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팀 리빌딩 (3) >
“수고하셨습니다. 음...그러니까 Defeat 35 선수 분들?”
“......패배자 35가 아니라, 돌핀 35입니다. D35는 스폰서인 돌핀기업의 이름을 딴 거라고요.”
“아 그래요? 뭐, 그건 관심 없고 아무튼 2부 리그에서 우승했다고 하셨으니, 다음에 만나는 것은 스프링 리그겠네요. 그 때는 이렇게 급조된 팀이 아니라, 정식 팀으로 만날 테니 그때는 더 쉽겠지만. 하하.”
“이런 개...”
정명의 말에 발끈한 토이는 멱살이라도 붙잡을 것처럼 눈을 번뜩였다.
그러나 그 순간, 세인과 눈이 마주친 토이는 얼굴을 붉히며 허겁지겁 도망가 버렸다.
‘싱겁기는. 서서 녀석은 진짜로 내 멱살을 잡았었는데 말이야.’
정명은 혹시 소년의 순정을 박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네요. 이러고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아뇨.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어때요, 저 괜찮았죠?”
“예. 급조된 팀으로 2부 리그 우승팀을 꺾다니...역시 제 눈이 틀리지 않았어요. 당신은 더 높이 올라 갈 거예요. 분명히.”
적당히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세인이 너무나 진지하게 되받자, 정명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이제 다시 선수들을 살펴볼까요. 오늘이 리그 마지막 날은 아니지만, 두 번 올 필요는 없으니까 최대한 둘러보고 가겠습니다.”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시스템에서 나왔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지금이라면 영입이 불가능했던 선수라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라고 했었지, 아마?’
그렇다면 오늘 끝장을 보는 게 좋을 것이었다. 이런 행운은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니까.
그런 시스템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는지 정명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뒤를 돌아 정명을 한 번씩 쳐다봤다.
정명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손가락으로 사람이 몰려있는 쪽을 가리켰다.
“저쪽은 왜 저리 사람이 많은 건가요? 뭐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있나?”
“음...저 쪽은 팀 아메리카노 선수들이 있는 곳이로군요. 이 팀은 설명하는 것 보다는 직접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이렇게 까지 말 하는데, 안 보고 갈 수야 없다.
세인의 말에 호기심이 생긴 정명은 인파를 헤집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명은 보기 드물게도 여자로만 구성된 팀이 경기를 치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세인의 말마따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유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딱히 새삼스럽지는 않군. 송하니가 들어간 팀도 여자 다섯 명으로 구성된 팀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좀...’
하나같이 미인에 풀 메이크업까지. 마치 선수를 얼굴로 뽑았나 싶을 정도의 팀 구성이었다.
물론 그런 것이 문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기를 끌었으면 끌었지, 예쁘거나 잘생긴 것이 절대 나쁘지는 않으니까.
가만히 있어도 시선을 모으는 미녀 5인방의 게임 플레이.
하지만 정명의 눈에는 그저 아마추어 다섯 명이 PC방에서 즐겁게 게임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 문제였다.
‘반응속도가 느리네. 거기다가 맵 리딩이 안 된다. 스킬 타이밍도 이상하고. 이건 조금...개선할 필요가 있군.’
구경할 것 다 한 정명이 다시 사람을 헤치고 인파 밖으로 나오자, 세인은 정명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물었다.
“얼굴로 뽑았나 싶었죠? 저 사람들.”
“예? 아니 그건...”
“솔직히 말해서, 맞아요. 실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화제를 몰고 다니기엔 충분하니까요.”
즉, 기업의 입장에서는 꼭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광고 효과만 누릴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정명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에 만들어졌던 팀을 떠올리고는 말했다.
“제 기억으로는 예전에도 그런 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여자 다섯 명으로만 구성된...”
“알고 계시는군요? 그 때도 기업에서는 상당한 미인으로만 팀을 만들어서 화제를 끌어 모았었죠. 그래요, 그것 까지는 좋았는데 결국 실력이 없으니까 팀이 금방 해체되더라고요. 스폰서 측도 광고 효과는 볼 만큼 봤다고 생각했는지 미련도 없어 보였고.”
“일부러 화제를 모으기 위해 미인들로만 구성해서는, 반짝 광고효과만 보고 팀을 엎는다라...조금 씁쓸하네요. 뭐, 그럼 이만 다른 곳으로 가죠. 내가 필요한 건 최소한 1인분 이상을 해줄 사람이지, 인형처럼 예쁘장하기만 한 선수가 아니니까.”
둘은 그 뒤로도 꽤 오랜 시간 경기장을 둘러봤지만, 정명의 눈에 차는 사람을 발견할 수 없었다.
정명은 어느 정도는 타협하려고 각오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 눈을 내려야 하나 싶을 정도로 쓸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자,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솔직히 조금 실망스럽네요. 이 많은 사람들 중,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쓸 만한 선수들은 이미 채간 뒤니까요. 차라리 선수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시는 게 어떠실지.”
“그러는 게 좋겠죠? 흠...일단 구단이랑 얘기를 해 볼 수밖에. 네 명이서 다음 리그를 치르고 싶지 않다면,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겠네요.”
잠시 뒤, 그 이야기를 끝으로 세인과 정명은 악수를 나누고는 곧장 헤어졌다.
이 경기장에서 계속 죽치고 있어봐야, 시간만 낭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나오려던 정명은 이번만 적용된다는 시스템 메시지를 떠올리며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젠장. 그래, 딱 한번만 더 둘러보자. 아까우니까.’
......
“그냥 집에나 갈 걸 그랬군. 눈 아플 정도로 봐도 못 찾겠다 못 찾겠어.”
세인과 헤어진 후, 정명은 거의 모든 사람들을 전수조사 하며 상태창을 읽었다.
하지만 전부 허탕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오늘의 일정도 다 끝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캐리 하라는 것도 아니야. 기본만 있으면 돼 기본만. 1인분 정도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명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들었다. 이쪽은 영 꽝이라고 말을 해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그 때, 정명의 눈에 띄는 한 꼬마가 있었다. 단발머리의 꼬마는 뚱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저 녀석은?’
처음 보았으나 정명의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그야, 저런 얼굴을 까먹기도 쉽지 않을 테니까.
‘미어스 쿠론...인가? 진짜로?’
조그마한 키에 앳된 얼굴. 여기까지만 보면 웬 꼬마가 경기장에 왔나 싶겠지만, 정명의 기억으로는 쿠론은 나이를 먹어도 저런 얼굴이었다.
거기다가 살짝 부풀어 오른 가슴을 보니, 그렇게 어리지만도 않은 듯 싶었기에 정명은 그녀에게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미어스 쿠론]
피지컬 : 35/86
운영능력 :40/95
팀워크 C
포텐셜 A+
[관심 집중]
*관객 수가 많을 시, 모든 능력치가 7% 상승합니다.
*주목도가 낮은 경기를 치를 시, 모든 능력치가 5% 감소합니다.
송하니에 이어, 두 번째로 보는 천재중의 천재였다. 정명은 그녀의 상태창을 보며 감탄을 감추지 못 했다.
‘와, 역시. 이름 값 하는군. 북미의 희망이라고 불렸을 만 해. 그것도 한 때였지만.’
실력은 북미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으나, 성격이 하도 지랄 맞아 팀 선수들과 여러 번 트러블을 내고는 결국 일찍 은퇴하고 말았던 선수가 바로 쿠론이었다.
정명은 왠지 머리가 아파지는 것을 느끼며 상태창을 닫았다.
‘C90에, GLG에, TBM. 거기다 이 녀석까지? 후, 잘못하면 이번 시즌은 그냥 날려버릴 수도 있겠는데.’
자신의 팀은 약해졌는데, 상대해야 할 팀들은 더욱 강해졌다.
그것을 떠올리니 위가 슬슬 아파왔지만, 그래도 그녀가 어디 팀으로 갔는지는 알고 싶었기에 정명은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쿠론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안녕하세요. 저는...”
“너랑 섹스 안 하니까 꺼져요.”
“예?”
“나 예쁜 것은 아는데, 너랑 사귀거나 잘 생각 없으니까 귀찮게 말 걸지 말라고요. 바쁘니까.”
쿠론은 핸드폰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고, 정명은 왜 그녀가 일찍 은퇴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저년이 왜 유명한 트러블 메이커였는지 1초 만에 이해가 되는군. 오히려 이 녀석이 들어갔던 팀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야.’
황당했지만, 이런 송하니뻘 되는 애랑 진심으로 싸우는 것도 창피한 일이다.
그 대신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라도 얼굴에 던져줄까 고민하던 그 때, 옆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론? 거기서 뭐 하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품을 정리하던 여자스태프 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쿠론은 그 스태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그녀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엄마! 이 새끼가 나 꼬시려고 해. 혼내줘!”
‘엄마라고? 아무리 봐도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정명은 살짝 놀랐지만, 그녀가 조금 일찍 결혼했다보다 생각 하며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명을 혼내달라는 쿠론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엄마라는 사람은 정명을 알아봤는지 정명에게 아는 체를 하며 미소 지었다.
“응? 누구...아! 정명 선수 아니세요? 저 아까 정명선수가 경기 하는 것 봤는데.”
“예. 맞습니다. 그런데 이 꼬마가 말을 걸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요.”
꼬마라는 말에 또다시 쿠론이 발끈했지만, 쿠론의 엄마가 입을 막았다. 그리고 딸아이 대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사과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외모를 보고 직접거리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쿠론이 과민반응을 보였나 보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쿠론, 너도 미안하다고 해야지?”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성격 나쁜 딸 키우느라 힘드시겠어요.”
정명이 사과를 받자, 분위기는 금새 풀렸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헤어졌을 테지만, 쿠론의 엄마 에리는 정명과 만난 것에 신이 났는지 이것저것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나도 한 때는 프로게이머였거든요. 그래서 정명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알아요.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서 2부 리그 우승팀을 꺾다니, 정명 같은 선수가 더 많았더라면 북미도 세계대회 나가서 그렇게 죽 쑤지는 않았을 텐데.”
“오, 프로게이머셨다고요?”
“예. 갤러리아라고 대단한 팀은 아닌데, 여자 다섯 명이서 팀을 짰던 적이 있었지요. 실력이 없어서 1년 만에 해체했지만요. 우리 팀에 정명 선수처럼 오더를 잘 하는 사람 한 명만 있었어도 그렇게 쉽게 해체는 안 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후후.”
하지만 그래도 팀에 들어간 덕분에 아이 줄 용돈이라도 벌 수 있었다며 웃었다.
에리는 상당히 일찍 결혼했지만, 사고로 남편이 죽은 탓에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었기에 팀에서 받은 돈이 무척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정명은 에리가 전 프로게이머였다는 얘기에 호기심이 들어 그녀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미어스 에리]
피지컬 : 40/55
운영능력 : 70/85
팀워크 A
포텐셜 B-
[엄마의 손길]
*같은 라인에 서는 선수는 정신계 상태이상에 면역이 됩니다.
*같은 라인에 서는 선수는 집중력이 15% 증가합니다.
‘어라. 이거 예상 외로 제법...아니, 엄청 좋은데? 피지컬은 낮지만, 서포터로 세우면 딱인 것 아냐?’
정명은 그 상태창을 보며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혹시 프로가 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예? 하지만 제 나이가 벌써 33살인데요. 애 나이가 열여섯 살인데 차라리 아이에게 프로게이머를 시키는 게...”
“프로게이머를 하려면 17살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지금 하는 일보다는 돈이 될 겁니다. 돈 급하시다면서요.”
“어어...정말이요?”
이곳의 모두가 정명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효과 때문인지, 높은 연봉 때문인지 에리는 거의 다 넘어온 듯 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딸이 빽 하고 소리쳤다.
“엄마 미쳤어? 지난번에도 단물만 빼 먹히고 버려졌잖아. 이놈도 똑같은 놈이라고. 믿을 수가 없어!”
에리 또한 보통 때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거절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정명의 말이 무조건 옳은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그녀는 정명의 제안을 수락하며, 늦은 나이에 다시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
며칠 뒤.
처음으로 팀이 한꺼번에 모인 자리에서, 정명은 한명한명 선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에리라고 해. 포지션은 서포터. 미리 말 했듯이, 무척 미인이지. 기뻐해도 좋아.”
“응? 미인이라고 얘기했었어? 미안. 이런 아줌마라서 면목 없네.”
“아뇨. 아닙니다. 엄청 아름다우십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시가 바로 달려들어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명은 그 모습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메이랑 만났을 때도 그러더니...이 녀석은 그냥 가슴 크면 다 좋아하는 거야 뭐야.’
그렇게 떠들기도 잠시.
팀이 막 완성되었지만, 그들은 축하의 파티를 열 시간도 없이, 바로 연습에 들어가야만 했다.
정규리그인 스프링 리그가 열리기 전, 토너먼트 리그가 급하게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참가 팀들을 본 조시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 했다.
“16팀이나 참가? 되게 많구나. 새로 창단한 팀이 많아졌다고 하더니.”
“그러게. 이거 너무 팀이 난립하는 것 아니에요?”
그런 선수들의 잡담에, 코치는 들은 것이 있다는 듯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런 얘기가 나왔다. 앞으로는 팀 창단 조건이 더욱 엄격해질 거야. 지금 당장 만들어진 것 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어...그러면 이 사람들이 전부 정규 리그로 올라오는 건가요? 복잡하겠네...”
조시의 물음에, 코치는 당연히 아니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히 아니지. 경기의 질이 떨어지잖아. 1위 팀과 16위 팀의 실력 차이가 엄청나게 나면 말이야.”
“그러면 어떻게 하는데요?”
“이번 토너먼트에서 솎아내야지. 함량 미달인 팀은 알아서 해체하도록. 그런데 혹시 솎아내지는 것이 우리 팀은 아니겠지? 크하하, 농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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