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93화 (93/226)

< 31. 반격(1) >

은퇴한 프로게이머이자 이제는 개인방송으로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인기 BJ, PAA는 자신의 개인방송을 통해 프로리그를 중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은 물론 저작권법 위반이지만, 중국에서 저작권법 따위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으므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기에 상관은 없었다.

“저 정명이라는 사람, 진짜 신기한 사람이에요. 여러분은 잘 모르시죠? 하위 리그 감독들 사이에서는 영입 1순위인 사람이에요.”

PAA는 팀 SAO, 그리고 OMA를 정명이 어떻게 끌어올렸는지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물론 중국 특유의 과장을 섞어서.

"특히 빌빌거리는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에 특화된 사람이에요. 무슨 XTC의 구단주가 정명의 팬이라서 비싸게 사왔다 하는 헛소문도 돌던데, 연봉이 높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방송 시청자들은 무슨 소설이냐며 믿지 않았지만, 검색을 몇 번 해본 결과 사실임이 드러난 이후로는 태도를 180도 바꿨다.

-거기다가 XTC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 실력은 검증 된 듯. 저기요, mmk에도 좀 와주세요. 일 년째 3부 리그에서 빌빌거리고 있는데.

-스타플레이어 혼자서 애써봐야 보통은 티도 안 나던데, 뭐 저런 놈이 있냐. 신기한 거 알려줬으니 달풍선 쏨.

PAA는 쌓이는 달풍선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경기에서 중요한 장면이 나오자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오, 이거 정명 선수가 솔로킬 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도주기 빠지는 것 기다렸다가...지금! 들어가, 들어가!”

화면에 보이는 정명의 캐릭터는 마치 PAA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상대의 피싱맨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그 때, 또다시 화면이 흑백으로 변했다.

[게임이 중지되었습니다.]

“어? 아이 씨, 중요한 순간인데. 대체 뭐 하는 거야? 벌써 세 번째잖아! 이거 심판놈, 돈이라도 받아 먹은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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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한 피지컬과 반응속도를 살리려면, 화려한 스킬을 가진 캐릭터가 좋다. 다루기는 어렵지만, 잘만 다루면 상성이고 뭐고 씹어 먹는 그런 캐릭터.

때문에 정명은 피지컬이 일정 단계를 넘은 이후, 잡는 사람에 따라 극과 극의 성능을 보이는 캐릭터인 탈주닌자를 주로 연습했다. 피지컬이 낮았던 시절에는 연습조차 하지 않았던 캐릭터였다.

그리고 정명은 HP가 2/3정도 남은 상대의 캐릭터를 보며, 궁극기 버튼에 손을 가져다댔다.

‘두 번은 이상한 꼼수로 운 좋게 살아갔다만, 이번에는 완벽하게 각이다. 죽어, 개자식아.’

-정명의 탈주닌자, 곧바로 궁 써서 들어갑니다! 아주 좋은 타이밍이에요! 어, 그런데.....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팀 퓨어 측 정글러의 키보드 이상으로, 잠시 경기를 중지한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절체 절명의 순간, 상대측에서 또다시 경기 중단 요청을 했다. 벌써 세 번째였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XTC 매니저는 카메라가 찍건 말건, 인상을 팍 구겼다.

“이 새끼들,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니에요? 왜 중요한 순간 때마다 장비가 고장 나?”

하지만 코치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게임 일시 정지를 선언하고 있는 심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어. 저 녀석들이 우리를 화나게 할수록, 쳐 죽일 때의 쾌감도 늘어나겠지.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하게 죽을 것 같은데? 정지를 하건, 말건.”

......

게임이 정지되는 3분 동안, 큐어의 미드라이너는 어떻게 싸울까 수십 번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거기에 더해, 그는 막 달려오고 있는 정글러와 어떻게 스킬을 연계할까 상의까지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점멸로 도망가서 시간 좀 끌게. 너, 궁 있지?”

“있어. 궁 써서 스턴만 걸어줘. 그러면 무조건 딸 수 있으니까.”

“그래. 저 녀석의 성장만 둔화시키면, 경기는 다시 원점이라고. 한 번 해 보자.”

경기가 중지되는동안, 선수끼리 게임에 대해 상의하는 것은 명백하게 룰 위반이다.

하지만 큐어 사람들은 태연하게 이것저것 떠들고 있었고, 곧이어 큐어의 미드라이너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계획대로만 진행되면 완벽하다. 잡을 수 있겠어.”

.......

그리고 3분 뒤.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3, 2, 1 경기 재개합니다.

큐어 측은 맘대로 상의를 했지만, XTC측은 팀원들과 한 마디도 나눌 수 없었다. 심판이 그들의 뒤에서 트집 잡을 거리가 없나 열심히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정명은 다시 게임이 재개되자마자, 급하게 정글러를 불렀다.

“조시! 바로 뛰어와!”

“지금 갑니다!”

큐어의 미드라이너는 열심히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지만, 쉐도우 복싱과 현실은 다른 법. 그들의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시간을 끌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정명은 피싱맨이 점멸로 도망가자, 역시 점멸로 따라붙으며 정글러와 합류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거의 동시에 쓴 것 같은데요? 엄청난 반응 속도 입니다!

-우오, 이거 피싱맨은 잡히겠네요. 10경기 연속, 솔로 킬!

정명은 쌓인 게 많았는지, 피싱맨에게 막타를 넣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드디어 잡았다 이 개새끼!”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 다음은...정글러가 오네. 도망갈까, 싸울까.’

궁을 써서 한 녀석 잡았지만, 살아 나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헉헉거리는 정명의 뒤로, 큐어의 정글러가 도착했다.

-경기 재개와 함께 킬! 하지만 복수를 하기 위해, 붕대괴물이 도착했습니다! 이건 도망가기 힘들겠는데요!

큐어의 정글러는 정명이 도망칠 거라 생각했는지, 점멸까지 써서 궁부터 걸어버렸다.

그리고 스킬연계로 붕대를 던지려던 순간, 정명은 정화 아이템을 통해 붕대괴물의 스턴을 0.1초 만에 풀어버리고는, 붕대괴물의 뒤를 점했다.

-정명, 도망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더 싸우는 것은 너무 욕심이지 않나 싶은데요?

서로 물러서지 않는 맞딜 싸움. 하지만 이미 전투를 치른 정명은 피가 조금 빠져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정명이 먼저 죽으려던 순간, 정명은 분신을 통해 거리를 벌리고는, 표창을 던져 붕대괴물을 처치했다.

아슬아슬하게 보이지만 모두 계산된 플레이였다.

[더블 킬!]

[XTC_midgosu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시가 뒤늦게 도착했다. 마치 해외영화에서 모든 상황이 다 끝난 뒤, 부랴부랴 도착하는 경찰들처럼.

“어? 다 끝났네? 혼자서 둘을 잡았어요?”

“그렇게 됐다. 됐고, 타워나 밀어.”

그 소규모 전투 한 번으로, 승패가 확정되었다. 엄청나게 성장한 정명이 쿨타임이 찰 때마다 궁을 쓰면 딜러가 한명씩 끊겼으니까.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명백히 승패가 갈린 이후로는, 게임중지가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첫 승리를 따낸 뒤.

XTC 사람들은 2경기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할까 우려하여, 강력하게 항의를 표시했다.

그리고 그런 항의가 먹혔는지, 써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2경기는 아예 게임중지가 걸리지 않았다.

경기가 평범하게 흘러가자, XTC는 여유롭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2부 리그에서 승리했습니다. 포인트 2000점을 획득합니다.]

[8연승 보너스! 포인트가 80% 추가로 지급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승자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인터뷰는 언제나 그랬듯 정명이 도맡아 했고, 어느 나라나 그렇듯 미녀 리포터가 진행을 했다.

리포터는 정명, 그리고 통역으로 나온 XTC 매니저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이번 경기의 소감은 어떠신가요?]

“이번 경기 어땠냐고 물어 보네요.”

“그야 당연히...”

당연히 최악의 경험이었다.

경기는 경기대로 재미없어지고, 난생 처음으로 맞은 편 부스를 열고 들어가, 상대를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때문에 정명은 최악의 게임이었다고 운을 뗀 뒤, 큐어 측 선수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꾸 망가진다는 장비 말인데, 내가 하나 사 줄까?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거 써서 자꾸 망가지는 거라면 말이야.”

어느 새 북미의 트래시토크에 익숙해진 정명은 자연스레 독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말을 중국어로 번역해야 하는 매니저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정명의 말을 번역했다.

[장비를 좋은 것으로 바꾸시는 것은 어떨까요? 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서요.]

“거기다가, 실력이 나쁘면 게임 매너라도 좋기를 바란다. 그렇게 더러운 방법으로 이긴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당신들의 매너에 실망했습니다. 우리는 공정한 게임을 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매니저의 순화된 번역 뒤에 감춰진 정명의 말이 드러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

몇 주 뒤.

XTC는 이제 10연승을 달리고 있었고,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XTC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XTC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하나 둘 협회장의 곁을 떠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XTC의 연습실을 찾아온 남자는 정명을 찾아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난 번 했던 것은 맛보기일겁니다. 협회장과 그를 따르는 몇 팀은, XTC의 전승 우승을 저지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어요.”

“마음대로 하라고 해요. 우리는 자신 있으니까.”

지금 정명을 찾아온 사람은 팀 MCS의 매니저였다.

구단주의 말로는, 협회장을 떠나 XTC에 붙겠다고 찾아온 사람이라고 한다.

“얼핏 듣기로는, 이번에는 꽤나 노골적으로 할 것 같다더군요. 추악함의 끝을 보실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정명에게 상자 하나를 건넸다.

“뭡니까? 이건.”

“제 성의입니다. 받아주세요.”

중년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나갔다.

“뭔가요? 뭐죠? 빨리 열어보세요! 자그마한 성의를 표시한 것 같은데!”

정명이 받은 선물이건만, 안절부절 못 하며 기대하고 있는 것은 매니저였다.

“알았어요. 어디...아, 이건. 그거네.”

상자를 열어보니, 시계였다. 중국인들이 좋아한다는 명품 로렉소 시계.

공교롭게도 정명이 지난 번, 샤오랑이라는 구단주에게 받는 것과 같은 모델이기도 했다.

‘그런데......뭔가 이상한데?’

정명은 눈을 가늘게 뜨며, 시계를 살펴봤다. 그러자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히 눈이 좋아진 정명의 눈에는 몇 몇 이상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어설픈 느낌이 드는데...’

정명이 자세히 시계를 살펴보고 있는데, 그 옆에서는 매니저가 시선으로 시계를 뚫어버릴 듯 쳐다보고 있었다. 엄청나게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

“저, 그거 저 한 번만 만져볼 수 있게 해주시면...”

“가져요.”

“네?”

정명은 상자채로 매니저에게 휙 던졌다.

“시계엔 관심 없으니, 가져요.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주는 거예요.”

정명의 말에, 매니저는 무척이나 감격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협회장의 목이라도 따 오겠습니다!”

“충성까지야. 그냥 하던 일, 열심히 해 주시면 되요.”

잠시 뒤.

정명은 자신의 짐을 한참동안 뒤적거려, 겨우겨우 구석에 박혀있던 상자를 찾았다.

먼지가 쌓여 있는 그 상자는 아까 봤던 시계상자와 똑같이 생겨 있었다.

정명이 지금 들고 있는 것은, 샤오랑이 줬던 진품 시계였다.

그리고 그 시계를 뚫어져라 바라 본 정명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역시 저거 가짜야. 나 참. 하여간, 여기는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라니까.”

......

그 이후로, XTC의 연승행진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처음에 만났던 팀, 팀엔터. 그들과의 경기가 코앞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협회장이 직접 관리하고 있는 팀이기도 했다.

그들과의 경기를 상기할 때마다 정명은 얼마 전 다녀갔던 다른 팀 매니저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저쪽에서도 최선을 다할 거라고? 최선을 다해 추잡한 짓을 하겠다는 거겠지? 젠장.’

몇 번 회의를 거쳤지만, 별 다른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저쪽에서 추잡한 짓을 한다고 해서, 똑같은 수준으로 대응할 수는 없으니까.

정면돌파 밖에는 해답이 없는 것이다.

정명은 한숨을 쉬고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메일을 뒤적거리다가 한 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우리 딸, 첫 MVP!]

그것은 에리가 보낸 메일이었다.

메일의 안에는 그녀의 딸 쿠론이 뚱한 표정으로 인터뷰하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이 아줌마, 또 딸 자랑 시작하네.’

동양에서 송하니가 떠오르는 별이라면, 서양에서는 에리의 딸, 쿠론이 차세대 스타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둘 다 공통점이 많군. 제법 외모가 좋고, 특히 실력이 천재적이지. 둘다 미리 싸인이라도 받아 놔야 할까?’

정명은 적당히 축하의 메일을 보내고는, 다른 메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 이거는...김준상의 메일이네. 지난번에는 한국 2위 팀이었는데, 이제는 중국 2위 팀으로 이적했다고 했었지.’

[안녕하세요, 정명. 저 김준상입니다. 전해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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