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9화 (9/226)

3. SAO (2)

미국의 한 공항.

정명이 공항에 도착하니 한 남자가 정명을 맞이했다.

갈색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는 정명과 화상채팅 면접을 봤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명!”

“안녕하세요 브라운 씨.”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차에 타십시오. 꽤 오래 달려야 해서요.”

정명은 차에 짐을 싣고 옆 좌석에 앉았다.

SAO회사의 이 스포츠팀 담당자인 브라운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정명에게 말을 걸었다.

“미국에 오신 것은 처음이신가요?”

“네. 처음이죠. 사실 외국에 나오는 것 자체가 처음이지만요.”

“그렇군요. 발음이 좋으셔서 혹시 여기 몇 년 살고 계셨나 했습니다. 음... 그래요, 이런 질문을 하기엔 좀 이를지도 모릅니다만 미국에 오신 느낌은 어떻습니까?”

“탁 트인 게 마음에 드네요. 공기도 좋고. 서울은 정말 먼지가 많아서 기침을 달고 살거든요.”

한적한 도로를 달리기를 30분정도. 슬슬 정명의 눈에 건물들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SAO의 사무실은 이 근처입니다. 다들 휴가를 가서 남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잠시 볼 일이 있어서요. 잠깐 들를 겁니다.”

미국은 땅이 커서일까?

도착한 SAO의 사무실은 상당히 컸다. 거기다 시설도 좋아 보이는 것이, 생각보다 꽤 돈이 많은 기업인 듯 했다.

정명은 2층에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는 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브라운. SAO 사람들은 휴가를 갔다고 하지 않았나요? 저기 불이 켜져 있네요?”

“네. 사무실을 텅텅 비워둘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직원들이 휴가에서 돌아오기 전 까지 휴가를 갈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죠.”

브라운은 장난스레 웃으며 문을 열어 들어갔고, 그 뒤를 정명이 따라 들어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마자 보인 것은 한 금발의 여자였다.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여자는 둘을 발견하자 활짝 웃었다.

“앗,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브라운 씨?”

그녀는 하얀 피부에 큰 키를 가진 전형적인 서양미인이었다. 언뜻 보니 정명의 또래정도 인 것 같기도 했다.

브라운은 그 여자를 익히 알고 있었는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 왜, 전에 얘기했던 새로운 미드라이너. 정명씨 인사 해. 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SAO에서 일 하고 있는 에젤린이야.”

“안녕하세요오~!”

“반갑습니다 에젤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둘을 인사시키는 동안에도 브라운은 계속 시계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브라운은 운전할 때에도 계속 시간을 신경 쓰며 초조해 했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정명이 브라운에게 말을 꺼내기 직전, 다섯 시가 된 것을 확인한 브라운은 에젤린에게 황급히 말했다.

“그럼 난 가볼 테니까 정명씨 안내 좀 해줘. 그럼 다음 주에 봐! 주말 잘 보내고!”

브라운은 누군가에게 쫓기듯 밖으로 달려 나갔다.

처음 보는 사람과 단 둘이 남게 된 정명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브라운씨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왜 저렇게 서두르신대요?”

“퇴근시간이니까요. 빨리 집에 가야죠.”

“어....그게 끝인가요?”

“네.”

정명은 황당했지만, 문화적 차이겠거니 싶어 더는 따지지 않았다.

“그럼 에젤린은요? 퇴근 안 하세요?”

“저는 막내거든요.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막내와 신입의 조합이라. 어울린다면 어울리는 조합에, 정명은 피식 웃었다.

에젤린은 브라운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이제 연습실로 가야 했다.

“정명씨, 운전면허 없어요?”

“네.”

“따 두시는 게 좋아요.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너어어어무 불편하거든요!”

에젤린은 수다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차를 운전하면서도 옆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정명은 에젤린이 앞으로 자주 볼 사람임을 직감하고는, 적당히 대꾸해주었다.

“에젤린도 레전드 오브 히어로즈 자주 하세요?”

“그럼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인걸요? 게다가 제가 제 친구들 중에서는 제일 잘 해요.”

“그래요? 실례지만 랭크게임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실버요. 친구들은 다 브론즈인데, 걔네 진짜 못해요.”

“아....그러시구나.”

7단계의 등급 중 가장 바닥에 있는 등급 브론즈. 그리고 그 바로 위에 있는 등급 실버등급.

정명이 보기에는 실력이 거기서 거기였지만, 이럴 때는 그냥 넘어가는 것이 예의다.

연습실은 수다와 함께 한 시간을 더 달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에젤린이 왜 운전면허가 꼭 필요하다 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도착한 연습실은 시설이 상당히 좋았는데, NPG의 1군 연습실과도 훨씬 좋아보였다.

굳이 NPG와 비교해 본다면...아마 SAO가 억울하여 고소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그 만큼 두 연습실은 크기, 편의시설에서 큰 차이가 났다.

새로 살게 될 연습실을 뽈뽈 돌아다니며 구경하던 정명은 컴퓨터가 잔뜩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에젤린이 낑낑거리며 정명이 쓸 컴퓨터를 세팅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없네요?”

“지금이 5시가 좀 넘었으니까......곧 돌아 올 거예요. 대진표를 확인하러 경기장에 갔으니까요. 겸사겸사 인터뷰도 좀 따고.”

“대진표요?”

“네. 리그 개막이 코앞이거든요.”

에젤린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말하다 말고 킥킥대며 웃었다.

“근데 그거 아세요? 우리 팀, 미드라이너가 갑자기 다른 팀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엄청 위기였었거든요. 선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거리는데, 마침 정명씨한테 연락 온 거 있죠? 그래서 브라운이 어떻게든 잡는다고 무지 애썼어요.”

“아하.”

‘어쩐지 계약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더라니,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 결과적으로 윈-윈이 된 셈이니 이제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런데 미드라이너가 갑작스레 탈퇴를 했다? 정명은 그 일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기로 했다.

“에젤린, 다른 팀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음,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착하고, 놀기 좋아하고. 아, 새비는 빼고요.”

“새비?”

“네. 승부욕이 엄청 강한 사람이에요. 그것 때문에 팀원들과 많이 싸우기도 했죠.”

전 세계에서 LOH 북미팀의 성적이 제일 낮은 것은 별 다른 이유가 아니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처럼 12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주구장창 연습만 하는 것을 무척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에젤린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특히 전 미드라이너였던 조셉과 무척 싸웠어요. 새비는 항상 조금만 더 연습하자고 말 했지만, 조셉은 자신의 근무시간은 6시까지라고 못 박았거든요.”

“그래서 결국 갈라섰고요?”

“네. 조셉이 연습실에 여자친구를 데려왔을 때 정말 크게 싸웠던 것이 결정적이었어요. 조셉은 여자친구 데려와서 놀면 좀 어떠냐 하고, 새비는 여기는 연습실이지 너희들이 떡치는 장소가 아니라고 하며 엄청 욕하고......네. 새비가 심하게 욕 했어요. 앞으로 화해하기 힘들 정도로.”

정명은 무슨 일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욕을 퍼붓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싶지만...내가 할 말은 아니로군. 나도 그런 전과가 있으니까.’

에젤린은 아무도 엿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목소리를 살짝 깔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아시잖아요? 둘 중에 하나만 남아야 한다면 구단쪽에서는 실력이 더 좋은 사람을 붙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조셉은 평범한 미드라이너였으니, 뭐...그렇게 됐어요.”

결국 SAO측은 조셉을 방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새비는 2부리그 팀에서는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 정글러였으니까.

정명과 대화하며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던 에젤린은 세팅이 끝났는지 컴퓨터 본체를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자, 이제 한 번 해 보세요 테스트는 해 봐야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자에 앉아 레전드 오브 히어로즈를 실행하던 정명은 그제야 잊고 있던 문제가 생각나서 어색하게 웃었다.

“생각해보니 전 레전드 오브 히어로즈 북미 아이디가 없네요. 하나 만들어야겠네.”

“아 맞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희 쪽에서 아이디를 하나 드릴 거에요.”

“네? 하지만...”

“지금 아이디를 만드셔봤자 3서버로 갈 수밖에 없는데, 거긴 잘 하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야 연습에 도움이 안 되니까.”

“3서버요?”

에젤린은 정명에게 북미 서버는 한국 서버와 달리 3개의 서버로 나뉘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인구수가 적어, 한 개의 서버로 운영하고 있지만, 북미나 중국 같은 경우에는 서버의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여러 개의 서버로 나뉘어 운영된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1서버 사람들의 실력이 가장 좋다고 해요. 거기다가 1서버 사람들은 자부심 같은 게 있어서, 2서버나 3서버에서 높은 등급으로 올려도 인정을 안 해주거든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에젤린은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를 정명에게 건네줬다.

“실은 제가 만들었던 아이디인데, 지금은 쓰지 않는 아아디에요. 그러니까 쓰셔도 돼요.”

”네.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정명은 새로운 아이디로 어색하게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 순간.

삐삐삐삑.

현관에서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경기장에 나갔던 팀원들이 돌아온 것이다.

“어? 누가 있나본데? 에젤린인가?”

제일 먼저 연습실에 들어온 사람은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빡빡 머리에다가 팔에는 문신을 가득 그려 넣은 사람이었다.

그는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정명을 보자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이 바로 새로운 미드라이너, 맞지? 반가워. 난 새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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