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40화 (40/226)

12. 큰 물에서 놀아야지 (完)

준비가 다 되었다는 얘기를 주고받음과 동시에, 밴픽이 시작되었다.

코치들은 OMA가 밴픽을 하는 모습을 보며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산적, 검투사...다들 kor 리그에서 전형적으로 밴 하는 것들이네. 조시, 너 가시도치 되냐?”

“안 돼요. 한지 오래돼서 감이 없어요. 오크킹은 어떨까요? 괜찮은 것 같은데.”

“좋아. 상대가 팀 아서스라고 해서 특별한 거 할 생각 하지 말고, 우리가 제일 잘 하는 것 하자. 요즘 우리가 자주 써먹었던 전략으로.”

보통은 아무리 연습게임이라 할지라도, 코치가 뒤에서 이래라저래라 하지는 않는다. 실제시합에서는 코치가 지금처럼 참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시즌부터는 룰이 바뀌었다. 밴픽까지는 코치의 참여를 허용하기로. 때문에 이렇게 코치들이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코치들의 참견도 여기까지였다.

밴픽이 끝나자, 코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코치들은 OMA의 실력이 세계무대에서 어느 정도까지 통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

코치가 얘기한 전략은 최근 OMA가 리그에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는 미드 키우기 전략이었다.

최근 10경기 승률 75%.

OMA는 북미에서 이 전략으로 승률을 단단히 끌어 올리고 있었고, 상위권 팀에게도 꽤 잘 통했던 전략이기도 했다.

게임 시작 직전. 조시는 돌연 생각났다는 듯 코치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걸었다.

“코치님, 한국 팀이니까 우리 전략 정도는 금방 파훼해 내겠죠? 북미 팀에게는 잘 통했지만...”

“그래도 상관없지. 아니, 오히려 더 좋지 않나? 우리 전략의 약점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니까.”

“오히려 더 좋다니, 정말 긍정맨이시네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습니다만...”

“그건 좀 그런가? 아무튼 조시. 져도 본전이니까 자신감을 가져. 우리 사고한번 쳐 보자고. 세 번쯤 하면 한 번은 이길 수 있겠지!”

조시와 코치는 으쌰으쌰하며 파이팅을 외쳤지만, 안타깝게도 코치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해야만 했다.

시작한지 7분 째. 벌써부터 전 라인에서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건 진짜...빡세네. 아니, 이 사람들 이걸 결승전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니죠? 목숨 걸고 하는 것 같은데요?”

“그러게. 북미 팀을 상대하니까 내심 설렁설렁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완전 진지하게 하는 것 같다. 미드 키우기고 뭐고, 그냥 버티기가 힘들어...”

탑, 미드, 바텀. 세라인 모두에서 처참하게 밀렸다.

심지어 팀에서 에이스인 정명조차 라인전에서 무너지자, 팀원들에게서는 대화가 사라지고 한숨소리만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코치는 선수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신음을 흘렸다.

‘이거, 렉 때문이다 어쩐다 하며 변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네. 피지컬에서 절망적일 정도로 차이가 나니까 전략이고 뭐고 의미가 없잖아.’

피지컬. 다른 말로 하면, 동체시력과 손의 정확도, 빠르기 등을 지칭하는 말로, 프로의 실력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능력이기도 했다.

사실 이 능력들은 많은 연습을 한다 해도 엄청나게 늘어나거나,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하며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지는 않는다. 철저하게 재능의 영역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천재들을 상대하게 된 OMA는 평범한 것 보다 약간 나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 쿼드라 킬!]

킬 스코어가 1: 15까지 벌어지자, 조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마우스를 내려놓고 뒤돌아 코치를 바라봤다.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손을 뗀 조시는 완전히 해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거 안 되겠다. 코치님, 이 판은 그냥 항복 할게요? 더 해봐야 의미 없어 보이는데...”

“......그래. 그렇게 해라.”

누가 봐도 이 이상은 그냥 버티는 것 이외의 의미는 없었다.

결국 OMA는 빠르게 항복투표를 누르고는, 다음 게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경기에서 OMA는 전략을 바꿨다. 최소한 라인전 구도에서는 무너지지 않게 하기로.

때문에 다섯 명 전부다 라인전에서 강력하거나 잘 버티는 캐릭터를 고르고는, 거북이가 등껍질을 뒤집어쓰듯 소극적인 태도로 경기에 임하기 시작했다.

“탑, 라인 중간 이상 넘어가지 마라. 혹시 모르니까 그냥 빼.”

“네. 알겠어요.”

“그리고 정글은 바텀 좀 가 봐. 라인 같이 밀어주고, 같이 귀환 해.”

철저하게 방어적인 태도.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초반은 넘기고 보자는 명백한 의지였다.

그런 OMA의 의도는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

7분 만에 킬 스코어가 벌어졌던 첫 경기와 달리, 큰 피해 없이 무사히 라인전을 넘어 한타 페이즈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피터는 그런 사실에 들떴는지, 밝은 목소리를 냈다.

“오, 이 판은 뭔가 되는 것 같은데요? 이거 혹시 우리가 대형 사고라도 치는 거 아닌...”

[적에게 당했습니다.]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게임에 집중이나 해라. 1차 타워 다 밀렸네 이거.”

피터가 희망을 품기도 잠시, 팀 아서스 쪽에서는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악명 높았던 탈수기 운영에 들어간 것이다.

게임 중반.

라인전을 버텨냈기 때문에 희망적인 분위기가 퍼져 있던 연습실에서는 다시 한숨소리만이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와드를 박으러 가다가 비명횡사를 한 조시는, 경기 중에 다섯 번째로 징징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숨은 쉬게 해줘야 할 것 아니야 숨은...뭐가 이리 빡빡한지 모르겠네. 정명이 형, 한국 팀들은 다 이렇게 게임하는 것 아니죠? 지금 저 선수가 내 앞에 있다면,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것 같은데요.”

“그렇진 않을 거다. 아무리 한국이라도 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린다면, 그냥 프로게이머 생활 접는 게 낫겠지. 물론, 저 팀이 월드챔피언십 2위인 것을 보면 저거보다 더 한 괴물도 있는 모양이다만...”

“아...집에 가고 싶다...”

한국팀과 북미팀 운영의 차이는 운영의 체계성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OMA를 포함한 북미팀들이 ‘슬슬 드래곤이라도 먹으러 가볼까~’ 하는 식으로 운영을 한다면, 한국 팀들은

1. 6분 12초에는 부리부리를 잡고,

2. 7분 33초에는 스톤골렘을 먹음과 동시에 탑 찌르기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초단위로 스케쥴을 세분화하는 운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OMA는 그런 완벽한 운영 앞에 또다시 패하고 말았다. 27분만의 항복이었다.

무력감마저 느껴지는 통한의 2연패.

아무리 이길 확률이 희박한 싸움이었다지만, 연습실에는 부정적인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정명이 혼자 말문을 열었다.

“어...뭐...이렇게 된 거, 맘 편히 하자. 마지막 게임은. 다들 부담 갖지 마.”

정명의 위로에, 코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제 너희들보고 이기라고 했어? 왜 이리 시무룩해있냐. 이제 우리도 저쪽의 패턴에 익숙해졌으니, 다음 경기는 좀 나을 거야. 자, 마지막경기까지 힘 내 보자!”

그렇게 해서 치러진 마지막 연습경기.

코치는 한국 팀에게 익숙해졌으니 이번 판은 좀 나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상대방에 익숙해진 것은 OMA 뿐만이 아니었다.

시작한지 19분 째.

마지막으로 치러진 3경기에서 OMA는 항복조차 하지 못하고 넥서스가 깨지며 더욱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게임이 끝남과 동시에 다섯 명의 팀원들은 모두 의자에 쓰러지고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힘들다. 오늘은 연습 더 못 해요. 멘탈 다 갈렸네.”

“하라고도 안 해. 오늘은 그냥 쉬어라. 경기 분석은 우리가 할 테니까.”

다른 팀원들처럼 모든 힘이 빠져 의자에 널부러져 있던 정명은, 슬쩍 눈을 떠서 허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연습 경기에서 패했습니다. 포인트 1000을 얻습니다.]

‘졌는데 포인트가 오르는 것은 처음이네. 그나마 위로가 좀 되는군.’

하지만 메시지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정명은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 팀원들 사이에서 혼자 침묵을 지키며, 새롭게 뜬 메시지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퀘스트 실패. ‘하늘 위의 하늘’ 퀘스트가 퀘스트 목록에서 자동으로 삭제됩니다.]

[천재적인 컨트롤을 가진 사람과 라인전을 치렀습니다. 피지컬 포인트가 +1 상승합니다.]

[혹독한 연습 끝에 나온 탈수기 운영을 체험했습니다. 판단력 포인트가 +1 상승합니다.]

‘2시간동안 신나게 두드려 맞은 보람은 있었나. 이렇게 질 때마다 포인트가 계속 오른다면, 하루 종일 져도 상관없는데.’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일이 그렇게 쉽게쉽게 풀렸다면, 자신이 미국까지 와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도 않을 테니까.

신기루와 같았던 상급 퀘스트가 사라지고 난 뒤, 정명은 맨 위에 남아있는 퀘스트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상위권 도약]

B랭크 이상의 팀을 5회 쓰러트리십시오.

달성 횟수 [0/5]

보상 : 10000 포인트

‘이번 연습도 도움이 많이 되긴 했는데...결국 이건 못 했단 말이지. GLG나 TBM은 우리랑 연습할 생각이 없어 보이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정명은 귀중한 경험을 얻었음에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잠깐 고민하던 정명은 조금 뻔뻔하게 나가보기로 했다. 기회는 또 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국 팀과 헤어지기 전, 작별 인사를 나누던 정명은 흘리듯이 부탁 하나를 건넸다.

“준상씨, 혹시 다른 팀 선수들 연락처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저희가 요즘 연습할 팀이 없어서...”

@@@

‘말이라도 꺼내보길 잘 했네. 김준상이가 미국 오면 밥이라도 사 줘야겠어.’

며칠 뒤.

정명은 북미팀에 호기심을 느낀 몇 팀과 연습게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대단한 팀과 연습하지는 못 했고, 연습상대는 리그 최하위권 팀이나 2군 정도의 팀들이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런 하위권 팀들 중에서도 B랭크의 팀은 발에 채일 정도로 넘쳐났다는 것이다.

[연습경기에서 승리하였습니다. 25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B랭크 이상의 팀입니다. ‘상위권 도약’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정명, 이 팀은 어땠어? 우리한테는 힘든가?”

“예.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잘 해요. 은근히 느껴지는 렉이 아니었다면, 라인전에서 크게 손해 봤을 겁니다. 운이 좀 좋았네요.”

OMA는 최근 며칠, 북미 팀을 통한 연습게임보다는 한국 팀과의 연습게임을 통해 실력을 쌓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정명은 그 연습이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렉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은데. 렉이 여기서 더 심해진다면 연습하는 의미도 없고 연습해줄 팀도 더는 없을 거야. 차라리 오늘 조금 무리해서라도 퀘스트를 완료 해볼까...’

[상위권 도약]

B랭크 이상의 팀을 5회 쓰러트리십시오.

달성 횟수 [4/5]

보상 : 10000 포인트

며칠 간 했던 30번 정도의 연습경기 중, OMA가 이긴 것은 12번 정도. 그리고 그 중 B랭크 이상의 팀에게 이긴 횟수는 4번 밖에는 되지 않았다. 실력 차이가 그만큼 많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한 정명은 은근슬쩍 메신저로 피자 기프티콘을 보내며 연습을 부탁했다.

“연습 좀만 더 하면 안 될까요? 딱 세 판만 더요.”

“그러죠 뭐. 피자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한국 팀의 선수들은 그 열정이나 실력에 비해 받는 대우가 형편없었다.

그리고 정명은 그 점을 무척 잘 알고 있었고, B랭크의 팀 하나를 붙잡아 연습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회선의 상태를 보니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았다.

정명은 떠오르는 로딩창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세 판 쯤 하다보면, 한 판은 이길 수 있겠지. 퀘스트는 오늘로 끝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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