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94화 (94/226)

< 31. 반격(2) >

뜻밖의 메일에, 정명은 잠시 고민하며 시선을 멈췄다.

‘이 사람이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연습금지는 이 사람 팀에게도 해당이 될 텐데.’

호기심이 동한 정명은 곧바로 김준상에게 전화를 걸었고, 김준상은 금방 전화를 받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명 씨. 오랜만이에요.

“하하, 그래요. 파리에서 만난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그런데 저에게 전해줄 말이 있다고요?”

-예. 요즘 곤란한 일을 겪고 계신 것 같아서요.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같은 한국인 끼리 돕고 살아야죠.

김준상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무척이나 불쾌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 잘못된 관습의 피해자인 정명에게, 그런 비열한 녀석들한테 지지 말라며 어떻게 하면 중국 사람들을 쉽게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중국에 온지 벌써 1년이에요. 이 녀석들 잡는 노하우야 당연히 쌓였죠. 제가 개인방송 열 테니까, 잠깐 들어오시겠어요? 비밀번호는 9912 에요.

자신의 플레이를 직접 보여주겠다는 준상의 말에, 정명이 떨떠름하게 답했다.

“연습금지 아직 유효한 것 아니었어요? 팀에서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하하. 그런 것, 신경 안 써요. 같잖아서. 만약 뭐라고 하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려고요. 뭐,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하긴, 감히 팀에서 이래라저래라 하기엔 상당히 잘 나가시는 분이시죠.”

정명과 준상은 서로 킥킥대며 웃었다. 그리고 준상은 곧이어 솔로랭크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의 랭킹은 그랜드마스터 7위. 최정상급의 순위였다.

“중국 애들 있잖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피지컬은 좋아요. 그러니까 피지컬 싸움으로 가면 별로 안 좋을 거예요.”

“저도 피지컬이라면 꿀리지 않는데요, 이제?”

“다른 팀원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면 솔직히 좀 그렇죠. 굳이 상대방이 자신있어하는 영역에서 싸워줄 필요 없어요.”

정명은 곧바로 납득하고는, 다시 준상의 말을 경청했다.

“얘네들이 피지컬은 좋은데, 잘 보세요. 패턴이 엄청 단순해요.”

그 때부터 김준상의 1:1 강의가 시작되었다. 어디 가서도 들을 수 없는, 상위 랭커의 아주 비싼 강의였다.

“그리고 또, 정글러는 이곳에서 정글몹을 잡고 있을 겁니다. 동선이야 뻔 하죠.”

김준상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 마치 맵핵이라도 켠 듯한 적중률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생각을 읽기 쉽다는 거죠. 좋게 말하면 경험이 부족하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1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할까. 뭐, 보통은 그런 약점을 피지컬로 보완을 하긴 하지만요. 그 점에 있어서는 정말 괴물 같은 사람이 넘쳐나서...”

동감하는 바가 있었던 정명은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지력은 낮은데 힘만 센, 삼국지 장수 같은 느낌이에요. 그런 녀석들에게는 일기토를 거는 것 보다는, 계략을 거는 게 옳은 방법이긴 하죠.”

김준상의 운영방법 강의는 2시간이 넘게 계속되다가 마침내 끝이 났다.

그리고 정명이 개인방송을 종료하는 김준상에게 감사를 표하고 모니터를 끄는 순간, 정명의 눈앞에 알림 창이 떴다.

[스킬이 해금되었습니다. 샤프마인드 - D랭크 스킬]

[샤프마인드]

*나는 당신보다 다섯 수 앞을 읽고 있다.

*패시브 스킬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정신력과 판단력이 증가할수록, 그 정확도가 높아집니다.

*가격 : 5000 포인트

오랜만에 해금된 스킬에, 정명은 두 눈을 멍하니 깜빡였다.

‘정말 오랜만이네. 스킬을 배우는 것은. 음, 어쩔까.....근데 이건 패시브 스킬이네. 패시브 스킬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냐? 24시간 내내 발동된다는 거니까.’

정명은 앞으로의 중국 생활에서 이 스킬이 도움이 되리라 확신하고는, 곧장 스킬을 구매했다.

@@@@@

XTC와 팀 엔터의 경기 전날.

정명은 지난 번, 팀 큐어의 게임 정지 전략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다음 경기가 팀 엔터의 경기인데...이 녀석들도 분명 그 짓거리를 하겠지?”

“100%에요, 100%. 그 녀석들은 협회장이 직접 관리하는 애들인데, 더했으면 더했지 안 하진 않을 것 같아요.”

“뭐 이딴 싸움이 다 있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문화적 충격을 매일 겪고 있는 중이야. 열심히는 하겠다만.”

상대방에게 안 좋은 감정이 무척이나 쌓였기에, 이번 경기는 정말 지고 싶지 않은 경기였다. 때문에 정명은 쌓아두었던 포인트를 한 번 더 풀기로 결정했다.

‘지금으로써도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지만...더 올린다고 해서 나쁠 것 없겠지.’

정명은 연승을 한 덕분에, 상당히 많은 포인트를 쌓아두고 있었다.

승률이 100%였으니, 모르긴 몰라도 1부 리그 가서 승률 3할 정도 찍는 것 보다는 훨씬 많은 포인트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오더를 먼저 80으로 만들자. 나 혼자서 어떻게 하기보다는 팀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한 시점이니까.’

[사용 가능한 포인트 31070, 사용 포인트 5000]

[오더 스탯을 올리시겠습니까?]

‘좋아. 올리자.’

[오더가 1 올랐습니다.]

[오더가......]

피지컬 (80/100)

정신력 (70/100)

오더 (77/100)

판단력 (79/100)

잔여 포인트 : 3070

포인트는 거의 안 남았지만, 정명은 뿌듯하게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이제 모든 스탯이 80까지 되는 게 얼마 안 남았어. 그러면 기념 선물이라도 하나 주려나 모르겠네.’

......

다음 날.

드디어 팀 엔터와 XTC의 경기 날이 밝았다.

현재 12연승을 달리고 있는 XTC로써는, 이번 경기만 무사히 넘기면 전승 우승이 무척이나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꽤나 중요한 경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시는 방송국 건물로 들어가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걔네들이 또 일시정지 걸면서 추접하게 굴면 어떡하죠? 지난번에는 솔직히 너무 화가 나서 제대로 경기에 집중을 못 했어요.”

“아 그거? 어제 구단주한테 얘기 들었는데, 자기한테 방법이 생겼다더라. 금방 처리할 수 있으니, 한 번 믿어 보라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

건물 안에는 이미 팀 엔터의 선수들이 도착하여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정명의 눈에 띈 것은 저번에 만났던 이원희라는 한국 선수. 그리고 자신의 상대인 레몬이라는 선수였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보자마자 조시는 한숨을 푹 내뱉었다.

“저 녀석들의 비장한 표정을 보니까, 아무래도 오늘 또 수작을 부릴 것 같은데요.”

“동감이다. 일단 우리도 부스로 들어가자. 밴픽이 잘 됐으면 좋겠네.”

......

잠시 후.

엔터와의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밴픽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정명은 코치를 바라보며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이번에도 밴픽이 참 좋은데요? 역시 당신을 미국에서부터 데려온 보람이 있다니까요.”

“당연하지. 연구 엄청 많이 했다고. 특히 이번 경기는 엄청 지기 싫어서, 결승전처럼 준비했다니까?”

밴픽과정을 통해 캐릭터 간의 상성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밴픽에서 이겼다는 것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것과 같았으니까.

어떤 코치들은 밴픽의 수 싸움 능력을 기르기 위해 바둑을 배웠다는 사람도 생겨났을 만큼, 밴픽은 무척이나 중요한 단계였다.

그리고 그런 밴픽 대결에서 승리한 정명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게임 시작을 기다렸다.

그런데, 게임을 시작한지 1분 째. 경기가 갑자기 중단되었다.

‘또 시작이군...’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XTC 선수들에게, 심판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재경기를 통보했다.

“밴픽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주정뱅이 캐릭터의 기본 스킬에 버그가 생겨서 글로벌 밴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때문에 밴픽은 처음부터 다시 진행됩니다.”

글로벌 밴. 두 팀 모두 그 캐릭터를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버그가 생겼다는 말을 믿지 않았던 정명은 중지 손가락을 내밀며 욕설을 내뱉었다.

“오냐. 해라. 어디까지 막장으로 가나 보자, 이 개새끼야.”

그러자 심판이 눈을 부릅뜨며 주먹을 꿈틀댔다.

“정명선수. 경고입니다. 저한테 욕설을 하시면, 벌금. 또는 퇴장 명령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

그 시각, XTC의 반대편 부스.

XTC의 경기 상대, 팀 엔터는 심각한 표정으로 두 번째 밴픽을 진행 중이었다.

“회장님 말씀 들었지? 이번에는 꼭 이겨야 돼. 이번엔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 하셨어.”

“알았다. 탈주닌자 잡아 줘. 그게 좋을 것 같다.”

“아, 그래. 팀 큐어 전에서 정명이 그 캐릭터 하는 거 봤는데, 진짜 사기 캐릭터인 것 같더라. 무조건 첫 번째로 뺏어 와.”

그에 대응하여 정명이 잡은 것은 꼬마마녀.

중국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캐릭터이기에, 이원희는 밴픽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며 실실 웃었다.

“미드라인전 무조건 이겼네. 야, 레몬! 버스 좀 타자. 이거 완전히 날로 먹는 라인전 아니냐?”

“그래도 상대는 XTC의 에이스라고. 뭐, 라인전은 이기기야 하겠다만.”

하지만 그런 희망적인 예상과는 달리, 레몬과 정명의 CS 격차는 처참할 정도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레몬은 타워 뒤에 숨어 나오지 못 하게 되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와 씨발. 미니언을 건드리지도 못 하겠어! 꼬마마녀 저거 사기캐릭터 아니야?”

“응, 아니야. 네가 잡은 게 사기 캐릭터라고. 탈주닌자가 요즘 1티어 캐릭터인거 알지?”

“알아. 근데 존나 힘들다고. 남일 말하듯 구경만 하지 말고, 갱킹 좀 와봐. 미드가 망하면 게임 그냥 터지는 거 몰라?”

레몬는 지난 번, 정명에게 처참하게 졌다.

때문에 그동안 연습도 많이 했고 대비도 충분히 했지만, 왠지 오늘은 지난 번 보다 더 힘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결국 레몬은 이렇게 말려 죽을 바에, 거하게 한 번 싸워보기로 했다. 중국 특유의 스타일이었다.

“믿을 건 내 손뿐이다. 싸워보자!”

[변해랏!]

하지만 궁을 쓰고 달려들자마자 바로 제압된다.

피지컬에 자신 있던 레몬이었지만, 정명의 빠른 반응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는 마우스를 놓아버렸다.

‘이거, 라인전 터졌네.’

[XTC_mid_gosu님이 ENT_MID님을 처치하셨습니다.]

-레몬선수도 피지컬이 좋다는 평을 받고 있었습니다만, 이거 영 상대가 안 되네요. 도저히 정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합니다.

-경기 전 보인 자신감을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이해가 안 가는 장면이네요.

“야, 좀 피해봐라. 아니면 피할 생각이 없는 거냐?”

“아, 몰라. 안 해. 차이 너무 많이 난다. 1경기는 항복하자.”

이렇게 게임이 터지면, 경기 중단을 하건 뭐건 소용이 없다.

팀 엔터는 빠르게 1경기를 항복한 뒤, 2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2경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2경기의 양상은 1경기와 비슷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정명, 컨디션 좋은 것 같네요? 1경기부터 아주 날아다니시네.”

“음, 그런가? 최근에 좋은 것을 배워왔거든. 그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정명은 레몬이 어떻게 움직일 지에 대해 확실히 예측할 수 있었다.

별 다른 근거는 없고, 그냥 ‘감’ 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 적중률이 상당했다.

그리고 정명이 또다시 솔로 킬을 따 내려던 그때, 정명의 스킬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 이거 실수...

-레몬, 운 좋게 살아간 것......

그런데, 정명이 스킬을 날린 그 방향으로 레몬이 점멸을 사용했다. 점멸을 써서 살아가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점멸까지 써 가며 스킬에 맞아주는 꼴로 보이게 된 것이다.

완벽한 예측샷이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휴, 이거 끝났네. 이 판도 이겼다. 정의는 승리한다고.”

승패는 이미 기울었다.

이제 계속해 봐야, 그저 시간을 끈다는 의미밖에는 없는 상황.

그런데 그때, 또다시 심판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XTC 부스에 폭탄을 떨어트리고 갔다.

“팀 엔터 측, 꼬마마녀 캐릭터의 평타가 안 나간다고 합니다. 재경기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거의 다 이긴 싸움에서 재경기.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팬들에게서 야유가 쏟아졌다.

-미친놈들아! 심판 돈 받아먹었냐!

-관리를 대체 어떻게 했기에, 자꾸 버그가 생긴다는 건데?

참지 못하는 것은 정명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추잡한 짓거리는 감내하려고 했지만, 이것까지는 참을 수 없었다.

“리그 수준 대체 왜 이러냐...PC방 리그도 이렇게는 안 해!”

그리고 그것은 XTC의 코치도 마찬가지였는지, 코치는 고함을 지르며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불이익을 당하실 수도 있어요. 경비원!”

“꺼져! 맞고 비킬래?”

다른 사람이 말릴 새도 없이, 코치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버그가 났다는 상대방의 화면을 찾아 두 눈을 뻔뜩였다.

“키보드 멀쩡하잖아! 평타가 잘 안 나간다고? 엄청 잘 나가는데? 모두 보십쇼! 이거 순 사기꾼들입니다!”

그러자 허겁지겁 심판이 다가와 코치의 멱살을 잡았다.

“몰수패! XTC 당신들 몰수패야!”

심판이 침을 튀기며 XTC가 몰수패를 당했다고 선언했다. 완전히 개판이었다.

그런데 그 때, 어느 새 경찰들이 들어와, 무대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심판은 마침 잘 됐다 싶었는지 열심히 손을 흔들며 그들을 불렀다.

“여기요 여기! 난동부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빨리 잡아가요!”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경찰들은 정명을 지나쳐갔다. 그리고는 심판을 포함하여 스태프 몇 명, 그리고 팀 엔터의 선수들 전체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정명은 맨 뒤에서 뒷짐을 지고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는 XTC의 구단주를 볼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뭔가 손을 썼나보군...’

그리고 일이 하나 둘 정리되는 가운데, 심판의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내가 누군지 알아? 협회장님이랑 목욕탕도 가고, 어? 하는 그런 사람이야!”

그 말에, 경찰들이 멈칫 한다. 높은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겁을 먹은 것이다.

그리고 정명은 자신의 인맥 자랑에 한창인 심판에게 다가가, 그의 복부를 힘껏 쳤다.

뻑!

“커, 컥...우웩...”

맞고 나서 많이 아픈지, 헛구역질을 하다가 이내 배를 잡고 끙끙거리기 시작한다.

경찰들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자, 정명은 멋쩍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도와드리려고요.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 날의 게임은 XTC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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