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61화 (61/226)

< 19. 실력 증명 (2) >

16개의 팀이 참여하는 마스터즈 리그 오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팀이 여럿 참여하고, 또 광고도 많이 했기에 팬들의 기대감은 상당히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그 분위기는 정명 또한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팬클럽 게시판에서도 이번 마스터즈 토너먼트의 이야기로 한창 열띤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시는 열심히 팬 관리를 하는 정명을 보며 흐흐 웃었다.

“팬클럽이라니, 조금 신기하네요. 자신의 팬클럽이 있는 사람 북미에서 다섯 명 정도 있나? 싶던데.”

“아직은 500명밖에는 안 되지만 말이야. 뭐, 그런 소수 정예이기 때문에 이렇게 일일이 소통해줄 수도 있는 거지만.”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대회 준비는 잘 되어 가냐, 요즘 쓸 만한 캐릭터는 뭐냐 같은 물음에 하나하나 답변을 달아주기 시작했다.

“이번 개막식에서 무슨 팀이 이길 것 같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다들 처음 보는 팀인데.”

그리고 역시나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새 팀원들은 쓸 만 하냐 는 물음이었다.

정명은 중국인 팀원하고 잘 지내냐는 질문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우리 중국인 팀원은 뭐 하고 지내냐고? 글쎄...”

정명의 옆에서는 무언가 화면을 보며 열중하고 있는 웨이홍의 모습이 보였다.

정명은 그가 개인방송이라도 하는 건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웨이, 개인방송 해요?”

“아니, 안 한다. 대신 본다.”

OMA에 새로 들어온 중국인 탑솔러 웨이홍은 영어가 어색한지 말을 끊거나 더듬거리며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팀원들의 말은 잘 알아들었다. 한국처럼 주입식 교육을 받았는지, 말은 잘 못 해도 듣기나 문법에는 강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웨이홍의 말에 호기심을 느낀 정명이 그의 모니터를 들여다보자, 어떤 여자의 하이톤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그 목소리는 꽤나 듣기 좋아서, 마치 성우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느껴졌기에 정명은 솔직히 조금 놀랐다.

“오. 목소리가 좋다. 성우 같아.”

그리고 그런 정명의 말에 대한 반응은 웨이홍이 아닌, 조시에게서 나왔다.

“그렇죠? 요즘 트이치TV에서 제일 핫한 BJ에요.”

“뭐야, 너도 아는 사람이냐?”

“모르는 게 이상한 거예요. 정명은 개인방송 하면서 다른 BJ랑 친목을 안 하니까.”

“귀찮잖아. 솔직히 개인방송 돌리는 것도 귀찮은 판인데.”

정명은 계약서에 적힌 의무 방송 시간을 채우기 위하여 가끔씩 개인방송을 하고는 했는데, 솔로랭크 방송을 열 때마다 딱 게임만 하고 껐다.

물론 시청자들과 소통정도야 하기는 했지만 다른 BJ의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같이 게임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조시는 정명에게 트이치TV 랭킹을 높이려면 다른 BJ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지적하며, 첼라라는 BJ의 칭찬을 연발했다.

“괜히 랭킹 1위 BJ인게 아니라니까요? 들어보시면 알아요. 말투가 엄청 귀여워요.”

“아니 그런 얘기는 됐고, 그래서 실력은 어떤데? 얼굴만으로 1위를 했다고 하지는 않을 거지?”

“으음. 솔직히 실력은 보시다시피 그냥 그래요. 실력으로 따지면 저기 저 미드라이너가 더 대단하죠. 지난 시즌에 그랜드마스터 랭킹 3위를 찍은 고수인데.”

“거기다가 우리 다음 편 상대기이도 하지.”

OMA의 첫 상대는 트이치 얼라이언스. 정명이 지금 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인기 BJ들이 모인 팀이었다.

아마추어대 프로의 싸움이었지만 BJ들이 꽤 유명한 사람인지, 게시판에서는 과연 그들이 OMA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난 저 첼라라는 BJ가 제일 잘 하는 줄 알았는데. 게시판 보니까 저 사람 이야기밖에 없었고.”

“음...첼라는 팀에서 가장 잘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구심점이라고 보면 되요. 저 사람이 팀을 모았죠. 사람을 홀리는 기술이 상당한 사람이에요. 저 여자에 안 넘어간 사람이 없다니까요?”

그리고 조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첼라라는 BJ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휴...또 죽었어. 첼라는 바보에요. 매복인 거 뻔히 보이는 거였는데...잉...

애교를 부리는 듯한 첼라의 말에, 정명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오 씨...내가 저딴 말투 제일 싫어하는데. 야, 조시. 너 저런 거 좋아하냐?”

하지만 첼라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정명의 의견과 다른 듯 했다.

그녀가 게임에서 잘 풀리지 않아 시무룩해하자, 달풍선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정명의 앞에 있는 웨이홍 또한 달풍선을 결제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정명은 고개를 저으며 발을 떼었다.

그리고 정명이 뒤돌아서 화장실 문을 연 순간, 방송에서 왠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 마라. 북미 최강 원딜 나가신다!

‘어라? 저거 피터 목소리 아닌가?’

@@@@

개막식 첫날.

정명과 다른 팀원들이 방송국에 도착하니, 사람이 상당히 많이 모여 있었다.

에리는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을 둘러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람이 엄청 많은데...원래 이렇게 많았나?”

“맨날 이렇게 많은 것은 아니고, 적당히 인기 있는 팀 둘이 붙으면 이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확실히 평소보다 많기는 하네요.”

정명은 관계자용 입구를 찾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메시지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클럽 마스터즈 16강에서 승리하십시오.]

보상 : 1500포인트

난이도 : 쉬움

‘뭔가 메시지 형태가 달라진 것 같군. 방식이 토너먼트이기 때문에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선수들이 모이는 선수 대기실.

열 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정명은 상대편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처음 만나는 두 팀은 선수 대기실에서 서로 악수하며 통성명을 하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명은 소문으로만 듣던 첼라와 악수하며 얼굴을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OMA의 오더를 맡고 있는 유정명이라고 합니다.

“와, 요즘 명성이 자자한 실력파 선수시죠? 첼라는 당신과 만나서 너무너무 기뻐요!”

“하하, 저도 첼라씨가 누군지는 알아요. 인기 BJ이시잖아요.”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한다. 썩 나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방법이었다.

그녀는 정명의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무척이나 기뻐하며 나중에 같이 방송을 하자 제안했다.

“나중에 꼭 친구추가 해주세요. 정명과 같은 유명인은 언제나 환영이니까요!”

......

그리고 한 시간 뒤, 밴픽이 시작되었다.

정명은 내심 오늘 경기는 쉬어가는 판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밴픽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판단을 수정해야만 했다.

‘차라리 날 저격해서 밴 했으면 좋았을 텐데 정글러를 다 밴 해버렸네. 솔직히...좋은 판단이군.’

OMA를 잘 모르는 팀들은 OMA의 에이스를 겨냥하여 미드라인 캐릭터를 위주로 밴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썩 좋지 않은 판단이다. 정명은 다룰 수 있는 캐릭터가 무척 많기에,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너먼트 첫 상대인 BJ팀들은 달랐다.

그들은 정명, 그리고 새로 들어온 팀원들의 라인을 과감히 배제하고는, 조시가 좋아하는 캐릭터 위주로 밴을 했던 것이다.

“생각을 꽤 잘 했네. 솔직히 BJ라고 하기에 대충대충 할 줄 알았는데 다시 봤어.”

가볍게 생각한 게임이 시작부터 꼬이는 듯 했지만 밴픽은 시작일 뿐. 뒤집을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철저하게 조사한 것은 밴픽 뿐만이 아니었다.

게임시작 10분 째.

조시의 움직임 경로, 그리고 그의 습관 따위를 잘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조시가 정글에서 몬스터를 잡고 있을 때마다 상대 정글러가 난입해, 뒤통수를 쳤고, 조시는 벌써 두 번이나 킬을 내주고 말았다.

조시는 짜증이 났는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오, 이거 경로가 다 읽히네. 죄송합니다. 잘 안 풀리네요.”

“괜찮아. 네가 말렸으니까 갱킹은 됐고, 혼자 몬스터나 잡으면서 레벨 좀 높여. 내가 케어해줄게.”

그리고 해설자들은 아마추어들의 약진이 기꺼운 듯, 그들의 입장에서 해설을 하며 흥을 띄웠다.

-이거 혹시 전 윈터리그 준우승 팀을 BJ팀이 잡는 것은 아니겠죠? 그렇다면 완전히 대 이변인데요!

-거기다가 BJ 첼라가 공약을 내걸었었는데요, 이번 리그에서 이기면 다음 방송은 수영복을 입고 하겠다 합니다. 과연 그 공약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인지!

해설자들은 신이 나서 외쳤지만, 뜻밖에 상황에 맞닥뜨린 정명은 죽을 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티는 내지 않았다. 리더라는 위치가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정명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오더를 내렸다.

“지금 상황은 바텀 듀오가 꽤 괜찮네. 타워를 밀고, 드래곤 싸움을 유도한다. 탑은 계속 붙잡아 두고 있어. 절대로 텔레포트로 합류하게 두지 마. 무조건 4:4로 싸운다.”

그리고 20분 뒤.

OMA는 겨우겨우 한타 페이즈로 넘어갈 수 있었고, 거기서부터 반전이 시작되었다.

솔로랭크만 하기 때문에 BJ팀은 상대적으로 팀워크가 취약했고, 한타 페이즈로 넘어가자마자 OMA에게 조금씩 추월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포터 에리, 원딜러 아이작 대신 궁을 맞고 장렬히 산화합니다!

-하지만 그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아이작이 킬을 쓸어 담습니다. 트리플 킬! 이번 것은 좀 큰데요!

-아...BJ팀 입장에서는 많이 아쉽겠습니다. 결국 GG를 선언하네요!

한 판은 겨우 따냈지만, 그 뒤로도 만만치 않은 싸움이 계속되었다.

BJ팀은 팀워크는 썩 좋지 않아도 개인기만큼은 무척 뛰어난 팀이었기에 라인전에서는 정말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상대팀이 OMA의 운영 스타일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정명은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에리의 운영능력 수치가 70이었지. 손은 늦지만 머리는 빨리 굴러간다는 뜻. 판단을 맡겨도 큰 무리는 아니겠어.’

정명은 자신도 깨닫지 못한, 자신의 운영습관 따위를 상대방이 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때문에 정명은 에리에게 말을 좀 많이 해달라고 주문하며 운영 스타일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이 제일 못하는 것 같아서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에리가 조금씩 조언을 건네는 순간. 분위기는 다시 한 번 뒤집어졌다.

“음...정명. 거기서는 미니언 그만 먹고 캐릭터를 빼 줄래? 아무래도 매복이 있을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정명이 캐릭터를 무르는 것과 동시에, 부시에 숨어 있던 세 명의 캐릭터들이 정명을 덮쳤다.

-으아! 무척이나 아까운 순간이네요. 1초만 늦었어도 바로 잡히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BJ팀 쪽이 매복 실패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죠. 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스팀팩 선수가 2차 타워를 밀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에 OMA는 게임에서 다시 한 번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GG! OMA가 BJ팀, 트이치 얼라이언스를 2:1로 잡고 8강으로 진출합니다!

결과는 2:1 승리.

정명은 조금 아슬아슬한 승리였다고 생각하며, 푸 한숨을 내뱉었다.

‘아, 뭔가 힘드네. 16강 승리 포인트 1500? 이렇게 힘들었던 것 치고는 조금 작은 보상인 것 같군 그래.’

그리고 정명의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또 하나의 메시지가 정명의 앞에 떠올랐다.

[인기 BJ]

인기 BJ가 되는 법에 대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에 관한 정보를 더욱 알아내어, 상점에서 관련 특성을 해금하십시오.

보상 : 특성 [여왕벌] 해금

‘뭐야? 이건. 첼라인지 뭔지랑 만났기 때문에 이런 게 뜬 건가? 아무튼 이건 나중에 보기로 하고...’

정명은 메시지창은 치워두고, 팀원들에게 해야 할 말을 했다.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첫 경기에서 이겨 무척 기쁘네요. 그 기념으로 오늘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야호!”

그런 화기애애한 OMA의 부스와는 달리, 반대편 부스의 분위기는 상당히 암울해져 있었다.

이번 리그는 풀 리그가 아닌 토너먼트이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지면 대회에서 탈락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첼라는 열심히 연습했지만 결국 떨어진 것이 분했는지 훌쩍훌쩍 울음을 흘렸다.

“진짜...흑...열심히...했는데...흑.”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위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 그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물론 정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기에, 정명은 첼라에게 가서 위로를 해주는 대신, 오늘 경기에서 있었던 일을 복기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운영이 너무 힘들었네요.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것 같았어요. 마치 몇 개월 동안, 내 플레이를 지켜봐왔던 것처럼.”

“음...혹시 그거였던 걸까? 확실한 건 아닌데, 내가 지난번에 솔로랭크를 돌렸었거든. 그 때...”

정명의 말에 에리는 머뭇머뭇 한 가지 추측을 꺼내놓았다. 며칠 전, 솔로랭크를 돌릴 때 OMA를 잘 아는 사람을 봤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정명은 바로 에리의 아이디를 검색하며, 그 대전기록을 찾아보았다.

‘11일 대전기록이...여기 있다. 여기서 OMA를 잘 안다는 사람을 봤다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

에리의 대전기록에서 BJ첼라와 피터의 아이디가 있는 것을.

정명은 보고 있던 화면을 껐다.

‘그러니까 이놈이 나에 관한 정보를 다른 팀에게까지 떠벌리고 다녔다는 건가?

흠. 뭐랄까, 역시 이 바닥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것 같네.’

......

그날 저녁.

정명은 피터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리고...

-아 네. 맞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이제는 우리가 같은 팀이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으니까요.

ⓒ 추어탕맛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