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OMA (4) >
정명은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에게 메일을 보냈던 구단의 정보를 읽어보고 있었다.
구단과 기업의 이름은 XTC. 정명도 얼핏 들어본 적 있는 기업이었다.
‘유명 전자제품 회사의 자회사인가. 구단주의 부모님이 공산당 간부여서 꽤나 특혜를 받고 있는 것 같군.’
확실히 돈은 많아보였다. 정명에게 이런 금액을 제시한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인신매매 따위의 사기이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이상한 기업은 아니었으므로, 최소한의 조건은 통과라고 할 수 있었다.
프로필 정보를 확인한 정명은 이제 기존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살펴보며 경기를 분석하며 시간을 때웠다.
....
그리고 잠시 뒤.
비행기에서 공항으로 이동한 정명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사람 많군. 어디...저 사람이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인가?’
정명은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살짝 긴장된 마음을 갖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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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정명은 XTC의 구단주를 만날 수 있었다. 엄청나게 호화스러운 식당 안에서 말이다.
‘돈 많아 보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처럼 생겼는데. 옆에 있는 경호원이 더 부자 같아 보여.’
명젠주라는 구단주는 길거리에서 보였던 평범한 40대 중국인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리고 그는 정명이 들어오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제가 명젠주입니다. 반갑습니다. 오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요.”
“예. 사람이 마중 나와 있어서 편했어요.”
정명으로써는 다행스럽게도, 구단주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여느 돈 많은 부모를 둔 자식답게, 학교를 해외에서 다녔기 때문이었다.
정명은 말이 통한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하며, 곧바로 이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 메일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앉으시죠. 음식이 식겠습니다. 하하.”
구단주는 바로 일 얘기를 꺼내려는 정명을 제지하며, 자신의 옆자리로 정명을 안내했다.
그리고 정명의 앞에 보인 것은 다 먹지도 못 할 만큼의 사치스러운 음식들이었다.
정명은 이게 바로 중국의 대접 문화임을 떠올리고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조금 음식 낭비 같아 보이기는 하는데, 중국에 왔으면 중국의 문화를 따라야겠지. 그게 마음에 들던, 안 들던 말이야.’
이야기는 주로 중국의 게임단 상황에 대한 것을 주제로 흘러갔다.
요즘 중국에 초보 프로게이머들을 등쳐먹는 사기꾼이 활개치고 있다느니, 극성맞은 팬들 때문에 숙소에 보안시설을 강화했다느니 하는 그런 얘기들.
그리고 잠시 후.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슬슬 이야기를 꺼내도 될 듯 했으므로 정명은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했다.
“그런데 저에게 이렇게 많은 금액을 배팅하신 이유가 있나요? 50만 달러면 꽤 괜찮은 선수들을 살 수 있었을 텐데요”
정명의 물음에, 구단주는 작게 미소 지었다.
“괜찮은 선수...괜찮은 선수가 누굴까요. 몸값이 비싼 선수? 유명한 선수? 그것도 아니면, 한국인 선수?”
“음...”
“아마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는 그런 세 부류의 선수들을 영입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기대를 했지요. 뭐,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요.”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1부 리그로 올라갈 수 없었다는 것이죠. 상당히 많은 비용을 투자 했음에도 말입니다.”
정명에게 제안을 보낸 팀, XTC는 1부 리그가 아닌 2부 리그 팀이었다.
그리고 정명이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중국이라는 곳은 3부 리그까지 있는 치열한 시장이었으므로 2부 리그가 수준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2부 리그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꽤 부담이 컸으니까.
‘돈은 많이 준다고는 하는데...2부 리그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하, 그건 조금 싫은데, 그런데.... 연봉이 너무 끌려.’
북미에서는 정명을 찾는 2부 리그 구단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정명을 찾는 이유는 XTC와 마찬가지에서의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신은 SAO부터 시작하여 OMA까지, 평범했던 팀들의 순위를 엄청나게 끌어 올린 경력이 있습니다. SAO는 2부 리그 1위, OMA에 와서는 월드챔피언십 8강 진출. 안 그런가요?”
“음, 그거는 다른 팀원들도 열심히 해줬으니까요. 5:5 게임이니까, 혼자서는 한계까 있어요.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예. 확실히 그렇죠. 우리도 한국의 유명 선수를 영입했을 때, 팀원들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인지, 끝내 1부 리그로 올라가지 못 했어요. 하지만...당신은 해 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구단주는 그렇게 말하며 정명과 눈을 맞췄다.
“만약 당신이 우리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을 시켜 주실 수 있다면, 그러면 보너스로 50만 달러를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어떠신지요.”
그 파격적인 금액에, 정명의 눈이 흔들렸다.
SAO 시절에 정명이 받았던 연봉은 24000달러 정도였다. 그리고 1년 뒤, OMA로 이적한 후 받았던 연봉은 85000달러였고.
정명은 새삼 자신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2부 리그 팀이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서 1부 리그 갔다가 애매한 승률을 찍는 것 보다는, 2부 리그에서 높은 승률을 유지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 포인트 벌이 측면에서 본다면 말이야.’
정명은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계약을 뿌리치기에는 100만 달러라는 돈은 너무 강렬한 유혹이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이유였는데, 제가 왜 당신을 영입하고 싶어 했냐면...”
구단주는 흘리듯 말하며, 수줍다는 듯 웃었다.
“당신의 열렬한 팬이니까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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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은 이번 계약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정명이 마지막으로 구단에 요청한 것이 있었다. 기존 선수들의 실력이 어떤지, 한 번 봐야겠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의 플레이 영상은 봤지만, 보는 것과 같이 해보는 것은 명백히 다르니까.
‘1부 리그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싹이 보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고. 아니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새로운 팀원과의 첫 만남.
그런데 근처에 마련된 연습실로 이동하기 전, XTC의 통역사겸 비서가 정명을 불렀다.
“아,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말 안 듣는 녀석이 있다면, 저를 부르십시오.”
“예? 말 안 듣는 녀석이요?”
“만약 당신이 팀에 들어온다면, 리더는 바로 당신입니다. 리더의 권위에 도전하는 녀석은 바로 찍어 내야 하니까요.”
“찍어낸다니...아무튼 알겠습니다.”
만약 정명이 팀에 들어온다면, 구단 고유의 권한인 선수 영입까지 정명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드디어 자신의 팀원이 될지도 모르는 중국 선수들과 만날 수 있었다.
“반가워요. 듣자하니, 한국인이시라고요? 기대해볼만 하겠네요.”
“하이.”
영어가 되는 사람은 딱 한 명.
그 외의 사람은 단어를 더듬더듬 말 하는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고, 그나마 정글러는 OK 정도의 영어밖에는 알지 못 하는 듯 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과의 어려움은 게임 속이 아닌,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명은 애써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 사람들이 중국 2부 리그 중위권이라. 어디 한번 볼까?’
[얀홍]
피지컬 : 69/82
운영능력 : 52/70
팀워크 : B
포텐셜 : B-
‘나이가 18살이라고 했던가? 역시 젊은 만큼, 피지컬들이 제법이야. 이 정도면 북미에서도 중상위권 클래스라고 할 수 있겠는데.’
다른 사람들도 둘러본 결과, 다들 비슷비슷한 능력치 들이었다.
다만, 운영능력이 낮은 것이 옥의 티였다. 플레이스타일이 어떤지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다른 2부 리그 팀과의 친선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정명은 밴픽 단계에서부터 전혀 관여하지 않고,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뒀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3분 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키보드와 마우스. 거기다가 왠지 거슬리는 중국어로 된 인터페이스와, 중국 성우의 목소리까지.
모든 게 어색한 정명이었다.
‘클라이언트를 영어로 바꾸겠다고 할까. 아니, 이것도 익숙해 져야 할 텐데...’
그런데 그건 둘째 치고, 상대 선수가 자꾸만 정명에게 싸움을 걸었다.
미니언을 한 마리 먹고 툭, 부시로 와드를 박으러 갈 때도 툭, 그냥 이유 없이 툭.
평타로 툭툭 치며, 자꾸만 싸우자고 조르고 있었다.
호전적인 대륙의 스타일이었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는 들었지만, 귀찮게도 구네. 혼나려고.’
북미는 국지전과 한타 같은 싸움보다는 운영을 중시하는 스타일로 점차 변해가고 있었다.
한국 스타일을 베꼈기에 나온 결과였다.
그에 반해 중국은 우월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개싸움을 유도하는 쪽으로 경기가 흘러가고는 했다.
운영을 통한 이득보다는 싸움을 통한 한방, 그리고 일발 역전을 좋아하는 성격이 엿보이는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뭐, 보기에는 중국 스타일이 더 재미있겠지. 박진감도 넘치고.’
‘어떤 스타일이 우위에 있다.’ 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중국에서 활동하고자 한다면 정명도 이런 스타일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극초반임에도 불구하고, XTC의 정글러가 미드로 다가왔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 하는 바로 그 선수였다.
“汪汪”
“뭐라고?”
“ ??!”
정명이 알아듣지 못하는 듯하자, 정글러는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더 크게 말한다고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으므로, 결국 정글러는 핑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xiaoxaio님이 태엽 로봇을 지목합니다.]
[xiaoxaio님이 태엽 로봇을 지목합니다.]
[xiaoxaio님이 태엽 로봇을 .....]
목표는 정명의 상대 미드라이너인 태엽 로봇. 정명은 알겠다며 OK 싸인을 보냈지만, 정글러는 여전히 정신 사납게 핑을 찍었다.
“내가 속박 맞추면 들어....아니, wait, wait!"
정명이 기다리라고 말했음에도, 섣불리 정글러가 부시에서 튀어나온다.
물론 타이밍을 읽지 못하고 무작정 달려든 결과는 갱킹 실패.
태엽 로봇은 점멸도 쓰지 않은 채, 유유히 타워 사거리 안으로 피신했다.
‘조금 있다 들어가라니까, 멍청이가.’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정글러는 미드로 전혀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른 라인을 커버하기 위해 그런가보다 했지만, 경기시작 10분 째. 응당 미드가 가져가야 할 블루골렘 버프를 자기가 먹는 것을 보며, 정명은 이 녀석이 자신을 명백하게 의도적인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정글러가 오지 않아도 라인전 쯤이야, 정명 혼자서 해나갈 수 있었으니까.
정명의 캐릭터, 마법소녀는 상대방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부시 근처에 숨어 있다가, 속박 스킬과 궁을 동시에 날렸다.
[Final spark!]
[Temporary_ID 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나이스! 와, 잘 하시네요. 지난 시즌까지 팀에 있었던 한국인 선수 보는 것 같은데요!”
두 번째 솔로 킬.
그 뒤로 엄청나게 호전적이던 상대 미드라이너는 타워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흠, 적당히 해야겠네. 이번 연습경기는 이기는 것 보다, 기존 XTC 선수들의 실력을 보는 게 중요하니까.’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게임은 자연스레 정명이 캐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정명이 SAO 시절, 혼자 낑낑대며 팀을 이끄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30분 뒤.
게임은 정명의 독주로 무난하게 끝이 났다.
[연습게임에서 승리 하였습니다. 보상으로 23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연습게임 보상으로 230 포인트라. 이정도면 북미에서 연습할 때랑 비슷한 포인트 아닌가?’
정명은 자신이 세웠던 가설 중 하나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역시 연습게임에서 받는 포인트는 실력에 따라 부과되는 것이 맞는 듯 하네. 지난 월드챔피언십에 한국 팀과 연습하고 난 뒤, 이겼을 때 받는 포인트는 이것의 3배가 넘었으니까.’
게임에서는 이겼지만,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XTC의 정글러는 다른 팀원들에게 중국어로 불평을 내뱉고 있었다.
‘혹시 내가 별로 마음에 안 드나? SAO나 OMA때처럼 팀을 끌어올리려면, 팀원들이 나를 믿고 무조건 따라 와야 하는데.’
그리고 다른 팀원들은 그런 그를 달래자, 정글러는 더욱 기세등등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떠들기 시작했다.
“미드@@&&오더...빵즈@@$”
‘빵즈? 날 보며 말했던 것 같은데, 무슨 뜻이지?’
중국어는 전혀 모르는 정명이었지만, 그 말이 욕이라는 것은 충분히 눈치 챌 수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정명은 1시간 전, 비서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그녀를 찾아갔다.
“만약에 제가 XTC랑 계약을 하게 되면요, 지금의 정글러를 방출하고 다른 사람을 써도 될까요? 제가 오랫동안 북미에서 호흡을 맞춰온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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