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SAO (3)
“만나서 반갑다. 난 새비라고 한다.”
‘이 사람이 바로...’
새비는 투박한 손을 내밀어 정명에게 악수를 청했다.
“드디어 우리 팀에도 한국인이 들어왔군. 구단주한테 그렇게 떼를 썼는데도 안 되더니, 이런 행운이 찾아올 줄이야.”
“뭐를요?”
“뭐긴. 한국인을 영입하는 것 말이지. 그 왜, 한국인은 연습 엄청 열심히 하잖아? 북미의 게으름뱅이들과는 달리.”
새비는 진심으로 기뻤는지, 마주 잡은 손을 격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정명은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전 맥스라고 해요. 나이는 18살. 제가 여기에서 제일 어릴 걸요?”
“난 사뮤엘. 탑 포지션을 맡고 있지. 그보다 영어 꽤 잘 하네?”
정명은 한명한명 눈을 마주치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한 사람과 마주했을 때, 정명은 살짝 굳어버렸다.
“안녕! 난 초 챙이야. 서포터를 맡고 있지. 잘 부탁해!”
마지막으로 인사한 사람은 중국계 미국인이자 팀에서 유일하게 여성인 초 챙이었다.
팀에 여자가 있는 것에 놀랐던 정명은 가까스로 표정을 다듬었다.
물론 잘만 해준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잘 부탁합니다 초.”
새비는 새롭게 팀에 들어온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무척 고무되었는지, 연신 내내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좋아 좋아. 개막전에서는 유니콘즈 녀석들을 완전히 박살 내버릴 수 있겠어. 정말 그 시간이 너무 기대되는군.”
“유니콘즈요?”
정명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새비가 아닌 초였다.
“응. 에젤린에게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들 리그 일정 확인하러 나갔던 거거든. 그런데 개막전에서 우리팀이랑 유니콘즈랑 붙게 됐어.”
“그놈들이 인터뷰 하는데, SAO정도는 쉽다고 큰 소리 뻥뻥 쳤단 말이지. 그건 우리가 할 말인데 말이야!”
‘아, 유니콘즈? 분명 그 팀도 항상 2부리그에서 머물고 있는 팀이었지?’
거기다가 또 한 가지 정명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팀에 가입하고 싶다고 북미 팀들에게 메일을 보냈을 때, 메일 답장에
‘우리와 함께하고 싶으면 믿을만한 커리어를 더 쌓고 와라’ 라고 답장을 보냈던 팀이 바로 유니콘즈였다.
덕분에 정명은 갑자기 연습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무럭무럭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새비도 마찬가지였는지 컴퓨터를 켜며 팀원들을 닥달했다.
“이봐! 빨리 연습 하자고. 팀이 바뀌었으니 호흡을 맞춰 봐야지!”
“새비. 의욕 넘치는 것은 알겠는데, 정명은 지금 막 미국에 왔다고. 오늘 하루는 좀 쉬게 놔두는 게 어때?”
“음...그런가?”
사뮤엘이 정명을 배려했지만, 정명은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게 만나게 된 팀원들의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기에, 연습하자는 제안을 수락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조금만 해 볼까요?”
“이것 봐. 역시 한국인이야! 북미의 게으른놈들과는 차원이 달라 차원이.”
“너도 북미사람이거든?”
“그럼 내가 몇 팀에게 연락 해 볼게. 리그 대진표 때문에 우리 말고도 몸이 달아오른 팀이 분명 있을 거야.”
사뮤엘이 몇 팀에게 연락을 돌리자, 바로 답장이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상대하게 된 팀은 2부리그팀인 엑스미시. 전력상으로는 SAO과 비등한 것으로 평가되는 팀이었다.
[밴/픽이 시작됩니다. 캐릭터를 선택해주세요.]
SAO에서 오더를 맡고 있는 것은 새비였다.
정명은 오더를 맡아본 적이 없었고, 또 상태창에서 보이는 오더능력 또한 바닥이었기에 잠자코 그의 오더를 따랐다.
다만 캐릭터를 고르는 과정에서 새비는 정명에게 익숙지 않은 캐릭터를 주문했다는 것이 조금 문제였지만.
“정명. 혹시 미드 말파 가능한가?”
“미드말파요? 음...아니요. 한국에서는 혼자 돌리는 랭크 게임이 아닌 이상에야, 고르지 않는 픽이에요.”
“그래? 그러면...제라드는?”
“가능해요. 주력으로 쓰던 챔피언은 아니었지만, 연습 한 적 있어요.”
같은 게임을 하고 있지만 북미, 한국, 중국, 유럽 등등의 지역에서는 지역마다 게임의 운영이 천지차이였다.
주로 쓰는 챔피언부터 운영하는 방식까지, 그 모든 것이 말이다.
오랜만에 써 보는 캐릭터를 잡은 정명은 살짝 긴장하여 상태창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 내 피지컬은 여전히 47. 여기서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포인트를 벌지 못했기에 정명의 피지컬은 한 달 전과 비교하여 전혀 나이진 게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 라이너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2부리그에서 활동하는 사람임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정명의 상대는 밴/픽 단계에서 새비가 추천해줬던 캐릭터인 말파라는 캐릭터였다.
초반에는 약하지만, 6레벨까지 올려 궁극기만 배운다면 정명이 고른 캐릭터인 제라드를 순식간에 녹여버릴 수 있는 화력을 갖고 있는 캐릭터였다.
[미니언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렇게 정명이 미국에 와서 치르는 첫 연습 게임이 시작되었다.
@@
상대방 라이너의 움직임을 예의주시 하고 있어야 하는 라이너 포지션과는 달리, 정글러 포지션은 맵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팀에서 오더를 맡은 새비는 정글 몬스터를 잡으며 각 라인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라인전. 그러나 오늘의 분위기는 뭔가 달랐다.
‘미드에서...이기고 있네?’
새로운 팀원이 한국인이었기에 전력 향상을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피지컬적인 부분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알고 있었으니까. 정명이 한국에서도 별 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을.
따라서 새비가 기대한 것은 많은 연습량을 바탕으로 한 운영과 팀워크였다.
‘엑스미시의 미드라이너에게 조셉은 버거워 했었는데...’
정명이 솔로 킬을 따 내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라드 특유의 원거리 포격으로 상대방의 피를 조금씩 깎아먹던 정명은 cs격차를 조금씩 벌리고 있었다.
언뜻 보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차이지만, 미드라인에서 주도권을 잡았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주도권을 잡아 정글러의 동선이 넓어지면, 정글러가 활약할 수 있는 여지도 상당히 늘어난다는 것이니까.
말파와 제라드, 그리고 라인의 상황을 보며 잠시 견적을 내보던 새비는 정명에게 콜을 내렸다.
“정명. 타워 다이브 각이다. 이번 웨이브에서 시도해 보자.”
“좋아.”
미니언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말파는 타워의 품에 푹 안겨서 조심스레 cs를 챙기고 있었다. 피가 얼마 남아있지 않은 채로.
“지금!”
정명의 스킬이 날카롭게 꽂혔다.
스턴이 걸린 채로 헤롱헤롱하던 말파는 이어지는 스킬연계에 금방 킬을 내주었다.
깔끔한 킬이었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상대방의 정글러가 부랴부랴 도착했지만, 이미 새비와 정명은 그 장소를 유유히 빠져나간 뒤였다.
새비는 호탕하게 웃으며 정명의 플레이를 칭찬했다.
“오, 좋아! 정명. 미국에 적응하는 게 너무 빠른 거 아냐?”
“새비! 이쪽도 좀 와줘. 이거 영 힘들어.”
“알았어. 금방 갈게.”
미드라인은 이기고 있었지만, 다른 라인은 아니었기에 새비는 바쁘게 움직여아만 했다. LOH에서 라인은 세 개나 있었고, 한 라인에서 이겼다고 하여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잠시 뒤. 도와주러 간 바텀쪽의 풀숲에서 한참을 숨어있던 새비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뺄게. 각 안 나온다. 어쩌면 상대방 정글러가 대기하고 있을지도 몰라. 이번에는 탑으로 갈게.”
하지만 탑의 상황도 바텀라인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라인을 도와주러 갔던 새비는 갈 때마다 허탕을 쳤다. 그럴 때마다 세비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이대로 하는 것 없이 시간만 보낼 수는 없는데...’
그런 새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미드라인의 모습.
상대방 정글러의 견제가 몇 번 있었지만, 정명은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새비의 렘머는 또 다시 미드로 향했다.
“정명! 다시 한 번 가자. 이번에는 내가 먼저 갈게!”
신호와 함께 새비의 렘머가 상대방의 말파에게 쾅! 하고 부딪혔다.
렘머와 제라드는 이동장애에 걸린 말파에게 스킬을 쏟아 부었지만, 말파는 점멸을 활용하여 유유히 빠져나갔다.
새비는 그 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런. 아쉽게 됐네. 한대만 더 쳤어도 잡는 거였는데.”
새비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귀환하려던 그 순간.
정명은 재빨리 점멸을 사용했다.
쾅!
[적을 처치했습니다.]
도망갔다고 안심한 말파는 엇박자의 공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던 새비는 얼떨떨하게 정명을 칭찬했다.
“어, 어? 그걸 잡았어? 어...그래. 좋아. 잘 했어.”
“새비! 이쪽도 좀 와줘. 여기 힘들어!”
그러는 와중에도 라인전을 힘들어하는 팀원들의 도움요청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도와주러 가는 대신, 새비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다른 라인 가도 허탕 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그냥 미드만 집중적으로 파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