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30화 (130/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30화-----------------

만약 평범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것만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막연히 생각하면 로또 번호를 외운다거나 주식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로 돌아갈 것을 미리 알고 있다.’라는 전제가 있어야 통하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도 별로 할 게 없다.

“와, 미친. 순식간에 날아오르는 거 봐라. 저기에 조금만 투자했어도 지금쯤…….”

“그런 망상이나 해 봐야 뭐 하냐. 차라리 이쪽에다 투자하는 건 어때? 요즘 바이오주가 참 좋은데, 이게 말이지…….”

정명이 팀을 떠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떠들썩한 카페 안에서 노트북으로 자신의 투자 현황을 살펴보던 정명은 노트북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찾은 수첩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역시 이번에도 대충은 맞았군. 처음에는 지금까지 힘겹게 번 돈을 날리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는데.’

정명은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는 동안 어떻게 한 탕 해먹을 생각 없이, 그저 착실하게 돈을 벌었다.

그 후, 어느 정도 자본금을 모았다고 생각한 순간 만화책 더미에 숨겨 놓았던 자그마한 수첩을 꺼냈다.

수첩에 적어 둔 것은 ‘나중에 이런 회사가 뜬다, 저 회사는 망한다.’ 수준의 작은 정보였지만 돈을 버는 것은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정명은 수첩을 참고하며 유명해질 기업에 투자를 하고, 값이 오를 땅을 매입했다.

그리고 최근, 투자했던 것의 열매를 조금씩 수확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소소하게 재미를 보는 정도지만, 나중에는 정말 팀원에게 연봉 10억을 떡하니 안겨 줄 수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될지도 모르지?’

물론 지금은 희망사항이었고, 그렇게 되려면 시간이, 그리고 자본금이 좀 더 필요했다.

‘그래도 이제 팀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자금은 확보했다. 이제는 누구를 데려와야 하는지가 문제인데……. 이번에는 진짜 잘 골라야 해. 진짜로.’

팀으로 영입할 사람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정명은 잠깐 대회만 나갔다 올 사람이 아닌, 계속해서 팀워크를 맞추고 같이 실력을 쌓아 나갈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정명은 지금까지 만났던 게이머들을 스캔하며, 몇 사람을 떠올렸다.

‘그래, 급할 거 없지. 그럼 일단 느낌이 괜찮았던 사람으로 몇 명 만나 볼까?’

*

서울의 한 건물.

평범해 보이는 이 건물의 입구에는 TAQ라고 적혀 있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곳이 맞나? 새로 들어간 구단의 연습실이.’

이미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 놓은 상태였기에 정명은 연습실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런데 문을 열고 연습실에서 나온 남자는 낮잠을 자다 나왔는지, 퍽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아저씨, 팬인 건 알겠는데,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문 두드리면 선수 입장에서는 기분이 어떻겠어요? 그러니까…….”

남자는 말을 흐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나온 사람은 딱 보기에도 고등학생 티를 벗어나지 못한 어린 선수.

상대의 무례함에 기분이 조금 나빠진 정명이 한마디 해 주려는 순간, 누군가 남자의 뒤통수를 탁 쳤다. 김준상이었다.

“야! 넌 월드 챔피언십 나간 선배도 못 알아봐?”

“예?”

“너 잠깐 이리 와 봐.”

알고 보니 그 남자는 TAQ의 연습생이었다.

때문에 주전 멤버이자 까마득한 선배인 김준상에게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구박을 듣는 내내 한마디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정명은 김준상의 말이 길어질 듯 보이자, 적당히 말렸다.

“됐어. 같은 팀도 아니었는데, 무슨 선배야.”

“아, 형.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가 나중에 뭐라고 좀 해야겠어.”

중국 팀 AAIG에 있던 김준상은 다시 한국 팀으로 돌아왔다.

물론 중국에서 있을 때에 비해 받는 연봉은 훅 떨어지게 되었지만, 본인 말로는 돈은 별로 문제가 안 된다고 한다.

정명을 연습실로 안내한 준상은 정명에게 바나나 우유 하나를 건네며 뒷얘기를 풀었다.

“중국에서 리그를 뛰는 건 죽은 물고기를 잡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죽은 물고기를 잡아도 돈은 줬지. 그런데 거기에서 무슨 재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겠어? 그렇게 매일 지니까, 내가 무엇 때문에 프로게이머가 됐는지까지 생각하게 되더라. 아, 결정적으로 요즘 중국 내부 상황도 무척 안 좋아져서. 알지?”

“알지. 외교 분쟁으로 시끄럽잖아.”

정명의 처음 계획은 중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중국에 2년 동안 있으면서 기반도 많이 쌓아 두었고, 기존의 인맥들을 활용하면 조금 편해질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중국의 공산당 측에서 한국 사람이 TV에 나오는 것을 자제시키라는 비공식 통보가 내려온 뒤로 그 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리고 마침 연습실의 TV에서는 뉴스 앵커가 그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중국의 한 고위 공직자가 한국인이 TV에 나오는 것을 자제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를 부인하지만, 내부 증언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한국 언론은 소식이 조금 늦네. 내가 XTC 구단주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이 한 달 전이었는데.”

“저도 구단주가 미리 알려 주더라고요. 꼭 지키지는 않아도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니까,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중국 리그에서 있었던 일을 추억 삼아 떠들었다.

그리고 정명이 연습실을 떠나기 전, 정명은 막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맞다. 네가 지금 TAQ랑 계약이 몇 개월 남았지?”

“나? 반 년 정도. 왜?”

“아니, 그냥. 그럼 다음에 보자.”

정명이 생각해 두고 있는 다른 멤버는 송하니였다.

하지만 하니는 콘서트다 뭐다 하며 어찌나 바쁘게 돌아다니는지, 연락 한번 해 보기도 힘들었다.

-여보세요.

“아, 매니저인가요?”

-예. 근데 지금 하니가 공연 중이라…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뚜뚜뚜…….

“아나, 이놈 이거 또 먼저 전화 끊었네. 연락 준다고 하고선 주지도 않고, 이게 진짜.”

이 두 사람 이외에도 중국의 멤버 몇 명까지.

정명은 되도록이면 이 정도의 범위 안에서 팀원을 찾고자 했다.

‘너무 국적이 꼬이면 외국인 제한 이전에 소통이 힘들 거고.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는데, 어렵네, 어려워.’

그러게 한참 고민을 하며 머리를 벅벅 긁던 정명은 다음 날, 곧장 미국으로 떠나 버렸다.

일단 팀을 만들어 놔야 기분이라도 좋아질 것 같았으니까.

*

정명은 처음으로 도전할 대륙을 북미 쪽으로 정했다.

북미에서도 어느 정도 기반을 쌓아 두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만만하니까.

한국에 도전하는 건 만든 팀이 적당히 안정되면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팀을 등록하러 간다고 하니, 정명의 팬클럽을 만든 장본인인 벨라가 따라나섰다. 본인의 말로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고 하는데, 정명의 입장에서도 귀찮은 운전을 피할 수 있었기에 동행을 승낙했다.

그리고 약속 장소로 간 정명은 비싸다고 소문난 고급 차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헬로.”

“오랜만이네, 벨라. 그런데 너 바쁘지 않냐?”

“요즘 슬럼프라서. 겨울은 쉴 거야.”

“슬럼프? 네가?”

정명이 보기에 벨라는 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테니스 천재였다.

그런 그녀에게 슬럼프가 왔다는 것은 조금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정명은 테니스에 대해 잘 몰랐으므로,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 북미 리그 돌아가는 건 어때? 여전하지?”

“여전하다는 것은, 여전히 실력이 쓰레기냐는 말?”

“음… 응.”

“사실 몰라. 네가 중국으로 간 뒤로는 안 봤어. 게임도 안 했고.”

“그래?”

“그래.”

대화는 그것으로 끊어졌다.

차 안이 조용해지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정명이 의자를 눕혀 잠을 자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협회 건물에 도착했다.

“여기 오랜만에 오니까, 옛날 일이 생각나네. 나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여기서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했었는데. 미국에는 인종 차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잖아?”

“뭐, 어떤 미친놈이?”

벨라가 정색하며 말했지만, 정명은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오래 되서 기억이 잘 안 나네. 아, 저 엘리베이터 타자.”

정명은 그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지만, 벨라는 은근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식사 시간이라고? 흠, 조금 이따가 와야겠네. 그럼 우리도 식당에서 뭐라도 먹을까.”

“응, 그러자. 그런데 그 사람 누구였어?”

“오래되어 잘 기억 안 난다니까.”

“잘 생각해 봐. 기억이 날 거야.”

벨라는 대답할 때까지 집요하게 물어볼 기세였다.

정명은 차라리 대답하는 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자그마한 단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코랑 키가 크고 노랑 곱슬머리에다가 꽤 마른 백인이었어. 이것 말고는 기억이 안 나네.”

“곱슬머리… 백인…….”

“이제는 아무 생각 없으니까, 제발 사고만 치지 마. 지금 진짜 너 살벌하거든?”

*

그 후, 정명은 곧바로 담당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예상대로 팀을 등록하는 것 자체는 무척 쉬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과정이 끝났다.

“오, 정명. 팀을 만드는 건가요? 이번에는 감독으로 북미에 도전장을 내는 겁니까?”

“저 아직 은퇴 안 했어요.”

“그러면 더 좋죠! 사실 제가 당신의 팬이었거든요. 제가 원래 서서라는 게이머의 팬이었는데, 있죠…….”

담당 직원은 무척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정명의 경기를 무척 인상 깊게 봤다며 호감을 드러냈다.

“그럼 이번 윈터 리그부터 나오시는 건가요?”

“아뇨. 아직 팀 구성이 완료되지 않아서요. 스프링 리그를 목표로 준비 중입니다.”

“아이, 아쉬워라.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그럼 그 전에 사진 한 번만…….”

직원이 적극적으로 팬심을 드러내자, 옆에서 계속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던 벨라가 나섰다.

“등록 끝났으면 이만 가도 됩니까?”

“네? 네에…….”

“끝났대. 빨리 나가자.”

사무실에서 나간 뒤로, 벨라는 그녀답지 않게 꽤나 말이 많아졌다.

“그 여자, 정말 짜증 나게 구네.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이람? 정명, 너 혹시 저런 여자가 취향이니?”

그리고 그런 벨라의 험담은 건물에서 나간 뒤, 그녀의 차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다.

“팬이라고 해서 다 같은 팬이 아니라니까? 조심해, 그런 여자는 분명 몰래 콘돔에 구멍을 뚫어서 약점을 잡을 그럴…….”

“벨라야, 내가 원래 윈터 리그를 쉬려고 했거든.”

“응, 그랬지. 아, 혹시 그동안 나한테 테니스 배울래? 겨울이라고 집에만 있으면 안 돼.”

그 말을 하는 벨라는 왠지 다시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명은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베스트 멤버는커녕, 어떻게든 아는 사람을 끌어 모아도 한 명이 부족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테니스…….”

“네가 인원수 채우면 될 것 같지 않냐?”

“응?”

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정명과 벨라는 함께 듀오 랭크 게임을 시작했다.

물론 정명의 요청에 의한 게임이었다.

“오, 벨라 너 마스터 리그야? 제법 잘하나 본데?”

“한 지 오래됐어. 잘 못 할 거야.”

정명은 벨라가 겸손한 마음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정명의 추측은 틀렸다.

벨라는 실제로 못했는데, 그냥 못한다고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마스터 리그 맞아? 내 생각에는 브론즈…… 아니, 욕할 뻔했네.’

정명이 보기에 벨라는 판을 짜는 방법, 그리고 운영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처음에는 등급을 다른 사람이 올려 줬나 싶었지만, 다음 판에서 라인전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상대방이 페이크를 걸면, 페이크에 그대로 속아 넘어간다. 그리고 상대방이 좋아라 하며 스킬을 쓰면, 괴물 같은 반응 속도로 그것을 피해 낸 뒤, 역으로 상대를 때려잡았다.

부족한 센스와 판단력을 피지컬로 대충 때우는 것.

그것이 벨라라는 여자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법이었다.

[에바 벨라]

피지컬 (90/95)

정신력 (82/93)

오더 (20/53)

판단력 (25/84)

‘역시 게임을 배우기보다는 피지컬로 대충 때우는 타입……. 게임을 진지하게 하는 성격도 아닌 것 같으니 상관없었겠지, 물론.’

정명이 생각하기에 동체 시력, 반응 속도 같은 것들이 높게 평가되어 피지컬 90을 달성한 듯했다. 천재 운동선수라는 타이틀이 어디 안 간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치를 본 정명은 다시 한 번 벨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벨라야, 너 나랑 일 한번 하자. 지금 윈터 리그에 참가하려면 사람이 부족해.”

“…네가 가끔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내 직업은 팬클럽 회장이 아니라 테니스 선수야. 프로게이머로 전업할 이유가 없어.”

“누가 전업하래? 잠깐 인원수 좀 맞춰 달라는 거지. 어차피 지금 쉬잖아. 슬럼프가 왔니 뭐니 하면서.”

“그건 그렇지만… 하지만…….”

정명은 ‘벨라가 역시 팬클럽 회장이긴 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벨라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에바 벨라를 팀원으로 등록했습니다.]

[현재 팀 정보]

팀을 만들기는 했지만 자본과 쓸 만한 선수, 모두 부족한 총체적 난국의 상태입니다.

*팀원(1/1)

-팀원을 추가로 등록하려면 팀 레벨을 상승시켜야 합니다. 명성 점수와 포인트를 소모하여 팀 레벨을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팀 레벨이 올라갈수록, 특수 효과가 늘어납니다.

*더블 샷: 획득 포인트가 두 배가 됩니다.

‘송하니나 다른 애들 기다리며 손만 빨고 있을 수는 없지. 애들 대충 모아서 곧바로 윈터 리그에 도전한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