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52화-----------------
피시방은 원래 수명이 짧다.
음식을 같이 팔기에 기기가 쉽게 더러워지고, 고장이 잘 난다. 덕분에 키보드, 마우스 같은 건 소모품으로 취급이다.
특히 개업 후 4~5년이 흘렀을 시기인 피시 업그레이드 시기가 결정적이다.
빠져나간 손님들을 끌어 모으려면 리모델링과 피시방 업그레이드를 병행해야 하는데, 그때 들어가는 돈이 이제까지 번 돈 정도가 될 수도 있다. 개업이 쉬워 경쟁업체가 이곳저곳에 생기는 것은 덤이었다.
결국 정명은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아버지, 그냥 끝내는 게 좋겠어요. 아쉽지만.”
-…그래, 알았다. 폐업 절차는 내가 알아서 밟을 테니, 넌 그만 쉬어. 외국 갔다 와서 피곤할 텐데.
정명은 피시방의 원 주인인 아버지에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확인을 해 줬다.
이 피시방은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정명의 아버지는 이 피시방을 개업할 때, 상당한 애정을 갖고 야심차게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폐업을 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약간 아쉬워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피시방을 운영하며 꽤 지친 것이다.
정명이 전화를 끊자, 피시방 알바생 민지가 말을 걸어왔다.
“오빠,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내일부터 안 나와도 되는 거지.”
“헉!”
“헉은 무슨. 손님도 없는 피시방에서 그동안 꿀 잘 빨았지, 뭘. 안 그러냐?”
정명의 일침에 민지가 머쓱한 얼굴을 했다.
“헤헷.”
“됐고, 컴퓨터나 하나 가져가.”
“컴퓨터요?”
“여기 컴퓨터 중에서 맘에 드는 거 있으면 하나 줄게. 작별 선물이야.”
“어… 오빠, 인터넷 방송인가 뭔가 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러려면 컴퓨터 필요하지 않나?”
민지는 정명을 그저 피시방 사장님 아들이라고만 알고 있었기에 그런 말을 했던 것이지만, 정명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렇게 많은 컴퓨터는 필요 없어. 거기다가 방송을 하려면 정말 고사양 컴퓨터가 필요하니까, 내 건 따로 주문할 거야. 갖기 싫음 말고.”
“아뇨! 저 마침 집에 있는 컴퓨터가 덜덜거려서 하나 사려고 했는데, 주시면 고맙죠.”
민지는 희희낙락하며 컴퓨터를 고르기 시작했다. 사양은 다 똑같지만, 제 딴에는 상태 좋은 것을 찾는 것이다.
그로부터 30분 뒤, 민지는 지 썸남인지 뭔지를 부른 뒤, 낑낑대며 컴퓨터를 가져갔다.
피시방 알바생 민지가 나갔다. 이제 피시방 안에는 정명 혼자만 남았다.
정명은 피시방에 혼자 남아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명은 악마를 잡는 RPG 게임을 하다가 깜빡 잠들어 버렸고, 이내 피시방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저기요, 사장님! 여기 장사 안 합니까?”
“폐업이라고 적힌 거 안 보여요? 이 손님 완전 진상이시네.”
새로 온 손님이 막무가내로 들어왔음에도 정명은 그저 실실 웃었다. 그 손님이 이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네, 조시.”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는 손목 부상으로 치료비를 아끼기 위해 한국에 갔다가 한국에 그대로 눌러앉은 전 OMA 팀원 조시였다.
간간이 프로 리그 해설을 하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요즘도 프로 리그 해설에서 잘리지 않고 잘하고 있는 듯했다.
“해설자라. 해설이면 영어 해설이지? 한국 리그를 영어로 해설하는 거.”
“네. 북미 쪽에도 한국 리그를 보는 사람이 꽤 있으니까요. 우연히 기회가 와서 한 일인데, 이 생활도 나름대로 좋아요. 무엇보다 재미있고.”
조시는 냉장고에서 멋대로 바나나 우유를 꺼내더니 정명의 옆에 턱 앉았다.
“다른 팀원들은요?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
“글쎄? 지금쯤 관광이다 뭐다 하면서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엥? 같이 안 다니세요? 형이 가이드해 줘야죠!”
“응? 내가 걔네들 보호자도 아니고, 왜? 심심해지면 지들이 연락 하겠지, 뭐.”
그 말에 조시가 아차, 했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한국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이다.
“하긴, 같은 팀이라고 우르르 몰려다닐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저 승급 전 좀 같이해 줘요. 저 한 판만 이기면 마스터 리그 가는데.”
“솔로 랭크?”
“네. 벌써 삼수 째예요. 요즘 이것 때문에 잠을 못 잔다니까요.”
“잠을 못 자는 건 또 뭐야. 이제는 프로 선수도 아니고, 딱히 애써서 올릴 이유도 없잖아”
“이유라면 있죠. 랭크가 높으면 시청자들이 해설에 더 신뢰감을 갖는 것 같으니까.”
조시는 시청자들이 요즘 해설자들의 티어가 뭐냐고 자주 묻는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예컨대, 브론즈, 실버, 골드. 일명 브실골 티어의 해설은 듣기 싫다는 것이다.
“나 참, 걔네도 참 뭘 모른다. 월챔까지 갔던 선수의 티어가 뭐냐고 묻는다니.”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도 어쩌겠어요. 티어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시청자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은데.”
“아, 뭔지 알겠다. 나도 그런 적 있었어. 학원에서 일할 때.”
정명은 학원에서 알바하던 시절, 토익 점수가 필요 없는데도 토익을 보고는 했다.
다른 것 필요 없이 토익 점수 990점 딱 걸어 놓으면, 학생들이 강사에게 더 신뢰를 갖는 게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도 참 고생이 많다. 해설에 티어에. 아무튼 승급전? 좋지. 내가 버스 태워 줄게, 로그인이나 해라.”
“고맙습니다. 사실 방송까지 하고 싶은데, 여기에 캠은 없죠? 카메라.”
“있을 리가. 그보다 너 개인 방송까지 하냐?”
“예. 비시즌에는 일이 거의 없으니 부업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보다 쏠쏠해요. 해설자로 일하면서 받는 돈보다 많을 때도 있고.”
정명은 조시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아이디에 하나하나 로그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하도 게임을 안 했더니 등급이 엄청나게 강등되어 있었다.
‘등급이 비슷해야 듀오를 돌릴 수 있는데. 이건 다이아 5, 이것도 다이아 5. 흠… 다이아 1짜리 뭐 없나?’
그리고 잠시 후.
정명은 다이아 1에 가까운 아이디를 찾을 수 있었다.
[강한친구MeKa 님이 로그인하셨습니다.]
“형, 그 아이디는 뭐예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오, 마스터 리그네?”
“어, 친구 거. 이젠 내 거.”
정명이 로그인한 아이디는 예전에 송하니와 함께 한국 솔로 랭크를 휩쓸었을 때 썼던 그 아이디였다.
정명의 아이디와는 달리 간간이 플레이를 했는지, 그렇게 크게 강등된 모습은 아니었다.
“밴은 뭐 할까요?”
“하고 싶은 거 해.”
“오, 자신감인가요? 좋죠. 흐흐, 지금 승급전이 2승 2패. 승승패패인데, 안정적인 버스 운전 부탁드립니다.”
조시는 정명과 오랜만에 같이 플레이한다는 것에 신이 났는지, 무척 들뜬 듯했다.
그로부터 5분 후, 한국에서의 첫 게임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못 알아보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이 아이디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같이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조시의 아이디를 금방 알아봤다.
진천순대: 저기, 카우킹 고른 거, 해설자 조시 아님?
추억탕: ㅇㅇ. 보니까 승급전 중이네. 왜 이건 방송 안 해요? 아, 영어로 물어봐야 하나? 나 영어 못하는데.
진천순대: 쯧쯧, 잘 보고 따라 해라. I'm fine. thank you. and you?
사람들이 조시에게 말을 걸었으나 조시는 묵묵부답이었다.
“채팅 안 하려고? 잘 생각했다. 채팅 해 봐야 좋을 게 없어.”
“아뇨, 아직 읽고 쓰는 건 서툴러서. 뭐라는데요?”
“왜 방송 안 하냐는데?”
“아, 자꾸 방플 당해서요. 평소엔 잠잠하던 것도 승급전만 되면 유독 심해져서.”
[강한친구MeKa 님이 추억탕 님을 처치하셨습니다.]
“어, 벌써 솔로 킬 내셨어요?”
“그럼 내지, 안 내겠냐, 아마추어들인데. 이대로 랭킹 1위나 찍어 봐야겠다.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게임이 터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정명이 솔로 킬을 네 번쯤 따냈을 때, 정명은 게임 첫판만에 한국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진천순대: 추억탕 저거 완전 트롤인데, 리폿 좀.
추억탕: 지랄. 니가 미드 섰어도 터졌음. 짜증 나서 못 하겠네. 던짐. ㅅㄱ나무일상: 아, 왜 니들 싸우는 걸 전쳇으로 생중계하는데? 니들끼리 싸워!
게임이 시작되고 나서 15분밖에 되지 않았건만,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정명은 빡게임을 하기보다는 한 손으로 설렁설렁 플레이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조시가 잡담을 건넸다.
“그보다 선수 라인업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내가 얼핏 듣기로는 벨라라는 선수가 빠질 거라던데.”
“그 이야기가 벌써 그렇게 퍼졌어? 그 사람들도 참 입 가볍네.”
정명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핸드폰을 꺼냈다.
“원래 들어오기로 되어 있던 사람이 있는데, 이게 연락이 잘 안 되네. 괘씸한 녀석 같으니.”
그리고 그 순간, 정명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오, 그 사람에게서 연락 온 거 아니에요? 빨리 받아 봐요!”
정명은 조시의 말에 왠지 모르게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민원 신고 접수하신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래요.”
정명은 그 일에 대하여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했고, 민원 처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꼬박꼬박 알려 달라고 미리 말했다.
정명이 전화를 끊자, 조시가 무언가를 기대하듯 정명을 바라봤다.
“뭐래요? 네?”
“많이 반성하고 있고, 벌금형 받았대.”
“예?”
그리고 정명이 전화를 내려놓는 순간,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오, 그 사람에게서 연락 온 거 아니에요? 빨리 받아 봐요!”
“큭큭, 알았어.”
정명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조시를 보며 큭큭, 웃고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저, 기자 박현명입니다. 저번에 인터뷰했던 것, 기사 업로드되었습니다. 확인해 주시고 수정할 사항 있으면 말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방송국에 갔을 당시, 정명은 간략하게 인터뷰를 했는데, 그게 기사로 뜬 모양이었다.
게임이 끝난 뒤.
정명은 오랜만에 북미 커뮤니티 레딧이 아닌, 한국 커뮤니티 언벤으로 들어갔다.
언벤에는 정명이 했던 인터뷰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그리고 정명의 시스템 로그에는 새로운 팬이 생겼다고 실시간으로 나타나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운 1명의 팬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3명의 팬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2명의 팬이…….]
‘흠, 내 인터뷰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 뭐, 처음에는 팬이 많이 오르고는 하니까.’
정명이 시스템 로그를 보고 있는 사이, 조시가 정명의 모니터를 훔쳐보았다.
“우와, 이게 뭐야. 정식 인터뷰잖아! 뭐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댓글도 엄청 많이 달려 있는데?”
“몰라. 창피하니까, 네가 집에 가서 해석해 봐.”
“아, 쫌!”
정명은 조시의 말을 무시하며, 빨리 랭크 게임이나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그런데 그 순간, 조금 이상한 메시지가 떴다.
[팬의 숫자가 일정 수를 넘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당신의 팬이 되었습니다!]
‘어라, 이건…….’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였다.
정명은 그동안의 특별한 팬이라고 나왔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벨라, 그다음에는 중국의 갑부, 그다음에는?
이번에는 대체 누굴까, 고민하던 그때, 하나의 메시지가 더 떠올랐다.
[특별한 사람이 이미 당신의 팬입니다!]
[보상이 포인트 200,000으로 대체됩니다.]
‘엥?’
처음 보는 메시지에 정명이 살짝 당황했다.
그리고 가뜩이나 정신없는데, 책상 위에 놔둔 핸드폰까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또다시 전화가 온 것이다.
조시는 이번에도 킥킥 웃으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오, 이번에야말로 그 사람에게서 연락 온 거 아니에요? 빨리 받아 봐요!”
“지랄, 바빠!”
*
그 시각.
연예인 소속사에 소속되어 있는 베테랑 매니저, 김민서는 한숨을 푹 쉬었다.
중국에서 활동한 지 벌써 4개월.
자신이 맡고 있는 연예인이 스케줄은 내팽개친 채 게임에만 몰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 연예인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과 신경질이 부쩍 는 것은 덤이었다.
때문에 민서는 게임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의 상전을 부드러운 말투로 타이르기로 했다.
“요즘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심심해서 그래?”
“에이씨, 게임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어? 게임을 하면 이겨야지!”
짜증 섞인 반응에 민서는 마음속으로 참자, 참아야 한다, 라고 되뇌며 갖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잠깐만, 이것 좀 볼래?”
“뭔데?”
“프로 게임 팀에서 다시 게임하고 싶다고 했지? 이건 어때? 중국 팀에서 제안이 왔는데, 너 원하는 라인 세워 주겠다고…….”
“거긴 안 간다니까! 돈을 트럭으로 줘도 싫어! 합동 공연도 싫어! 집에 갈래!”
“그건 소속사에서 긍정적으로 검토를…….”
“아우, 이 아저씨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