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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31화 (131/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31화-----------------

“지금 확정된 인원이 나 말고는 없다고?”

“걱정 마. 앞으로 3명이나 더 뽑을 거니까.”

“당연히 뽑아야겠지. 대회에 나가려면…….”

정명에게 일의 진척 상황을 들은 벨라는 황당해했지만, 정명은 자신 나름대로의 계획은 갖고 있다며 달랬다.

“그래도 지금 바로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있는데? 이 녀석까지 포함하면 앞으로 2명만 더 뽑으면 돼.”

“지금 바로?”

정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쯤 한국에 있을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다.

정명이 생각하기에 그는 실력이 좋으면서도 현재 아무 팀에 속해 있지 않은 얼마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석진아, 비행기 표 보내 줄게. 지금 이쪽으로 좀 와라.

-예? 오라니, 미국에요? 저 아직 이불 안인데요.

-지금 12시인데? 어쨌든 당장 오라는 건 아니고, 비자 준비되면 곧장 이쪽으로 건너와. 미국 여행 시켜 줄게.

메일이 몇 번 오간 뒤.

벨라는 운전을 하면서도 상대가 누구인가 궁금했는지 흘끗흘끗 정명을 쳐다봤다.

“누구지? 나도 아는 사람인가?”

“차석진이라고, 불쌍한 녀석 있어. 나랑 중국에서 같이 활동했던 사람인데 실력은 나름대로 괜찮아. 성격도 모난 구석 없고.”

정명이 불러낸 사람은 XTC에서 정명과 같은 팀에서 활동했던 차석진이였다.

정명이 떠난 이후로도 XTC에서의 생활을 이어 나가던 차석진은 재계약 과정에서 비자를 잘못 받은 것이 드러났는데, 그 일이 커져 아무런 대책 없이 한국으로 쫓겨나고야 말았다.

“비자를 잘못 받았다나? 시즌이 끝나자마자 쫓겨나게 된 것도 억울한데, 중국에서 번 돈을 한국으로 보내지도 못하게 되었다더라. 한국에서는 자리도 못 잡고 있기에 내가 불러내서 짜장면도 몇 번 사 주곤 했는데.”

벨라는 차장? 짜아장? 하면서도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지금은 무직이라는 거네.”

“그렇지. 아, 그러고 보니 너 내일도 시간 있어?”

“응, 아마도.”

“그럼 내일도 나와. 내가 진짜 프로게이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 줄게.”

*

다음 날 아침.

정명이 벨라를 데리고 간 곳은 북미의 한 2부 리그 구단의 연습실이었다.

“연습실 구경하는 건 처음이지, 처음일걸? 보통은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으니까.”

평소라면 외부인은 절대 들어올 수 없었을 공간이다. 규율 문제도 있고, 전력 노출 문제도 있으니까.

하지만 정명이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둘.

구단 관리자와의 친분, 그리고 정명이 북미 프로 게임계에선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습실에 도착한 정명은 곧장 문을 두드렸다.

“오랜만이에요, 새비.”

연습실에서 나온 건 새비였다.

새비는 정명의 북미 초기 시절 함께했던 멤버였지만, 지금은 2부 리그 팀의 코치를 맡고 있는, 성공적인 이직을 한 게이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새비는 정명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벨라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햐, 진짜 왔네. 에바 벨라한테 프로게이머를 시키겠다는 건, 네 아이디어지?”

“예. 괜찮죠? 시켜 보니까, 참 잘하더라고요.”

“넌 참… 돌아이야. 테니스의 신에게 게임을 시키겠다고 하다니. 아니, 그녀가 그런 제안에 응한 게 더 놀랍다고 해야 할까.”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혹시 다른 방송 촬영이라든가, 뭐 그런 거 진짜 아니지? 유명인이 우리 연습실에 들어온다는 게 영 어색해서…….”

구경하고 싶다는 얘기는 미리 해 뒀었다.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에 현관 쪽으로 시선이 모아지길 잠시, 컴퓨터 앞에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선수들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정명!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

“요즘 가장 쓸 만한 캐릭터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새비 말로는 팀을 만들 거라고 하던데, 그거 정말이에요?”

새비는 벨라가 유명인이라고 어색하다 했지만, 이 연습실에서만큼은 정명 또한 그에 못지않은 유명인이기도 했다.

선수들은 유명인인 벨라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오히려 정명에게 한마디라도 얻어 가려 애쓰고 있었다.

사실 언제 빛을 볼지 알 수 없는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광경이기도 했다. 그들 기준에 보자면 정명은 성공한 게이머였으니까.

그리고 새비는 그런 산만한 분위기를 정리하듯 말했다.

“자, 여기의 두 분이 너희가 연습하는 걸 구경하고 싶어하나 봐. 각자 조언이라도 얻어 가려면 오늘만큼은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거다.”

잠시 소란이 지나간 후, 정명은 벨라와 함께 연습실의 사람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차분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보통 때라면 조금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을 연습 게임이지만, 이번에는 바짝 기합이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절 아직 알아보나 보네요. 미국 떠난 지 오래돼서 혹시나 했는데.”

“그럴 리가. 아직도 가끔씩 자료 화면에 네 얼굴이 나오는 것 알아? 그만큼 너는 네가 모르는 사이에 별별 기록을 다 세웠어. 그리고 인상 깊은 경기도 많이 했고.”

“쑥스럽네요. 그래도 우승은 아직 못 했는걸요.”

“그리고 지금 그 미처 못다 한 우승을 하려고 돌아왔지. 요즘 1세대 게이머들 은퇴 소식 들었지? 솔직히 난 네가 나처럼 코치, 혹은 감독 같은 형태로 돌아오는 줄 알았어.”

“보통은 그렇게 하겠죠.”

잠깐의 추억 이야기가 지나간 이후, 다시 이야기의 화제는 팀원들의 연습 게임으로 돌아왔다.

새비는 ‘저 녀석이 에이스야’ 하면서 한 소년 게이머를 가리켰는데, 언뜻 보기에도 손이 빠르고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 같았다.

“어때? 우리 팀에서 나름 유명한 루키야. 저 미드라이너 덕분에 내년에는 1부 리그 진입도 노리고 있지.”

“그래요. 잘됐군요.”

“그런데 저 상대편 녀석을 봐. 우리 팀 에이스를 완전히 갖고 놀고 있지. 그렇다면 저 녀석은 뭐라고 생각해야 할까?”

연습실에는 초대 손님도 있기에 평소보다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인 실력 차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새비의 말대로 상대 미드라이너는 한 수 위의 실력을 보여 주며 게임을 접수하고 있었다.

“음, 잘하네요.”

“잘하지, 엄청 잘해. 2부 리그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 말에, 정명은 좋지 않은 상황을 바꿔 보고자 열심히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는 소년을 살펴보았다.

‘피지컬이 70 초반이네. 확실히 이 정도면 엄청 유망한 게 맞긴 하지. 예전 같았으면 특급 대우였어. 그런 루키를 압도할 만한 실력을 지닌 사람이라. 뭐지?’

호기심이 생긴 정명이 새비에게 상대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새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대답해 주는 대신, 둘을 연습실 의자로 안내했다.

“그런데 너희, 이렇게 맨입으로 그냥 갈 건 아니지?”

“그럼요? 뭐 마실 거라도 사 왔어야 했나?”

“에너지 드링크? 그런 건 창고에 박스째로 있어. 그런 거는 됐고, 애들한테 한 수 가르쳐 주고 가.”

*

이른바 리벤지 매치였다.

새비는 상대 연습 팀에게 두 명의 선수를 바꾸겠다고 말한 뒤, 벨라와 정명을 자리에 앉혔다.

“그럼 벨라는 어디가 좋을까. 탑 갈래? 난 미드로 갈게.”

라인전밖에 못 하는 벨라에게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라인이 아닌, 어느 시점까지는 거의 짱박혀 있다시피 한 라인을 줘 버렸다.

그녀는 시키는 것은 묵묵히 잘했으므로, 별 불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비와 두 명의 선수, 그리고 뒤늦게 부랴부랴 온 여러 명의 스태프까지.

연습 경기가 시작되려 하자, 뭐가 그리 신기한지 그들은 정명의 컴퓨터를 빙 둘러싸고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명, 그거 알아? 사실 난 네가 정글로 가겠다고 했으면 억지로라도 미드 세울 생각이었어.”

“왜요?”

“네 맞라인에 설 사람, 누군지 궁금하다고 했지? 사실 그는 2부 리그 팀에 있으면서도, 2부 리그 사람이 아냐.”

“예? 그게 무슨 개소리예요?”

정명은 마치 북미에 처음 오는 것처럼, 분위기에 도통 적응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새비가 정명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함과 동시에 게임이 시작되었다.

*

정명은 2부 리그를 휩쓸고 단번에 팀을 1부 리그로 올려 보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사람들은 생각했다.

기존의 실력이 검증된 선수를 2부 리그로 내려보낸다면 어떨까? 정명이 했던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구단의 관계자들은 그러한 호기심을 호기심만으로 끝내지 않고, 즉각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성공했다. 비교적 손쉽게 2부 리그 팀을 1부 리그로 옮겨, 각종 이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재미를 보려던 그때.

해당 이슈가 커뮤니티에 수면 위로 떠오르며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한 꼼수는 금지되었다.

거기다가 악질적으로 저지른 몇 팀은 강제 시드권 매각 명령까지 당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사건의 당사자가 바로 팀 RBT에 있었다.

팀 RBT의 코치는 새비에게 들어온 메시지를 보며 선수들을 향해 짧게 통보했다.

“저쪽 탑이랑 미드 라인 바뀌었어. 신입 둘이 새로 들어왔는데 평가를 좀 한다네.”

“그래요? 새비 그 아저씨가 연습 게임에 내보낼 정도면 완전 아마추어일 리는 없고, 적당히 괜찮은 사람들이겠네.”

정명의 맞라인을 서게 된 것은 루밀이라는 17살 소년이었다.

1부 리그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루밀은 형제 팀을 1부 리그로 올려 주면 돈을 더 주겠다는 구단주의 제안에 잠시 RBT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사건이 터진 이후로는 팀 이적이 극도로 제한되며 이도 저도 못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루밀은 팔자에도 없는 2부 리그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RBT를 1부 리그로 끌어올리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코치들도 말만 안 했지, 그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루밀의 플레이에는 별로 터치를 하지 않았다. 알아서 잘하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알아서 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 경기는 한마디 하는 게 나으려나?’

루밀은 딱 봐도 밀리고 있었다. CS 하나까지도 허락 받고 먹어야 할 정도로 심하게.

결국 그로 인하여 게임이 터지자, 루밀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이거 그 한국에서 유행한다던 경력 있는 신입, 뭐 그런 건가요? 내가 조금 방심하긴 했어도, 아무리 봐도 아마추어급은 아닌데?”

“그래? 그럼 용병일지도 모르겠군. 다음 판에는 방심하지 말고 잘하라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저런 실수야,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다음 판에도 분위기가 똑같이 흘러가자, 연습실의 분위기가 굳어졌다.

“잠깐만요, 이거 왜 이렇게 힘들지? 코치님, 이 사람 정확히 누구예요? 이거 1부 리그에서 경기 했을 때보다 더 빡센 것 같은데?”

다른 선수의 플레이를 점검하고 있던 코치는 그제야 허겁지겁 루밀에게 달려갔다.

*

“방금 상대했던 사람이 누구인 것 같아?”

“글쎄요. 2부 리그 사람이 아니라 원래는 1부 리그 사람이랬으니, 알파모인가? 아니면 푸로미? 아니면…….”

정명은 적당히 생각나는 이름을 늘어놓았지만, 새비는 오히려 큭큭대며 웃기 시작했다.

“야, 화석 티 좀 내지 마라. 그 게이머들 다 코치로 전환하거나 은퇴했어.”

“아, 진짜요. 그 나이에 은퇴라니, 이 바닥도 참…….”

“사실, 루밀이야.”

새비는 비밀이라도 되는 양 말했지만, 정명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누군데요?”

“정말 몰라?”

“현직 프로라고 해서 어떻게 몇백 명이나 되는 프로 리그 관계자들을 어떻게 다 기억합니까.”

정명이 알아듣지 못하자 결국 새비는 루밀이 2부 리그에 오게 된,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부터 알려지지 않은 폐단 따위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의 전부를 풀어놓았다.

“강제 시드권 매각이라니, 일이 꽤 크게 번졌었나 보네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지. 그런데 너에게는 기회이기도 해. 솔직히 너 정도의 클래스라면 2부 리그를 거칠 필요가 없잖아? 돈 되면 사 버려.”

“음, 지금 제가 꾸리고 있는 팀 구성으로 리그에서 얼마나 통할지 알 수 없긴 한데, 바로 갈 수 있다면 저야 좋죠. 그런데 그거 슈퍼에서 초콜릿 사 먹는 것처럼 쉽게 살 수 있는 건가요?”

“하하, 사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뭐, 돈만 내면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로부터 5시간 후.

벨라의 일일 프로게이머 체험이 끝났다.

*

연습실에서 있었던 일은 금방 알려졌다.

그 장소에 있던 선수들의 SNS 인증샷이 퍼졌기 때문인데, 화젯거리를 잡은 기자들은 곧바로 그를 바탕으로 한 기사를 쏟아 내었다.

-테니스 스타, 프로게이머로 전업?

-소속사: 은퇴하는 것이 아닌, 잠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일 뿐.

-테니스계를 제패했다고 하여 프로 게임계를 만만히 보나?

그와 동시에 벨라의 메일함이 터져 나갔다.

치라는 공은 안 치고 어디 갔냐는 항의성 메일부터, 게임 업계를 우습게 보냐는 항의성 메일까지.

하지만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정작 본인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쁠 것 없지. 원래 좀 떠들썩해야 인재가 몰리는 거야. 아직 팀원 다 안 뽑았잖아.”

“네 이름 팔리는데도?”

“이름 팔리는 것 가지고 뭘. 넌 나에게 같이 경기에 나가 달라고 했지. 경기에 나가면 이름뿐만 아니라 얼굴이 팔린다는 걸 알아 둬.”

메일함이 터진 것은 벨라뿐만이 아니었다.

벨라뿐만 아니라 본의 아니게 본격적으로 복귀를 알리게 된 정명의 주변에도 여러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돌아온 프로게이머, 첫 희생양은 RBT.

-정명의 자신감,

“루밀? 그게 누구냐?”

-일각, ‘정명, 본 실력보다 과대평가.’

“떠들썩한 등장이네. 모두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나 봐.”

“이런 기사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하다니, 극도로 긍정적인 태도로군. 아무리 봐도 나를 물어뜯으려고 약점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하지만 정명은 저런 반응에 일일이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의 일을 할 뿐이었다.

‘팀원 모집 중’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정명은 하루에도 수십 건의 문의를 받았고, 지금 막 연 메일함에서는 자리가 아직 남았냐는 질문과 함께, 이력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어, 이 녀석이 메일을 보냈네.”

“누구?”

“조금 알던 사람인데 내 기억으로는 실력이 썩 괜찮았어. 면접 오라고 할까, 말까. 고민되네.”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건넸고, 그 이력서를 본 벨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음, 글쎄. 소문으로 듣기론 이 사람, 팀이랑 섞이지 못해서 빠지게 된 거라던데 정말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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