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80화 (80/226)

< 27. 북미의 자존심 (2) >

정명은 스탯을 올리기 전, 항상 게임을 몇 판 해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비교분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기분상 하는 일이지. 사실 스탯을 조금 올린다고 해서 별 차이는 없지만, 괜히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한국과의 경기 전, 마지막 연습상대는 유럽의 3위 팀 SKS 게이밍.

TBM과 같은 조였으며, 그들을 꺾고 당당히 8강으로 진출한 팀이기도 했다.

조시는 SKS게이밍의 자료를 열심히 뒤져보는 코치에게 다가가 말했다.

“SKS 게이밍...유럽의 3위 팀이면, 우리랑 실력이 비슷한 팀 아닌가요?”

“지금 8강에 안착한 팀들을 보면, 한국 3팀. 중국 2팀, 유럽 2팀이야.”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한 팀을 겨우 올려 보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북미랑은 이미 실력 차이가 벌어졌다는 거지. 우리랑 같은 3위라도, 객관적으로는 저 쪽이 우위야.”

원래 북미와 유럽은 라이벌 관계였다.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네가 잘하니, 네가 못하니 하며 다투던 그런 관계.

하지만 이번 월드 챔피언십 이후로, 북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 할 것이다. 유럽과의 실력 차이가 이미 벌어졌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으니까.

잠시 후.

SKS와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지자, 선수들이 하나 둘 게임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연습게임의 시작이었다.

......

“어어, 역시 잘 하는데. 라인전에서 부터 너무 힘들어.”

“저도요. 상대 정글러가 제 위치를 너무 잘 읽어요. 아니, 내가 너무 뻔 한 루트로 다니는 건가?”

SKS게이밍과의 첫 번째 연습게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에리와 조시가 징징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군. 그렇게 힘든 상황도 아니면서.’

정명은 그런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 듀오가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것은, 게임을 질 때도, 이길 때도 하는 습관 비슷한 것이었으니까.

게임 시작 40분 째.

첫 번째 게임이건만, 팽팽하던 게임은 OMA가 끈질기게 버티며 질질 늘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처음에 기세 좋게 떠들던 사람들도 이제는 정말 필요한 말들만 하며 체력을 아꼈다.

“삼거리에 와드 좀.”

“탑에 세 명 간다. 지금 빼.”

그리고 게임이 50분을 넘어가면서부터 선수들의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정명은 혼자 정글 몬스터를 잡고 있는 조시를 불러 세웠다.

“야야야, 집중 해. 너 지금 혼자 떨어져 있어.”

“어? 어...그러네. 금방 귀환할...헛!”

[LeMonDog님이 OMA_DuckHu를 처치하였습니다.]

잠깐 딴 생각을 하다가 맵에서 혼자 고립된 조시.

아니나 다를까, 그 옆에는 어느 새, 상대 캐릭터들이 다가오고 있었고 조시는 금방 짤리며 1킬을 헌납했다.

‘연습 게임이라 조금 방심했나 보군. 부활까지 70초라서 이거는 힘들겠어. GG다.’

50분 경기를 했는데, 허무하게 패배. 무척이나 힘이 빠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무리 소심한 조시라도 연습게임 한 판 졌다고 기죽어서 빌빌대거나 하지는 않는다.

게임이 끝난 후.

조시는 팀원들에게 미안하다며 커피를 한 잔씩 돌리고는, 찬물로 세수를 하고 다시 연습실 의자에 앉았다.

‘흠, SKS와는 팽팽하거나 조금 밀리는 것 같네. 유럽한테도 지는데, 한국 팀이라. 솔직히 힘들지. 이건.’

그렇게 생각한 정명은 이제는 스탯을 올려야 할 때라고 판단하며 시스템 창을 불러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스탯 창을 쭉 둘러봤다.

‘피지컬, 판단력, 오더, 정신력. 뭐를 올려야 하지?’

쭉 스탯을 둘러보던 정명은 아직도 혼자 60대에 머물러 있는 오더 스탯에 주목했다.

다른 스탯들은 정명 개인의 능력을 올려주는 스탯들이다.

하지만 그 중에 오더라는 스탯은 정명 스스로의 능력을 올리는 대신, 팀워크에 초점을 두는 능력이었다.

능력치가 작게 올라가는 대신, 팀 전체의 능력을 올려주는 능력인 것이다.

잠깐 고민하던 정명은 결국 오더를 올려보기로 했다.

‘그래, 이거로 하자. 어느 것을 올리던, 손해 본 적은 없으니까.’

이런 알 수 없는 시스템을 오래 써오는 동안 정명이 깨달은 것은, ‘포인트를 잘 못 찍은 망캐’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스킬이던, 스탯이던 포인트가 들어가는 그것들은 언제나 스스로의 값어치를 증명했다.

따라서 정명은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2000 포인트로 오더 스탯 1을 구입합니다.]

[2000 포인트로 오더 스탯 1을 구입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벌었던 포인트건만,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포인트들.

정명은 눈에 땀이 날 것 같은 기분을 참으며 구매 버튼을 연타했다.

[10000 포인트로 오더 스탯 1을 구입합니다.]

[5000 포인트로 오더 스탯 1을 구입합니다.]

[스탯을 올릴 수 없습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어? 뭔가 잘 못 봤나? 갑자기 웬 1만이...’

스탯이 70대에 진입했으므로 원래는 5천이 빠져나갔어야 했지만, 그 두 배인 1만이 빠져 나갔다.

넋 놓고 코 베인 것이다.

정명은 그제야 구매 버튼에서 손을 떼고는, 허겁지겁 메시지 로그를 정독했다.

[오더 스탯이 70을 넘었습니다. 새로운 오오라 스킬이 해금됩니다.]

‘이것 때문인가? 아 맞아, 전에도 포인트가 확 들어가는 경우가 몇 번 있었...’

그리고 그렇게 멍하니 있는 정명을 팀원들이 불렀다.

“정명, 뭐 해요? 다들 당신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 지금 갑니다. 1분만요.”

정명은 생각할 시간도 없이, 일단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새로 생겨난 오오라 스킬의 설명을 읽었다.

[승리의 오오라 : 팀 전체의 결속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승리의 기운이 팀원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액티브 스킬을 발동하면, 1시간 동안 팀원들의 집중력이 20% 상승합니다.

-쿨타임 : 24시간

‘20%면...적은 거지? 근데 괜찮은 것 같은데. 패널티도 없고, 1시간이나 유지되고.’

하루 한 번 밖에 쓸 수 없고, 집중력 향상폭도 작다. 하지만 모든 팀원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LOH는 결국 팀 게임이니까.

설명을 전부 읽은 정명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시작해도 된다고 싸인 보내줘.”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스킬을 발동시켰다.

새로운 스킬의 쿨타임 시간은 24시간.

내일 있을 경기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스킬을 사용해야 내일 아슬아슬하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한 정명은 옆에 있던 팀원들의 기세가 조금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야? 쟤네들?’

정명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팀원들은 벌써부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팀원들의 몸에서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명의 눈에만 보이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방사능이라도 나오는 건...아니지?’

졸립다고 살짝 칭얼거리던 에리는 보일 듯 말듯 한 옅은 파란색.

그리고 방금 게임에서 큰 실수를 했기에, 무척이나 집중하고 있는 조시는 에리 보다는 진한 파란색이었다.

신경 쓰이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생각하며 정명 또한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했다.

그리고 다음 번 시작된 두 번째 경기는 첫 번째 경기와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

다음 날.

드디어 한국 팀과의 결전의 날이 밝았다.

오늘의 경기는 한국 팀에게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경기이지만, OMA에게는 무척 중요한 경기다.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그대로 8강 직행. 진다면 대만과의 재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아마 지금쯤이면 대만 팀이 한국 팀을 목이 빠져라 응원하고 있겠지. 그래야 재경기를 할 수 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코치는 대만 팀이 이미 연습실에서 화장실 갈 시간도 아끼며, 맹 연습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전했다.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젠장, 되도록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는데요.”

“그래, 북미 팬들도 그렇게 생각 할 거야. 지금 진행 스태프한테 들었는데, 지금 방송을 보는 시청자의 70%가 미국 IP래. 미국의 팬이란 팬은 죄다 방송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남은 30% 중 20%는 대만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웃었다.

지금 경기는 정명이 지금껏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며 겪었던 수많은 경기 중 가장 중요한 경기라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정명은 이번 경기를 위해, 자신이 보일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주기로 했다.

‘좋아. 곧 밴픽이 시작되니까, 지금 스킬을 사용한다.’

[승리의 오오라를 발동합니다.]

*팀원들의 정신이 고양됩니다.

-당신의 동료들은 이번 경기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모든 팀원의 몸에서 옅은 파란색의 오오라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연습 때보다는 조금 더 짙은 색이었다.

이번 경기를 위해 정명이 쓸 수 있는 카드는 한 가지 더 있었다.

정명은 탈주닌자라는 캐릭터를 고르자마자, [승부욕] 특성을 개방했다.

*승부욕 특성을 사용합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승부욕이 불타올라, 캐릭터를 다루는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탈주닌자의 숙련도 : LV 4 상급닌자]

캐릭터를 다루는 솜씨가 장인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에 대하여 생각할 때, 이 캐릭터부터 떠올릴 것입니다.

*묘기와도 같은 슈퍼플레이가 낮은 확률로 나오게 됩니다.

‘좋아, 이거라면 어떻게든 될 지도.’

그리고 잠시 후. 게임이 시작되었다.

......

“아우, 또 맞았어. 왜 저렇게 잘 하는 거야. 조시, 갱킹 한 번 더 와줄 수 있어?”

“음, 글쎄. 지금은 미드로 가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정명은 미드 대신, 다른 라인으로 백업을 가라 오더를 내렸다.

자신은 어떻게든 살 수 있으니, 다른 라인 위주로 커버를 가라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 선수를 상대로 버틸 수 있는 건 나밖에는 없으니까.’

상황은 영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직 라인전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0:5로 스코어가 벌어진 것이다.

‘젠장, 이대로라면 후반까지 가기 힘들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끄...어?’

초조한 마음에 혼자 무리를 하던 정명에게 세 명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미드, 정글러, 서포터. 세 명이서 정명을 잡아보려는 움직임을 보였던 것이다.

“조시! 백업, 백업! 시간 최대한 끌 테니까, 한 놈이라도 잡아!”

타워 다이브를 당하는 3:1 상황.

어차피 자신은 죽을 거라 생각한 정명은, 최대한 시간이라도 끌어보려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방향은 셋,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생각보다는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극한의 상황에서, 정명은 자신의 실력 이상의 움직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슈퍼 플레이가 발동됩니다. 남은 지속시간 .......]

슈퍼플레이가 발동되는 짧은 시간동안, 정명은 무아지경으로 손을 움직였다.

-으아! 스킬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습니다!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네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스킬을 피해낸다. 그리고 그 덕분에 연계되어 날아오는 스킬도 쉽게 피하며, 반격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시간 내에 정명을 잡지 못한 한국 선수들은 타워 다이브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적을....]

-우오! 우오오오오!

-닌자@@*@&원탑!

-최고의&*&@@*플레이!

기묘할 정도의 움직임에 북미의 해설자들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는 말을 한 본인들만 알 수 있는 그런 이상한 괴성.

그리고 그런 슈퍼플레이에, 한국 해설자의 입까지 떡 벌어졌다.

“와, 유정명 선수가 저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요? 우리 예능프로에 나왔을 때는 그냥 재미있는 사람인가보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한국의 정상급 선수나 보여줄 수 있는 움직임인 것 같은데. 그치? 운이라도 대단해.”

그 한 번으로, 상황이 뒤집혔다.

크게 한 번 실수를 하니, 한국 선수들의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게임은 점점 후반으로 가기 시작했고, 시간은 점점 흘러만 갔다.

-생각지도 않은 장기전이네요. 이제는 누가누가 실수를 하지 않나 싸움입니다.

-아, 지금 새로 들어온 소식인데요, 트래픽 과부하로 인하여 트이치TV의 연결이 끊기고 있다고 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30분, 40분. 그리고 50분이 넘어가자, 카메라에 잡힌 한국 선수들은 딱 보기에도 상당히 지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OMA선수들은 약이라도 했는지, 집중력이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집중력을 바탕으로, 초중반에서 손해 봤던 것들을 조금씩 메꿔나가기 시작했다.

-서플라이 선수, 또 끊겼습니다. 이거 실수입니다. 이번은 그다지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실수가 누적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거든요.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무척 좋지만요!

-본인도 속이 타는지, 물을 벌컥벌컥 마시네요. 힘들만 하죠. 벌써 50분이 지났는데. 그에 반해서, OMA선수들은 정말...강철체력이네요. 무시무시합니다. 이게 바로 승리에 대한 집념인가요?

죽죽 늘어지는 후반전.

대치상황에서 눈치만 보던 정명은 상대방의 탱커가 포지션에서 이탈했음을 깨닫고는, 버럭 오더를 내렸다.

“야, 지금이다. 당장 돌격해! 지금 당장!”

“어, 어? 응!”

곧바로 OMA가 원하는 타이밍에 한타가 이루어졌다.

한국 선수들은 정명의 탈주닌자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에, 세 명이 달라붙어 온갖 스킬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정명 또한 눈에서 빔이 나갈 정도로 뚫어져라 화면을 노려보며, 손의 감각에 집중했다.

“죽어, 새끼야! 죽어!”

......

그리고 잠시 뒤.

정명의 시야에 메시지창이 정신없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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