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팀 리빌딩 (1) >
수많은 자료 중, 가장 눈이 가는 것은 역시 아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서류였다.
정명은 이제는 옛 동료가 된 사람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피터 웽]
피지컬 57/100
운영능력 56/100
*수치화한 능력치는 추측이므로 맹신하지 말 것.
특이사항 1 : 멘탈이 약한 편으로써, 경기 도중에도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음 특이사항 2 : OMA와의 계약 만료 후, 신생구단인 Mass Impact로 이적.
우리는 피터가 윈터시즌에서 2위를 한 공로를 높이 사, 기존 6만 달러였던 연봉을 10만 달러까지 높여주는 것으로 재계약 협상에 임했으나 끝내 거부함.
정명은 피터의 이적 이야기가 적힌 문서를 읽으며 종이를 툭툭 치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기분이 묘하군. 그래도 꽤 오래 호흡을 맞춰왔는데.’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프로는 돈 많이 주는 곳을 향해 갈 수 밖에 없으니까.
때문에 정명이 놀랐던 것은 피터가 나갔다는 사실 보다는, 피터가 생각보다 많은 금액을 받고 팔렸을 거라 추측되었기 때문이었다.
‘연봉이 6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올라가는데도 찼다는 건가. Mass Impact에서는 대체 얼마를 불렀기에?’
서류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궁금하면 물어보면 된다. 비록 피터가 말없이 떠나기는 했지만, 나쁘게 헤어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정명은 바로 피터에게 전화를 걸어 정확한 조건이 어땠는지에 관해 물어보았고, 피터는 대뜸 사과부터 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급하게 결정된 일이라 얘기할 틈이 없었어요.
“미안할 게 뭐있어. 돈 많이 받고 잘 되면 좋은 거지 뭘. 아무튼, 그래서 신생 구단에서 얼마를 부르던?”
-이거는 일단 대외비로 해주세요. 15만 플러스 알파요. 역시 유명한 대기업이 운영하다 보니까 돈이 많은 것 같아요. 스케일이 비교가 안 돼요. 세상이 뒤집어지려나 봐요.
그 이야기를 들은 뒤, 정명은 전화로 물어봐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예상보다 큰 금액에, 입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힘들었으니까.
정명은 그 뒤로 잠깐 잡담을 하고는 피터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연습실로 누군가가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 어? 누 누구...”
조그마한 소리를 내며 들어온 사람은 붉은 머리에 주근깨가 매력적인 OMA 스태프의 막내, 론이었다.
론은 정명과 식탁 위에 있는 자료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서류들을 허겁지겁 모으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보면 안 되는 자료였던 건가? 근데 별 내용도 없더만 뭘.’
론이 서류를 다 챙기고 한숨을 내쉬자, 정명은 그동안 궁금해 했던 내용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래, 선수 모집은 잘 되냐? 듣기로는 세 명이나 나갔다던데.”
OMA를 나간 사람은 피터만이 아니었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둥지를 튼 사람은 원딜러 피터를 포함하여 서포터 그린, 탑 라이너 플루이트 까지 총 세 명. 남은 원년 멤버는 정글러 조시뿐이었다.
론은 정명의 물음에 푹 한숨을 쉬고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한 명은 계약이 됐어요. ITU의 탑 라이너 스팀팩 선수요. 운이 좋았는지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영입할 수 있었어요.”
ITU가 해체되었으니,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선수들이었다.
거기다가 영어도 못 하니 불러주는 데가 없어 중국으로 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OMA 측에서 급하게 사람이 필요해, 선수들 입장에서도 운 좋게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른바 윈-윈 이라고 할 수 있는 계약이었다.
무언가 급하게 처리한 듯 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정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잘 했다고 칭찬했다.
“그래, 잘 했어. 탑 라인이야 어차피 혼자 노는 라인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면 외국인 정원은 벌써 다 찼네? 외국인 용병은 다섯 명 중 두 명만 가능하잖아.”
“그렇죠. 어...정명, 차라리 미국 시민권을 따는 것은 어때요? 충분히 가능하실 것 같은데. 한국에서 활동할 생각도 없으시잖아요.”
“그건 조금 생각해보고. 그보다 다음은? 또 얘기가 되고 있는 사람은 없어?”
“없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선수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많이 나갔기 때문에, 일처리가 조금 늦어지고 있어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은, 막내가 이렇게 허술하게 일 처리를 할 때부터 이미 알아봤던 정명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그 모습들을 보며 아무래도 선수 영입에 관한 건은 이 사람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결국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래. 알 만 하다. 다른 정보도 있으면 더 꺼내 놔 봐. 어떻게 할 지 생각 좀 하게.”
잠시 뒤, 최근 있었던 프로게임계의 굵직굵직한 사건과 팀 내부 사정을 요약해서 들은 정명은 이 상황을 딱 한 마디로 정리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아니, 오히려 이건 시작일 뿐이지만...’
유명 대기업들이 뛰어들어서일까? 전체적으로 프로게이머들의 몸값이 엄청나게 상승했다. OMA가 앞으로 어떻게 구단을 운영할지 걱정될 정도로.
잠시 뒤, 뭐가 그리 바쁜지 서둘러 연습실을 나가려던 론은 잠깐 뒤를 돌아 정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보러가시나요? 데포트 리그요. 그 때가 선수들을 구할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으니, 다들 모일 거예요.”
@@@@
다음 날.
정명은 오랜만에 도착한 방송국이 마치 PC방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방송국이 대회를 위해 제일 넓은 강당을 골라 덩치가 큰 물건들은 전부 치웠고, 최대한 공간을 넓게 만들어서 컴퓨터를 다닥다닥 놓았기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정명은 연습생 시절, PC방에서 리그를 했었던 일을 떠올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정명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정명선수. 공항에서 뵙고 다시 뵙네요. 반갑습니다.”
정명에게 말을 건 사람은 지난번 공항에서 봤던 타 구단의 사람, 세인이었다.
세인은 지난 번 처럼 정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정명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이것 참 우연히 뵙네요. 공항에서처럼...음...우리 우연히 만난 것 맞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당연히 아닙니다. 후후, 그래서 여기는 어쩐 일로?”
정명은 세인의 자연스러운 대답에 흠칫 했지만, 일단 그녀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보기로 했다.
“비행기 타고 와서 피곤한데 낮잠이나 잘까 하다가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해서 바로 뛰어왔는데요. 이건 다 뭔가요?”
“보시다 시피 갑자기 열린 대회입니다. 참가자격 없고, 대회 일정은 10일 정도. 엄청나게 빠듯하지만, 뭐 그건 상관없죠. 어차피 실력 좀 보자고 이 사람들 부른 것 아니겠습니까?”
본격적으로 프로구단을 운영하겠다는 팀이 늘어나면서, 프로 선수가 부족해졌다.
따라서 이 수요를 충족하려면 밑에서부터 끌어와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아무나 데려올 수는 없으니, 대회를 열어 적당한 사람이 없나 알아보자 하는 의도의 대회였던 것이다.
2부 리그에서 빼어난 성적을 낸 사람들은 이미 구단 계약이 끝났고, 남은 선수들 에게는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 셈이므로 선수 입장에서도 전혀 나쁠 게 없었다.
“선수를 직접 보러 오신 것 같은데, 제가 안내 해 드리겠습니다.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과 좋은 선수를 뽑는 것은 명백하게 다른 영역이니, 분명 제 도움이 필요하실 겁니다.”
“아뇨...저는 이만 가 볼게요. 타 구단의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은 오해받을 소지가 있으니까요.”
“오해해도 상관없지요.”
세인의 막무가내 식 대답에, 정명은 어이가 없다는 듯 답했다.
“제가 상관있거든요? 제가 미국 e스포츠 협회 규정을 정확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타 구단의 사람과 이렇게 오래 접촉하는 것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어요. 그러니까 저리 가요. 바쁘니까.”
“그 협회에 앉아있는 것은 누구죠?”
“예?”
“우리도 이제 협회 회원입니다. 거기다가 기존에 앉아있던 협회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 덩치들의 등쌀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체급차이가 상당한데?”
뜻밖의 말에 정명이 굳어버리자, 세인은 희미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농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다만, 제 얼굴을 아는 사람이 꽤 드물어서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기...새삼스럽지만, 누구신지 물어 봐도 될까요?”
“당신의 경기를 인상 깊게 본 사람 A요.”
그 말을 끝으로 정명은 입을 닫았고, 세인 또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안내를 시작했다.
“참가자 수부터가 엄청나죠? 이것 말고 더 있어요. 근데 이 중에서 정명 씨가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대충 쓸 만 한 사람은 이미 다 채갔거든요.”
“휴, 역시 그런가요.”
“근데 여기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쓸 만한 사람을 판별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저기 좀 보세요. 저쪽에 사람이 몰려있죠? 우리도 저쪽으로 가보도록 해요.”
세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의 끝에는 확실히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그들은 전부 한 남자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명이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니, 아는 얼굴들이 몇 보였다.
“어라. 저거 GLG 사람 아닌가요? 눈에 익은데. 저기 저 대머리 아저씨요.”
“아, 맞습니다. 아무래도 그는 웰컨에게 관심이 있나 보군요.”
“웰컨이요?”
“이 대회의 다크호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여기 몰려든 스카우터들은 전부 웰컨에게 관심을 갖고 있을 거예요.”
“흐음...이 대회의 다크호스인가요.”
그 말에 호기심이 생긴 정명은 자연스레 병아리 감별사 스킬을 사용하여, 이번 대회의 다크호스라는 사람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웰컨]
피지컬 : 70/73
팀워크 : C+
포텐셜 : D
정명은 그가 플레이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느꼈지만, 웰컨이라는 사람은 확실히 대단했다. 피지컬이 70이라면, 피지컬이 70인 정명과 같은 수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다크호스 소리를 들을 만 하네. 이제 막 프로게이머가 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야. 아쉽게도 발전 가능성이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즉시 전력 감으로 사용 가능.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없음. 참으로 애매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가 없는 능력치였다.
정명이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자, 세인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저 사람은 이미 다른 구단과 계약이 되었습니다. 음...사실 계약이 되어있지 않았더라도, OMA에서 가져갈 수는 없었을 테지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연봉 15만 달러에 2년 계약을 했다고 하더군요. 막 데뷔했음에도 저 정도 실력을 보여주는데, 시간이 지나 더욱 발전한다면? 확실히 투자할 가치는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인이지만 장래가 기대되어 금액이 확 올라갔다는 세인의 답변에, 정명은 신음성을 내었다.
“어...예? 그게 사실...아니, 아닙니다. 그럼 다른 쪽으로 가 보죠.”
그 후, 정명이 열심히 대회장을 기웃거린 결과 소득이 있긴 있었다. 팀 미라클에서 나오게 된 서포터 아이작이 OMA와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우연히 경기장에서 만난 아이작은 구두로 계약 의사를 나타내며 정명과 악수를 나눴다.
“안 그래도 고민 중이었는데, 정명 씨를 직접 보니까 확신이 서네요. 돈도 돈이지만 일단 프로라면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지 않겠어요? 만약 좋은 성적을 낸다면, 그 때는 아마 더 좋은 금액으로 계약할 수도 있겠지요. OMA에서 오퍼가 들어온 게 하나 있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 해 보겠습니다.”
정명의 이름값을 보고 계약을 한다.
반년 전 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정명의 명성치가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명이 아이작과 악수를 나누는 것과 동시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조건을 달성하여 병아리 감별사 스킬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해금 조건 : 선수 한명을 직접 영입할 것 정명은 생각치도 못한 행운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 좋아! 포인트를 아껴 둔 보람이 있다. 바로 올려야지!’
선수들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이 스킬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운 좋게도 해금 조건을 채워 스킬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정명이 희희낙락하며 스킬을 업그레이드 하려던 그 때, 주변에서 누군가 전화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래. 올 필요 없어. 다 쓰레기들이야. 새로운 선수들도 이 수준이라면, 우승은 문제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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