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전문 영업 방해꾼 (3) >
정명이 솔로랭크에서 한바탕 난리를 친 후, 2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섬머리그는 이미 시작되었다.
전 시즌 1위 팀과 2위 팀, 가장 인기 있는 팀이 개막전을 열었고, 이제는 XTC의 차례도 코앞까지 다가왔다.
정명은 오늘의 스케쥴 표를 보며,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오늘은 솔로 랭크를 돌릴 시간이 될 것 같은데.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 퀘스트는 빨리 처리해야겠어.’
2주 동안 정명의 솔로랭크 기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리 랭크 잡기. 그 귀찮은 작업을 아직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리기사는 중국에 널리고 널렸지만, 잔챙이들은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정명이 저격하거나 노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대리기사들.
그들과 게임을 하여 대리기사 쪽의 팀이 패하면, 어떤 수를 쓰던 간에, 계정을 밴 시켜 버린다. 의뢰받은 아이디, 대리기사의 본 계정 아이디 모두.
‘아직 한 판도 안 져서 다행이야. 내가 지면, 당연히 아무 것도 안 할 생각이었거든.’
정명의 그런 기행이 관심을 끌었는지, 한 신문사에서 XTC 연습실을 찾아오겠다 통보했다.
정명은 이렇게 바쁜 시점에서 무슨 인터뷰냐 항의했지만, 돌아온 매니저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정명, 그건 아는데 상대가 AATV잖아요. AATV! 상대가 대형 언론사인데, 어떻게 거절을 해요. 보복당하면 어쩌려고!”
“보복? 에휴. 이미 수락했다니까 어쩔 수 없이 하긴 하는데, 다음부터는 저한테 얘기하라고 하십쇼. 인터뷰 하는 건 저잖습니까.”
.......
그 다음 날.
세 명의 기자와 정명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는 짧게 부탁한다는 정명의 말을 의식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정명의 행위에 대해 물었고, 정명은 준비했던 대답을 꺼내놓았다.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대리랭크라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무슨 뜻이신가요?”
“중국 유저들은 대리랭크가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더군요. 자기 돈 내고 하는데, 무슨 문제냐고. 인민들이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아 너무 슬펐습니다.”
정명은 이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으니, 꽤 유명한 대리기사들을 본보기로 잡아 사람들을 계몽시켜주려 했다고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 텐데요. 지금도 대리랭크를 돌리고 있는 사람들은 넘쳐납니다. 변한 건 없어요.”
“아뇨. 그것을 지켜보던 게이머들은 제가 왜 대리랭크에 분노했고, 그들을 응징하고 싶어하는 지 다 알게 되었겠죠.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저는 분명 이게 대리랭크 근절의 씨앗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허, 그런 깊은 뜻이!”
정명을 인터뷰하던 중년의 기자는 무척이나 인상 깊은 말이었다며, 연신 정명을 칭찬했다.
“정말 보기 드물게 바른 사상을 갖고 계십니다! 이 황반통, 감격했습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부끄럽습니다.”
인터뷰는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며 마무리되었고, 이 인터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좋은 분위기로 인터뷰가 끝나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잠시 연습실이 소란스러워진 사이, 기자는 정명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걱정 마세요. 이번 기사는 무척 좋게 나갈 겁니다. 미스터 한에게 잘 좀 전해 주십시오.’
정명은 한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잘 몰랐지만, 분위기상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자는 박장대소하며 크하하 웃었다
“좋아요, 좋습니다! 이런 기쁜 날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요. 야, 뚜이! 샤넬에 연락 해! 가서 가슴 큰 애들 위주로 부르라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기자의 생각과는 달리, 정명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점잖게 기자를 제지했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지금 연습 때문에 바빠서. 곧 시합이거든요.”
“아차, 제가 너무 앞서나갔네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기자가 나가자마자, 정명이 매니저를 돌아봤다.
“아씨, 피곤해. 매니저님. 앞으로 기자가 인터뷰 하자고 하면, 제 허락 무조건 받아요. AATV던, CCTV던 상관없이 무조건, 다.”
“예...”
그 말을 끝으로 연습실에서 나온 정명은 냉장고에 가서 물을 꺼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자신을 졸졸졸 따라온 쿠론에게 시선을 맞췄다.
“왜?”
“너, 나한테는 그거 관심 끌려고 그런다고 했잖아. 도오...장? 깨기인지 뭔지로 시청자 수 늘린다고. 그런데 그 오글거리는 말들은 대체 뭐야?”
정명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답했다.
“그건 비밀이니까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너도 개인방송 사람 엄청 늘어서 내 덕택에 돈 벌었잖아. 그리고 오글거리는 말? 뭐, 말하자면 립서비스지. 그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라 하니까.”
북미 쪽 사람들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여기에서는 적당한 허례허식. 그리고 겸손을 보여야 한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돈 생각해서 한 것이다.
“이해는 잘 안되지만, 결과가 좋은 것 같으니 다행이네. 그리고 한 가지 더. 갑자기 웬 돈 타령이야? 혹시 그거? 아 진짜. 방세는 돈 생기면 갚는다니까.”
“뭐야, 확인 안 했는데 아직도 안 갚았어? 후, 아무튼 돈이야 있는 게 좋지. 목돈을 모을 기회가 생겼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
정명은 원래 그다지 돈에 욕심이 없었다.
인생을 다시 살게 된 후, 돈이라는 게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에 대해 잘 알았으니까.
때문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병원비가 아슬아슬해서 한국으로 간 조시를 보고 깨달았다. 돈 없으면 서럽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이 개인방송은 시작일 뿐이었다.
“돈 얘기는 됐고, 다시 연습이나 하자. 경기가 코앞이니까, 다시 합을 맞춰봐야지.”
촬영 팀이 떠난 뒤, XTC는 다시 연습을 재개했다.
상대는 팀 퍼펫과 순위가 비슷한 팀인 KDM. 하지만 이번에는 긴장된 분위기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형, 지금 오면 무조건 킬이에요. 바로 오시면 될 것 같아요.”
“미드 한 번 찔러봐. 킬 먹여줄게.”
“바텀 라인 밀어놨어요. 다이브하면 킬 낼 수 있어요.”
“세 라인 모두 이겼다고? 이런 기쁜 일이...”
정글러로써는 가장 편한 상황이었다.
세라인 모두 라인전에서 이기고 있으므로, 얌전히 버스만 타면 되는 그런 상황.
이 상황에서는 라이너가 원하는 대로 갱킹을 가도 되고, 혼자 정글몹만 잡으면서 RPG만 하고 있어도 된다.
일명 숨만 쉬고 있으면 승리는 확정이었으므로, 정명은 부담 없이 움직이며 말했다.
“우리, 실력이 조금 괜찮아 진 것 같다. 처음에는 정말 못 써먹을 수준이었는데.”
애초에 포지션과 선수를 바꿨기 때문에 그런 사단이 났던 것이지, 계속 팀을 유지했으면 이 정도의 팀은 가볍게 잡았을 것이다.
물론, 거기까지가 한계인 팀이었으므로 선수들을 바꾼 것이지만.
객관적인 지표인 승률도 제법 올랐다.
처음에 30%대를 돌던 처참한 연습게임 승률도, 이제 45%대로 올라왔고, 팀원들은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
세라인 모두 이겼으므로 게임은 금방 끝났고, 정명은 상태창을 띄우며 연습게임으로 모은 포인트를 체크했다.
‘연습게임은 얼마 주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야금야금 제법 모았는데? 스텟을 올릴 정도는 되겠어.’
[현재 능력치]
피지컬 (81/100)
정신력 (72/100)
오더 (80/100)
판단력 (80/100)
[잔여 포인트 : 17050]
‘역시, 정신력이지? 불쌍하게 혼자 70대에서 놀고 있으니까.’
집중력과 관련된 스킬이라 우선순위는 높지 않았지만, 일단 모든 스탯을 80으로 만들고 싶다는 간단한 이유였다.
[사용 가능한 포인트 17050, 사용 포인트 5000]
[정신력 스탯을 올리시겠습니까?]
......
[정신력 스탯이 1 올랐습니다.]
[정신력 스탯이 75가 되었습니다.]
‘괜찮네. 그럼 이제 첫 경기를 치르기 전에, 퀘스트를 끝내러 가볼까.’
......
“이제 진짜 마지막이지? 저 사람이 하는 것 맞춰서 저격하는 거, 엄청 귀찮거든?”
“다행이네. 쿠론, 오늘 넌 빠져도 된다. 오늘은 티어가 높은 티웨인을 끼고 들어갈 거야.”
퀘스트는 이것으로 마지막이었다.
퀘스트 목표가 가리키고 있는 숫자는 [9/10]. 한 놈만 더 잡으면 퀘스트 완료였다.
그리고 정명이 정한 마지막 사냥감은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랜드 마스터까지 올리는 대리랭크라고? 참...돈이 아깝네. 자기 돈 자기가 쓴다는데 뭐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정명의 점수는 아직 마스터 리그였기에, 그를 저격하기 위해서는 점수가 상당히 높은 티웨인이 필요했다.
그리고 높은 랭크에서는 사람이 얼마 없다. 계산만 잘 하면 저격이 높은 확률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정명은 한 번에 목표물과 같은 게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명의 저격을 기다렸다는 듯, 정명과 같은 게임이라는 것이 확인되자마자 상대방의 개인방송이 툭, 꺼졌다.
“우리를 기다린 것 같네.”
“그러네. 저격당한 건 우리인 것 같은데요?”
티웨이는 좋은 자신감이라 칭찬하며 웃었다.
......
게임이 시작된 지 20분이 지났다.
어느새 둘의 뒤로 몰려든 XTC 사람들은 각자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야, 지금 미드로 가는 게 낫지 않냐?”
“내 생각에는 바텀라인에 역갱을 치면 좋을 것 같은데...”
물론,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았으므로 정명은 무시했지만.
“다른 라인은 필요 없어. 무조건 탑만 판다. 다른 사람들은 실력을 믿을 수가 없거든.”
......
대리기사가 경력이 나름대로 대단하다고는 해도, 밥 먹고 게임만 하는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티웨이와 정명은 한창 빡세게 연습하여 하여 감이 최고로 빠릿빠릿해진 상태였고, 주로 자신의 실력보다 낮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대리기사들은 진짜 실력자를 감당해 내지 못 했다.
그리고 정명의 마지막 퀘스트가 끝났다.
......
“GG요.”
“끝났네.”
경기가 끝나자,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해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정명이 노렸던 대리기사가 개인메시지로 말을 걸었다.
-이봐요, 왜 이러는 겁니까?
“뭐가요.”
-왜 이렇게 악의적으로 대리랭크 하는 사람들을 억압 하냐고요. 당신은 우리가 대리랭크 한다고 해서 피해 받는 것도 없잖아요.
“내 맘. ㅋ”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으므로 정명은 대충 대답했고, 대리기사는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사라졌다.
-이 아이디도 곧 정지되는 겁니까? 흥, 나는 아이디를 다시 파면 그만입니다. 나는 아직 유명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나를 이대로 끝장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정명은 그의 메시지를 닫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상관없어. 네가 대리랭크를 하던, 대리운전을 하던. 난 이제 얻을 건 다 얻었으니까.”
열 명의 최고 대리기사들을 잡고, 천년 동안 계정을 봉인시켰다.
혼자 만족스러워 하는 정명에게 티웨이가 물었다.
“이제 이건 그만 하시는 건가요?”
“어, 이제 평범하게 솔로랭크를 돌리던가 해야지. 아, 개인방송은 이제 열심히 켤 거고.”
이제는 정말 끝났다.
정명은 곧바로 퀘스트 완료창을 확인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대리게임의 황제 스킬을 얻었습니다.
*이 스킬은 당신이 대리게임을 통하여 이득을 취하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당신은 이 스킬을 통해 대리게임계의 No.1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당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명예가 전부 사라질 것입니다.
정명은 설명을 읽은 뒤, 어이없다는 듯 메시지창을 치웠다.
‘뭐야? 이 쓰레기 같은 스킬은. 필요 없어.’
다행스럽게도 귀찮다는 듯 화면을 넘기자, 제대로 된 보상이 나왔다.
[화면을 열어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1. [스킬 - 황홀한 강타]
?강타 싸움에서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2. [스킬 - 네비게이션]
?최적의 정글링 루트를 쉽게 찾아냅니다.
두 가지 중, 선택을 해야 하는 보상.
정명은 자신에게 좋은 스킬이 어떤 것인지, 맹렬하게 고민했다.
“흠, 선택 장애가 나와 버릴 것 같은 말이로군.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5분이 넘게 고민하던 정명은 [30초 이내 선택하지 않으면, 랜덤으로 선택됩니다.] 라는 통보를 받자마자, 허겁지겁 2번 스킬을 선택했다.
그리고 만족스럽다는 듯, 히죽 웃었다.
“퍼펫과의 경기는 왠지 느낌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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