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OMA (2) >
정명은 그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기사를 세 번째 읽을 때 쯤, 옆에서 벨라가 정명을 툭툭 쳤다.
“정명, 이 소식 이미 알고 있었어? 이런 것은 미리 말해줄 법 한데.”
“아니, 나도 지금 처음 들어보는 거야. 뭐지? OMA가 사모펀드에 팔렸다고?”
그 순간, 정명은 OMA의 스태프가 하나 둘 떠나갔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라며 벨라를 돌아봤다.
“뭐야, 우리 팀 없어지는 거야?”
“사모펀드에 팔렸다는 게 꼭 그런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지만...아, 여기 이런 말이 있네. ‘팀을 없앨 생각은 없다. 없애기는커녕, 우리는 OMA를 북미 최고의 팀으로 만들 생각이다.’ 라는 말이.”
“진짜네...”
“하긴, 구단을 운영하면서 광고효과를 얼마나 누렸는데 없애겠어? 바보도 아니고.”
확실히 인터뷰에는 그런 말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본 정명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난 더 이해가 안 되는데. 팀에 투자를 늘리겠다는 놈들이 왜 갑자기 기존의 사람들을 내보낸 거지?”
“그건 아마도.....그 사람들 말 대로, 최강의 팀을 꾸리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북미 최강이 되려면, 솔직히 지금 라인업으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야. 그보다 표정 관리 해. 애들 놀란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든 정명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헤헤 웃었다. 기껏 연 팬미팅인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정명의 표정이 풀린 것을 확인한 벨라는 핸드폰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곳에는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어. 머리 좋은 사람도 많고 변호사도 있지. 그러니까 무언가 트러블이 생기면 연락 해. 모두들 기꺼이 너를 도와줄 테니까. 알았지?”
그 이후, 정명의 첫 번째 팬미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모두들 재미있게 놀았고, 서로 단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정명은 뜻밖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정명의 팬미팅과 비슷한 시간대에 열린 C90, TBM, GLG의 공동 팬미팅이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팬미팅이라기 보다는 청문회장? 처참한 대회 성적에 ‘뿔 난 팬들!’]
레딧에 뜬 기사에 의하면, 팬미팅은 처음엔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월챔 성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팬들이 추궁하는 모양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명은 기사를 모두 읽은 뒤, 댓글을 확인했다.
?나 여기 갔는데, 분위기 진짜 살벌했음. 팬들이 안티팬이 되는 건 정말 순식간인 것 같더라.
?예전에는 맨날 얻어터지고 다녀도 분위기 좋았는데, 요즘은 왜 이러냐. 경기에서 졌다고 한 대 얻어맞을 기세임. 엄청 무서움 팬들.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팬들이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리그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음에도, 정명은 괜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기에 초청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네. 정말로.”
@@@@@@
프로게임단은 1년, 길어봐야 2년 단위로 계약한다.
정명 또한 1년 정도로 계약했고, 월드챔피언십을 끝으로 계약서상의 기간이 만료가 되었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재계약을 하거나, 새 팀을 찾아보거나.
정명은 되도록이면 재계약으로 진행을 할까...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팀으로 가도 상관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장, 그리고 돈을 얼마나 주냐 하는 것이니까.
‘우리랑 함께 한 정을 생각해서 팀에 남아 줘. 제발’ 따위의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월드챔피언십 8강 진출로 내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시점에 계약이라. 이번에는 제대로 해먹을 수 있겠어.’
......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의 아침 9시.
드디어 이적시장이 열렸다.
이제부터 다른 팀에 속해있는 선수일지라도 타 구단에서 직접적으로 컨택이 가능한 시간이었고, 구단으로써는 팀의 주전 선수들을 지켜야만 하는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9시가 땡 치자마자, 소파에서 늘어져 있던 정명의 핸드폰이 띠링띠링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정명이 느릿느릿 걸어가 핸드폰을 확인하니, 전부 타 구단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EPIC이라는 신생 구단입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계약 하지 않더라도, 얘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이쪽으로 연락....]
“급하기도 해라. 이적시장이 열리자마자 작업 들어가는 거야?”
문자를 하나하나 확인해보니, 처음 들어보는 구단에서부터, 꽤나 잘 나가는 구단까지. 여러 구단에서 메일을 보내왔다.
내용은 서로 짜기라도 한 듯이 ‘일단 한 번 만날 수 있겠느냐?’ 는 것이었고.
하지만 정명은 그런 인기에도 불구하고, 귀찮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조건이라도 대충 알려주고 만나자고 하지, 왜 다들 일단 만나자는 거야, 귀찮게.”
“어? 그거 다른 구단에서 컨택온거예요? 벌써?”
“그렇지 뭐. 너도 확인해 봐. 연락 왔을지도 몰라.”
연습실 컴퓨터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던 조시는 허겁지겁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이내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정명에게 다가와 정명이 받았다는 메일들을 옆에서 훔쳐보았다.
“UUA, EPIC, 아발론...많이도 왔네. 대부분 하위권...어? 잠깐, 이거 뭐야. TBM?”
“한 번 만나자고는 하더라. 조건은 잘 모르겠지만.”
“우와, 미친, 잠깐. 이거, 혹시 TBM 가는 거예요? 진짜? 아니, 물론 돈 더 받고 가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팀의 기둥이 사라지면...”
조시는 컨택을 받은 정명 본인보다 훨씬 더 흥분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락을 받은 당사자인 정명의 표정은 별 생각이 없어보였다.
“글쎄. 일단 조건을 봐야지. 흠, 그래. 이번에 OMA에 새로운 자금줄이 들어왔다지? 너도 그거 봤지?”
“예. 사모펀드 말이죠?”
“그래. OMA에 돈이 많이 생겼다고 하니, 이 녀석들이 연봉을 얼마나 올려줄 수 있을지 한 번 보고 결정 하려고.”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 메일함을 뒤적거렸다.
“내일 OMA 이스포츠의 새 담당자라는 사람이 만나자더라. 왜 나 혼자 따로 보자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녀와서 얘기 해 줄게.”
만나기로 한 장소는 연습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한 카페.
그곳으로 슬슬 걸어가던 정명은 자신의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서 이번 이적 시장에 관한 뒷담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GLG의 팬이었는지, GLG의 로고가 박혀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GLG가 저런 퇴물을 살 예정이라고? 드디어 구단이 미친 것인가?”
“누가 아니래. ‘경험이 많은 선수가 필요했어요?’ 는 지랄. 서포터도 아니고, 피지컬이 안 되는데 저걸 어디다 써먹냐?”
정명은 팬들의 뒷담화에 괜히 몸을 움츠렸다.
그러다가 듣기 싫어 다른 곳으로 가려던 정명은 자신의 얘기가 나오자, 다시 귀를 쫑긋 세웠다.
“아니, 늙어도 잘 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긴 하네. OMA의 정명. 걔는 좀 잘 하는 것 같던데.”
“아, 걔? 근데 그 사람은 젊지 않나?
“아냐. 내가 알기로는 스물여섯 인가 일곱 살 이랬어. 이번에 은퇴한 UUA의 둠이랑 똑같은 나이야.”
“미친, 진짜? 역시 동양인은 나이를 먹어도 먹는 것 같지가 않다니까. 당연히 20살 정도인 줄 알았는데.”
팬들은 그렇게 떠들며, 정명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정명은 자신의 욕이 들리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최소한 욕은 들어먹지 않았네. 면전에서 욕먹으면, 악플보다 타격이 2.5배 쯤 크다고.’
5분 뒤.
정명은 약속 장소인 카페로 들어가서 새 담당자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카페 안쪽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은, 정장을 입은 30대의 남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디클레어라고 합니다. 이번에 OMA 이스포츠팀의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음, 혹시 우리 처음 만나는 건가요? 어디선가 만난 듯한데...”
“하하, 기억 못 하시네요. 사실, 몇 년 전에 뵌 적이 있습니다. 정명선수가 SAO에 있던 시절, 같이 연습하고는 했던 스콜피온즈의 코치로 있었거든요, 제가.”
“아하! 맞다. 머리를 빡빡 미셔서 못 알아봤네요. 반갑습니다.”
정명은 그제야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망한 팀인 스콜피온즈.
계속해서 2부 리그 1위만을 전전하다 시드권을 사서 겨우 1부 리그로 올라온 뒤, 곧바로 사라져 버렸던 비운의 팀이었다.
‘돈은 제법 있었던 것 같지만,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것 같은 팀은 아니었지 스콜피온즈가.’
디클레어는 정명의 그런 생각을 짐작했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압니다. 제가 스콜피온즈를 제대로 이끌지 못 했다는 것을요. 그래서 그 뒤로 한국에서 살며, 한국의 선진화된 프로게이머 시스템을 배워왔습니다. 1년 동안이나요.”
“아, 그래요? 한국에 사셨다고요?”
“예. 친구들은 이제 제가 한국사람 다 되었다고 칭찬하더군요. 하하.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은 OMA를 최고의 팀으로 만드는 것이죠.”
디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며 한국처럼 ‘감독’ 체제로 운영하겠다는 둥, 식스맨 제도와 형제팀을 운영하겠다는 둥, 하며 자신의 원대한 계획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디클레어라는 사람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 정명으로써는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다.
‘글쎄. 괜찮은 팀이던 스콜피온즈를 말아먹은 것을 보면,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데. 어떻게 이 녀석이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거지?’
정명은 한국의 시스템이 최고의 모델이라며 신나게 떠들고 있는 디클레어의 적당히 말을 잘랐다.
정명이 궁금한 것은 그런 잡다한 얘기가 아니라,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냐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 재계약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사모펀드라고 돈 아낀다며 연봉 적게 주는 것 아니죠?”
“그럴리가요. 서류 준비해 왔습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디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계약서였다.
“읽어보시고, 의문이 있으신 것은 물어보시면 됩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우리의 조건이 제일 좋은 조건일 겁니다. 하하.”
“뭐, 그건 읽어보면 알겠죠.”
계약서는 미국에서 오래 산 정명도 알아듣기 힘든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연봉 부분.
정명은 계약서를 대충 넘기며, 중요한 부분을 가장 먼저 살펴보았다.
‘개인 방송 수익은 내가 다 가지고, 휴일도 있고, 주전 자리도 당연히 보장되고. 연봉은...22만 달러인가.’
연봉 22만 달러. 1년 전, 정명이 85000달러에 계약했으니, 그 2.5배로 늘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정명은 안다. 자신은 그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나랑 같이 북미의 탑 티어 취급을 받는 C90의 해리가 25만 달러였지? 근데 이건 뭐냐. 나 참.’
정명은 자세를 삐딱하게 하며, 피식 웃었다.
“22만 달러...이게 최대한인가요? 좀 이상한데. 제가 알기로, 저랑 비슷한 실력이라 평가되는 선수들은 이것보다는 더 받던데요.”
“혹시 다른 팀에게서 제안 받으신 게 있으십니까? 얼마까지 제안이 들어왔나요?”
디클레어의 말에 정명은 쓰게 웃었다.
“얼마까지 제안 받았냐라...정말 한국사람 다 되신 것 같네요. 안 좋은 의미로 말입니다.”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를 디클레어에게 다시 넘겼다.
“간 보지 말고, 제대로 된 금액을 부르십쇼. 단, 다음번에는 신중하셔야 할 겁니다. 만약 다음번에도 이런 얼토당토않은 금액이라면, 계약서가 분쇄기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될 테니까요.”
@@@@@
그 시각, 한 구단의 사무실.
새로 시장에 나온 선수들의 명단을 보며, 중년의 남자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명이 시장에 나왔다면서? 산다, 무조건 산다. 북미에서 가장 비싼 선수가 누구야?”
“아마 싱글리프트일겁니다. 듣기로는 보너스 제외하고, 50만 달러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실력뿐만 아니라, 스타성이 반영된 금액이죠. 북미에서 탑 3에 드는, 인기 선수니까요.”
“좋아. 우리도 50만 달러 불러. 돈이 더 필요하면 말 하고.”
남자의 말에, 그의 비서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알겠습니다. 명젠주(孟建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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