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09화 (109/226)

< 39. 이번에는 어떤가? (2) >

형제 팀.

한 기업이 2개의 팀을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에 형제 팀끼리 연습시켜 보안을 유지할 수도 있고, 연습경기 일정을 잡는 게 무척 편해지기도 한다.

팀 Winterfox 또한 그런 형제 팀 중 하나였다.

그것도 지난 번, 월드챔피언십에서 1위를 한 팀의 형제 팀.

칭호는 거창했지만, 사실 그렇게 대단할 것은 없었다.

형제 팀이라는 것은, 굳이 비교하자면 서울에 있는 명문 대학이 지방으로 분교를 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겉보기에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별 것 없다는 얘기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윈터폭스팀의 김성무는 형제 팀에 대한 열등감이 상당했다.

거기다가 최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형제팀 제도를 폐지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기에 김성무는 한껏 민감해진 상태였다.

때문에 그가 처음 듣는 중국 팀과 연습게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짜증을 냈던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저런 애들하고 해야 할 만큼, 연습게임 상대가 없나? 감독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건데?”

“왜 그렇게 과민반응 하냐. 연습게임 조금 하는 게 뭐 어렵다고. 그리고 걔네도 잘 하는 팀이라던데? 우리가 실력이 어쩌니 할 만한 팀은 아니야.”

“지랄. 보나마나 그 잘난 인맥 때문에 받은 연습게임이겠지 뭐. 어휴, 내가......”

동료의 설득에도 김성무는 계속해서 투덜거렸고, 결국 팀에서 가장 연장자였던 한 선수가 감독을 찾아가, 설득하기 시작했다.

“감독님, 성무가 저렇게까지 말 하는데 그냥 안 하겠다고 하는 게 어떨까요?”

“이미 하겠다고 했는데 해야지. 아니, 그보다 넌 내가 저 녀석 눈치까지 보라 말하고 싶은 거냐? 하기 싫으면 짐 싸서 나가라고 해. 연습상대를 가리긴 왜 가려, 주제에.”

“그건...예. 알겠습니다.”

미국 같은 곳과는 달리, 한국에서 감독이라는 사람은 철저한 권위 위에 군림하고 있다.

결국 감독을 찾아왔던 선수는 본전도 못 건지고 3초 만에 꼬리를 내렸다.

거기에 덧붙여서 한창 잔소리를 하던 감독은 마지막으로 당부하듯 덧붙였다.

“야, 그리고 김성무한테 채팅 자제하라고 전해. 알았어? 해외팀하고까지 만나서 망신시키지 말라고 하란 말이야.”

######

보통 때라면, 실력 있는 팀과 연습게임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XTC는 경기가 코앞이었고, 사기저하를 우려한 코치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 유명한 팀의 형제 팀이라니, 그럼 엄청 잘 하는 것 아니야? 이거 시합 앞두고 0승 10패, 이렇게 돼버리면 망하는 것 알지?”

“우리랑 실력 비슷한 팀일걸요? 한 번, 플레이 영상 보실래요?”

“아니, 그건 내가 나중에 볼 게. 그래, 아무튼 이 팀이 AAIG처럼 원딜러를 잘 쓴다 이거야?”

정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PC 모니터에 나타나 있는 한 남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 사람이요. 김성무라고, 조금 성격 더러운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 사람에 대해서 뭐 들은 게 있나봐?”

“조금요.”

정명은 사실 조금이라고 말한 것 치고는, 꽤나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나중에 나올 신문 기사에서 그의 행적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파헤쳤기 때문이다.

‘앞으로 1년 정도인가. 이 녀석이 사고 쳐서 중국으로 도망가는 건.’

결과적으로 말해서 결국 그는 이 업계에서 퇴출되고 만다. 그것은 조그마한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기도 하고, 그의 성격상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기도 했다.

때문에 정명은 그의 사진을 한심하게 바라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 벌써부터 저 녀석을 쓰레기 보듯 할 이유는 없겠지. 아직은.’

하지만 그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은 것은 쿠론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는 김성무의 사진을 보자마자 대뜸 욕을 했다.

“새끼, 눈깔 뜬 것 좀 봐. 엄마, 이런 놈이 100% 사고 칠 놈이에요. 내가 이런 건 잘 알아 봐. 진짜라니까?”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으레 쿠론이 내뱉는 헛소리인가보다 하고 무시했지만, 정명만은 살짝 놀라며, 그녀의 직감에 감탄했다.

‘양아치는 양아치를 알아보는 건가. 나름 놀랍네.’

......

잠시 후.

연습을 약속한 시간이 되자 다들 자리에 앉았고, 이제는 부 코치가 된 에리가 정명에게 다가왔다.

“원딜러 키우기 조합을 고집한다면, 고를 수 있는 픽과 전략이 한정되어 있어. 우리가 그들에게 익숙해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요. 시간이 많은 게 아니라.”

윈터 폭스, 한국의 1부 리그 팀.

그래도 AAIG보단 약하다.

때문에 정명은 이 팀을 상대로 50% 이상의 승률을 보여야 AAIG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 된지 20분이 흘렀다.

정명은 첫 경기를 하는 내내 바텀라인을 노렸지만, 번번히 실패해버렸고, 이 팀은 전에 상대했던 와플이 있던 팀처럼 쉽게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후, 저 꼴통 저거. 바텀에서 사는 거야 뭐야? 아주 캠핑을 하고 있네.”

갱킹을 가려고 하면, 항상 상대방 정글러가 먼저 도착해 있다.

정글러가 없다 싶으면, 탑이 텔레포트를 타고 온다. 심지어 미드까지 텔레포트를 들어서 바텀라인 공략을 원천봉쇄 하고 있었으므로, 정명은 그들에게서 집착 비슷한 것 까지 느꼈다.

“그냥 다른 라인으로 가야겠다. 미드 궁 있냐?”

“잘 생각했네. 궁 있으니까, 바로 와. 어시스트정도는 줄게.”

판단은 빠를수록 좋다.

한참동안 바텀에서 갱킹을 가니, 와드를 지우니 하며 시간을 보내던 정명은 곧바로 미드로 향했다.

그동안 바텀에서 시간 낭비한 것의 분을 풀기라도 하듯, 정명의 악몽유발자가 미드를 덮쳤다.

“도주기 빠졌다, 잡아!”

[커져랑!]

갱킹을 당한 미드라이너가 궁극기를 사용하여 HP를 회복했지만, 의미 없는 발악일 뿐이었다.

“괜찮아. 궁 써도 여유 있어.”

[꾸에엑!]

“잡았다. 굿이네.”

바텀 때문에 잠시 답답했지만, 미드에서 깨끗하게 첫 킬을 냈다.

하지만 쿠론은 어쩐지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고, 그 이유는 킬을 낸 뒤 정명이 한 행동에 있었다.

“야, 넌 뭔데 내 라인 밀어?”

“갱 값. 킬 먹여줬으니, 대금 받아야지.”

“그래? 그럼 나도 네 정글 빼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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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윈터폭스쪽의 승률이 더 높았다.

그러다가 게임을 몇 번 진행하자, 정명은 이제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대충 감이 왔다.

그 후, 다음 날에는 승률이 반반이 되었고, 또 그 다음 날에는 승률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속했던 두 팀의 교류는 오늘로써 끝나게 되었다.

그들과 헤어지기 전, 정명은 채팅방에서 윈터폭스의 선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형, 그 나이에 피지컬이 대단하시네요. 솔직히 저보다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래? 빈말로라도 고마워.”

“아뇨, 정말로. 이런 말하기 좀 그런데, 팀이 더 좋았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으실 것 같은데. 더 좋은 팀으로 이적하시는 게 어때요?”

“응? 그건 아니야. 난 지금 내 팀에 만족 해.”

“그런가요.”

그 말을 끝으로 대화가 끝났다.

굳이 말은 안 했지만, 정명은 그가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김성무가 팀원들에게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나 보군. 쯧쯧, 저래서야.’

곧이어 정명은 문제의 김성무와 직접 화상통화를 할 수 있었다.

김성무는 정명을 보자마자 칭찬을 늘어놓으며, 호감을 드러냈다.

“요즘 해외에서 잘 나가시는 분 답습니다. 게임에서 정말 날아다니시던데요?”

그의 첫 인상은 예상 외로 제법 괜찮았다. 과연 이 사람이 신문기사에 나왔던 그 사람과 동일인인지 잠시 헷갈렸을 정도였다.

‘언론에서 조금 과장했던 건가?’

정명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부 들은 내용이었으므로, 차이가 좀 있을 지도 몰랐다.

첫인상은 꽤 괜찮았기에 정명은 대화를 조금 길게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캐리하는 것에, 일종의 강박관념을 갖고 있군. 그리고 어째서인지 나한테 살갑게 구는군.’

“저도 요즘 원 패턴의 전략에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어떡합니까, 저라도 커서 캐리 해야지. 다른 사람들은 못 미덥고.”

“그런가요.”

“아무튼 서로 허접한 팀원들 데리고 팀 캐리하느라 고생이 많네요. 앞으로도 열심히 해요, 우리.”

김성무는 친하게 지내자는 듯, 화상 카메라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똑같이 혼자 팀을 캐리하는 포지션에 있는 정명에게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인사를 마친 정명이 노트북을 닫는 순간, 어떤 퀘스트가 정명에게 나타났다.

[나는 관대하다]

김성무가 당신에게 호감을 표시합니다.

그는 상당한 실력과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게이머입니다.

만약 당신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와 깊은 친분을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목표 : 그와 친해지십시오.

*힌트 : 당신이 그의 ‘자그마한 일’을 도와준다면, 조금 더 빨리 친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상 : 15000 포인트, 김성무와의 친분

“뭐야 이건.”

나타난 것은 특정 선수와 친하게 지내라는 퀘스트였다.

처음 보는 종류의 퀘스트에 잠시 당황했지만, 별로 구미가 당기는 퀘스트는 아니었다. 그가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녀석을 끌어안으려면, 사고 치지 않게 아주 새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쉽겠냐는 거지.’

지난번에는 사고 친 뒤, 중국으로 도피했던 김성무가 이번에는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정명의 생각은 NO였다.

‘모든 건 정해져 있다. 때문에 만약 다른 사람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것은 정명이 다시 돌아온 후 확립한 몇 가지 가정 중 하나였다. 사람의 일은 소소하게는 바뀌지만, 큰 틀에서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

정명이 끼어들었다고 해서, 천재 프로게이머가 이번에는 갑자기 귀농을 한다거나 성격이 바뀐다거나 하는 일 따위는 전혀 없는 것이다.

쿠론만 하더라도, 원래는 금방 프로게이머를 때려치울 사람이었다.

실력은 좋지만 팀에 잘 녹아들 성격이 아니고, 힘겨운 연습을 장기간 버텨낼 인내심도 없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보면, 나름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인생을 크게 바꿔놨다고 할 수 있겠지. 이 녀석을 포함해서, 나랑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대부분.’

만약 정명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김성무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어떤 사람을 갱생시켜, 밝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명은 망설이지 않고 퀘스트 메시지를 꺼버렸다.

‘내가 왜? 지금 나 살기도 바쁜데. 거기다 자그마한 일이라니, 저건 100% 뒤가 구린 일이야.’

무엇보다 그의 죄질이 너무 나빴다.

그가 한국 리그에서 쫓겨난 이유는 승부조작으로 걸렸기 때문이었으니까.

.....

바톤 터치라도 하듯, 이 팀을 소개해줬던 이동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간의 연습게임이 어땠냐는 이동호의 물음에, 정명은 필터링 없이 정말로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글쎄요. 김성무가 잘하기는 하는데 팀워크를 좀 깨는 것 같은데요? 저 같으면 진작 쳐 냈어요. 불평만 많아서는.”

-네? 하지만 김성무는 팀의 에이스인데요? 쉽게 내보낼 수 있을 리가....

“에이스는 무슨, 그런 전략을 쓰니까 원딜러가 돋보이는 거지 실은 별 것 없더만요. 에이스라고 말 하고 싶으면 AAIG의 김준상급으로 플레이를 하던가, 그건 아니잖아요?”

악의적이라고도 할 수도 있는 평가에 이동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자기네 팀원도 아니면서 왜 저런대?’

하지만 정명은 화상통화를 종료한 뒤, 갑자기 나오는 메시지를 보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익명의 투고]

*이동호의 옆에는 사실 감독이 있었습니다.

감독은 당신이 대충 던진 말에 완벽하게 설득 당해버렸고, 이제 감독은 김성무를 팀에서 제외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고용 안정]

*윈터폭스 선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성무의 출전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들은 죽을 각오로 경기에 덤벼들 것입니다.

-김성무의 방출이 결정되는 순간, 팀 윈터폭스 선수의 모든 능력치가 일주일간 20% 상승합니다.

[한 놈 처리]

*유망한 경쟁자를 손도 쓰지 않고 보내버렸습니다. 이것이 만약 의도했던 일이라면, 당신은 무척 냉혹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6000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허, 뭐야? 나같이 선량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김성무는...그래, 일부러 조금 심하게 말하긴 했지만 감독이 옆에 있는 줄 몰랐다니까?’

메시지가 길게 뜨긴 했지만, 정명은 포인트가 들어왔다는 것 이외에는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윈터폭스 사람들의 능력치가 오른다는 것 또한 리그가 다른 정명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기에, 정명은 하루 만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

윈터폭스 덕분에 리그 준비를 착실하게 해 나갈 수 있었다.

지난번에는 김준상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정명은 이제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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