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22화 (22/226)

7. 1부리그를 향하여 (3)

LOH에는 100개가 넘는 캐릭터들이 있다.

게임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만큼, 그 캐릭터들 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맞추기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캐릭터는 유행하는 전략에 따라, 그리고 패치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뀐다.

하지만 패치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는 캐릭터들이 있었다.

바로 3대 충(蟲) 캐릭터라 불리는 악마사냥꾼, 테미, 미스터 한이 이에 속했다.

화려한 이펙트로 무장한 그 캐릭터들은 겉멋이 잔뜩 들었기에 인기는 좋았지만, 막상 쓸모는 없어 욕을 먹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팀 울라비는 바로 그런 캐릭터들을 고른 것이다.

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우릴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이거 좀 자존심 상하네.”

“누가 보면 쟤네들, 세계재패라도 한 팀인 줄 알겠어요. 쟤네 원래 저래요?”

정명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인해 구석에 찌그러져있던 스콜피온즈 사람이었다.

“1부리그 사람들은 그런 게 조금 있어요. 자부심이라고 해야 하나, 우월감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거요.”

“그래 보이네요. 쟤네 중하위권 팀 이랬죠, 아마?”

“정확히는 11개의 팀 중 7위죠. 강등권은 아니지만, 2부리그를 무시할만한 성적은 전혀 아닌데.”

“그래요? 잘하면 잡아먹을 수 있겠네. 어디 한번 해 보죠.”

울라비가 캐릭터를 모두 풀어준 덕분에, SAO는 자신들이 가장 자신있어하는 캐릭터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정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명은 이제 경기를 나갈 때 마다 저격밴을 당하기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캐릭터, 환영술사를 꺼냈다.

[환영술사의 숙련도 : LV 3 원소술사]

[피지컬이 55 + (3)으로 보정됩니다.]

피지컬 보정을 더한다고 해도 ‘벽’을 넘었다고 할 수 있는 60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정명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1부리그팀 울라비의 숙소.

팀 울라비의 선수들은 귀찮은 표정으로 마우스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아유, 얘네 들은 또 뭐래? 아무하고나 연습게임 하기 싫다니까. 이 게임 잡은 사람 누구야?”

“누구긴 누구겠어, 전력 분석가 로톤이지. 요즘 2부리그에서 뜨는 팀이니까, 자료를 모으고 싶다나 뭐라나.”

“아 몰라. 귀찮은데 대충 하자. 뜨는 팀은 무슨. 2부리그가 거기서 거기지 뭘.”

“그냥 빨리 끝내버리고 밥이나 먹죠. 오늘 저녁 스파게티던데.”

토마스는 팀 울라비의 미드라이너였다.

그는 갑작스럽게 잡힌 이 매치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안 하겠다고는 하지 못했다. 팀의 사정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요즘 들어서 팀 울라비는 조금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더위를 먹었는지 경기력이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순위도 조금씩 떨어졌다.

또, 울라비가 요즘 맛이 갔다는 소문이 어찌나 그리 빨리 퍼지던지 요즘은 꽉 차 있던 연습게임 스케쥴표가 텅텅 구멍이 나 있었다.

토마스는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평하면서도 연습경기를 마지못해 수락했던 것이다.

‘아무리 연습경기가 잘 잡히지 않아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팀을 구해와? 쯧.’

토마스는 적당히 캐릭터를 고른 뒤, 의자에 몸을 쭉 늘어트렸다.

‘20분 항복 받아 내는 게 좋겠네. 양심이 있다면, 실력차이를 보고도 한판 더 하자고 하지는 못 할 테니까.’

......

게임이 시작되고 나서 20분이 지났다.

그러나 게임을 빨리 끝내자는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게임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게임이 끝나기는커녕, 게임의 흐름은 점점 나빠졌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성우의 음성과 동시에 뜨는 흑백화면. 토마스는 또다시 정명에게 솔로킬을 내주었다.

20분 동안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다른 선수들은 그런 토마스를 낄낄대며 비웃었다.

“큭큭, 야. 너 2부리그 애들 상대로 뭐 하냐?”

“닥쳐. 이제는 제대로 할 거니까.”

솔직히 말하면, 토마스는 이미 15분 전부터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킬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시발, 내가 제대로 된 캐릭터만 골랐어도 저딴 놈 발라주는 건데!’

토마스는 죽어있는 동안 다른 라인의 상황을 살폈다.

바텀의 라인전은 비등비등하게 가고 있었고, 탑은 조금 우세한 상황이다.

지금 지고 있는 것은 미드라인. 단 한곳이었다.

자신만 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토마스는 자존심이 상하여 이를 악 물고 덤볐다.

하지만...

[적에게 당했습니다.]

“어? 미드에서 또 킬 나왔네?”

또다시 솔로킬을 당한 토마스는 분에 못 이겨 책상을 쿵쿵 쳤다.

이로써 토마스의 스코어는 0킬 3데스 0어시스트. 이제 혼자서 뭘 어떻게 해볼 만한 격차가 아니게 되었다.

토마스가 놀고 있다고 생각한 다른 팀원들은 정색을 하며 토마스를 나무랐다.

“토마스. 노는 것은 적당히 해. 네가 싼 똥이 지금 다른 라인으로 올라오고 있잖아.”

“아, 좀 닥쳐봐. 안 그래도 열 받는데, 씨. 야, 정글 뭐 해. 미드 상황 안 보여?”

“지가 뒤져놓고 왜 정글한테 성질이야? 됐고, 이만 합류 해. 라인전 더 끌면 안 되겠다.”

경기의 분위기는 서서히 SAO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울라비 쪽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SAO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토마스를 잡아먹고 무럭무럭 큰 정명의 존재가 매우 껄끄러웠다.

스킬 샷 대부분을 피하는 칼같은 무빙, 환영을 이용한 기만전술, 탱커라인을 지나쳐 딜러라인을 먼저 커트하는 위치 선정까지.

한 캐릭터의 숙련도가 장인 급에 다다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경기가 정명의 활약으로 점점 어려워지자, 팀원들은 이 상황을 만든 일등공신인 토마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환영술사 큰 것 봐라. 대체 누가 저렇게 키워놨어?”

“누구긴 누구야. 아까부터 열심히 정글러를 호출하고 있는 미드라이너 때문이지. 아서라, 지금 가 봐야 1+1이다. 가 봐야 소용없어.”

팀원들의 질책에, 토마스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저런 비아냥을 듣고 가만히 있을 정도로 토마스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계속 정글 안에서만 있으면서 혼자 RPG게임 했던 정글러님 때문은 아니고? 상대 정글은 미드 계속 얼쩡거리는데, 우리 정글러는 대체 뭐 했냐?”

집중을 해도 모자를 판에 말다툼으로 정신이 산만해지니 게임이 잘 풀릴 리 없었다.

결국 토마스는 팀원들과 싸우다가 분에 못 이겨 홧김에 게임을 나가버렸다.

“아이씨. 안 해, 안 해. 다음 게임 해. 짜증나서 못 해먹겠네.”

“저런 미친놈. 네 마음대로 나가냐?”

“어차피 조합 이상해서 후반가도 힘들어. 나중에 2부리그 팀한테 졌다고 소문나는 것 보단, 그냥 한판 다시 하는 게 낫지 않냐?”

토마스의 말에 다른 팀원들은 못마땅해 하면서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2부리그 팀이라고 하여 만만히 봤더니, 그 내공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별 이상한 팀한테 졌다고 소문이라도 나게 되면 자존심을 이만저만 구기는 것이 아니니, 울라비는 게임에서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다.

게임이 강제로 종료되고 다시 들어온 대기실.

SAO측에서 조금 화난 듯한 채팅을 보내왔다.

[갑자기 나가버리면 어떡합니까? 진짜 매너 더럽네.]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한판 해 보려고요. 한판 더 해 봅시다.

[됐어요. 이미 실력 밑바닥까지 다 봤는데 뭘. 1부리그라더니, 별 것 없네. ㅋㅋ]

SAO는 도발적인 멘트를 남기고는 그냥 나가버렸다.

잠시 벙 쪄 있던 울라비 선수들은 10초가 지나서야 입을 열기 시작했다.

“씨발 뭐야? 이 새끼들. 그냥 나가버렸네?”

“나 참. 누구 때문에 호구 취급이나 당하고, 이게 대체 뭐야?”

“어 그래. 그게 너 때문이란 거지? 알고 있으니까 다행이네.”

서로에게 불만이 있던 울라비 선수들은 자기들끼리 삿대질하며 언성을 높였다.

사실 선수들끼리의 다툼은 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번 싸움은 그 정도가 조금 심했다.

결국 그들의 언쟁은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가 될 말들을 하나씩 주고받은 뒤에야 끝나게 되었다.

@@@

그 후 며칠이 지났다.

팀 울라비와의 좋지 않은 일이 있었지만, 정명은 굳이 그 이야기를 공론화 하지는 않았다.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선 서로 간에 했던 연습게임의 내용이 어땠는지,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지를 외부에 말하지 않으니까.

그게 암묵적 룰이다.

그 룰을 지키지 않는 팀은 같이 연습게임을 해줄 파트너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의도치 않게 연습게임 내용이 흘러나간다면, 전략 누출로 인해 다음 게임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

또한, 연습게임에서 우리가 무슨 팀을 이겼네 뭐네 하고 떠들고 다니면, 언급되는 당사자는 기분이 무척 더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SAO와 울라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것은 경기 내적인 일이 아닌, 경기 매너에 관한 이야기니까.

때문에 팀원들과 얘기하며 고민했지만, 일단은 덮어두기로 했다.

복수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

선수 대기실 안.

정명은 경기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으로 LOH 커뮤니티 레딧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게시물 중 정명이 찾은 것은 1부리그 랭킹 순위였다.

조만간 1부리그가 끝이 나기 때문에, 정명은 1부리그 팀들의 순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최하위권 팀의 순위이다.

곧 치러질 승강전에서 SAO가 만나게 될 상대는 1부리그에서 꼴지를 했던 팀이기 때문이다.

정명은 스크롤을 죽죽 내리며 원하는 팀의 이름을 찾았다.

“울라비...아, 여기 있네. 와, 이제는 래디언스한테도 잡혔어? 이건 좀 심하네.”

SAO가 울라비와 연습게임을 한 이후. 팀 울라비의 성적은 완전히 하락곡선을 그리며 추락하고 있었다.

선수들 간의 불화로 인하여 매끄러운 연습이 되지 않았기에, 결국 성적이 쭉쭉 하락한 것이다.

시즌 중반만 해도 사람들은 리그 꼴찌가 우로보로스, 혹은 래디언스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니, SAO와 승강전에서 맞붙게 될 상대는 그 두 팀에서 나오지 않고 조금 뜬금없는 곳에서 나왔다.

아직 확실히 결정 난 것은 아니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울라비가 연전연패를 하며 바닥을 깔아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SAO와 맞붙게 될 확률이 90% 이상이었다.

정명은 형편없이 깨지는 울라비의 경기 영상을 보며 피식 웃었다.

‘승강전에서 마주치면 꽤 재밌겠는데? 아주 잘 됐어.’

울라비와의 연습경기는 썩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그게 또 좋게 작용하기도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몇몇 1부리그 팀이 SAO를 좋게 봤는지, 같이 연습게임을 하자며 먼저 제안해 왔던 것이다.

덕분에 SAO는 연습상대를 구하기 위하여 바쁘게 뛰어다닐 필요 없이, 편하게 승강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승강전을 치르기 전.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2부리그에서의 우승이다.

2부리그 결승은 승점 1, 2위가 치르게 된다.

1위는 물론 SAO. 그리고 상대는 시즌 내내 2위를 도맡아 했던 스콜피온즈였다.

하지만 정명은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SAO는 그동안 1부리그 팀들과 연습을 하며 실력이 단기간에 급성장하였고, 이미 실력으로는 1부리그 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니까.

따라서 오늘의 경기는 어찌 보면 형식상의 절차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몰랐다.

“SAO팀. 경기 준비 해 주세요. 경기시작 30분 전입니다!”

정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2부리그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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