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66화 (66/226)

< 21.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 (3) >

당연하게도, 에일리버가 자신들의 형제팀 TBM을 부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TBM와 OMA의 정식 매치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TBM에게 ‘저 녀석들 좀 혼내줘’ 하며 징징거릴 바에야 남자를 그만두는 게 나을 테니까.

그 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 새 TBM과 OMA가 경기를 펼치는 개막전이 다가왔다.

정명은 캐스터와 우연히 입구에서 마주쳤고, 방송국 주변을 슬슬 걸으며 바글바글한 인파를 둘러보았다.

“와, 사람 진짜 많네요. 혹시 사람 많아 보이게 하려고 관계자 가족들 다 부른 것은 아니죠?”

“하하, 당연히 아니죠. 사실 오픈빨이라고 해야 할까, 개막전에는 원래 사람이 많아요. 티켓도 한참 전에 매진이고.”

그렇게 정명과 캐스터가 밖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정명의 앞으로 무척이나 눈에 띄는 사람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검을 든 남자와 보석이 박혀 있는 마법 봉을 들고 있는 무리들.

게임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명을 알아봤는지, 이쪽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그 뒤이어 들린 소리만 아니었다면.

“야! 지금 13번 출구에 TBM 선수들 도착했대! 빨리 가자!”

“어 진짜? 나도 갈래!”

그런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13번 출구로 몰려가기 시작했고, 옆에 서 있던 캐스터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기운 내세요. 원래 TBM이 인기가 많은 걸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캐스터의 말에도 정명은 어깨를 당당히 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괜찮아요.”

“그런 것 치고는 조금 시무룩해 보이는데요.”

“벌써 들켰나? 하하. 솔직히 OMA도 인기가 꽤 올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따라잡기에는 멀었나 봐요.”

“글쎄, OMA가 TBM보다 인기가 많아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 보다는 TBM선수들을 암살하는 게 빠를 것 같네요. 농담입니다.”

그렇게 농담을 하던 캐스터는 이제 준비를 해야겠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혼자 남은 정명 또한 자리를 벗어나 선수 대기실로 가려 했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정명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귀가 달려 있는 머리띠와 푹신푹신해 보이는 하얀 꼬리.

아까 지나갔던 코스프레 무리 중, 불여우 캐릭터 분장을 한 사람이 정명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불여우는 정명을 보고는 아는 체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정명선수. 같이 사진 찍어줄 수 있어요? 대신 이번 경기, 응원해드릴게요.”

정명은 그럼 그렇지 하고 웃으며 답했다.

“예. 물론이죠. OMA 팬이신가봐요?”

“아뇨, 꼭 그런 건 아닌데 약팀을 응원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OMA를 응원하려고요.”

“아, 예. 약팀... 어쨌거나 감사합니다.”

불여우는 정명과 사진을 찍고, 그것을 바로 SNS에 올려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희희낙락하며 좋아하는 불여우와 헤어지기 전.

정명은 잠시 망설이더니 손으로 여우녀의 뒤편을 가리켰다.

“그 꼬리분장이요. 잠깐만 만져 봐도 될까요? 푹신푹신해 보여서.”

......

잠시 뒤.

선수 대기실로 들어가기 전에 정명은 찬물로 세수하며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과거의 왕]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개막전.

사람들은 모두 TBM이 이길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예상을 부수고, 당신의 존재를 당당히 알리십시오.

*달성 조건 : TBM과의 개막전에서 승리 *보상 [택 1]

1. 일주일 동안 팀의 인기가 200% 증가합니다.

그리고 팀 TBM의 팬 일부가 OMA의 팬으로 돌아섭니다.

2. 일주일 동안 사용자의 인기가 200% 증가합니다.

그리고 TBM 선수의 팬 일부가 사용자의 팬으로 돌아섭니다.

‘보상은 한개만 선택할 수 있다고? 이런 건 또 처음이군.’

퀘스트를 확인한 정명은 곧장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이제는 노닥거릴 시간이 없으니까.

그리고 조시는 정명이 선수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형, 밖에 팬들이 줄서있는 것 봤어요? 진짜 많이 왔던데.”

“어, 아까 보고 왔어.”

“그러면 그 사람들이 대부분 TBM 응원하는 거는요?”

조시의 한탄 섞인 물음에, 정명은 꼬리의 감촉을 떠올리며 말했다.

“어, 그것도 아까 보고 왔다. 그래도 열 명중에 한 사람은 우리를 응원하는 것 같더라.”

그 대답을 끝으로, 정명은 의자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잘 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명이 보기에 TBM의 실력은 지난 윈터리그 때와 똑같았다.

바뀐 것은 TBM의 미드라이너였던 다이로스선수가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했다는 것 뿐.

정명은 다이로스가 자신의 머리를 밀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복수해줘야 하는데 아쉽군. 뭐 그래도 덕분에 쉽게 가겠어.’

다이로스가 나가고 새로 들어온 사람은 신인 프로게이머 말콤.

정명이 듣기로는 지난 시즌 그랜드마스터 랭킹 1위였다 어쩐다 하는 사람이었지만, 정명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뭐, 새로 등장한 병아리를 밟아주는 재미는 있겠군. 그럼 이제 가볼까.’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무대 앞.

개막전 날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처럼 걸그룹을 불러 공연을 하거나 하는 것은 없다.

북미의 진행은 그것보다 훨씬 담백하다.

스태프. 혹은 선수들이 관객석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인형을 던져주거나 인터뷰를 하는 게 다이니까.

정명은 팬들에게 바나나 인형과 괴물 인형을 몇 개 던져주고는, 바로 부스로 향했다.

@@@@

개막전 첫 경기.

TBM 부스에서는 코치와 선수들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밴픽을 진행하고 있었다.

“역시 에일리버 경기의 정보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군. 전혀 다른 조합이야.”

“좋아. 예상했던 일이니까, 상관없지. 그러면 플랜 A로 간다.”

밴픽이 끝나고, 코치가 부스에서 나가기 전. 코치는 새로 들어온 미드라이너인 말콤의 등을 두드리며 당부했다.

“말콤, 자신감을 갖되 자만하지는 말고. 알았지?”

“걱정 마세요. 피지컬 싸움으로 가면 제가 이기니까.”

말콤의 상대는 지난 시즌, 평범했던 팀인 OMA를 준우승까지 끌어올린 장본인인 유정명.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오더였을 뿐, 피지컬이 특출나다는 평가는 받지 못했으니까.

코치는 말콤의 대답에 컨디션이 썩 괜찮다고 판단하고는, 안심하고 부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잠시, 화면을 본 코치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어야만 했다.

말콤이 라인전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TBM의 오더이자 정글러인 제이드는 그런 상황을 보며 살짝 눈을 찌푸렸다.

“말콤, 너 딜 교환 이상하게 했냐? 왜 이렇게 밀려?”

“죄송합니다. 살짝 긴장 했나 봐요. 조금 얻어맞았네요.”

“지금 커버하러 갈 테니까, 그 틈을 타서 복귀해.”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그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되기 시작하자 제이드의 말에 조금씩 짜증이 배어나왔고, 말콤은 허겁지겁 변명했다.

“저 녀석, 운이 조금 좋네요. 제대로 붙으면 할 만 한데, 상황이 자꾸...”

“운이 좋다고?”

말콤이 보기에 정명은 운이 좋았다.

자신의 스킬 쿨 타임이 돌아오기 직전에 딜 교환을 걸거나, 하필 도주기가 빠졌을 때 정글러가 백업을 오거나.

사실, 운이라고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게 반복되면 실력이다.

다만 경험이 부족한 말콤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TBM을 3년간 정상에 올려놓았던 장본인인 제이드는 상황을 바로 눈치 챘고, 즉시 오더를 내려, 말콤을 뒤로 물리게 했다.

“그만. 더 이상 딜교환 걸지 마. 그냥 사려. 네가 당해낼 수 없다.”

“아, 젠장 죄송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러지...”

“별 것 아닌 게 아닌데? 저 녀석, 소문보다 라인전이 강하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OMA는 미드라인의 우위를 바탕으로 승점을 조금씩 얻어내었고, 결국 스코어는 1:0이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TBM이 절치부심하고 시작한 다음경기는 꽤나 장기전이었다.

50분이 넘는 상황에서 두 팀은 맵 중앙에 모여 눈치만 보고 있었고, 서로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한타 상황 직전.

제이드는 극히 조심스러워 하고 있었다. 코치가 신신당부하며 조심하라고 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일단 물러나! 한타로 싸우기보다는 한 명 끊는 것을 노린다.”

“예? 지금 싸워볼만 한 것 같은데요? 우리가 조합도 좋고, 할 만 해요.”

“OMA가 가끔 보여주는 한타력 때문에 그래. 그거는 정말 미쳤다고 할 수 밖에 없더라. 그리고 특히 마지막 경기에서 자주 나온다는 통계가 있으니까, 무조건 조심해야 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제이드가 보기에도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결국 제이드는 각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한타를 걸었다.

“원딜! 원딜 먼저 끊어! 아니, 서포터한테 스킬 쓰지 말고!”

갑자기 벌어진 한타에서 고함소리가 오고간다.

가장 먼저 노려야 할 것은 원딜러.

하지만 OMA의 원딜러는 서포터와의 찰떡같은 호흡으로 간신히 살아나갔고, 그를 노렸던 말콤은 분통을 터트렸다.

“아! 나 죽었어! 원딜 좀 보라니까!”

한타 싸움이 지속되는 시간은 길어야 10초지만, 이번에는 5초면 충분했다.

5초 동안, OMA의 선수들이 TBM 선수들을 쓸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동안 제이드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딱 하나였다.

‘젠장. 실수했다. OMA의 한타력을 조심하라는 코치의 말을 더 들었어야 했는데...’

한타의 결과는 5:3.

열 명의 캐릭터 중에 OMA의 원딜러와 미드라이너만 살아남았고, 그 두 명은 열심히 타워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TBM 선수들이 부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70초.

아무리 두 명 남았다고는 해도, 모든 건물을 깨버리기에는 무척이나 충분한 시간이다.

결국 제이드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후, 시발. 졌다.”

@@@@

-GG! 마지막 한타에서 승리하며 OMA가 TBM을 꺾습니다!

-리빌딩에 관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는군요!

그동안 TBM이 무패행진을 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개막전 같은 큰 무대에서 TBM을 꺾어버리는 것은 의미가 있다.

OMA선수들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승리를 자축했고, 정명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명이 부스에서 나오자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멍한 표정으로 굳어있는 팬들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그런 사람들을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TBM이 져서 충격 받았나보군. 좋아, 좋아. 아주 보기 좋은 모습이야.’

딱 보기에 OMA의 승리를 기뻐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 정도.

그리고 정명의 눈에 아까 봤던 여우녀가 환호하며 꼬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물론, 엉덩이에 붙여놓았던 꼬리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꼬리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정명은 그쪽을 보며 잠깐 손을 흔들어주고는 무대 중앙으로 나왔고, 정명에게 리포터가 다가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TBM이 지난 시즌들과는 달리 절대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는데요, 정명 선수는 TBM에게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그거는요......”

지금까지 TBM이 북미의 맹주로 이름을 떨칠 때는 경쟁상대가 GLG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GLG 외에도 다른 경쟁자가 많은 상황.

정명은 마치 한국처럼 실력의 상향평준화가 온 것일 뿐이라 운을 떼며 말했다.

“그래요, 딱히 그들이 연습을 게을리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 마디로 말해서, TBM과 GLG가 다 해먹던 시절은 끝났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 TBM 팬들이 들으면 무척 싫어할 만한 말인 것 같네요. 혹시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은?”

“제가 슬슬 개인방송 다시 시작할 건데, 많이 찾아와 주세요. 이상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

오늘의 모든 일정을 끝낸 정명은 차 안에서 메시지 창을 띄우며 퀘스트 보상을 고르기 시작했다.

[과거의 왕 퀘스트 완료!]

오랫동안 최강자로 군림했던 TBM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쓰러트렸습니다.

콘크리트 같았던 TBM팬들의 동요가 시작됩니다.

*보상을 선택하십시오.

퀘스트 메시지가 빨리 보상을 선택하라고 재촉하는 듯, 메시지가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명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손을 움직였다.

‘좋아. 1번하고 2번 중에...이게 좋을 것 같네.’

그리고 정명은 보상을 선택했다.

......

며칠 뒤, 주말.

정명은 자신의 팬 카페에 들러,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들에게 LOH 장난감 캐릭터를 하나씩 선물했다.

돈이 어디선가 들어왔기 때문이 아니라, 개막전에서 TBM을 꺾은 것을 기념 삼아 회원들에게 간단한 선물이라도 사주기로 한 것이다.

‘돈이야 뭐, 나중에 또 벌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월급이 탈탈 털린 정명은 바로 트이치TV를 켰다.

쓰는 것이 있으면, 버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오랜만의 개인방송 영업이었다.

“오랜만에 켜는 거라 사람이 많이 볼지 모르겠네. 이거는 조금만 방송이 뜸해도 시청자수가 확 빠지니까...”

하지만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방송 랭킹 5위까지 치고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정명의 방송에 들어온 시청자들은 정명이 방송을 시작하기 전, 채팅방에서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정명이 TBM을 이긴 게 시기가 아주 적절하네요. 다음 주에 올스타전 투표라는 것을 한다던데, 잘 하면 정명이 뽑힐 수도 있겠어요!

ⓒ 추어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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