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06화 (106/226)

< 37. 제법 괜찮은 정글러 >

며칠 뒤, 정명의 첫 경기 날이 밝았다.

그동안 정명을 포함한 팀원들은 개인방송에 대한 것은 잊어버리고 팀 연습에만 매달리고 있었고, 덕분에 팀 전체의 실력이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진 상태였다.

금요일 첫 번째 경기.

그것은 정명에게는 첫 경기이지만, 개막전은 아니었다. 이미 다른 팀의 여러 경기가 치러진 뒤였다.

그리고 그 경기들은 시즌 초반 경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치열했고, 모두가 필사적이었다.

모두가 월드 챔피언십 티켓을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 월드챔피언십이 XTC에게는 조금 거리가 먼 일이기는 했다.

XTC는 섬머시즌이라는 애매한 시점에 1부 리그에 편입하게 되었고, 그런 XTC가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 하려면 리그에서 2위 이상의 성적을 올리거나 리그 순위 3위까지의 팀들을 연속으로 전부 꺾는다는 혈전을 이겨내야 할 테니까.

그리고 그런 일은 지금껏 단 한 팀도 이뤄내지 못 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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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의 첫 경기 상대, 팀 퍼펫은 경기 시작까지 시간이 꽤 남아 있음에도, 일찍부터 경기장에 도착했다.

조금이라도 현장 분위기에 익숙해져서 긴장을 최소화 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팀 퍼펫의 리더 바젤은 팀원들의 상태를 바라보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군. 컨디션, 전략, 상대. 이것들을 고려해봤을 때, 우리가 질 확률은 10% 이하다. 만약 그들이 리빌딩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확률이 30%까지 올라갔겠지만. 하, 바보 같긴. 왜 이런 시점에 팀을 새로 짜서는.’

바젤은 그렇게 속으로 비웃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팀 퍼펫의 선수들은 중국의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뽑힌 사람들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지원자들 때문에 평범한 재능 따위로는 10배수에서 걸러지기 일쑤였고, 또 그 중에서 노력하는 재능이 없는 선수들이 또다시 걸러졌다.

퍼펫은 그렇게 거르고 걸러진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남은 팀이었다.

그런 선수들이 하루에 10시간 이상 연습실에서 훈련했다.

때문에 그들이 자신의 팀에 대해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팀 퍼펫 선수들 도착했습니다!”

“네, 그럼 인터뷰 먼저 딸게요.”

스태프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스태프가 선수들을 조용한 방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대표로써, 바젤은 리포터와 간단한 인터뷰를 시작했다.

“시간 없으신 것 같으니, 짧게 물어볼게요. 이번 경기에서 이길 자신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상위권으로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새로 바뀐 XTC의 정글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제가 정글이라서 하는 말인데, 정글이 그렇게 쉬운 포지션이 아닙니다. 라인에서 라인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정글로 포지션 변경이라니.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은 너무 빠듯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군요.”

그 말을 끝으로, 리포터는 웃으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

그 시각, XTC 팀원들은 경기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오늘 경기의 전략에 대해 계속해서 토의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전략이 안 나와서같은 이유는 아니었고, 그렇게 얘기하다 보면 불안감이 조금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상대방 탑 라이너가 잘 한다 하더라고. 그런데 다룰 수 있는 챔피언의 폭이 좁대.”

“그래서, 탑 위주로 공략 할 거야?”

“아니. 탑은 티웨이가 닌자의사로 버티고만 있게 할 거고, 정명은 미드를 노리던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물론 밴을 하긴 해야겠지. 흡혈백작 같은 건.”

에리는 그렇게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명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정명. 컨디션은 어때? 자신 있어?”

“물론 자신 있죠. 난 지금 정글 그 자체입니다.”

“무슨 소리야 대체...아니, 자신감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좋아. 힘 내.”

사실, 말 하진 않았지만 원래 조금 불안한 마음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새로운 스킬을 얻음으로써 그러한 불안을 떨쳐버렸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원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잠시 후, 경기장에 도착한 정명은 건물에 들어오자마자 짧은 인터뷰를 해야 했다.

정명에게 다가온 사람은 30분 전, 바젤과 인터뷰를 했던 바로 그 리포터였다.

리포터는 정명에게도 바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고, 정명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길 자신이요? 당연히 있죠. 우리는 언제나 자신 있습니다.”

“그런가요? 갑자기 당신이 포지션을 바꿔서 우려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포지션 적응, 완벽하게 완료했습니다. 불안요소는 없어요.”

정명의 말은 리포터는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 킥킥 웃었다.

“이거 이상하네요. 서로 이길 자신이 있다고 확신하며 대답하니. 하지만 아시죠? 한 팀은 지는 거. 여기서 무승부 같은 건 없어요.”

“그런가요? 그 쪽도 연습을 열심히 했나 보네요. 뭐, 어느 쪽이 허세였는지는 금방 밝혀지게 되겠죠. 우리 팀은 아니겠지만.”

.....

인터뷰가 끝나자, 선수들은 바쁘게 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밴픽이 시작되었다.

각 코치와 선수는 바쁘게 의견을 나누며, 상대방의 캐릭터에 대응했다.

“상대방에 확정 CC가 없네요. 저 그거 합니다?”

“좋아. 가자!”

상대가 고르는 캐릭터들을 유심히 보던 정명이 고른 캐릭터는 ‘태고의 주술사.’ 중국 리그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무척이나 인기 없는 캐릭터였다.

대시기가 없는 뚜벅이 캐릭터 특성상 근접 공격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캐릭터에게 붙는 방법이 뛰어가는 것 외에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태세변환이 특기인 캐릭터이죠. 그런데 조금 의외인데요? 이미 관에 못 박혀 지하 100층에서 쉬고 있는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요.

-그렇죠? 하지만 이유 없이 꺼냈을 리는 없으니, 뭔가를 준비해왔다는 걸까요? 하여간 무척 색다릅니다. 방심하면 절대로 안 되겠어요. 방심 할 수밖에 없겠지만, 방심하면 안 됩니다!

준비 기간이 그렇게 길었는데, 준비를 안 해 왔을 리가 없다.

XTC는 유럽, 그리고 대만의 리그까지 참조하며 깜짝 전략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유럽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전략이었다.

하지만 해설의 말대로 뚜벅이 캐릭터는 플레이어가 농락당하다가 속 터지기 딱 좋은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조합을 잘 타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강력한 상태이상 스킬이 없거나, 아군에 선 진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거나.

계획대로 원하는 픽을 가져간 XTC 부스의 분위기가 좋아졌다.

정명은 게임이 시작되기 전, 최근 얻었던 스킬을 확인했다.

[정글의 가호 Lv 1]

*만약 정글의 끝을 본다면, 너 또한 흑염룡을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은퇴한 천재 프로게이머, 더 정글의 어록 중에서 정글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이전보다 정글링 루트를 최적화시켰습니다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정진하십시오.

*패시브 스킬입니다.

*판단력이 높을수록, 스킬의 효율이 높아집니다.

*Lv 2로 가는 조건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

게임 시작 8분 째.

정명은 아이템이 어느 정도 나오자마자 상대방 정글을 향해 달렸다. 작전대로였다.

그리고 미드에 있던 쿠론은 그런 정명에게 살짝 주의를 줬다.

“정명. 상대방의 백업이 내 백업보다 빠르다. 알지?”

“어. 그래도 만약 싸움 나면, 바로 뛰어와줘..”

정명이 하려는 것은 일명 카정. 상대방 정글에 가서 정글 오브젝트를 빼내어 먹거나, 상대방 정글러의 뒤통수를 치는 플레이를 노리는 수법이었다.

-카정인가요? 보통은 잘 안 씁니다만, 이거 통할 확률이 무척 높아 보이는데요? 마침 시야 와드가 시간이 다 되었을 때거든요.

-어라. 이거 정말 되겠는데요? 바젤 선수가 지금 늑대를 잡고 있어요. 너무나 좋은 기회입니다. 이거 뒤통수를 제대로 칠 수 있겠어요!

상대방의 캐릭터는 무에타이 수도승.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정글러였고, 초반 싸움에 강한 육식형 정글러로 평가되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선제공격, 일명 선빵의 힘은 강했다.

정명은 몬스터를 열심히 괴롭히고 있는 바젤에게 스턴을 우겨넣었다.

-순식간에 피가 닳아 없어지네요. 이거 잡히겠습니다!

-태고의 주술사 캐릭터가 뚜벅이 캐릭터니까요. 접근하기는 힘들지만, 접근한 뒤 육탄전에서는 강하죠. 솔직히 육탄전에서도 약하면, 그냥 캐릭터 삭제해야 되는 것 아닐까요?

[적을 처치했습니다.]

해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킬 메시지가 떴다. 바젤이 도망가자, 정명이 똑같이 점멸로 따라가서 마무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정글러가 죽자 백업을 오던 미드라이너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정명은 상대방의 버프 몬스터를 유유히 가로채며, 격차를 벌렸다.

“좋아. 이제부터 상대방 정글도 내 꺼다. 당연히 내 정글도 내꺼고.”

“오, 너무 방심했네요. 저 녀석. 뒤통수를 쉽게 내 주다니.”

“방심했다고 하기 보다는, 내가 타이밍을 잘 읽은 거지. 상대방의 정글링 루트가 딱 보였다니까? 아무튼 난 갱킹보다는 카운터 정글로 무게를 둘게. 솔직히 이거 갱킹 쓰레기야.”

######

그 시각, 바젤은 자꾸만 침입해 오는 정명의 캐릭터를 피하며, 온갖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 씨! 그만 좀 오지, 진짜 열 받는 놈이네. 대체 몇 번 째야!”

“바젤, 어디 와드 박혀있는 것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네 위치를 너무 쉽게 읽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는 점점 벌어져만 갔다.

어떻게 알았는지 정명은 바젤이 정글 몬스터를 잡고 있을 때마다 그의 뒤통수를 쳐왔고, 그럴 때마다 바젤은 도망가기 바빴으니까.

정글러의 부재는 한 라인이 망한 것보다 훨씬 큰 피해를 줬다.

한 쪽은 정글러의 케어를 받는데 다른 한 쪽은 정글러를 지키기 바빴으며, 버프 몬스터를 뺐기는 것은 물론이고 그 버프가 상대 라이너에게 가 있는 일이 허다했다.

물론, 갱킹을 하는 것 따위는 바랄수도 없었고.

결국 퍼펫은 그렇게 질질 끌려 다니다가 첫 경기를 XTC에게 내 줄 수밖에 없었다.

멋진 한타를 해서 패했다기보다는, 계속해서 잘리는 모습만 보여줬던 경기였기에 퍼펫의 속이 무척이나 쓰렸다.

-GG! 첫 경기는 XTC의 승리입니다!

-오늘 솔로랭크에 왠지 태고의 주술사 캐릭터가 많이 나올 것 같군요. 시청자분들, 오늘 랭크게임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건 연습을 많이 한 프로선수가 다뤘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괜히 태고의 주술사가 픽률이 3%대인게 아니에요!

1경기에서 패하자, 퍼펫 선수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멘탈을 수습했다.

“나 참. 무슨 저런 관짝에 박힌 캐릭터한테 한 방 먹게 되네. 후...”

“첫 경기는 기습당했다고 생각 하자고. 다음 경기에서 잘 하면 돼.”

하지만 바젤은 1경기에서의 패배를 극복하지 못했다.

덕분에 정명은 그런 바젤의 움직임을 더욱 쉽게 읽었고, 2경기 또한 XTC의 승리로 끝났다.

시간은 40분이 걸렸지만, 경기 내내 XTC의 우세로 흘러간 경기였다.

......

[리그에서 2:0으로 승리했습니다! 7000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어라? 왜 이렇게 많이 주지? 아니, 이 생각은 조금 있다가...’

정명은 메시지창을 잠시 내려놓은 뒤, 자신에게 다가온 리포터에게 시선을 맞췄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꽤 쉽게 이기신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많이 여유로우신 것 같던데.”

“여유롭긴요. 꽤 힘든 상대였어요. 다음에 만나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호호, 겸손도 참. 아, 오늘은 인터뷰 할 선수가 한분 더 있는데요!”

원래 승자 인터뷰는 한 명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한 명이 더 있었다.

관객들이 신기하게 보고 있는 선수, 쿠론이었다.

조시가 처음 왔을 때 인사를 했던 것처럼, 쿠론도 관객들의 신기해하는 눈빛을 받으며 리포터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떻게 해서 중국까지 오시게 되었나요?”

“여러모로 조건을 따져 본 결과, 괜찮은 조건이라 생각되어서요.”

“할 줄 아는 중국어 있으세요?”

[나아...는 쿠론이라, 고...합니당]

‘뭐야, 제대로 하고 있네.’

말도 제대로 하고 무척이나 얌전한, 의외로 정상적인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평소의 싸가지를 생각하면,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싸가지는 그다지 없어도, 악인이라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실력이야 어떻든 간에 정명이 받지도 않았을 테니까.

.......

인터뷰가 끝나고, 오늘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연습실로 가는 차에 타서야 정명은 한가롭게 메시지 로그를 확인할 수 있었다.

‘7000점이라. 북미에서는 고작 2000점 정도나 줬는데, 배로 올랐잖아! 오길 잘 했어...라고 마냥 기뻐하기에는 좀 그렇군. 그 만큼 이 녀석들도 잘 하는 녀석들이라는 뜻이니까.’

정명이 추측하기에, 이 점수는 평균 실력을 뜻했다.

똑같은 리그라 할지라도 평균 실력이 늘어났다면 스프링 리그와 섬머 리그에서 주는 포인트가 각각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정명은 다음 상대를 떠올렸다.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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