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85화 (85/226)

< 28. OMA (3) >

정명이 새로운 OMA의 담당자의 얼굴을 확인한 후, 며칠이 지났다.

최근 리그 시장이 호황이 되었기에 선수들의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고, 하나 둘 뜨는 다른 선수들의 오피셜 계약 정보를 본 정명은 아쉬움 섞인 탄성을 뱉었다.

“햐, 요즘은 적당히 싹수가 보인다 싶으면, 신인한테도 기본 8-9만 달러로 계약을 하는구나. 나 때는 85000달러 받은 것도 엄청 잘 받은 거라며 축하해 줬는데.”

정명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자신에게 들어온 계약서를 살폈다.

그 계약서들에는 10만 달러보다 훨씬 더 높은 금액의 연봉이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아발론, 27만 달러, UUA 26만 달러. 확실히 2부 리그 구단이라고 돈이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근데 2부 리그로 오라는 말이 왜 이렇게 많아? 지금 내 짬에 무슨 2부 리그를 간다고.’

정명에게 들어오는 오퍼는 대체로 2부 리그나 1부 리그 하위권 리그의 팀으로 오라는 제안이 많았다.

정명이 SAO를 비롯하여, OMA를 키워낸 것 까지, 평범했던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데 무언가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OMA 연습실 테이블에서 계약서를 검토하고 있던 정명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다.

전 스콜피온즈의 코치이자, 현 OMA의 감독이 된 디클레어였다.

“정명, 정명! 전화통화 하기가 무척 힘드네요. 지난번엔 죄송했습니다. 요즘 게이머들 몸값이 그렇게 오른 줄은 몰랐어요.”

“아 예. 당연히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그게 새로운 계약서인가요?”

정명은 디클레어에게 새로운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또다시 계약서를 휘리릭 넘기는 정명. 그리고 정명이 찾은 것은 물론 연봉이 적혀 있는 페이지였다.

[연봉 25만 달러]

지난 번 보다 3만 달러 늘어난 수치. 정명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 정도면 재계약 의지가 없는 것 아닙니까? 가장 돈이 없다고 알려진 UUA도 26만 달러를 불렀는데요. 대체 사모펀드가 투자했다던 돈은 어디 갔기에 재계약 금액이 이렇게 빈약한 거죠?”

“아니, 그게...”

“됐고, 다음부터는 그냥 전화로.....아니, 메일로 금액만 딱 보내십쇼. 속 터지니까.”

잠시 뒤.

디클레어가 OMA의 연습실을 나가자마자, 정명은 아예 근처 호텔로 숙소를 옮겨버렸다.

슬슬 OMA에 대해 정이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내가 OMA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것 아냐? 젠장, 프로게이머 수명이 얼마나 된다고 돈을 아껴, 아끼긴. 망할 자식 같으니.’

프로게이머는 기본적으로 수명이 무척 짧다.

전성기인 18살부터 시작하여, 보통 25살 근처에서 은퇴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기에 뒷일을 위해, 최대한 바짝 벌어놔야 하는 것이다.

정명은 짜증나는 마음을 달달한 초콜릿으로 달래며, 호텔 방을 나섰다. 서류 한 뭉치를 들고서.

그리고 호텔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요. 혹시 이곳에 종이 갈아버리는 기계 없어요?”

“1층 블루 구역에 가시면 있습니다. 아니면 제가 대신 해드릴까요?”

“아뇨. 제가 할게요. 고맙습니다.”

아직 프로게임단에는 계약을 대신해줄 매니지먼트 따위가 없으니, 본인이 ‘알아서 잘’ 해야 한다.

때문에 정명은 지금껏 모은 자료들을 정리하며 고민에 빠졌다.

“32만 달러라. 거기다 보너스별도. 역시 이 조건이 제일 좋군.”

지금까지의 조건을 보면 가장 조건이 좋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OMA가 아니라 지난 번, 정명에게 눈도장을 열심히 찍고 다녔던 M사의 조건이었다.

32만 달러라면 기존에 비해 연봉이 3.5배 이상이 올라간 셈이니, 이정도면 정명도 만족이었고.

‘이름이 세인이었던가? 별 다른 일 없으면 이곳으로 갈 수밖에 없겠네. 돈 많이 주는 곳으로 가야지.’

......

다음 날.

이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시기에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모이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프로게이머 소양교육.

미국 프로게임구단이 주최하는 이 교육은 프로게이머로써 지켜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등을 숙지시켜주는 교육으로써, 1년에 한 번 열린다.

요즘은 교육이라기보다는 사교의 장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북미의 게이머라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꼭 참석해야 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선수들은 교육은 뒷전이고 서로 가진 정보를 공유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명은 그나마 좀 아는 사람이던 SAO시절 인맥, 새비에게 다가가 정보를 캐냈다.

“새비, 당신의 팀은 좀 어때요? 선수들이 바뀌거나 하나요?”

“당연하지. 팀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던 두 명과 계약을 해지 했어 그리고 그 대신, 한국인 선수들을 넣을 예정이야.”

“한국인.....을요?”

“그래. 이번에도 한국 팀이 월챔에서 우승을 했잖아? 그래서인지, 구단주가 한국선수, 한국 선수 노래를 부르더라고. 한국의 시스템을 최대한 배울 거라나 뭐라나.”

“우리 팀의 새로 온 사람이랑 똑같은 소리를... 아무튼 두 명이면 최대한 넣은 거네요. 외국인 용병은 두 명 까지 넣을 수 있으니까.”

용병 선수 제한.

누가 봐도 한국 선수들 때문에 생긴 룰이었다. 만약 이런 규제가 없다면, 경쟁력이 낮은북미 선수들은 나설 자리가 없을 테니까.

이른바 자국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새비는 그렇게 말하며 흐흐 웃었다.

“저렇게 한국의 탑 티어 선수들을 다 빼오면, 다음에는 한국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우승을 해버리는 것 아냐? 하하, 상상은 잘 안가지만.”

그러던 도중, 옆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은근히 짜증나는 목소리였다.

“야, 이노시틀. 이번에 연봉 좀 올랐어? 후, 18만 달러라...힘들겠네. 고생해라. 나? 나는 35만 달러에 계약했지. 당연한 것 아냐? 그동안 내가 활약한 게 얼만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C90의 원딜러, 펙토르였다.

C90 구단과 꽤나 괜찮은 계약을 한 펙토르는 강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신의 연봉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정명은 얼굴을 찌푸렸고, 새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후, 저 새끼 또 시작이네. 월드 챔피언십 가서 멋지게 박살나고 온 놈이 무슨 염치로 연봉을 올려 받았을까.”

새비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떠버렸고, 그것은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정명도 자리를 뜨려는 순간, 정명의 앞에 오랜만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1개 있습니다.]

‘메시지? 내가 뭐 했던가?’

생각해보니 정명은 월드챔피언십 마지막 경기 이후로, 시스템 창을 열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정명은 얼떨떨하게 메시지창을 열었고, 과거에 완료했던 퀘스트 보상에 대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열성 팬 Lv 2 달성!]

팬의 수가 [5000]명 을 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어떤 사람은 당신의 열렬한 팬이 될 것입니다.

*현재 팬 수 [6632]명

*보상

-특별한 사람이 당신의 팬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당신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줄지도 모릅니다.

*연계 퀘스트

-열성 팬 퀘스트 Lv3

‘퀘스트 달성한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이제야 봤네. 뭐야, 열성 팬? 이건 아마도...’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한 정명은 퀘스트 완료 창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열성 팬 퀘스트 Lv 1이었을 때, 나왔던 게 아마 벨라였지? 그 때를 생각해보면 분명 그 말대로 특별한 팬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도통 알 수가 없단 말이지. 그 팬이 정확히 누구인지.’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복잡하게 굴리고 있는 정명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대박으로 계약한 게 기뻐 이리저리 방방 뛰고 있던 C90의 민폐 선수, 펙토르였다.

“정명, 얘기 들었다. 재계약이 잘 안되고 있다면서?”

“뭐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벌써 소문 쫙 퍼졌어. OMA에 새로운 담당자가 열심이던데?”

펙토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의 연봉을 간접적으로 떠벌리며 자랑질을 해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명에게 메일이 날아왔고, 정명은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OMA랑 재계약이 잘 안되면 다른 데라도 가야지. 뭐 괜찮은 오퍼 들어온 것 있어? 얼마쯤으로 들어왔냐? 23? 아니, 이번에 월드챔피언십 갔으니까....25 정도?”

“50만.”

“뭐?”

“50만 달러짜리 오퍼 들어왔다고. 멍청아. 나 이만 가봐야겠다. 안녕.”

@@@@

‘이건, 혼자서 고민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물어봐야겠어.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

중국에서 날아온 계약서를 읽은 정명은 고민 상담을 위해 팬카페를 찾았다.

그중에서도 정명이 들어간 곳은 팬카페의 비밀 게시판.

많은 회원들 중에서도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VIP 회원만의 특별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채팅방에서 정명은 그동안의 일을 토로했다.

“이상하게 제 연봉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조금씩 낮더라고요. 펙토르도 35만 달러라고 하고, 다른 선수들도 30만은 기본적으로 받던데 저는 30만 넘는 곳이 딱 두 곳 밖에는 없어요.”

정명의 말에 대답한 것은 채팅방에 있던 한 팬이었다.

Plus+ : 보니까, 한국 사람이라서 연봉이 조금 낮게 책정되는 것 같은데요? 한국인 용병은 두 명 까지만 쓸 수 있으니까, 너 쓸 바에야 다른 한국 사람을 쓰겠다 뭐 이거인 것 같은데.

“흠... 플러스님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요즘 한국 사람들을 많이 영입한다고도 하고. 네, 그게 맞는 것 같네요. 요즘은 무슨 구단 하나 당 2명의 한국인을 분양받는 게 유행인 것 같으니.”

즉, 정명이 미국 시민권자였다면 연봉이 더 올라갔을 거라는 소리다.

정명의 말에 팬들은 분노의 채팅을 날렸다.

dodolong : 이런 미친! 그딴 게 어딨어요? 당장 고소해버려요!

intchar : 한국인이라고 다 잘하는 것도 아닌데,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그러다가 한껏 분노를 쏟아낸 팬들은 이번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Libropia : 엄....그럼 차라리 미국에 정착하는 건 어때요? 미국도 좋은 나라인데!

retro : 그래, 그러자! 정명. 미국에서 살아요. 우리 자주 좀 봐요!

한국인으로써의 차별로 심각해져 있던 채팅창은 갑자기 정명의 미국 이주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지금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는데. 음...’

어떻게 얘기할까 망설이고 있는 정명에게 조용히 있던 아이디 ‘Ace attorney’가 조용히 채팅을 보냈다.

Ace attorney : 정명. 중국에서 날아온 계약서, 제가 봐 드릴까요?

.....

SAO 시절, 정명은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계약서 좀 읽어봤다는 사람과 반복하여 계약서를 읽어보는 정도에서 서류를 검토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주먹구구식으로는 안 된다. 그때에 비해 스케일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졌으니까.

계약서라는 것이 까딱하면 노예계약이나 불공정 계약이 되는데, 그때는 울고불고 징징거려도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정명은 한 미국의 로펌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정명이 만난 것은, 날카로운 인상의 변호사였다.

“어서 오세요. 자, 이쪽에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어...”

“피트라고 불러주세요. 유정명 씨.”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것은 지난 번, 팬미팅에서 만났던 자신의 팬이었다.

분위기가 풀어져있던 팬미팅 때와는 달리, 정명은 괜히 그녀의 시선이 무섭게 느껴졌다.

변호사 사무실이라는 곳이 보통은 좋은 이유로는 찾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변호사님은 정명이 건네준 계약서를 꼼꼼히 읽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계약서상에 특별한 문제는 없네요. 오히려 너무 조건이 후해서 의심이 갈 정도에요. 혹시 이곳의 구단이랑 친분이 있으세요?”

“아뇨. 저는 중국에 간 적도 없어서...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일단, 당신의 의사가 가장 중요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국으로 가서 활동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어요.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적응하느라 힘들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말인데....일단 보고 나서 결정하려고요.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 날.

정명은 곧바로 출국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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