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39화 (39/226)

12. 큰 물에서 놀아야지 (2)

‘김준상이라. 분명 나중에는 북미 팀으로 이적했던 게이머였지 아마?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김준상이 속해있던 팀은 원래 빠르게 해체될 예정이었다.

월드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뒀지만, 그 대우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단이 세계 2위 팀에게 왜 그런 대우를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정명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팀을 운영하던 구단주가 사기혐의로 피소되었는데, 구단에 신경 쓸 겨를이 있겠어? 제 살길 찾기 바쁘지.’

정명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참동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옆 소파에 앉아 있던 코치는 그런 정명을 보며 농담을 건넸다.

“뭔데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있어? 혹시 군대 가야한다고 서류가 날아오기라도 했나?”

“아뇨,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세요. 아무튼, 김준상 선수가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 아시죠? 한국팀 아서스에서 활동하는 피코 선수요.”

“뭐! 피코?”

코치는 기함하여 앉아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정명은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아 뭐에요, 사람 놀라게.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잖아요.”

“너야말로 반응이 왜 이리 밋밋해? 아니, 피코면 세계 최강 원딜러 중 하나잖아? 너, 걔랑 알고 지내는 사이였냐? 어디 한번 그 메시지 봐봐!”

정명은 코치가 바라는 대로 스마트폰을 꺼내 코치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메일은 한국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에 코치는 전혀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고, 결국 코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래, 그래서 뭐 때문에 연락한 건지 물어봐도 되냐? 개인적인 이야기면 됐고.”

“김준상 선수가 북미 팀들은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조건이 맞으면 북미 쪽으로 건너올 수도 있을 것 같던데요.”

“뭐! 진짜?”

코치는 다시 한 번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서 정명의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메일은 여전히 읽을 수 없었고, 코치는 다시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정명은 그 촌극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흥분해있는 코치를 진정시켰다.

“저를 웃기려는 생각이셨다면 성공하셨네요. 잘 짜여진 콩트 같았어요. 아무튼, 적당히 답장 보내주려고요. 김준상 선수랑 알고 지내서 나쁠 것 없을 테니까...”

“나쁠 게 없다니, 그 정도가 아니라 완전 좋은 거지. 꼭 친하게 지내라고! 아, 그리고 연락할 때 우리구단 참 좋은 구단이라고 얘기 좀 해 줘. 혹시 모르잖아?”

정명은 코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그런다고 해도...어차피 돈 많이 주는 구단에 갈 텐데요. 우리 구단이 좋은 것은 맞는데, 솔직히 GLG나 TBM하고 경쟁하면 승산 없잖아요. 꿈 깨요.”

정명의 흐릿한 기억으로는, 김준상은 북미팀 1위 구단인 TBM에 입단하게 된다.

당연한 선택이다. 북미 1위 팀이기 때문에 커리어를 낮추지 않으면서도, 연봉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선택이니까. 정명이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돈 많은 구단들 사이에서 OMA같은 팀은 안중에도 없을 테고 말이다.

코치의 집요한 관심을 눈치 챈 정명은 코치에게 다짐받듯 말 했다.

“설레발치시는 것 보니까 제가 걱정돼서 미리 말씀드리는데요, 김준상 선수가 이런 메일 보냈었다고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거나 그러지 마세요. 무슨 얘긴지 아시죠? 입 싸다고 평판 떨어지는 건 저니까요.”

“알고 있어, 알고 있어. 근데 우리 구단주한테는 말 해 놓을게. 혹시 모르니까...그보다 빨리 연락 해봐. 진짜 북미로 오는 건지 궁금해서 그래.”

잠시 뒤.

정명은 김준상과 화상채팅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김준상 쪽에서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고생한다며 말문을 연 준상은 프로에게는 가장 중요한. 돈 얘기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정명선수 연봉이...65000달러라고 하셨나요? 음...그럼 그게 한국 돈으로는 얼마쯤 되는 거죠?”

“7천만 원 조금 넘네요. 보너스나 이것저것 합치면 더 되고요. 참고로 제 친구들 중에서는 제가 가장 많이 법니다 하하.”

“네? 7천만 원이요? 혹시 정명씨, 미국에서 엄청 유명하다던가 그러시나요?”

준상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월드 챔피언십에서 2위를 한 자신보다 연봉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명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죠. 제가 북미에 온지 얼마나 됐다고...솔직히 말해서 여기에서는 7천만 원이 아니라, 1억 넘게 받는 사람도 흔해요. 준상 선수는 지금 얼마 받으시는데요?”

“저 지금 5천만 원 정도요. 와...그러면 저보다 훨씬 많이 버시는 거네요. 아니, 우리 팀에서도 가장 많이 받는 애가 7천만 원인데, 그것보다도 많네요. 조금 쇼크다...”

준상은 그렇게 말하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가 허탈해할 만 했다.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으로 세계랭킹 2위가 된 자신보다 중상위권 북미 팀의 선수가 돈을 더 받는다는 것은 너무 불공평한 이야기일 테니까.

하지만 그는 곧 이것은 기회라고 마음을 고쳐먹었고, 이내 의욕적으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준상은 어떻게 하면 북미 팀으로 갈 수 있느냐, 인종차별은 없느냐, 영어를 못 하면 어떻게 하냐 등등을 물어보았고, 정명은 자신이 아는 것을 최대한 알려주려 애썼다.

“팬들하고 섞이는 게 중요해요. 말을 잘 못 한다고 해서, 한인 타운에 자주 놀러 가거나 그러진 마세요. 영어 안 늘어요.”

“이동우...아니, 메타트론 선수 처럼요? 걔는 미국 오면 꼭 같이 놀자고 하던데.”

“그 선수랑 좀 아시나요?”

“아뇨, 그냥 얼굴만 아는 정도에요. 아무튼 알겠어요. 정명 선수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솔직히 정명씨 만큼 북미에서 적응 잘 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신뢰가 가네요. 솔직히 이동우 걔, 성적은 괜찮게 내고 있어도 존재감이 아예 없어서 무슨 얘기를 해도 믿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대화가 끝날 무렵.

준상은 만족할 만큼의 정보를 받아 기분이 좋아보였다.

정명은 지금이야말로 속에 있던 말을 꺼낼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제가 북미에서 성공하면 꼭 보답하도록 할게요.”

“음, 그냥 지금 보답을 해 주시는 건 어때요? 별 건 아니고, 제가 한국 팀이랑 연습경기를 한 번 해 보고 싶은데...”

현재 연습게임에서 OMA의 승률은 70%대. 높은 승률이지만, 중위권 팀과 붙었기 때문에 나온 수치였고, 최상위권 팀과 붙었을 때만 놓고 본다면 승률은 여전히 30%대였다.

때문에 정명은 새로운 팀과의 연습게임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더 높은 곳으로 가려면 새로운 팀, 무엇보다 우리보다 잘 하는 팀과 붙어야만 한다.’

....

며칠 뒤.

OMA는 GLG와의 연습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GLG는 2위 팀이라 그런지 연습게임을 하는데도 무척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고, OMA로써는 굉장히 어렵게 잡은 경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팀원들은 연습경기임에도 무척이나 진지한 태도로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메타트론 이놈, 또 시작이네. 정명이형, 뭐라고 말 좀 해줘요. 이놈, 이상하게 태업하는데요.”

GLG의 탑 라이너 메타트론은 솔로 랭크에서도 쓰지 않을 이상한 캐릭터들을 선택하며 연습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와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사람인 정명이 대표로 항의를 했다.

“저기요, 메타트론님. 진지하게 좀 하시면 안 될까요?”

-? 저 진지하게 하고 있는데요?

“자꾸 이상한 캐릭터 고르시고 계시잖아요.”

-캐릭터 연습하고 있는 건데요? 아니, 연습게임에서도 이런 캐릭터 못 하면 대체 어디 가서 연습하는 말인가요? 나참. 별걸로 다 트집 잡네.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정명은 입을 닫았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형, 뭐래요?”

“진지하게 하는 거라는데. 연습게임에서 실험적인 캐릭터도 못 꺼내면 대체 어디서 연습해야 하냐고...맞는 말이라 그냥 알았다고 했다.”

“그럼 다시 한 번 물어봐 줘요. 왜 우리 팀이랑 할 때만 그런 캐릭터를 들고 오냐고. 저놈, 다른 팀이랑 할 때는 멀쩡히 하던데.”

“뭐? 그거 진짜야?”

“네. 제가 일일이 물어보고 다녔거든요. 에이씨, 같은 한국인인 정명이 형을 봐서라도 열심히 좀 해주면 안 되나?”

그 말에, 정명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니, 오히려 같은 한국인이니까 이렇게 막 나가는 것일 수도 있지.”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그냥 하자. 아쉬운 건 우리니 어쩔 수 없다.”

정명은 팀원들을 달래며 연습을 시작했지만, 역시나 연습게임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한 명이 태업을 하니, 그 영향을 받아 GLG의 다른 사람들도 설렁설렁 경기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결국 OMA가 거의 승기를 잡았지만 OMA 선수들은 이겼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고, 정명은 ‘이런 게임을 계속 해야 하나...’ 하며 탈주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 때, 정명에게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저희들 갑자기 시간이 비었는데. 혹시 지금 시간 되세요?]

그리고 정명은 그 메시지를 받자마자 탈주를 선언했다.

“야, 됐다! 이놈들 필요 없어. 방에서 다 나와!”

......

30분 뒤.

OMA의 연습실은 갑자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코치, 전력 분석팀, 그리고 까지. 평소에 안 보이던 사람들이 총 출동하여 연습실로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수석코치님! 구단주님이 오신다고 하는데, 어떡할까요?”

“오지 말라고 해! 애들 부담되게 할 일 있어? 나중에 리플레이 파일 보여준다고 해!”

수석코치는 그렇게 소리치며 OMA 팀원들에게 다가왔다.

“얘들아, 오늘 경기는 너무 부담 갖지 마. 져도 되는 매치라고. 그리고 또 핑 문제도 있으니까...”

코치의 계속되는 수다에, 결국 정명이 한 마디 쏘아붙였다.

“아 거 참 알았다니까요. 부담 되니까 저리 가 있어요. 이제 집중해야 되요.”

정명이 받은 메일은 김준상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같이 연습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OMA 사람들은 허겁지겁 몰려들어, 빅매치를 관람할 준비를 마쳤다.

‘적당한 연습 상대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긴 했지만, 직접 맞붙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정명 또한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때문에 경기가 시작하기 전. 정명은 긴장을 풀기 위해 단 것을 먹는 대신, 상점을 들락거렸다. 정명만의 긴장을 푸는 방법이었다.

‘남은 포인트 6000정도...더럽게 안 오르는군. 이것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없고, 새로 생긴 스킬도 없고, 딱히 승률을 올릴만한 요소는 없다. 아니, 최대한 올려볼까. 최선을 다 하고 싶으니까...’

[현재 능력치]

피지컬 (60/100)

정신력 (50/100)

오더 (50/100)

판단력 (50/100)

[잔여 포인트 : 6100]

‘뭐를 올려야 좋지? 피지컬? 오더? 판단력?’

한참을 고민하던 정명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어떤 것을 올릴지 고민될 때에는 올려도 후회 없는 피지컬을 올리기로.

[피지컬 스탯을 3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6000 포인트

정명은 가격을 보며 손을 벌벌 떨었지만, 결국 실행에 옮겼다.

[구입에 성공하였습니다.]

[잔여 포인트 : 100]

언제나 그랬듯이, 스탯을 올렸지만 별로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정명은 지금껏 쌓아온 자신의 실력이 세계수준에서 얼마나 통할 수 있을까를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다.

-OMA님들, 준비 되셨나요? 시작해도 되죠?

-예. 바로 시작하셔도 됩니다.

마침내 성사된 세계랭킹 2위와의 경기.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정명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위권 도약]

B랭크 이상의 팀을 5회 쓰러트리십시오.

달성 횟수 [0/5]

보상 : 10000 포인트

*B랭크 이상의 팀입니다. 다섯 번 승리한다면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습니다.

‘아니, 당연히 B랭크 이상의 팀이겠지. 월드챔피언십 2위 팀인데.’

정명이 투덜거리며 메시지를 끄자, 메시지가 또 하나 나타났다.

[하늘 위의 하늘]

현 세계랭킹 2위 팀을 꺾어, 자신의 팀이 최강의 팀 중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보상

*200000 포인트 (난이도 보너스 300% 추가)

*신규 A랭크 스킬

*자유 스탯 3개

*??? 제한 해제

약속된 연습경기는 세 번. 게임이 시작되는 로딩창을 기다리며 정명은 침을 꿀떡 삼켰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