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 (2) >
다음 날 저녁.
메타트론이 직접 OMA 연습실에 찾아왔다.
그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들어가자마자 물건의 모습부터 살폈다.
“음. 좋아, 아주 딱 좋은데요.”
“아...그래요. 그것 참 다행이네요.”
정명으로써는 뭐가 그리 좋은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는 말벌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뚜껑을 따며 말했다.
“저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네요. 같이 드시죠.”
그리고 술판이 벌어졌다.
어느새 정명과 메타트론은 말을 놓으며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고, 살짝 취한 메타트론은 조금씩 본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딱히 말벌주를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야.”
“응? 그러면 왜?”
“이런 특이한 걸 좋아하는 거야. 말벌주라니, 한국에서도 보기 힘들잖아?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말이지.”
메타트론은 테이블 한 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술에 절여진 말벌을 보고 있는 아이작이 있었고, 그 옆에는 용기 있게도 말벌주에 도전중인 조시가 있었다.
“보통 미국 사람들은 이런 걸 보며 무척이나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잖아? 그 모습을 보는 게 좋은 거야.”
“어...그래? 성격 참 이상하네.”
메타트론은 솔직하게 말했다고는 했지만, 그의 이야기에 빠져 있는 말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며 구역질을 할 때, 자신이 그것을 당당하게 먹는 것.
메타트론은 그런 반응들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메타트론은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급히 말을 돌렸다.
“아무튼 TBM에 관해서 알고 싶은 거지? TBM은 전통적인 강자야. 북미 팀이 전체적으로 약하다 어쩐다 하지만, 3년 연속 1-2위를 하고 있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지.”
“그래. 그것 까지는 알고 있다. 덕분에 북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이 되었다는 것도.”
“뭐, 우리랑 같이 매번 월드챔피언십에서 박살나고 오긴 하지만 말이야. 거긴 진짜 괴물들이 바글거리니 어쩔 수 없지만.”
메타트론은 그렇게 운을 떼며, TBM을 상대할 때 주의할 점이나 신경 써야 할 점을 몇 가지 늘어놓았다.
“아, 그리고 이건 TBM이야기는 아닌데, 혹시나 해서 말 해둘게. 이번 리그에는 TBM의 형제팀이 나올 거야. 에일리버라는 팀이지.”
“형제팀? 한국에서나 있던 그거?”
형제팀이란, 한 기업에서 두 개의 팀을 키운다는 말이었다.
서로 경쟁하거나 비밀스러운 전략을 연습할 때 유용하게 써먹는 제도였는데, 한국에서나 볼 수 있던 제도이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아. 보통 북미에서 형제팀이라고 하면, 그냥 2군 정도지. 그런데 이번에는 제법 제대로 준비한 모양이야.”
“아, 그래?”
“얼핏 듣기로는 지원을 무척 빵빵하게 했다고 하던데. 무슨 유명한 솔로랭크 고수를 영입했다나?”
그리고 메타트론은 정명에게 에일리버와의 연습게임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걔네들이랑?”
“그 녀석들, 지금은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지, 나중에는 분명 빡센 상대가 될 거거든? 그 전에 밟아놔야지! 1세대 게이머로써, 뭔가 보여 주는 거야!”
하지만 정명은 고개를 저었다.
“너, 조금 취한 것 같은데 걔네들 이겨봐야 무슨 이득이 있겠어? 지면 엄청 쪽팔리고. 이겨도 본전이고. 안 해, 안 해.”
메타트론은 그럴 것 같았다며 정명의 말을 긍정하면서도, 여지는 남겨두었다.
“우리는 연습게임 일정을 코치들이 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데, OMA는 아니잖아? 혹시 생각 있으면 연락 해.”
@@@@
다음 날.
정명은 침대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며 끙 소리를 내었다.
[새싹 밟기]
메타트론이 TBM 형제팀, 에일리버와의 대결을 제안했습니다.
에일리버는 이제 막 1부 리그로 올라온, 재능있는 신생 팀입니다.
그들이 자라서 당신에게 위협이 되기 전에, 싹을 밟아버리십시오.
승리보상 : 800 포인트
*미약한 각인 효과
메타트론에게 전화를 걸어, 퀘스트를 수락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를 거부하더라도 아무런 패널티가 없습니다.
“퀘스트가 뜨긴 했는데...이건 안 하는 게 좋겠지? 고작 800포인트를 얻자고 무리하는 건 좀...”
연습 게임을 하는 것은 상관없다.
문제는 TBM의 형제 팀이라면 분명 TBM이 그 경기를 볼 것이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불리한 싸움인데, OMA의 정보까지 주게 된다면?
‘음......역시 관두는 게 낫겠군.’
정명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히며, 컴퓨터 의자 앞에 앉았다.
팬들이 이번 리그를 어떻게 예측하고 있나 궁금했기에,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어가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커뮤니티 사이트의 반응은 이전과는 달랐고, 그것은 정명을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 토토 사이트 보고 왔는데, OMA에 걸어라. TBM한테 걸어봤자 배당금이 없다. 100달러 걸어서 이겨봐야 1달러나 줄까 모르겠네.
? 1달러 얻기 vs 100달러 잃기. 이 개소리는 무시하고 TBM에 걸어.
“어어? 분위기가 왜 이렇게 됐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OMA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보였다.
사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LOH판에서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팬들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경기 내내 칭찬 받던 선수가 단 한 번의 실수로 온갖 욕을 얻어먹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욕을 먹다가도 슈퍼플레이 한 번이면, 게시판은 순식간에 찬양 모드로 들어간다.
때문에 모 해설가는 이를 두고 재평가는 1초면 충분하다고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정글과도 같은 곳인데 최근 불안정한 리빌딩과 토너먼트에서 기권을 던진 OMA가 좋은 평가를 받을 리 만무했고, 정명은 결국 커뮤니티 사이트를 꺼버렸다.
“젠장. 태세변환이 워낙 빠른 곳이니까 우리가 한 판 이기면 다시 평가가 좋아 지겠지? 물론 그 전까지는 안 좋은 말로 도배되고 있겠지만...”
악성 댓글 몇 개를 받은 정명은 자신의 팬 카페로 들어가, 초조하게 게시물 몇 개를 읽었다.
일종의 힐링 이었다.
정명아뭐해 : 그래도 OMA는 잘 할 것 같네요.
사실 OMA를 믿기보다는 정명을 믿는 거지만요 ㅎㅎ. 보기에는 무척 이상한 리빌딩이지만, 분명 이유가 있겠지요.
회원 수 550명의 자그마한 카페.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정명이 한창 물어뜯기고 있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정명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주고 있었다.
“휴, 그래. 여기서까지 욕먹으면 너무 슬프지. 나중에 보너스 받으면 이 사람들한테 선물이라도 사 줘야겠다.....”
정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터넷 창을 닫았다.
그 뒤, 정명은 골치 아픈 인터넷은 관두고, 바보상자인 TV를 켜며 소파에 누웠다.
TV 게임 채널에서는 해설자와 현직 게이머가 모여 스프링 리그를 예측하고 있었는데, 마침 OMA의 얘기가 나오는 중이었다.
“저는 TBM에 한 표 걸겠습니다. 확률은 90%정도. 아무리 봐도 OMA가 이길 요소가 없어요.”
“저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해설가, 프로들 사이에서도 TBM이 이긴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요즘 정명의 폼도 예전 같지 않은데 팀 리빌딩까지 겹쳐,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잠시 뒤.
화면이 전환되며 특별 게스트로 TBM의 형제 팀, 에일리버가 첫 등장을 했다.
정명은 바로 어제 언급했던 에일리버가 방송에 나오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고, TV의 볼륨을 키웠다.
그리고 그 동안 해설자는 에일리버에게 이번 스프링 리그 개막전인 OMA와 TBM의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묻고 있었다.
“당연히 TBM이 이기겠죠. 아, 이건 제가 TBM의 형제팀이라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고요.”
“형제팀이라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혹시 다른 근거가 있나요?”
“TBM도 다이로스 선수가 은퇴하고 젊은 선수가 들어왔지요. 이제 조금씩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요. 아, 제가 기존 게이머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솔직히 이 판에서 나이 먹고는 힘들잖습니까. 반응 속도도 떨어지고.”
그 말에, 다른 선수가 맞장구쳤다.
“그렇죠.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다이로스나 싱글리프트 등...1세대 게이머들의 시대는 끝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OMA의 정명은 1세대 게이머라기엔 경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나이로만 봤을 땐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니까요. TBM이 무난히 이기리라고 봅니다.”
“리빌딩도 이상하게 해서는...쯧쯧, OMA 구단주가 요즘 돈이 없나 봐요.”
OMA에 대한 트래시 토크가 끝난 뒤.
방송에서는 에일리버 선수들에 대한 집중조명이 계속되었다.
그들이 프로가 되기 전 랭킹, 현재 연습게임 승률, TBM이 말하는 에일리버 선수들의 평가.
노골적인 에일리버 띄워주기에, 정명은 얼굴을 찌푸렸다.
“에이씨, 뭐야. 광고였어? 어쩐지 쟤네들이 너무 나온다 싶더라.”
신생 팀이 나오면 자주 있는 일이다.
이런 방송에서 자연스레 얼굴을 알려야 개인방송의 수입도 늘어나고 팬들도 늘어날 테니까.
즉, 어떤 팀이나 선수의 상품성은 경기 성적에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쟤네들이 그렇게 잘 하나? TBM에서 밀어주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풀리그에서는 TBM을 이기나 에일리버를 이기나 얻는 승점은 똑같았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들의 천적이 되어주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TBM을 잡기 전의 몸 풀기 정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잠시 후, 정명은 메타트론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아직 시즌이 시작되지 않아 시간이 많기에 연습게임 일정은 빠르게 잡혔다.
상대는 TBM의 형제 팀 에일리버.
중국인 웨이홍과 정명을 제외한 사람들은 TBM이라는 명성 값 때문에 무척이나 긴장하는 듯 했다.
그리고 코치는 상대 아이디를 보자마자 ‘앗’ 하는 소리를 냈다.
“저 미드라이너, 아는 녀석이군. 우리가 오퍼를 넣었었던 녀석이야. 우리의 제안에 답장도 안 하더니, TBM으로 갔군 그래.”
“흠, 그래요? 꽤 잘 하는 녀석인가 봐요?”
“지난 그랜드마스터 리그 3위를 했던 남자야. 피지컬이 엄청나게 좋다고 평가되었던 녀석이지.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
명분은 그저 평범한 연습게임이었지만, 각자의 속내는 달랐다.
정명의 입장에서는 에일리버를 박살내어 승점 자판기를 하나 추가하고자 했고, 에일리버 입장에서는 리빌딩한 OMA의 전력과 정보를 알고 싶어 했다.
그런 에일리버의 속내를 정명또한 이미 알고 있었기에, 밴픽은 극히 평범해졌다.
지난 윈터리그에서 OMA가 꺼냈던 캐릭터들.
OMA는 그 조합을 그대로 들고 나온 것이다.
사실 그것은 유행에도 맞지 않고, 최근 맹연습중인 캐릭터는 따로 있었지만 이런 경기에서 전력을 내보일 수는 없었으니까.
게임이 시작된 뒤.
정명은 상대 미드라이너가 피지컬이 대단한 선수라는 코치의 말에 바로 동의했다.
정명의 현재 피지컬은 북미에 몇 없는 70+.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 미드라이너 웰컨은 정명의 공격들을 잘 받아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피지컬은 좋은데? 이제 막 프로게이머가 됐으면서 이런 컨트롤이라니. 놀랍다 놀라워.”
방송에서 보기로는 에일리버의 평균 나이는 19살 정도. 피지컬이 정점을 찍을 때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라인전은 피지컬만으로 하는 게 아니었지만.
정명은 상대방 속박스킬에 일부러 맞아주며, 부시에서 대기하고 있는 조시에게 오더를 내렸다.
“지금이다 지금! 뒤로 돌아와. 나는 빠질 테니까, 네가 마무리 해!”
그리고 정명이 설계한 대로 너무나 잘 따라와 준 웰컨은 두 번째로 갱킹을 당하며, 0킬 2데스가 되었다.
이제는 솔로킬 까지 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차이를 벌린 것이다.
정명은 그런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거는 뭐 무력만 높은 여포도 아니고, 떡밥을 내리는 족족 물어뜯는구나.”
“예? 여포요?”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곧바로 한번 더 와. 이번에는 상대 정글러가 백업해줄게 뻔하니까, 둘 다 잡아버리자고.”
그 이후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피지컬만이 장점인 젊은 선수들이 라인전에서 이득을 보기는커녕, 손해를 보고 중반으로 넘어간 것이다.
당연하게도 운영 싸움으로 들어가니 에일리버 선수들은 경험 많은 오더인 정명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OMA는 넥서스를 부수며 30분만에 승리를 따 내게 되었다.
[새싹 밟기 퀘스트 달성!]
*800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잔여 포인트 [4875]
*각인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 팀 에일리버는 당신을 만날 때마다 미세하게 위축될 것입니다.
*패배를 누적시켜 각인 효과를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상세효과 : 사용자와 경기를 펼칠 시, 모든 능력치 4% 감소 *에일리버가 사용자의 팀을 2:0으로 잡아낸다면 각인효과를 완화하거나 해제할 수 있습니다.
게임이 끝나자, 정명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폈다.
“하여간 우리가 리빌딩했다고 개나 소나 OMA를 허접으로 본다니까. 꼭 이렇게 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에일리버는 TV에서 인터뷰 한 대로, 리빌딩한 OMA를 상당히 무시하던 팀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렇게 만만하게 봤던 OMA에게 처참하게 진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에일리버 선수들은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 판 더 합시다! 원래 세 번은 해야 하는 것 아시죠?
-이기고 도망 가냐? 한 판 더 해라!
-전화 받아 봐요. 욕 나오려고 하니까.
하지만 정명은 이미 얻을 것은 모두 얻었고, 더 이상의 정보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한 판 더 한다고 해봐야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기에, 마이크에 대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 됐고, 너네 엄마 TBM이나 불러와. 너희로는 게임이 안 돼.”
ⓒ 추어탕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