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올스타전과 개인방송 >
정명의 개인방송은 오랜만에 방송했음에도 사람이 북적거렸다.
TBM을 격파하고 난 직후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정명은 메시지 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2번 보상을 선택했습니다.]
팀의 인기 대신, 개인의 인기를 높였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어쩌면 팬들은 당신의 팀을 원맨팀이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총 553명의 TBM 팬이 당신의 팬으로 갈아탔습니다.
*일주일 동안 사용자의 인기가 200% 증가합니다.
‘내가 이 팀에 공무원처럼 박혀 있을 것도 아니고, 팀의 인기를 올려봐야 뭐하겠어.’
정명이 개막전에서 TBM을 꺾고 받은 보상은 개인의 인기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이 팀이 정명 자신이 만든 팀이었다면 모를까,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는 0.1%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명은 메시지 창에서 고개를 돌려, 채팅방으로 눈을 돌렸다.
방송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이었지만, 채팅방에서는 올스타전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올스타전은 또 뭐야? 처음 들어보는데.
-공지 떴음. 각 지역에서 라인 별로 뽑은 뒤, 다른 지역 올스타랑 붙인다더라. 대박.
그리고 정명 또한 올스타전에 대한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정명을 포함한 다른 게이머들은 진작 올스타전에 대한 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올스타전이라. 이제 일반 사람들에게도 공지가 올라갔나보군.’
LOH가 생긴 이후로 열리는 첫 번째 올스타전.
그것은 이번 가을 월드챔피언십 경기가 펼쳐지기 전, 이벤트 형식으로 하는 경기였다.
북미, 중국, 한국, 유럽의 대륙에서 각각 투표를 통해 다섯 명의 선수들을 뽑아 팀을 짠 뒤, 경기를 펼치는 방식이었다.
정명은 개인방송 장비를 확인하고는, LOH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올스타전에 관한 공지를 확인했다.
“다들 올스타전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네요. 내용만 간단하게 읽어 드릴게요. 투표 날짜는 오늘부터고, 올스타전에는 한 팀당 두 명 까지만 나갈 수 있다. 팬들은 탑, 미드, 바텀, 정글 라인의 대표로 나갈 사람을 뽑으면 됩니다 라고 적혀 있군요.”
정명이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스크롤을 죽죽 내리자, 근엄한 표정과 도발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선수들의 사진이 보였다. 스프링리그가 시작되기 전, 방송국에서 찍어둔 프로필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홈페이지에 자신의 아이디로 로그인하더니, 자신의 사진을 찾아 투표를 눌렀다.
-뭐냐 ㅋㅋ 방금 자기한테 투표한 거?
-그럼 당연히 자기한테 투표하지, 너 같으면 딴 놈한테 표를 주겠냐?
정명 또한 살짝 민망했기에 헛기침을 큼큼 했지만, 이내 당당하게 말했다.
“여러분. 제가 북미 미드라인 대표로 올스타전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저 아시죠? 제가 SAO 시절부터 팀의 성적을 엄청나게 끌어올렸다는 것을. 그러니까 저를 뽑아주세요. 가서 다 쓸어버리겠습니다.”
정명은 돌려 말할 것 없이, 솔직하게 가고 싶다고 어필했다.
이쪽 지역에서는 우물쭈물 돌려 말해 봐야 소심하게 보일 뿐이었으니까.
‘원래는 별 생각 없었는데, 다이로스가 없으니 욕심이 난단 말이지.’
사실 올스타전이 일반에 공개되기 전, 선수들 사이에서 미드라인에 갈 선수로 유력하게 거론되었던 선수는 TBM의 다이로스 선수였다.
실력도 상당하고 북미에서 오랜 기간 인기를 쌓아 올린 선수이기에 정명으로써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이기도 했다.
‘물론 그 녀석이 게이머를 은퇴하기 전의 이야기였지만.’
다이로스가 은퇴하고, 유력한 당선 후보가 사라졌다.
때문에 다른 미드라인 선수들은 ‘혹시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정명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 또한 앞 다투어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개인방송에서 읍소하기 시작했고, 올스타전 투표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져만 갔다.
......
그러나 며칠 뒤.
정명은 투표 현황을 확인하며 신음성을 흘렸다.
“휴, 과연 몇 년간 쌓은 인기는 쉽게 넘어설 수 없다는 건가. 4위라니, 이것 참. 차이가 너무 나네.”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던 TBM의 다이로스가 은퇴를 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뒤를 잇는 팬덤인 GLG의 스케스벤이 쉽게 1위를 차지해 버렸고, 정명은 4위로 밀려났다.
사실 올스타전 투표는 실력 투표라기보다는 인기투표이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였다.
물론 중국이나 한국 같은 경우에는 올스타전에도 엄청난 승부욕을 발휘해, 무조건 이길 팀을 구성하고는 했지만 북미는 분위기가 자유로우니까.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정명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무척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올스타전......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방법이 없나?”
뭐든지 처음이 중요하다. 북미 팬들은 처음 올스타전에 뽑혔던 선수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정명이 이렇게 올스타전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별 것 없었다. 유명해지는 게 곧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명은 트이치TV 정산창을 살펴보며 슬쩍 웃음을 지었다.
“개인방송도 슬슬 돈이 되기 시작하네. 2부 리그에 있을 때는 귀찮기만 했는데, 이제는 주말마다 돌려야겠어. 제대로 하면 월급보다 많이 나올 것 같다.”
그리고 개인방송을 하며 얻은 것은 한 가지 또 있었다.
정명은 전에 만났던 BJ첼라와 같이 개인방송을 돌리며 첼라에게 개인방송 노하우를 배워가고는 했는데, 어느 날 퀘스트를 달성했다며 메시지 창이 떴던 것이다.
정명은 퀘스트 완료창을 보며 두 눈을 끔뻑끔뻑 떴다
[개인방송의 정석!]
인기 BJ가 되는 법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보상으로 특성 [여왕벌]을 습득했습니다.
*여왕벌은 ‘달창남’ 특성의 상위호환 특성입니다.
시청자들을 쉽게 매료시키거나, 끌어 모을 수 있습니다.
[특성]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특성은 각각의 선수 개인이 가진 특별한 능력입니다.
특성을 가진 사람과 친해지거나 정보를 얻는다면, 그 특성을 얻거나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됩니다.
‘이거는 생각치도 못한 이득인데? 그래, 너무 욕심 내지 말자. 올스타전은 내년에라도 노리면 되지 뭐.’
그렇게 정명이 올스타전을 포기하고 있을 때 쯤. 정명에게 호재가 생겼다.
원래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던 올스타전 이벤트에 상품이 걸린 것이다.
올스타전에서 우승한 팀 지역 유저 전부에게 레전드급 스킨 하나 증정.
보상이 걸려야 더욱 재미있다는 논리에 따른 결정이었다.
현금으로는 2만 원 상당의 게임 아바타를 준다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가 아닌, ‘나가서 이길만한’ 선수를 뽑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커뮤니티 사이트는 당장 1위 선수를 바꾸라며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1위 스케스벤 대체 뭐냐? 이놈 이거 당장 끌어 내려라
?동감
?투표 취소 같은 것은 없냐? 미치겠다. 내 어긋난 팬심이 레전드 스킨을 못 받게 했어!
-당연히 정명을 뽑아야지. 스케스벤 그 녀석, 지난 윈터때 정명한테 털린 거 기억 안남? 정명은 북미 벗어나서도 잘 할 듯 ?그건 대체 몇 개월 전 얘기? 요즘은 C90의 니어스가 대세임. 정명이 운영은 잘해도, 피지컬은 별로 아닌가?
그 이후로 투표는 인기뿐만 아니라, 실력 또한 고려되기 시작했고, 1위를 고수하고 있던 스케스벤은 순식간에 순위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2위까지 치고 올라간 정명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라? 이거 잘하면 될 지도 모르겠는데?’
현재 3위는 GLG의 스케스벤, 2위가 정명인 상황.
하지만 팬들의 투표에 선수의 실력이 반영되자 웃는 선수는 또 있었다.
C90의 미드라이너이자 5위에 있던 니어스가 무서울 정도로 치고 올라가, 1위를 차지해버렸던 것이다.
투표 마감 2일 전.
정명과 니어스는 표 차이가 0.1%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접전을 벌이고 있었고, 커뮤니티에서는 다중 아이디가 문제니 뭐니 하면서 서로의 팬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팬들이 싸우는데, 선수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니어스는 SNS을 통해, 자신이 올스타전의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니어스 : 이길 사람을 보내야죠. 나이 26살먹은 선수 보내 봐야, 피지컬 딸려서 뚜드려 맞기만 할 겁니다. 그런 것을 원하시나요?
?하긴, 요즘 C90이 잘 나가긴 하니까.
그리고 정명 또한, 공식 SNS계정을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저 피지컬 안 달립니다. 원하시면 증명해 드릴 수도 있어요. 원하시면 1:1 미드전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
다음 날 저녁.
퇴근을 마친 사람들이 속속 트이치TV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명과 니어스. 그 두 사람의 1:1 매치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와 관련해서 열린 방송국은 딱 두 곳.
OMA TV , 그리고 C90 TV.
그리고 올스타전 선발권이 걸린 이 매치에 걸린 관심이 어찌나 컸는지, 이 두 개의 방의 시청자수를 합하면 LOH 정규 리그의 시청자수와 맞먹을 정도가 되었다.
그 시각 OMA 연습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스태프까지 전부 모여들어 정명의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코치는 조심스레 걱정을 내비쳤다.
“1:1이라니, 이건 정말 변수가 많은데 괜찮겠어?”
“그래도 해 보는 게 낫겠죠. 커뮤니티를 보니까, 내 피지컬이 낮다고 몰아가는 분위기던데, 가만히 앉아 당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1:1 경기는 5전 3선승제.
사실 단판이나 3전 2선승제로 하려 했으나, 예상외로 관심이 몰리자 5전 3선승제로 바꿔버렸다.
올스타전도 올스타전이지만, 돈도 중요하니까.
많은 시청자들이 몰리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건은 보통 1:1을 할 때와 같았다.
먼저 타워를 밀거나, 솔로킬을 내거나. 혹은 미니언 100개를 먼저 처치하거나.
너무 게임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둘이 대기실로 들어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밴픽이 시작되었다.
코치는 지저분하게 필기된 수첩을 골똘히 바라보며 끙 소리를 냈다.
“저쪽도 연구 많이 한 모양인데. 우리가 생각해뒀던 픽들을 전부 밴 해버렸어.”
“하지만 설인은 남아있네요. 캐릭터 아끼지 말고, 바로 써버리죠. 이거 쓰면 무조건 이기니까.”
첫 경기는 무척이나 싱겁게 끝났다.
정명이 니어스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카운터 치는 캐릭터를 꺼냈기 때문이다.
설인대 바니걸 검사.
사실 컨트롤도 별로 필요 없이 정명이 설인으로 눈덩이만 던지면 상대편의 피가 쑥쑥 빠졌고, 빌빌대며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그리고 결국 니어스는 5분 만에 항복을 누르며, 분노의 채팅을 보냈다.
-그런 걸로 이기면 좋습니까? 컨트롤로 승부합시다!
“아 네. 기분이 무척이나 좋네요. 하하하!”
그 다음 판에는 당연하게도 설인은 밴이 되었다.
그리고 니어스가 바라던 대로, 2경기서부터는 컨트롤 싸움이 시작되었다.
“헛....”
잠시 뒤. 정명의 캐릭터가 얻어맞자, 옆에 있던 조시가 살짝 소리를 내었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명의 캐릭터가 맞을 때마다 무언가 반응을 내고 싶었지만, 혹시나 정명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침만 꿀꺽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피가 다 빠진 정명은 집으로 귀환하며 혼잣말을 했다.
“역시 만만치 않네. 이 정도 피지컬 가진 애는 북미에서 진짜 드문데.”
하지만 정명은 피지컬이 밀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노련함으로 꾸역꾸역 버텼다. 판단력 스탯이 올라가니, 피지컬이 다소 낮아도 버틸 수는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경기 시간은 점점 길어져, 솔로 킬을 내기보다는 CS를 채우거나 타워를 철거하는 식으로 승패가 갈렸다.
그리고 2:2 상황에서의 마지막 경기.
서로간의 실력이 비슷하다보니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와중, 정명이 방송 마이크에 대고 중얼거렸다.
“제가 CS를 앞서고 있으니, 슬슬 올 것 같네요. 그러면 당연히 나는...잡았다!”
“으아아아! 걸렸다!”
“죽여! 죽여!”
순간, 조용히 있던 팀원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1:1매치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니어스를 죽이기 직전, 정명이 승리의 기쁨을 토해내며 소리쳤다.
“좋아! 올스타전 마지막 남은 티켓은 내꺼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각. 트이치 TV의 시청자수는 25만을 돌파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LOH 정규리그 방송의 시청자수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떠들썩했던 것은 미드라인을 정할 때 뿐 만이었고, 다른 라인에서는 평화롭게 투표가 진행되어, 무사히 다섯 명의 선수를 뽑을 수 있었다.
......
그렇게 정명이 올스타전이 걸린 1:1 매치에서 승리한 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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