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10화 (110/226)

< 39. 이번에는 어떤가? (3) >

마침내 3위 팀, AAIG와의 경기 날이 다가왔다.

경기장에 도착한 XTC 팀원들은 다들 긴장한 듯, 한숨을 푹푹 쉬고만 있었다.

“왜 그렇게 긴장해? 맞춤형 연습까지 했는데, 자신을 갖자고, 응?”

“어...예. 그런데 그냥 긴장이 되네요. 저 잠깐 화장실 좀...”

티웨이는 그렇게 말하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대체 화장실을 몇 번을 가는 거야, 아무리 상대가 잘 하는 팀이라고는 하지만.’

잘 하는 팀이라고는 해도, 아예 못 비벼볼 정도로 실력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정명에게 나타난 퀘스트를 봐도 증명 가능했다.

[강자와의 대결]

강팀과의 경기 일정이 잡혔습니다.

만약 이번 경기에서 이긴다면, 꽤 괜찮은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보상 : 경기 승리 시, 획득 포인트 2배

‘설명이 간단해. 그리고 보상이...나쁘지는 않지만, 썩 대단해 보이지는 않아. 지난 번, 팀 아서스와 경기를 할 때와 비교해보면 말이야.’

정명은 어느 새, 퀘스트의 보상을 통해 상대방의 객관적인 실력을 가늠하고 있었고, 그것은 꽤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방법이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잠시 기다렸지만, 화장실로 떠난 티웨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정명은 혼자 터벅터벅 무대로 향했고, 반대편 부스에서 서성이고 있는 AAIG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흠, 김준상도 있군. 오늘은 저 녀석의 컨디션이 나빴으면 좋겠는데.’

정명은 속으로 되도 않는 소리를 하며, 김준상의 상태창을 띄워 올렸다.

[김준상]

피지컬 (90/90)

정신력 (75/85)

오더 (70/85)

판단력 (80/90)

‘하, 피지컬 90...머리가 아프다. 역시 비싼 연봉을 받고 팀에 팔릴 만 해.’

피지컬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꽤 좋은 선수였다.

피지컬은 발전할 수 있는 최대치에 다다른 상태였지만, 이미 그 상태로도 무리 없이 1티어 급의 원딜러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 듯 했다.

그의 나이 24살, 프로게이머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3세를 살짝 넘었는데, 아직까지는 전성기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쩝, 괜히 열어봤다. 능력을 알아봤자 대응방법이 달라지지도 않는데.’

그리고 그렇게 살짝 후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정명에게 티웨이가 다가왔다.

“저 다녀왔어요. 오, 저 사람들이 AAIG 사람들인가? 하지만 정명 말대로 우리도 상당한 실력을 가진 윈터폭스 선수들과 싸워 이겼으니까요. 걱정 없죠. 저 녀석들 정도야.”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런데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올게.”

......

그리고 잠시 후,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밴픽 과정은 몇 번을 시뮬레이션 한 대로, 착착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번엔 AAIG가 블루 진형이라, 밴픽에서 주도권을 가질 거야. 쓰고 싶은 캐릭터, 무조건 잡을 수 있겠지.”

정명의 생각대로, AAIG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원딜 키우기 조합을 짜기 시작했다.

그들이 선택한 서포터는 서리여왕. 실드를 걸어줄 수 있으면서도, 그 실드에 공격력이 붙어 있는 원딜러 강화 스킬을 갖고 있었다.

미드는 꼬마마녀였다. 이 캐릭터 또한, 이동속도와 공격속도를 높여주는 스킬을 갖고 있었고, 이 또한 원딜러 강화 스킬이었다.

마지막으로 탑과 정글은 상태이상 스킬 위주의 탱커형 캐릭터였는데, 이 어깨형님들이 앞에서 든든하게 서 있다면, 상대 원딜을 물때 상당한 에로사항이 꽃필 것임이 분명해보였다.

“너무 노골적으로 원딜러를 키우겠다고 발표하는 것 같은데요.”

“아냐, 우리도 썩 나쁘지 않아. 그럼 해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마침내 첫 게임이 시작되었다.

모든 XTC 선수들은 시작하자마자 바쁘게 맵을 돌아다니며, 맵 곳곳에 와드를 박기 시작했다.

라인스왑을 고려한 움직임이었다.

“그쪽에 깊숙이 박아 둬. 라인스왑 하는지 봐야 하니까.”

상대방 원딜러, 김준상이 선택한 캐릭터 왕나비공허충은 초반에는 약하고 후반에는 강한, 전형적인 캐리형 캐릭터였다.

즉 초반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인전을 안정적으로 넘기기 위해 상대측에서 라인스왑을 걸 확률이 있었으므로, XTC 입장에서는 그것을 저지해야만 했으므로, 초반부터 와드를 잔뜩 박아 넣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쪽에 박아둔 와드가 상대방 바텀 듀오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저 녀석들, 탑 가는데요? 라인스왑이에요.”

“알지? 쫒아 가.”

캐릭터간에는 상성이라는 것이 있기에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상성이라는 것은, 실력조차 몇 단계 뛰어넘게 해주니까.

그리고 그 덕분에 XTC는 초반에 우위를 점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XTC, 느낌이 좋습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맹연습을 했다고 하던데, 그 효과가 드러나는 것인 것 같네요!

-첫 번째 드래곤에 이어, 두 번째 용 까지. 무난하게 XTC가 차지합니다!

드래곤, 오브젝트, 그리고 미드 억제기까지.

모든 상황이 XTC에게 좋았고, 정명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면서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초반에 약한 만큼 후반 캐리력이 월등한 왕나비공허충이 크기 시작했던 것이다.

-AAIG, 원딜러에게 모든 미니언을 양보하네요.

-초반에는 일진에게 맞는 학생처럼 일방적으로 당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복수를 위해 힘을 키우는 것처럼, 열심히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기대되네요.

AAIG는 타워를 끼고 우주방어를 하며 XTC의 공세를 끈질기게 버텼고, 결국 경기가 시작 된지 40분이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 조금씩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허충, 프리딜 구도 나옵니다!

-초반에는 일진에게 맞는 학생처럼 일방적으로 당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맞싸움을 해도 전혀 지질 않습니다. 체육관의 관장님이 흐뭇하시겠네요.

소규모 국지전에서 겨우겨우 살아 간 티웨이는 자신의 HP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 녹는다 녹아. 내가 방템을 안 간 것도 아니고, 방템 둘둘인데...”

처음에는 XTC측에서도 왕나비공허충을 집중 공격해 잡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서리여왕과 꼬마마녀의 2단 실드. 거기다가 탱커의 실드 아이템까지 3단 실드가 켜지는 것을 본 이후로는 질려버린 선수들이었다.

“아, 저거 사기 아니야?”

“죽지를 않네, 진짜. 이거 더 크면 정말 끔찍한 혼종이 나오겠는데.”

그리고 경기시작 50분 째, 최종적으로 모두의 꿈과 희망을 담은 원딜러가 완성되었다.

-학교에서 일진에게 맞고 다니던 소년은 복수를 다짐하며 체육관에서 힘을 키웠거든요. 그리고 이제 그가 복싱 선수가 되었습니다!

-일진은 아무것도 아니죠. 아마 걸리면 순식간에 녹여버릴 수 있을 겁니다. 아, 물론 XTC 선수들이 일진이라는 것은 아니고요. 하하!

다른 라인의 선수들에게 생존을 도와주는 스킬이 많이 있었기에, 왕나비공허충은 방어아이템을 일절 가지 않았고 5공템이 갖춰진 공허충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상황은 어느새 역전.

패전의 기운이 짙어지고 있었지만, 정명은 딱 한 방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다들 집중해. 기회는 온다. 저 녀석 혼자 나댈 때를 노리자고. 사오미, 네가 선이다. 각 보이면 바로 들어 가.”

서포터 사오미가 잡은 캐릭터는 곰 마법사.

투사체가 날아가는 것을 기다릴 필요 없이, 즉발로 광역 스턴을 넣을 수 있기에 싸움을 거는 데 제격인 캐릭터였다 그리고 와드를 군데군데 박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결과,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가, 사오미 궁 써!”

“점사해, 점사! 공허충!”

쿵, 왕나비공허충의 머리 위로 커다란 곰인형이 떨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연계되는 상태이상 스킬에, 방어 아이템을 사지 않았던 공허충은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아, 챔피언의 꿈이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예. 일진들이 떼로 달려들었군요. 수에는 장사 없는 법이죠.

AAIG를 응원하던 팬들이 허탈하다는 듯,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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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반대편 부스.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또한 툭 치면 깨질 것만 같은 긴장감이 온 부스를 채우고 있었다.

자칫하다간 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 우리가 유리해.”

“저 녀석들, 한 번 이기더니 홈에서 꿈쩍도 않고 있네. 백작 가자, 그럼.”

정명의 팀은 억제기가 두 개나 깨졌으므로, 슈퍼 미니언들을 막기 위해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홈에서 꼼짝도 않고 있으면, 맵 곳곳에 있는 오브젝트들을 가져가면 그만이다.

따라서 가장 강력한 오브젝트 몬스터, 백작에게 핑이 찍혔다.

백작 오브젝트는 가장 강력한 중립 몬스터이지만, 거의 풀템이 다 나온 지금 상황에서 그건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저거 잡을까?”

“아니, 일단 낚시만. 잡는 척만 해.”

AAIG의 백작 낚시는 거의 성공할 뻔 했다.

하지만 걸려든 캐릭터가 탱커였고, 낚시를 하기 위해, 좁은 공간에 캐릭터가 몰려있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실드, 실드!”

“곰마법사 좀 봐줘!”

순식간에 고함이 부스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진짜 문제는 백작이 있는 곳이 무척이나 좁기 때문에, 진형이 붕괴된 채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장판궁이 뿌려졌고, XTC 선수들은 모든 스킬을 공허충에 집중했다.

그리고 3초가 지나자, 김준상은 키보드를 놔버렸다.

-아, 부활까지 70초. 이건 끝났네요. 원딜러를 힘들게 키웠는데, 정말 아쉽겠군요.

-백작을 친 건 실수였나요? 백작에게 너무 많이 얻어맞았어요.

가장 먼저 죽었기에 혼자서 부활한 서포터가 한숨을 쉬며, 타워 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최대한 막아볼게. 다른 사람이 부활할 때 까지...”

넥서스 옆의 타워도 모두 온전하게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 막아보기엔, 서포터는 너무 약했다.

-GG! 55분간의 혈투 끝에, XTC가 1세트를 따 냈습니다!

“어휴”

“아.”

“아.”

짜기라도 한 듯, 두세 명의 선수가 짜증과 안타까움을 담은 소리를 내뱉는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AAIG 선수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곧바로 재판을 시작했다.

“이거 대체 뭐지?”

“백작 안 쳤으면, 우리가 이기는 싸움 아니었음?”

“내 말이. 아 씨, 백작 누가 쳤냐?”

“공허충, 공허충.”

미드라이너는 다른 사람들이 못 들었을까봐 그랬는지, 굳이 두 번 을 반복해서 보고했다. ‘이 녀석이 잘못 했다!’ 라고.

그리고 이것이 바로 LOH 전통의 정치질이었다.

브론즈, 실버, 골드의 하위리그뿐만 아니라, 프로게이머가 되어서도 정치질은 여전했던 것이다.

물론 그 후로 남 탓을 하거나 욕을 하지는 않았지만,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된 김준상은 얼굴을 팍 일그러트렸다.

‘시발, 지금껏 캐리한 게 누군데 이딴 소리를 해?’

뭐라고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화가 나니까 중국어가 더 나오지 않았다.

결국 김준상은 입을 다물고 한숨 쉬는 것을 마지막으로 부스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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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수고했어, 우리가 3위 팀을 잡았다!”

“잘 하면, 4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대요. 남은 경기를 봐야 하지만요.”

2경기 또한 XTC의 승리였다.

이제 XTC는 완전히 원딜러 키우기를 상대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힘이 쭉 빠져버린 AAIG를 1경기보다 더욱 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

정명은 부스에서 나오기 전,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며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퀘스트를 달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14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좋아, 피지컬이라도 더 찍어볼까.’

목표는 피지컬 90.

정명은 과연 이번 시즌 안에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곧바로 포인트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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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IG와의 경기를 끝낸 이후, 몇 개월이 지났다.

푹푹 찌는 폭염이었기에 그런지 더욱 길게 느껴졌던 섬머리그는 별 탈 없이 진행되었고, 어느새 폐막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정명은 섬머리그 마지막 상대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애들도 상당히 지쳐있고, 이거 되려나 모르겠네.”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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