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1화 (11/226)

3. SAO (4)

새비가 판단하건대, 탑은 이미 승패가 갈렸다.

서로 간의 실력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들의 싸움이다 보니 사소한 실수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탑은 그냥 버티기만 하라고 하는 게 낫겠어.’

LOH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명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망한 라인은 가지 않는다.’ 라는 것.

정글러 입장에서 볼 때 지고 있는 라인을 가서 풀어준다면 물론 좋겠지만, 허탕을 친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그리고 허탕을 치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정글러 또한 망할 수밖에 없으니 망해버린 라인은 그냥 버리라는 것이다.

그런 결론에 다다른 새비는 결정을 내렸다.

미드만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로.

탑에서 힘들어 하던 사뮤엘은 작게 불평했지만, 라인전에서 진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으므로 더 이상 뭐라 하진 않았다.

라인에서 말파를 두들겨 패고 있던 정명은 또 다시 오는 새비를 보고 피식 웃었다.

“이렇게 자주 오면 상대 라이너가 짜증 좀 내겠는데요. 혹시 저 사람에게 악감정 있는 것은 아니죠?”

“그런 거 없어. 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야.”

그 말과 함께, 미드라인에 새비가 난입했다.

이미 두 번 죽였으니 한 번 더 죽이는 것은 훨씬 쉬웠다.

말파는 새비가 맵에 나타나자마자 빠른 반응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레벨과 아이템 격차가 나는 탓에 피가 쑥 쑥 빠지며 녹아버렸다.

그리고 말파를 잡자마자, 새비는 미드를 한 번 더 가겠다고 선언했다.

“아직 저 사람 부활하지도 않았는데요?”

“어. 저 녀석 라인에 오자마자 한 번 더 가자.”

“새비. 진짜로 저사람한테 악감정 있는 것 아니죠?”

“아니라니까? 지난번엔 저 사람이랑 밥도 같이 먹었어. 이런 걸로 화낼 사람은 아니야. 물론 짜증은 좀 내겠지만.”

뭔가 찝찝한 대답이었지만, 정명은 새비가 시키는 대로 라인을 쭉쭉 밀었다.

그리고 라인을 밀자마자 타워 뒤로 돌아온 새비는 바로 타워 다이브를 해버렸다.

무럭무럭 성장한 제라드의 포격에 말파는 타워를 끼고 있음에도 죽을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말파의 데스 카운터는 3이 되었다.

그렇게 말파를 반병신으로 만들고서야 새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아! 이제 말파는 당분간 없는 캐릭터다. 말파가 이렇게 망했으니 최소한 40분은 넘어야 1인분은 할 수 있을 거야.”

“저렇게 죽어도 방어 아이템은 죽어도 안 가네요.”

“무척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니까. 원래 저런 사람이다.”

“공격적인 성향...새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저 사람하고 싸워서 이겨요?”

“걱정 마라. 무슨 일이 있으면 마트가서 총이라도 사들고 오지 뭐.”

“오, 그거 아주 멋진 생각인데요. 한 번 더 잡아도 되겠어요. 빨리 한 번 더 오세요.”

라인전이 끝나고 한타페이즈로 넘어갔지만 미드의 격차는 생각보다 컸다.

정명의 제라드는 2인분을 하고 상대방 말파는 0.5인분을 하는 상황.

결국 용이 걸린 한타에서 대패한 뒤, 엑스미시팀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대로 항복을 선언했다.

[2부리그 팀 간의 연습경기 승리. 5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후, 오랜만에 맛보는 포인트의 맛은 정말....마음에 드는군.’

정명은 뿌듯한 마음에 몸을 의자로 쭉 늘어트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엑시미시팀은 진 게 분했는지 한 판 더 하자고 채팅으로 조르고 있었다.

“정명, 얘네들이 한 판만 더 하자는데 괜찮겠어? 네가 피곤하면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두고.”

“괜찮아요. 조금 피곤하긴 한데, 한 판 이기고 그만하자고 하면 저쪽에서 기분 상할 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다보면 나중에 연습게임 안 해줄지도 모르고.”

“그래? 그렇게까지 유치하게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 그러면 한 판만 더 하고 쉬자.”

사실대로 말하자면 조금 피곤했지만, 마지막 힘을 짜내어 경기에 임하기로 했다.

‘지금 내가 가진 포인트가 250...다음 판에서도 50포인트를 벌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마 이번 판도 이길 수 있다면 정말로 오랜만에 피지컬을 1 상승시키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한 생각에 도달하니 정명은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새 게임이 시작됐다.

엑스미시의 미드라이너는 단단히 열이 받았는지 암살자 캐릭터를 골랐다. 피지컬 싸움을 해 보자는 것이다.

어떻게 하겠느냐는 새비의 물음에, 정명은 고개를 저었다.

“저 싸움을 받아 줄 필요는 없죠. 솔직히 지금 컨디션이 100%인 상황이 아니라서 장담을 못 하거든요. 방어적인 캐릭터가 좋겠습니다.”

“그래? 그럼 블라미가 좋겠군. 블라미 정도면 암살자가 아니라 암살자 할아버지 캐릭터가 와도 쉽게 못 잡을 거야.”

복수를 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게임에 임했던 엑스미시 팀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두 번째 경기 또한 첫 번째 경기의 재판이었다.

아니, 오히려 쉬웠다. 이번에는 바텀 라인과 탑 라인이 비등비등하게 싸우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전 경기에서는 이기고 있었던 미드라인이 비등비등하게 라인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다들 도와줄 필요 없지? 그럼 난 미드 간다?”

그리고 그 팽팽한 싸움에 새비가 난입했다.

새비는 다른 곳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마치 ‘한 놈만 팬다’ 라고 소리치듯 성과를 내건, 못 내건 꾸역꾸역 미드로 향했다.

그리고 정명은 정말 마트가서 총이라도 사와야 하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새비. 이번에는 와도 별 성과가 없을 것 같은데요?”

“상관없어. 내가 가면 상대방 정글러도 붙잡아 둘 수 있을 거야. 그거면 됐지. 다른 라인이 이기고 있으니까.”

LOH는 멘탈싸움이라고도 불린다. 플레이어의 심리 상태가 게임 플레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새비의 집요한 견제로 멘탈이 조금씩 깨져나갔던 상대방 미드라이너는 이제 조금씩 빈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비와 정명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잡아, 저거 잡아! 궁 그냥 써버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정명은 도와주러 왔던 엑스미시의 정글러까지 잡아버리며 더블 킬을 만들어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새비가 죽었지만 2:1 교환이라면 무조건 이득이다.

블라미는 초반엔 약하지만 후반에는 강력한, 전형적인 ‘왕의 귀환’ 형 캐릭터였으니까.

그리고 20분 뒤. SAO는 팀 ‘엑스미시’에게 2:0으로 승리하며 연습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2부리그 팀 간의 연습경기 승리. 5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300포인트. 드디어 모았다. 정말 기나긴 세월이었어....’

게임에서 이기고 오랜만에 포인트도 벌었다.

정명이 기쁜 마음에 새비를 돌아봤지만 가장 승부욕이 크다고 하던 새비는 의외로 덤덤한 표정이었다.

“새비. 별로 안 기뻐요?”

“음? 아니, 물론 이겨서 좋지. 왜?”

“표정만 보면 게임에서 진 사람 같아서요.”

“어차피 엑스미시도 만년 2부리그 팀일 뿐이니까 너무 좋아하는 것도 우습지. 난 그것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싶거든. 아, 다들 잠깐 이쪽으로 와 봐.”

새비는 이제 늘어져서 쉬려는 팀원들을 한 곳으로 불러 모았다.

“지금 떠오른 생각이긴 한데, 당분간 미드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전략을 쓰는 게 좋겠어. 다들 어떻게 생각해?”

“흠...그러니까 새비 네 말은 우리도 이제 여왕벌 지키기 작전을 쓸 때가 왔다 이거지?”

“그래. 우리는 이미 지난 시즌에서 실패를 맛봤잖아. 미드라이너가 바뀌었다고는 해도, 전략을 바꿔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여왕벌 지키기?”

생소한 단어에 정명이 고개를 갸웃하자, 새비는 그것이 요즘 북미에서 유행하고 있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북미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는 팀 GLG가 유행시킨 작전이야. 혹시 GLG의 싱글리프트라고 알아?”

“당연히 알죠. 북미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 중 하나잖아요.”

“맞아. 그가 유명한 것은 북미에서 원탑으로 불리는 원딜러이기 때문이지. 엄청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팀에서 항상 캐리를 도맡아하는 사람이기도 해.”

GLG가 하는 게임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게임이 어떻게 흘러가든 ‘어차피 캐리는 싱글리프트가 한다.’ 는 것이다.

따라서 GLG는 아예 전략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처음부터 모든 전력을 싱글리프트에게 몰아주기로.

“그리고 그 여왕벌이라는 것이 싱글리프트인가보죠?”

“그렇지. 오늘 첫 번째 연습경기를 떠올려봐. 네가 초반에 킬을 쓸어 담으니까 나중에는 1:2, 심지어 1:3까지 어느 정도 가능했잖아. 그런 것을 기대하고 쓰는 전략이야. 요즘은 대부분의 북미팀이 그 전략을 쓰고 있지.”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전략이었지만, 전략은 어차피 돌고 도는 것.

SAO는 당분간 연습경기에서 미드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전략을 쓰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래요. 그게 유행이라니까 몇 번 해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래.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이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전략중의 하나니까 말이야 여왕벌씨.”

이제 정말로 쉴 수 있게 된 정명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서 침대에 누웠다. 놀랍게도 방은 개인 방으로써, 혼자 쓸 수 있었다.

정명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랜만에 포인트 상점을 불러왔다.

“상점, 상점이...”

사실 상점은 어느 때고 열 수 있다.

하지만 정명은 상점을 열 때면 이렇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능력을 구입하는 것을 좋아했다. 무언가 비밀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한 달 넘게 정체되어있던 정명의 피지컬은 1이 올라 48이 되었다.

[피지컬 구입을 완료하였습니다.]

[잔여 포인트 0]

“음. 여전히 변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게임에서 테스트를 해 보면 미세하게 변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연습 때문에 변한 건지, 포인트를 올려서 변한 건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미세한 차이였다.

‘50이 되면...무언가 바뀔 지도 모르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