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41화 (41/226)

13. 양민학살의 시작 (1)

정명의 팀이 한국 팀과 연습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처음에는 OMA 팀 내부인원의 지인들, 그 다음에는 다른 팀 관계자들과 선수들, 마지막으로 커뮤니티 사이트를 꾸준히 들락거리는 팬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의 진위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연습 결과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리고 북미 2위팀 GLG의 정글러 애드윈 선수는 코치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달받으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OMA가 한국 팀이랑 연습게임을...그거 확실한 소문이에요? 맨날 렉 걸린다며 연습 안 해주던 놈들이?”

“내가 OMA쪽에 슬쩍 물어봤는데 진짜인 것 같더라고. 거기 한국인 선수 있는 거 알지? 유정명이라고...그 선수가 연습게임을 물어온 것 같더라.”

코치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코치가 시선을 돌린 곳에는 GLG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이동우가 혼자 솔로랭크를 돌리고 있었다.

“우리도 한국인 있는데...왜 우린 그런 개고생을 하면서도 연습게임을 잡지 못했던 거지?”

GLG를 포함한 북미의 여러 팀들은 한국 팀과 연습게임을 한번 해보기 위해 무척 애를 썼던 경험이 있었다.

당시 GLG는 한국인 팀원 이동우를 앞세워 한국 팀과 연습게임을 잡았지만, 몇 판 하지도 못 하고 은근슬쩍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연습게임을 잡는 것은 결국 인맥인데, 이동우는 정명처럼 피자 몇 판 사주며 연습을 부탁한다거나 하는 사교성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그러려니 했을 기억이지만, 연습게임을 잘 물어 왔다는 다른 팀 한국인 이야기를 들으니, 코치는 괜히 짜증이 솟았다.

애드윈 또한 시선을 이동우에게로 돌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 한국인 팀원은 친구가 얼마 없나보죠 뭐. 아무튼, 우리도 한국 팀 측에 연락을 넣어보는 것은 어때요? 이번에는 될 것도 같은데.”

“안 그래도 이미 넣어 봤다. 대충 여러 팀에 넣었으니, 곧 연락이 오겠지.”

......

그로부터 며칠 뒤. GLG는 본인들이 원하던 대로 한국 팀과 연습게임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어렵사리 부탁해서 만든 자리였다.

그들의 상대는 NPG. 한국 리그의 중위권 팀이자, 정명이 한국에 있었을 당시 몸담았던 팀이기도 했다.

그리고 NPG와의 자리를 만들 때 통역 역할을 했던 이동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영어를 더듬거리며 말 했다.

“이거, 내, 공이 크다. 알지? 나, 연습게임 따내느라 고생했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연습이나 하자. 몇 번째 말하냐.”

다른 팀원들은 그런 이동우의 행동이 거슬렸으나, 그가 없으면 한국 팀과의 소통이 거의 되지 않기에 입을 다물었다. 평소 같으면 이미 욕이 나왔겠지만, 한국 팀과의 연습을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참고 있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경기.

GLG 사람들은 이번 경기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기에, GLG 사람들 또한 OMA 사람들처럼 경기 시작 전에 구단 관계자들이 모여 선수들 뒤에서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 이거 왜 이렇게 프레임 드랍이 심하지?”

“진짜네. 렉 때문에 미니언 먹기도 힘들어. 이동우. 방 다시 파서 해보자고 말 좀 해줘. 이대로는 게임을 할 수가 없다.”

GLG는 새 게임을 만드는 동안 다급하게 인터넷 회선을 점검했으나,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그리고 방을 다시 만들어 새 게임을 시작했음에도, 끈적하게 달라붙는 렉은 여전했다. 곧 렉 때문에 한국 팀과의 게임이 힘들 것이라는 정명의 예상이 맞은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길 30분. 결국 NPG 측에서도 난색을 표했다.

-안 되겠네요.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그냥 나중에 하시죠.

“코치님, 쟤네들이 나중에 하자는데 어떻게 답변할까요?”

“나중에? 안 돼. 나중에 될 리가 없어. 무조건 지금 하자고 해.”

하지만 렉은 점차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나중에는 접속이 자꾸 끊기는 지경까지에 이르렀다.

결국 NPG 사람들은 도저히 안 되겠다며 연습게임 일정을 취소해버렸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북미팀의 연습게임 요청을 받아주는 한국팀은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

그 시각. 정명은 연습은 제쳐두고 인터넷으로 댓글을 다는데 열심이었다. OMA 측에서 이벤트 삼아 레딧에 AMA페이지를 개설했기 때문이었다.

Ask me Anything.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라는 뜻을 지닌 이 페이지는 선수가 팬과 소통하기 위한 페이지로써, 북미에서 활동하는 모든 구단들은 가끔씩 이런 이벤트를 만들고는 했다.

정명 또한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들을 읽으며 팬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FiBe : OMA가 한국 팀이랑 게임 했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거 진짜? 진짜라면 결과는 어땠음?

? 소문 참 빠르네. 맞아, 했지. 그런데 결과는 못 알려줘. 알지? 연습게임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는 것은 무척 매너 없는 행동이니까...

Fairy : 헤이, 지금 연봉 얼마 받는지 물어봐도 돼? 그리고 한국에서 받았던 연봉이랑 비교 좀 해줘.

?지금은 연봉 65000달러에 보너스를 합치면 80000달러가 조금 넘을 것 같네. 한국에서는 -1000달러였어. 연봉은 0달러인데 교통비를 내 돈으로 냈으니 마이너스.

Mini : 헉, 연봉이 0원? 그거 불법 아니야?

?언뜻 보면 그렇지만, 피해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물론 당하는 입장에선 무척 엿같지만 말이야. 지금 보니까, 그 팀 아직 잘 돌아가고 있더라. 솔직히 빨리 망했으면 좋겠는데...

질문의 대부분은 한국에 관한 얘기였다.

팬들은 한국 팀들은 어떻게 연습을 하는지, 친분이 있는 한국 선수가 있는지 등을 물어봤고, 그 중 가장 수가 많았던 질문은 한국과 북미리그간의 실력 차이가 얼마나 나는가에 대해서 평가해달라는 질문이었다.

‘자기들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뭘 또 물어봐? 당연히 상대도 안 되지.’

하지만 정명은 솔직하게 ‘북미 1위 팀이 가봤자 최하위권 맴돌다가 떨어집니다.’ 따위로 말하진 않았고, 북미 팀도 노력하면 한국 팀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을 돌렸다.

그리고 그런 정명의 답변을 보는 것은 팬들만이 아니었다.

코치는 열심히 댓글을 달고 있는 정명에게 다가가, 의외의 소식을 건넸다.

“정명, TBM한테서 연락 왔는데? 연습게임 같이 하자고.”

“TBM이요? 걔네들이 웬일이래요? 우리가 같이 하자 할 땐 바쁜 척 엄청 하더니...”

“우리가 한국 팀이랑 연습을 했던 게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야. 어쩔래?”

“지금 하죠 뭐. 댓글이야 나중에 달면 되니까...”

코치가 다른 팀원들을 부르러 간 사이, 정명은 이번 주까지의 리그 순위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흠, TBM과의 연습경기라...’

1위 : TBM 9승 2패 (+11)

2위 : GLG 9승 3패 (+10)

3위 : ITU 8승 4패 (+9)

4위 : 미라클 7승 5패 (+7)

5위 : OMA 7승 5패 (+5)

6위 : 토베노 6승 6패 (+3)

...

11위 : 래디언스 : 2승 10패 (-10)12위 : 스콜피온즈 : 1승 11패 (-12) 현재 OMA의 순위는 5위. 몇 주 전과 비교해보면 순위는 그대로인데 승점이 조금 떨어졌다. 최근 경기에서 무력하게 연패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명은 최근 성적 부진의 이유를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아서스와의 경기 이후, 팀원들이 조금 무기력하네. 너무 큰 실력차이를 경험한 것이 독이 된 걸지도 모르겠어.’

만약 아서스와의 실력 차이가 잡힐 듯 말듯 한 거리에 있었으면 팀원들은 더욱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아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실력 차이를 느꼈다면?

그동안 최선을 다해 연습했던 것이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져, 의욕을 잃어버릴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정명은 그런 그들을 윽박지르기보다는, 연습경기를 통해 자연스레 자신감을 찾아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곧 경기가 몰려있는 기간인 슈퍼위크가 시작된다. 그때도 이렇게 축 쳐져 있으면 무척 곤란해.’

정명의 이번 시즌 목표는 리그 3위. 3위는 현실적인 목표이면서도, 딱 실리를 챙길 수 있는 마지노선이기도 했다.

리그 상금, 그리고 내년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할 팀을 뽑는 포인트가 딱 3위까지만 주어지니까.

당연히 4위 이하로 내려가면 쥐뿔도 없으므로, OMA는 조금 많이 노력해야만 했다.

5분 뒤. 연습실로 내려온 피터는, 연습 상대가 TBM이라는 말에 벌써부터 기가 죽었는지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와...TBM이라... 요즘은 연습경기가 잘 잡히네요. 근데 너무 잘 하는 팀이라 걱정인데...”

“걱정하지 마. 내가볼 땐 승률이 35~40%는 될 것 같으니까. 내가 요즘 컨디션이 좋거든.”

“오, 정말요? 그거 다행이네요. 역시 우리 팀은 형이 캐리를 좀 해 줘야 돌아간다니까요?”

한 달 전, TBM과 붙었을 당시 피터는 물론이고, 정명까지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정명에게는 퀘스트를 달성하여 얻은 포인트가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64/100)

정신력 (50/100)

오더 (50/100)

판단력 (51/100)

[잔여 포인트 : 12100]

B랭크 한국 팀을 다섯 번 잡고 얻은 포인트가 1만. 그리고 연습게임으로 얻은 포인트가 2천.

정명은 어떤 스탯을 올릴지 맹렬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TBM도 잡고 싶고, 슈퍼위크가 다음 주에 시작이라...어떤 것을 올려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팀의 승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오더스탯을 올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른 스탯은 정명혼자만 효과를 보지만, 오더스탯을 올린다면 팀원 전체가 효과를 보니까.

하지만 정명의 시선은 자꾸만 피지컬로 향하고 있었다.

‘피지컬을 지금 올리는 것은 효율이 썩 좋지 않아. 다른 것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지만, 사실 끌리는 것은 피지컬이었다.

최근 정명은 한국팀들을 상대하는 동안 라인전에서 수도 없이 졌고, 그 경험이 정명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북미로 온 이후, 라인전에서 이기진 못하더라도 그렇게 찍어 눌린 적은 없었는데...’

잠시 고민하던 정명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피지컬 스탯을 6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12000 포인트

[구입에 성공하였습니다.]

[잔여 포인트 : 100]

포인트를 올린 뒤, 정명은 팀원들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좋아. 다들 들어왔지? 그럼 바로 시작하자.”

...

현재 북미 1위팀인 TBM과의 연습경기.

밴픽 단계에서 코치는 정명에게 방어형 캐릭터를 제안했다.

“TBM의 미드면 다이로스 선수인가. 그 선수가 요즘 폼이 많이 죽은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만만치 않은 것은 확실하니까. 이번에는 안전하게 가는 게 어때?”

코치의 제안에 정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조금 공격적으로 가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라인전에서 지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도.”

그 말을 끝으로, 정명은 적당한 챔피언을 골라 경기에 임했다.

정명의 주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숙련도 보정을 받을 수 있는 캐릭터였다.

불여우의 숙련도 : LV 1 초급 마법사]

[피지컬이 70 + (1)으로 보정됩니다.]

피지컬 70.

정명은 10의 자리가 바뀔 때마다 ‘벽’같은 것을 하나 넘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깨달음 비슷한 것이 오는 것이다.

‘피지컬 60대에선 중상위권 라이너들과 호각이었지. 그렇다면 피지컬 70을 찍은 지금은...’

그리고 잠시 후 시작된 경기.

정명은 다이로스와 스킬을 교환하며, 한 달 전 경기에서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폼이 많이 죽었다더니...그 탓인가? 아니면 피지컬을 올렸기 때문일까? 이거, 뭔가 될 것 같은데.’

프로게이머정도 되는 선수들은 상대방과 스킬을 세 번 정도 교환하다보면 대충 각을 잴 수 있기 마련이다.

저 사람이 나보다 잘 하는지, 못 하는지.

그리고 정명은 확신했다. ‘저 정도면 찍어 누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조시야, 잠깐 미드 오지 말고 다른 곳 파고 있어봐.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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