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08화 (108/226)

< 39. 이번에는 어떤가? (1) >

경기에서 지고 난 후,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고, 코치와 정명은 다음 상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다음 상대는 AAIG네요. 중국 3위 팀. 매니저 말로는 여기 원래 하위권 팀이었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하더라. 근데 정명, 거기에도 한국사람 있지 않아? 이름이 뭐더라. 김...김...”

“있죠. 김준상이라고.”

“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네. 혹시 알아?”

정명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들은 한국이 무슨 소규모 부족사회인 줄 아는 것 같다니까.’

그런 오해로 인하여 정명은 ‘내가 한국사람 한 명 아는데, 김용팔이라고. 혹시 알아?’ 식의 질문을 정명은 100번쯤 들었었다. 물론 내색하지는 않지만.

“친하진 않지만, 몇 번 봤어요. 마지막으로 본 건 1년 전이네요. 지난 월드챔피언십에서 였나.”

“잘 해?”

“잘 하는지는 붙어봐야 알겠지만, 원딜러 키우기를 주로 쓰는 팀이에요. 한국인 용병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죠.”

AAIG는 정명이 지난 월드챔피언십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팀이었다.

정명은 그 때 AAIG 선수들의 능력치 따위를 살펴본 기억이 남아있었고, 다른 선수들과 김준상과의 능력치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능력치를 보면 왜 AAIG가 한 전략을 고수하는지 딱 나오지.’

AAIG가 즐겨 쓰는, 혹은 하나만 고집하는 전략은 원딜러 키우기라는 전략이었다. 아니면 여왕벌 키우기나 강아지 키우기 따위의 이름으로 불리고는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똑같은 것을 지칭했다.

그리고 그 때, 둘의 이야기에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던 쿠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원딜러 키우기? GLG같은 팀 말하는 거야?”

“정확해.”

“요즘도 원딜러 키우기 전략을 쓰는 사람이 있나? 유행 다 지났는데.”

그 전략은 장점도 있고 약점도 있지만, 쿠론의 말 대로 지금 유행하는 전략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전략을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 다른 선수들은 그다지 능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왜 그런 전략을 아직도 쓰냐? 묻는다면 GLG랑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지 뭐. AAIG에 스타플레이어가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에 의존하거든. GLG의 싱글리프트처럼.”

“그래? 별 것 아니네. 그 놈만 잡으면 되겠어.”

“그게 말처럼 쉽다면 걔네들이 중국 3위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그 원딜러 본인이 한국에서도 유명한 원딜러였기도 하고. 한국 리그에서 준우승 한 팀에 있었거든.”

그리고 그 말에는 코치가 대답했다.

“그래? 별 거네. 그럼 그 놈 빼고 잡으면 되겠어.”

......

그 다음 날.

정명은 연습실 한 가운데에 걸려있는 순위표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3위 : AAIG 4승 2패 (+10)

4위 : CoFe 3승 2패 (+7)

4위 : XTC 3승 2패 (+7)

6위 : galaxy 3승 2패 (+4)

....

12위 : ipoone 0승 6패 (-13)

‘5위까지 올리고 싶은데, 조금 아슬아슬 하네.’

하지만 아직 초반이므로 변동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는 순위표였다.

잠시 순위표를 바라보던 정명은 곧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는 아직 사람이 많이 없었다.

심심했던 정명은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는 티웨인에게 다가갔다.

“뭐 봐? 재밌어 보이네.”

“그 녀석들 플레이 영상이요. 어떻게 되먹은 팀인지는 한 번 보고 들어가야죠.”

화면에서는 문제의 김준상이 칼 같은 피지컬로 상대 탱커를 녹이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탱커의 역할을 맡게 될 티웨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뒤로 빼면서 때리는 기술이 아주...좋네요. 저래서야 한 대라도 때릴 수 있을지...”

“하하, 안 때려도 돼. 탱커야 어차피 고기방패인걸? 시간이나 잘 벌어 봐.”

“어휴, 3위가 저런데 1, 2위는 어떨까요.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지는데요.”

“흠. 중국 1, 2위는 모르지만 예전 한국 2위는 알아. 내가 걔네들이랑 한 리플레이 파일이 있는데, 볼래?”

정명이 티웨인에게 보여준 것은 예전에 했던, OMA와 팀 아서스의 경기였다.

물론 꼴사납게 졌던 경기였기에 개인적으로는 무척 보기 싫지만, 그런 경기일수록 배울 수 있는 건 더 많으니까.

그리고 하나 둘 연습실로 내려온 팀원들이 정명의 모니터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건 뭐야?”

“김준상의 예전 영상이래. 한국에서 잘 나가던 팀에 있었다고 하던데.”

“아, 나 알아. 한국에서 2위까지 했던 팀 아닌가?”

정명 또한, 오랜만에 그 경기를 다시 감상했고, 예전과 또 다른 시각으로 리플레이를 분석할 수 있었다.

먼저, 그들은 원딜러 키우기 전략 따위는 전혀 쓰지 않았다.

원딜러 뿐만 아니라 그 외의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이 전부 비슷한 실력으로써 서로를 보완해주는, 아주 밸런스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나도 나름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역시 이 녀석들은 지금 붙어도 힘들겠군. 나랑 같은 실력의 팀원이 다섯 명 쯤 있다면, 다섯 판에 한 판 정도는 이길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감탄이 나오는 팀 아서스의 경기력이었지만, 김준상의 실력은 오히려 조금 떨어진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정명은 김준상이 게을러졌다기보다는 환경의 차이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OMA를 보며, 쿠론이 큭큭 웃었다.

“야, 열심히 좀 하지 그랬어. 진짜 개발렸네.”

“그 개발린 팀, OMA거든? 저기 네 엄마도 있는데.”

“아, 진짜? 미안.”

그 말에 쿠론이 고개를 휙 돌리며 에리를 돌아봤으나, 에리는 웃으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저 경기를 한 것은 에리가 팀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였던 것이다.

속은 것을 깨달은 쿠론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정명을 쳐다봤지만, 정명은 어깨를 으쓱이며 무시했다.

“우리가 못 하는 게 아니라 쟤네들이 잘 하는 거야. 원래 실력 차이가 크면, 지는 쪽이 엄청 못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래. 아무튼, 저 팀, 요즘도 잘 해?”

“요즘? 쟤네 진작 망했어. 망했으니까 저 팀의 원딜러가 중국에 있지. 월급도 제때 안 들어오고, 여러모로 불만이었다나.”

“뭐? 저런 실력의 팀의 대우가 그따위였다고?”

팀 아서스는 형편없는 대우 등을 이유로 드래곤볼, 혹은 사혼의 구슬조각마냥 팀원이 전 세계로 흩어졌고, 김준상은 중국으로 떠났다.

‘뭐, 어쩔 수 없지. 구단의 마인드가 너무 구식이었어. 아직도 열정이다 뭐다 하며 희생을 강요해 봤자, 요즘 사람들은 비웃을 뿐이니까. 뭐, 저 팀이 망한 이후로 한국 팀의 대우가 많이 좋아졌으니...’

리플레이가 끝나자, 정명은 가볍게 박수를 치며 주의를 끌었다.

“내가 박살나는 모습 잘 구경 했어? 그럼 우리도 연습 하자. 다음에는 박살내고 싶으니까.”

그 후, XTC는 오늘의 연습 게임을 시작했다.

오전에 연습할 팀은 4위 팀 CoFe. 연습실에 가끔 놀러오는 와플이 있는 팀이었다.

.......

“죽여요! 저놈 죽여!”

게임 시작 40분 째. 슬슬 게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망치는 와플을 마무리 하기위해 추격하는 정명의 뒤에서, 매니저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보통 연습하면 조용히 있는 사람인데, 오늘따라 시끄럽네. 와플이 자기 꺼보다 좋은 장난감 들고 와서 자랑하던 게 마음에 안 들었나?’

시끄럽건 말건 이미 경기는 다 끝났기에 상관없었다.

CoFe는 정명이 와플을 잡는 것을 끝으로 항복을 눌렀다.

[연습 경기 승리! 4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이렇게 연습경기로 버는 것도 제법 쏠쏠한데...조금만 더 모으고 피지컬을 올려볼까.’

40분의 경기라 조금 힘들었지만, 이제 고작 한 경기가 끝났을 뿐이다.

5분의 휴식 후.

다음 경기를 시작하자, 정명이 바텀 라인에 핑을 찍었다.

“바텀 쪽으로 간다. 호응 좀 해줘.”

각이 보였다고 생각한 정명이 숨어있던 여왕거미 캐릭터를 인간 형태로 바꿨다.

그리고 동시에 점멸과 고치 날리기.

하지만 상대방의 투우소가 여왕거미를 쿵, 밀어냈고, 정명은 다시 정글 쪽으로 터덜터덜 돌아가야만 했다.

“아, 이거 아깝네.”

“그래도 점멸을 두 사람 다 뺐으니까요. 이득이에요.”

잠시 뒤, 정글을 돌던 정명이 또다시 바텀라인에 핑을 찍었고, 1킬을 냈다.

그리고 또다시 바텀라인에 핑을 찍었다.

“또요? 조금 바텀 쪽으로 많이 오시는 것 같은데.”

“우리 다음 상대가 원딜 위주의 팀이잖아. 그러니까 원딜만 공략해 보는 식으로 해볼까 했지.”

그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와플은 차마 짜증은 내지 못하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왜 저한테만 그러십니까. ㅠㅠ

“우리 상대가 AAIG잖아. 그러니까 원딜러를 집중 공략해 보려고. 너무 1차원적인 생각인가?”

-아하하, 차라리 약한 부분을 두드려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건 연습 하면서 생각해 봐야지. 뭐가 더 나은지.”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연습경기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연습경기를 하기 전, 포인트가 적당히 쌓였다고 생각한 정명은 시스템창을 불러왔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81/100)

정신력 (75/100)

오더 (80/100)

판단력 (80/100)

[잔여 포인트 : 24010]

‘음, 일단은 피지컬...정신력은 좀 미루자.’

원래는 정신력을 80까지 먼저 찍을 생각이었으나, 계획이 바뀌었다.

괴물 같은 피지컬을 갖고 있는 중국 선수들에게서 버티려면, 일단 피지컬이 급했던 것이다.

정명은 그동안 번 포인트를 사용하여 곧바로 피지컬을 올렸다.

[소모 포인트 11000. 피지컬을 올리시겠습니까?]

[피지컬이 82로 상승했습니다.]

역시나 만만치 않은 소모량. 하지만 아직 한 번을 더 올릴 수 있었다.

[소모 포인트 12000. 피지컬을 올리시겠습니까?]

[피지컬이 82로 상승했습니다.]

[잔여 포인트 : 1010]

‘어후, 현기증...소모 포인트는 갑자기 왜 또 오르는거야.’

그러나 불평할 겨를도 없이, 정명은 다시 의자에 앉아야만 했다.

잠시 후 시작된 마지막 연습경기에서 정명은 피지컬 2포인트를 올린 것의 효과를 조금, 체험할 수 있었다.

.........

“오, 이 정도면 훌륭해. 분명 AAIG전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코치가 상당한 연습경기 승률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정명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마지막 연습경기 또한 XTC의 승리였기에, 다른 팀원들의 표정도 무척이나 좋았다.

하지만 정명은 살짝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너무 쉽게 잡혀요.”

“응? 뭐가.”

“와플이요. 저거 완전 업혀가는 놈이었네. 열심히 좀 하지.”

“쉽게 잡히면 좋은 것 아닌가?”

“원딜러 키우기라는 구식 전략을 쓰면서도 3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팀이잖아요. 본 게임에선 이렇게 쉽게 잡힐 리가 없죠.”

정명의 의도를 파악한 코치는 고민된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흠 그래? GLG가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팀이 딱이잖아.”

“아, 맞아. 해외 팀을 알아볼까요?”

당연히 북미 팀은 아니었다.

아직 기술력이 부족하여, 원활한 진행이 안 될 테니까.

정명이 찾은 것은 한국 팀의 연락처였다.

정명은 바쁘게 연락처를 뒤적거렸으나, 곧바로 자신은 한국 리그를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원딜 잘 쓰는 팀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무에게나 연락할 바에는 중국 팀이랑 연습하는 게 낫고.’

잠시 고민하던 정명은 한국의 해설자, 이동호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행스럽게도 낮 시간이라 그런지 이동호는 정명의 전화를 곧바로 받았다.

-원딜러를 잘 쓰는 팀이라......걔네는 아니고, 얘네도 아니고..아, 이 팀은 어때요? 작년,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동호는 그렇게 말하며 말을 늘어트렸고, 동시에 정명의 심장박동수가 빨라졌다.

‘어, 설마?’

그리고 잠시 후, 이동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승한 팀의 형제 팀 이예요.

“아예...좋죠.”

‘일부러 말을 늘어트렸구나.’

정명은 이동호의 장난에 피식 웃어버렸다.

마찬가지로 하하 웃은 이동호였지만, 그들의 실력은 농담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꽤 잘한다니까요? 지금 빛은 못 보고 있지만, 실력은 좋은 팀이에요. 제가 한 번 말해 볼게요.”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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