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79화 (79/226)

< 27. 북미의 자존심 (1) >

정명은 한국에서 온 해설자 이동호와 함께 밖에서 컵라면을 먹고는, 잡담을 하며 호텔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오늘 경기는 꽤나 아쉽겠어요. 그래도 할 만 한 것 같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리플레이 파일 보니까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후반 조합도 그쪽이 더 좋고, 특히 맵 장악 때문에 힘들겠더라고요.”

대만 팀과의 경기가 끝난 이후로,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대만의 국회의원은 서둘러 돌아가 버렸고, 언제나 그랬듯 대만 선수들을 욕하던 분위기는 금방 식었다.

빠르게 끓어오른 냄비는 그만큼 더 빨리 식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정명은 세 경기를 더 치렀고, 이제 조별리그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아참, 정명. 한국이랑 게임 하니까 어떻던가요. 다음에는 잡을 수 있을 것 같던가요?”

“흐, 아뇨. 운이 좀 따라주면 모를까, 그냥은 힘들 것 같던데요. 아, 지난 대만 전처럼 한국 팀도 식스맨을 내보내면 어떻게 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안되겠지만.”

조별리그 예선은 총 6경기를 치르게 된다.

태국, 대만, 한국. 같은 조에 있는 팀들과 한 번씩 경기를 치르는 게 한 사이클.

그 다음에 또다시 태국, 대만, 한국 순서로 한 사이클을 더 돌리면, 조별리그 예선이 모두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OMA는 3승 2패를 기록하며, 탈락과 통과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정명은 한숨을 푹푹 쉬며 이동호에게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한국한테는 지는 것은 예상했지만 이상한 곳에서 발목을 붙잡혀서 그래요. 한국 말고 다른 팀에게 1패를 내주다니. 이대로라면 대만하고 승자결정전을 치러야 할 판이라니까요? 완전 싫은데.”

“그런 경기는 부담감이 엄청나죠. 이해합니다. 차라리 이건 어때요? 한국 팀한테 이기는 거예요. 그러면 승자결정전 할 필요 없이, 4승 2패로 진출 확정 아닌가요?”

“방법은요?”

“정명 씨가 솔로킬 따버리면서 캐리하면 되죠. 어려운 일 아니잖아요? 상대는 고작 인.간 일 뿐인데.”

“크크, 그래요. 왼손의 흑염룡을 꺼낼 때가 온 것 같네요. 다음 경기는 제가 지배하겠습니다.”

그렇게 영양가 없는 잡담을 하며 복도를 걷던 정명은 우연히 다른 팀 선수와 마주치자 발걸음을 멈췄다.

정명의 앞에 있는 사람은 지난 번, 정명과 올스타전을 같이 치렀던 C90의 서포터, 해리였다.

“해리, 오랜만이에요. 올스타전 이후로 처음이죠? 한 건물 안에 있는데도 거의 못 봤네.”

“...그렇네요. 요즘은 워낙 정신이 없어서.”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내일이 경기죠? 중국과의.”

그 후 정명과 해리는 3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영어를 하지 못하는 동호는 얌전히 서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잠시 후.

해리가 갈 길을 떠나자, 조용히 있던 이동호가 은근히 물었다.

“저 사람, C90의 서포터죠? 무슨 이야기였나요?”

“C90이 탈락 위기잖아요? 그거랑, 요즘 연습 잘 되냐는 거랑. 두 개요.”

“아직 탈락 확정은 아니죠.”

“예.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연습 하는 중이라네요.”

정명의 말에, 이동호가 씩 웃었다.

“그래도 정신이 완전히 나가지는 않은 모양이네. 당연히 그래야죠. 남은 경기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지, 허무하게 지면 팬들이 열 받지.”

역대 북미 팀 중 최강의 팀.

섬머리그 전적 18승 0패.

그런 엄청난 수식어 덕분에 많은 기대를 모았던 C90은 2승 3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 중이었다.

물론 중국, 한국 팀이 득실거리는 지옥의 조에 배정된 탓도 있지만, 결국 변명일 뿐이니까.

“지옥의 조에 있던 C90은 그렇다 치고, 설마 TBM이 떨어질 줄이야. 꽤나 놀랐어요. 엄청 잘 하던 팀이었는데.”

“그렇죠. 우승까지는 오바지만, 최소한 8강까지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저도.”

TBM은 2승 4패로, 이미 조별리그의 모든 경기를 마치고 탈락 확정이었다.

따라서 지금 가장 조별리그 통과 확률이 높은 것은 OMA였고, OMA 선수들은 그런 부담감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정명과 헤어지기 전, 이동호가 핸드폰을 흔들며 물었다.

“아 참, 정명씨. 제 번호 있으시죠?”

“네? 네.”

“다음에 또 한국에 오신다면, 연락 주세요. 요즘 우리 방송국에 정명 씨를 출연시키고 싶어 하는 PD가 꽤 많아서요.”

“저를요?”

정명으로써는 선뜻 이해가 안 됐다.

북미도 아니고, 자신이 한국 방송에 얼굴을 내보인 것은 딱 한 번뿐이다. 그것도 정규리그 방송이 아닌 예능 방송이었고.

그런데도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니.

정명은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냐 물었고, 이동호는 웃으며 답했다.

“지난 번, 출연하신 방송이 꽤나 반응이 좋았거든요. 다시보기 횟수가 엄청나요. 사실 당연한 거죠. 제가 봤을 때도 엄청 재미있었는데.”

“하하, 다행이네요. 재미있게 봐 주셔서.”

“그래서 시청자 게시판에도 그 둘을 또 보고 싶다는 의견이 엄청 많아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음...그건 감사한데, 될지 모르겠네요. 그 아줌마는 별로 내켜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은근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거든요.”

“그래요? 그러면 다음에는 송하니랑 같이 나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가만히 있어도 재미있는 두 사람이면, 아무리 노잼 방송이라도 캐리가 가능한...”

“송하니요?”

뜻밖의 이름을 들어 정명은 살짝 놀랐고, 이동호는 그 행동을 다르게 해석했는지 송하니에 대한 소개를 했다.

“아, 정명 씨는 미국에만 계서서 모르시겠구나. 요즘 엄청 뜨고 있는 선수에요.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애인데, 엄청 귀엽다니까요. 실력도 천재적이고. 제가 장담하는데, 그 선수는 금방 날아오를 거예요. 진짜로.”

이동호의 말에, 정명은 그저 살짝 웃을 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생각해볼게요. 한국으로 언제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요.”

@@@@@

다음 날, OMA의 연습실.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사무실에만 있던 사람이 정명을 맞았다.

OMA의 마케팅 팀에서 근무하는 라이트는 정명이 오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헤이, 정명. 봤어요? 이제 OMA와 GLG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싹 없어졌어요. 속이 다 후련합니다.”

“오 정말요? 그거 다행이네. 은근히 거슬렸는데.”

GLG를 꺾고 올라온 OMA.

정정당당하게 꺾고 왔지만 GLG 팬 입장에서는 그것조차도 아니꼽게 보고는 게시판에서 OMA를 폄하하는 글을 올리고는 했다.

‘GLG가 올라갔으면 더 잘 했을 거다, 10만 명이 서명하면 재경기를 요청할 수 있다 따위의 말들이 돌아다니고는 했었지.’

하지만 지금, C90과 TBM이 연달아 침몰하는 상황에서 OMA만이 홀로 살아남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거기다가 OMA의 팬덤이 생각보다 커져, 그런 게시물이 올라오면 댓글로 욕을 먹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또한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정명, 북미 팬들이 당신을 꽤나 좋아하나 봐요. 그 극성맞은 GLG 팬들을 잠재우다니, 솔직히 놀랍습니다.”

“그래요? 잘 모르겠는데.”

“그래요. 이거 잘 하면 북미의 3강 구도를 깰 수도 있을 것도 같고, 하여간 그래요.”

C90, TBM, GLG.

북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세 팀이기도 하고, 가장 인기가 많은 팀이기도 했다.

원래는 3년간 TBM과 GLG의 2강 구도가 깨지지 않다가, 최근에는 C90이 합류하며 3강이 되었고, 이제는 OMA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광고 들어온 게 몇 개 있거든요. 이건 나중에 리그가 끝나면 자세히...”

“햐! 저걸 저렇게 받아 치네. 이건 진짜 끝났다.”

정명이 마케팅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 TV를 보고 있던 조시가 TV 볼륨을 키웠고, 모두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이건..... 힘들 것 같죠? 이번 한타는 조금 컸네요.

-그렇군요. GG, 이제 조별리그에서 남은 북미 팀은 OMA 단 한 곳뿐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C90.

TV에서는 해설자들의 좌절어린 소리. 그리고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떨구고 있는 C90 선수들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렇군. 결국 C90이 중국과의 대결에서 결국 진 건가. 탈락이로군.’

조시는 경기를 보고 나서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손을 불끈 쥐었다.

“이제 우리만 남은 거죠? 우리도 아슬아슬 한데, 우리도 떨어지면 팬들의 반응이 볼만 하겠습니다.”

“아니, 의외로 침착할지도 몰라. 북미 팀이 지는 게 한 두 번인가 뭐.”

팀원들은 C90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동안 나눴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의외의 인물이 찾아 왔다.

OMA의 구단주였다.

“뭐야, 뭐야. C90 경기 끝났어? 그거 보려고 막 달려왔는데.”

“네. 지금요.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한국처럼 ‘어이쿠, 구단주님 오셨습니까. 뭐해 임마. 빨리 인사드리지 않고.’ 따위의 행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구단주를 맞이했고, 대표로 정명이 입을 열었다.

“근데 못 올 것 같다고 하지 않았어요? 일 때문에 갑자기 바빠졌다고.”

“운 좋게 올 수 있었어. 그보다, OMA가 조별리그를 거의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그러면 어떻게든 와야지.”

“아직 아니에요. 이번 한국 전에서 지면, 대만과 재경기까지 가야돼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아 그렇지. 근데 지난 번, 대만한테 잡힌 거는 정말 운이 안 좋았기 때문이잖아. 나도 다시 보기로 봤다고. 만약 재경기를 치르게 된다면,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거야.”

구단주는 빠르게 말하면서도, 계속 손목의 시계를 흘끔거렸다.

“그냥 최선을 다 해줘. 지금까지 온 것만 해도 굉장히 대단한 거니까. 아무튼, 이번 일이 끝나기만 하면 내가 크게 한 턱 쏠게. 진짜야.”

“오, 정말요? 우리가 만약 조별리그에서 떨어지면 아무 것도 없고요?”

“아니, 결과가 어쨌건 간에. 이번엔 정말 기대해도 좋아. 지난 번 자동차 같은 거는 애들 장난이지. 이게 내가 줄 수 있는......선물이야.”

무척이나 반가운 말을 하면서도, 구단주는 무척이나 피곤한 표정이었다.

정명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러겠거니 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좋네요. 그러면 우리도 16강은 통과할 수 있게 최선을 다 해 볼게요. 북미 팀 중 하나는 8강에 가야하지 않겠어요?”

......

구단주와 마케팅 직원이 돌아간 뒤, OMA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조별리그 마지막 6경기 상대는 한국에서 3위로 올라온 팀 메그.

이미 OMA가 한 번 졌던 상대이기도 하다.

정명은 지난 번 경기의 리플레이 영상을 돌려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우. 우리 팀도 많이 따라왔다고 생각 했는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네. 이게 3위 팀? 1위 팀은 대체 뭐하는 애들인데?”

“그래도 팀 메그는 지금 5승 0패니까, 조금은 방심하지 않을까?”

“그렇지. 무조건이야. 말로는 끝까지 최선을 다 한다 어쩐다 해도, 사람이라는 게 그렇잖아? 우리는 그 틈을 노려봐야지.”

팀원들과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정명은 문득 책에서 봤던 말을 떠올렸다.

‘과학은 전쟁 중에 가장 발전한다고 하지? 내가 생각할 때, 우리 팀은 지금이 제일 강해. 수준 높은 팀과 매일같이 연습을 하다 보니, 엄청나게 실력이 늘었어.’

정명은 북미의 중상위권 팀과 두 시즌 연습 한 것과 한국의 전지훈련 캠프부터 지금까지, 정상급의 팀들과 연습을 했던 것을 비교해봤다.

한 3초간 생각한 결과 나온 결론은 무조건 실력 있는 팀들과 연습을 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그리고...지금 이길 수 없다면, 아마 이 멤버로는 이길 수 없겠지. 그게 바로 안타까운 재능의 차이 아닐까?’

하지만 그 재능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이 정명에게는 있다.

정명은 시스템 창을 불러왔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80/100)

정신력 (70/100)

오더 (68/100)

판단력 (75/100)

잔여 포인트 : 22950

‘좋아. 많이도 모였군. 그럼 마지막으로 다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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