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전문 영업 방해꾼 (2) >
정명은 퀘스트에 대한 것은 미뤄둔 채, 평소처럼 팀 연습에 임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리랭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섬머리그 첫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런 의욕과는 달리, 큰 변화를 자주 겪은 팀이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만족할만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2주. 넉넉한 시간은 아니야. 우리 팀에서 퍼펫 녀석들에게 지지 않고 맞대결 할 수 있을 정도의 선수는 나랑, 쿠론 정도. 최소한 우리 둘이라도 컨디션이 최상이어야 한다.’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쿠론을 슬쩍 쳐다봤고, 정명의 시선을 느꼈는지 쿠론 또한 정명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야, 너 나한테 왜 블루 안 줘?”
“아 그거? 미안, 뺏겼어. 가보니까 없더라.”
“이런 무능한! 우리가 만약 게임에서 지면 다 네 탓인 줄 알아!”
정명은 또다시 뺵뺵거리기 시작하는 쿠론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는,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이 녀석의 버릇을 고쳐줘야겠군. 에리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지금 XTC는 중하위권 팀, 파라노마와 연습경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연습경기를 하기 전, 정명의 팀원들은 ‘이 정도는 우리가 잡을 수 있지 않겠어?’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상대해보니 그 전력이 만만치가 않았다.
매니저는 뒤에서 코치와 함께 게임을 관전하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 정도의 팀은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요. 지난 시즌을 기준으로, 퍼펫은 얘네 보다 순위가 더 높았잖아요?”
“뭐, 팀을 정비한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막상 경기 날이 오면 잘 할 겁니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XTC는 이번 연습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됐다! 그래, 우리가 이 녀석들 정도야 잡을 수 있지!”
“걔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걸? 솔직히 위험했다.”
[연습게임에서 승리했습니다. 300포인트를 얻었습니다.]
[반복된 연습의 결과, 팀의 결속이 증가했습니다!]
[현재 결속 랭크 : C+]
게임에서 승리한 뒤, 정명은 팀원들의 상태창을 한 번씩 열어보며, 달라진 점이 없나 체크했다.
‘쿠론의 피지컬이 1 올랐군. 연습게임 30판 만에 하나 오른 건가? 흠.’
저녁 연습까지 끝나자, 모두 지친 표정으로 연습실을 나섰다.
모든 일정이 끝났으므로 선수들은 쉬거나 솔로랭크를 통한 개인연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쉬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지금 시점에서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위치까지 올라오지도 못 했을 것이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정명은 솔로랭크를 돌리기 위해 다시 연습실로 향했고, 연습실에 있는 매니저를 보자마자 곁으로 다가갔다.
“매니저님, 잠시만.”
“네.”
“중국의 대리랭크 있잖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하나요?”
대리랭크.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의 티어를 대신 올려주는 것을 뜻했다.
정명의 경험으로는, 한국의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이런 사람들을 정말 싫어했다.
게임을 하다가 상대편에 있는 대리기사 한 명 때문에 게임을 형편없이 지는 것은, 무척이나 불쾌한 경험이었으니까.
정명의 말에 매니저는 생각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끔뻑끔뻑 떴다.
“대리랭크요?”
“네. 어제 꽤 잘 하는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중국엔 돈 받고 랭크 올려주는 사람이 많나 봐요?”
“많죠. 랭크 게임에서 적어도 세 판에 한 번 만난다거나..., 실버에서 골드로 가는 점수대이면 1.5판에 한 번 만나는 것 같다는 얘기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왜요?”
매니저는 당연히 있는 것이고,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그 당당한 태도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정명이었다.
“왜냐니, 돈 주고 자신의 티어를 올리는 건 일단 금지잖습니까. 여러모로 민폐이기도 하고.”
“그래요? 뭐 어때요. 자기 돈 쓰고 한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북미랑 한국에서는 단속을 하고는 있는데, 중국은 안 하나보죠?”
“예. 그다지 문제 같지는 않은데...”
정명은 혹시나 해서 다른 중국인 팀원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매니저와 마찬가지의 대답을 들을 뿐이었다.
정명은 그제야 자신과 중국 사람의 생각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여간, 여기 사람들은 돈이면 뭐든 다 한다고 생각하고는 하니까. 그것도 꽤나 중증으로.’
그 후로 매니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몇 개 꺼내놓았다.
그리고 정명은 매니저가 가르쳐 준대로 한 대리랭크 홈페이지에 들어갔고, 홈페이지 배너에 걸린 스트리밍 화면을 눌렀다.
-어디, 첫 번째는 실버에서 골드를 올려달라는 의뢰네요. 이런 건 쉽죠.
그는 성림이라는 사람이었다.
전에 프로게이머를 하다가 그만뒀다는 그 사람은 이곳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개인방송에 시청자가 가득했다.
-돈이요? 에이, 무슨 돈이에요 이런 쉬운 일에. 나중에 제 방송 홍보나 좀 해 주세요.
성림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를 맡을 때, 딱히 돈을 받지는 않았다.
대리랭크는 하나의 컨텐츠일 뿐이고, 주로 돈을 버는 것은 그것을 방송하는 스트리밍이었기에, 선심 쓰듯 그랬던 것이다.
‘역시 실버에서 골드로 올려달라는 말이 제일 많네. 골드 이상부터는 게임 스킨을 주니까 그럴 거고, 하. 그랜드 마스터로 올려달라는 거래도 있어?’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것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정명은 성림이라는 사람을 목표로 정한 뒤,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쿠론을 불러왔다.
“야, 잠깐만 이리 와봐. 솔로랭크 좀 돌려야겠어.”
“솔로랭크?”
“어. 저격 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네가 좀 거들어라.”
......
잠시 뒤.
의자에 앉은 쿠론은 카메라와 정산창을 이상하다는 듯 번갈아 쳐다봤다.
“개인 방송 틀었어?”
“틀었어.”
“야, 이거 좀 이상한데. 왜 이렇게 돈이 안 벌려? 내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중국 스트리밍은 엄청 돈 된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중국에서 볼펜 한 개 씩만 팔아도’ ‘중국 팬들이 5%만 모여서 방송을 시청하면’ 따위의 말을 들은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국 사람들이 1원 씩만 모아줘도 14억 번다’ 처럼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시청자가 많은 만큼, 방송을 하는 사람들의 수도 많잖아. 경쟁이 치열하다고.”
“쳇, 북미에서 내가 방송을 틀면 순식간에 2만 명은 들어왔는데. 만약 네가 안 불렀으면, 제대로 개인방송을 해 봤을 거라고.”
“흠, 그래? 제법이네?”
사실 정명도 잘 모이지 않는 시청자에 대해 걱정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쿠론의 말을 들은 뒤, 걱정을 살짝 내려놓았다.
‘이 녀석이 그다지 말을 재밌게 타입은 아닌데 사람이 모였다는 것을 보니, 얼굴 때문인가 보군? 엄마 닮아서 제법이긴 하니까.’
정명은 만약 사람이 정 안 모이면 이 녀석을 전면에 내세워 미인계라도 쓸 생각을 하고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일단 사람을 모아야 해. 꼭 달풍선이 아니더라도, 광고 몇 개 붙이면 시청자 수에 따라서 돈이 들어오거든.”
“북미랑 똑같네.”
“아, 목표가 움직였다. 지금 바로 저격 간다.”
둘이 떠드는 사이 한 게임을 끝낸 대리기사 성림은, 이제 다른 아이디를 받아 다시 게임을 진행하려 하고 있었다.
-그 다음 의뢰인은 플래티넘 구간에 계시는 분이네요? 승급전에서 열 번이나 떨어지셨다고, 저에게 맡기셨네요. 걱정 마세요. 제가 다이아리그까지 잘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 점수대라면 현재 정명과 비슷한 점수대였다.
정명은 그가 게임 찾기를 누르는 것에 맞춰서, 자신 또한 게임 찾기를 눌렀다.
그리고, 픽밴이 시작되었다.
........
“....떴냐?”
“뭐가. 아, 네가 말했던 목표물? 어. 보인다. 3픽이네.”
“보인다고? 오, 좋아....어? 3픽?”
쿠론의 말에, 정명은 방송과 픽밴 상황을 유심히 들여다 본 뒤,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씨, 같은 편이잖아? 쯧, 겨우 저격에 성공했나 싶었는데.”
“근데 이런 짓을 갑자기 왜 하는 거야? 너 지금 엄청 이상해 보이는 거 알지?”
정명은 대답하지 않고 히죽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성림이라는 대리기사는 픽밴창에 들어오자마자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미드 주세요. 저 원래 그랜드마스터 티어임. 미드 주면 캐리해 줌.
“뭐래?”
“미드 달래. 캐리해 준다고.”
“하, 누구 맘대로? 쓰레기가.”
정명은 오랜만에 쿠론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알아들을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凸 문자를 날려준 뒤, 곧바로 미드 캐릭터를 골랐다.
-저런 플레기&&^#가!
그러자 성림에게서 표현하기도 힘든 패드립이 날아왔다. 중국은 평균적으로 매너 수준이 한국보다 더 심했기에,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 꼬우면 너도 미드 캐릭터 고르던가.”
정명의 도발에, 다섯 명의 사람이 모두 미드 캐릭터를 고르는 참사가 벌어졌고, 상대편은 이게 웬 꽁승이냐는 듯 싱글벙글하며 게임에 임했다.
그런데 30분 뒤.
게임은 정명 팀의 승리로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솔직히 이 게임을 이길 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캐릭터가 이상해도, 프로급의 사람이 세 명이나 있으니까. 아마추어 정도야 어지간해서는 이기겠지.”
하지만 게임을 이기고 있음에도, 성림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그는 게임 내내, 채팅으로 정명에게 시비를 걸었다.
-맵 리딩좀 해라. 이래서 플레기들이 다이아로 못 올라가고 평생 플래티넘에서 고인물이나 되는 거야. 한심한 놈들.
“지가 죽울 때마다 맵리 타령하고 있네. 야, 누가 봐도 너 혼자 죽은 건데, 꼭 팀원이 커버 못해줘서 죽은 것처럼 말한다?”
-자신 있으면 1:1 한번 할까?
아니나 다를까, 그런 말다툼 끝에 1:1을 하자는 소리까지 나왔다. 키보드 배틀의 흔한 패턴이었다.
유치한 싸움이었지만, 정명은 이번만 어울려 주기로 했다.
그 후 20분 뒤.
1:1에서 이긴 정명은 퀘스트가 갱신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리 기사 사냥 퀘스트 갱신]
목표 : A급 대리기사 : [2/10]
“저 녀석, 그렇게 까지 잘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랜드 마스터라더니.”
“잘 하는 게 이상하지. 대리한답시고 계속 낮은 티어의 사람하고만 하고 있는데, 감이 안 떨어지는 게 이상하지 않겠어?”
정명은 무척이나 쉽게 1:1에서 이길 수 있었고, 성림이라는 사람은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시청자들도 보고 있었기에, 평소보다 많은 양의 달풍선이 들어왔다. 물론, 그래봤자 소량이었지만.
[띵호와님이 달풍선 3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이렇게 8번을 더 잡으면 퀘스트를 완료한다는 건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보이는데. 오히려 어려운 것은, 대리랭크를 돌리고 있는 사람을 저격하는 것 정도...’
그 후, 정명은 쿠론에게 방금 만난 대리 기사를 신고할 것이라 말했고, 남을 엿먹인다는 것에 신이 난 쿠론이 신이 나서 게임사 공식 홈페이지를 뒤적거렸다.
“너 뭐 해?”
“저 녀석, 신고한다며? 게임사 홈페이지에서 전화번호를 찾아야지?”
그 말에, 정명은 하하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 아직 중국이라는 나라를 잘 모르는구나. 이런 건, 원칙대로 하면 한 달이 지나도 답 없어.”
“그럼 어쩌자고?”
“구단주에게 전화해 봐야겠다. 그 사람이라면, 아는 인맥이 조금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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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성림은 한참을 씩씩대다가 평정심을 되찾고는,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게임을 몇 백판 하다 보면, 질 수도 있죠. 그럼요.”
-질 수 있기는. 잘하는 척은 다 하더니, ㅋ -대리는 다른 사람한테 맡겨야겠다. 이거 영 허당이네.
[드래곤즈님이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엔젤님이 방에서 강제 퇴장 당하였습니다.]
“시청자분들도 참, 짓궂으시네요. 오늘은 이만 방종합니다. 제가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으니, 내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새로운 마음으로 방송을 해보려던 성림은 로그인을 하려던 순간, 평소와는 다른 상황을 겪었다.
[로그인 중....]
[이 계정은 신고로 인해, 3020년 5월 1일까지 접근이 금지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서비스 센터로 문의하십시오.]
“뭐? 이건 또 뭐야?”
성림은 계속해서 다시 로그인을 시도해봤지만, 역시나 똑같은 결과만 나올 뿐이었다.
“3020년...? 그러면 정지가 풀리는 것은...”
지금이 2020년이니, 1000년 후에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한 대리기사들의 계정이 정지당하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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