써의 도리가 아닐 것 같고.”
코난의 하소연에 매니저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지난번에 한국 공연은 싫다고 까셨잖아요. 그거 수락하는 건 어때요?”
“뭐? 내가 그랬어?”
“네. 안 간다고 하셨잖아요. 가수 같지도 않은 아이돌들이랑 같은 무대에 서기 싫다고.”
“아, 술 마셨을 때 그런 말을 했었던가…….”
코난은 민망하다는 듯 머쓱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게임의 이야기로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NHG, 폼이 떨어지기는커녕 엄청 오른 거 같아. 결승전 끝나고 쉬지도 않았나?”
“에이, 시험 끝나자마자 공부하는 학생도 있나? 상대 팀이 적당히 하는 거겠죠. NHG가 마지막 경기라고 하니까.”
“그런가?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심한데…….”
이벤트 전 다음 경기는 네오폴드와의 경기였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누구랑 하는 걸 보고 싶으세요? 라는 네티즌 설문 조사에 압도적으로 네오폴드가 뽑혔기 때문이었다.
코난은 경기 화면을 삿대질하며 말했다.
“저봐. 그냥 발리잖아. 아무리 이벤트전이라도 저렇게 발리면 욕먹지. C90이 아니라 네오폴드가 결승 갔으면 이겼다고 지껄이던 빠순이들은 꼭 이 경기를 봤으면 좋겠네. 진심으로.”
*
“메테오, 잠깐 미드로 좀 와볼래요? 이거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요.”
정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쿠론이 석진에게 말했다.
“야, 석진. 점멸까지 써서 끌어 봐. 저거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네. 타이밍 보고… 들어갈게요.”
게임 초반 라인전.
맵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미드에서는 정글러가 합세한 2 : 2 싸움이 시작되었고, 탑 라인과 바텀 라인에서도 각각 교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맵 전체에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마무리]
“음, 쉽네.”
“쉽네요.”
“그 네오폴드 맞나?”
한타가 아닌, 라인전에서 상대방을 전멸시켰다.
그렇게 고생하며 잡았던 네오폴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긴 것이다.
다른 팀원들은 ‘이것들이 이벤트전이라고 열심히 안 하나…’ 생각했지만, 정명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이렇게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명은 쓴웃음을 지으며 퀘스트 창을 다시 열어보았다.
[히든 퀘스트 No. 9: 전승 우승]
*나 실력이 좀 늘어난 것 같지 않아요?
-팀원의 잠재력이 일부 개방됩니다.
-2주 동안 지속됩니다.
‘하. 팀원들의 잠재력 개방이라. 얼핏 보면 좋아 보이는데…….’
달성하기 까다롭거나, 특이한 짓을 해야 달성할 수 있는 히든 퀘스트.
그런 히든 퀘스트가 싱글 넘버쯤 되니, 달성하기 엄청나게 까다로워졌다. 실력뿐만 아니라, 운까지 더해져야 달성할 수 있는 퀘스트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악조건을 이겨내고 퀘스트를 겨우겨우 달성했더니, 그 보상이 조금 애매했다.
‘2주 동안 지속이라. 정말 쓸모없군.’
보기에는 거창해보여도 사실 별로 쓸모가 없다.
결승전이 끝난 뒤의 2주면, 아무런 대회도 열리지 않을 테니까.
심지어 가장 빨리 열리는 해외 대회도 20일 후에 열린다.
즉, 팀원들의 실력이 일시적으로 상승해 봐야 애인 없는 사람이 정력에 좋은 음식을 마구 먹는 것처럼, 별로 쓸데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받을 수 있었겠지. 그야말로 깜짝 이벤트로군.’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다.
덕분에 이렇게 네오폴드를 쉽게 박살내며 마지막 경기를 끝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북미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
핸드폰을 보던 메테오는 한숨 비슷한 탄성을 내며 말했다.
“와. 레딧 완전히 폭발했네. 북미 1위 팀이 한국 간다고 하는 게 대단한 이슈이긴 한 가봐.”
레딧이 폭발했다는 메테오의 말에, 정명이 핸드폰을 켜 레딧으로 들어갔다.
레딧에는 마침, 한 북미 선수가 이번 일에 대해 의견을 적어놓은 글이 있었다.
아이작: 우리 북미에서 전승을 한 팀이, 한국 가서 깨지면 북미 팀들의 명예는 어떻게 하냐? 자기들만 생각 하네 이거.
?익명_2212: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이런 말을 하지? 걔네 팀에 지분이라도 있음?
정명은 익명으로 댓글을 달아준 후,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그래도 갈 거야. 물론 이대로 계속 이곳에서 1위 찍으며 떵떵거릴 수는 있겠지만…….”
“더 잘 하고 싶다고?”
“그래. 내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한국으로의 도전.
수익도 지금보다 훨씬 적게 들어올 것이고, 인기도 줄어들지 모른다. 또한 만만한 북미와는 달리, 처참한 승률을 기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팀원들은 모두 한국으로 가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고 팀에서 나가기로 한 벨라 또한 이번 한국행에 동참했다.
벨라가 나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지만, 한국에 가는 이유는 무척 단순했다.
“제주… 도는 좀 별로인 것 같아. 요즘 중국인 관광객들이 엄청 많다고 적혀 있는데 난 복잡한 것 별로야.”
벨라는 인터넷에서 찾은 한국 관광자료를 보고 있었다. 다른 팀원들과 한국 관광을 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비시즌에 연습할 것도 아닌데, 팀원들이 펑펑 놀아도 전혀 상관없었다.
“어라. 강남스타일 동상이 있는 곳이 있다네. 여기 가볼까.”
“정말? 그딴 걸 대체 왜 만들지?”
“한국인인 네가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됐고, 우리 집의 김치 맛이나 좀 보고 가라. 두유 노 김치?”
공항에 도착한 팀원들은 길고 긴 비행 끝에 한국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한 순간, 정명은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기자라도 되는 것 마냥, 대포카메라를 들고 촬영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뭐지, 이거. 환영 파티라도 해 주려는 건가? 하지만 한국에서 내 인지도는 거의 제로에 가까울 텐데?’
이유야 어찌됐건, 정명은 이 인파를 어떻게 지나가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메테오가 손짓하며 정명을 불렀다.
“정명, 멍하니 뭐해? 여기 곧 복잡해질 것 같은데, 어서 가자고.”
“어… 엥? 그래. 갈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은 사실 정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명이 지나가자마자, 뒤에서 비명소리 비슷한 소리가 났다.
-꺄아아악! 오빠!
-여기 좀 봐 줘요!
-AOS! AOS!
처음에는 비명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명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비명소리가 아니라, 여성 팬 특유의 환영인사라는 것을.
공항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해외공연을 마치고 온 아이돌 가수를 보기 위해 모여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석진아, 저 사람들 누구냐? 혹시 아니?”
“형, 모르세요? 아이돌 가수, AOS잖아요. 한국에서 엄청 인기 많아요.”
“아이돌? 아이돌 가수… 으음… 그 뭐지, 지난번에 만났던 ATB… 아틸란티스 보이즈였던가? 그 사람들 비슷한 건가 보지?”
“그 사람들보단 급이 하나 낮긴 한데, 아무튼 AOS도 유명한 그룹이에요. 아, 제가 한국 아이돌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여동생덕분에 알게 된 거니까요.”
차석진은 묻지도 않은 변명으로 말을 끝맺었다.
그리고 정명은 자신이 혼자 착각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큭큭 웃고 말았다.
“이거 어색하네. 난 또, 나를 환영해주려고 나온 사람들인 줄 알았지.”
그러자 쿠론이 혀를 찼다.
“쯧쯧. 벌써 연예인병에 거리면 어떡해? 여기에서 넌 그저 민간인 A일 뿐이라고.”
“하하. 그러게. 여기 사람들은 나보다 너를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외국인이 신기한가?”
공항에서 나온 정명은 집까지 가는 콜밴에서 곯아 떨어졌다. 장기간의 비행으로 조금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한 정명은 부과된 요금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뭐야. 이 거리에 요금이 40만원? 이 아저씨가 미쳤나?’
사람들이 전부 영어로 떠들고 있으니, 정명 또한 외국인인줄 알고 바가지를 씌운 것이었다.
정명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카드로 긁고 영수증까지 끊었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정명의 이야기를 들은 에리는 바가지를 썼다는 말을 듣자마자 허둥지둥댔다.
“어, 정말 그랬어? 어쩌지? 내가 돈 보탤까?”
“됐어요. 얼마나 한다고. 물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간다는 말은 아니지만.”
성공한 프로게이머인 정명에게 40만원이 부담되진 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기분은 무척 더러웠기에 대가는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벨라는 정명의 말을 듣자마자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시작부터 이따위라니. 정말 스펙타클한 한국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미안. 같은 한국인으로써 내가 대신 사과할게.”
정명의 사과에, 벨라가 피식 웃었다.
“네가 한국인이긴 한가보구나? 가끔 보면 아닌 것 같았는데.”
“응? 뭐가?”
“그 놈이 잘못한 거지, 네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같은 한국인이라고 해서 네가 사과해야할 이유는 전혀 없어. 안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아무튼 시작은 안 좋았지만, 분명 재미있는 여행이 될 거야. 김치도 먹을 거고.”
목적지에 도착한 정명은 장기간의 비행으로 헤롱거리는 팀원들을 전부 호텔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정명은 차석진을 데리고 한국의 방송국 건물로 향했다.
아직 스프링 리그가 개최되려면 멀었지만, 팀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바쁘게 움직여야 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요?”
“걔네? 연락 없는 것 보니까 아직 침대에 뻗어 있는 것 같은데. 일어나면 연락 하라고 했거든.”
팀 등록하는데 우르르 몰려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정명은 그렇게 덧붙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되게 오랜만에 오네요. 그런데 시드권을 사신다고요?”
“그렇지. 비집고 들어갈 구멍이 있으면 들어가려고. 우리가 아무리 북미 팀이라고 해도, 2부 리그에서 다시 시작할 이유는 없잖아?”
아무리 북미 리그라도 TBM이나 네오폴드 등의 최상위권 팀 정도 되면, 한국의 2부 리그팀 정도는 쉽게 잡는다.
시드권을 살 여유가 된다면, 굳이 2부 리그부터 낑낑대며 올라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특히 2부 리그 팀들은 스폰서가 없어서 연습에 집중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실력 편차가 크지.’
차석진은 정명의 말에 곧바로 동의했다.
“맞아요. 시간 낭비죠. 그리고 북미 팀이 온다는 것은 대단한 광고 효과일 테니까, 협회나 방송국 쪽에서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잠시 뒤.
실무자를 찾아간 정명은 조금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죄송하지만, 팀 NHG가 시드권을 구매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