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239화 (239/325)

#239

회사 분위기 알고 있죠?

그 길로 난 엘리베이터를 잡아 회의실 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삼차장을 불렀다.

“혹시….”

난 볼펜 뒷부분으로 테이블 위를 탁탁 두드리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인사부에서 내려왔던 공문 말입니다.”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볼펜으로 두드리고 있는 테이블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을 이어갔다.

“우리 영업부에서는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안 나왔다고 하는데, 알고 있는 거 있으십니까?”

정면으로 양 차장이 앉아 있었다.

양 차장은 어깨를 한 번 들었다 올리며 자기는 아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왼쪽으로 안 차장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한 명도 안 나왔다고요?”

“네, 단 한 명도 안 나왔다고 합니다.”

“크흐….”

“안 차장님은 뭐 아는 거 있으십니까?”

“아뇨. 저는 저희 애들한테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민규도 있는데 뭐라 말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그럼 김 차장님은요?”

“허허허. 혹시 이거 노코멘트해도 되는 겁니까?”

난 그저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뭐 좋습니다.”

“왜… 그걸로 뭐라고 하던가요?”

김 차장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아뇨. 뭐라고 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좀 이상해서요. 분명 한 번 정도 지원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업무라고 보이는데, 단 한 명도 안 나왔다고 하길래 혹시 차장님들이 팀장들 불러놓고 단속을 시켰던 결과였나 싶어서요.”

“….”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불만은 안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사실….”

그래, 그럼 그렇지.

김 차장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투로 양 차장과 안 차장을 잠깐씩 쳐다본 후 말을 이었다.

“공문의 내용보다는 공문이 내려온 절차에 대해 팀장들을 불러놓고 한마디 하기는 했습니다. 다른 부서에도 똑같은 절차로 내려진 공문이었겠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맨파워 지원을 요청하는 공문이라면 최소한 부장님이 직접 차장급을 소집해서 디테일한 사정을 설명하고 지원서를 받아야죠. 형식으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 형식을 무시하는 건 잘못된 거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그 형식이라는 게 자기들 필요할 땐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거고, 또 자기들 필요할 땐 생략을 해도 되는 거라면 따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 부분에 팀장들 모두 인사부, 아니 상무님이 보이시는 미흡함에 아쉬움을 표현했고요. 전 딱 거기까지만 했습니다. 팀장들이 팀원들 상대로 어떠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김 차장님은 따로 영업 마케팅부 팀장들 소집해서 성의 있게 팀원들 의사를 다시 한번 물어보라고 하세요.”

김 차장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가서 내로남불 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왜 문 팀장을 아웃시켰습니까?”

“….”

“다시 한번 확인들 하시고 개별적으로 저한테 보고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난 상무님 방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삼차장에게 장시간에 걸쳐 이야기해 줬다.

가능하면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전달을 해주려고 했는데, 솔직히 나도 그 당시 내가 지르는 그 행동이 어떤 불씨를 만들어낼지 몰라 많이 두려웠고, 또 그래서 흥분을 한 상태였기에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다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노력했고, 삼차장에게는 그 디테일한 내용이 그리 크게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았다.

그저 내가 상무님을 상대로 강 대표를 저격하는 척 엿을 날렸다는 정도로 해석만 해도 충분한 모양이었다.

“하아….”

삼차장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김 차장은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신음을 흘렸고, 양 차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으며, 안 차장은 쉬지 않고 ‘크흐…’ 하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조금만 참고 버티시라니까….”

결국 김 차장이 낮은 탄식과 함께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왜요? 난 속이 다 시원하구만.”

안 차장이 뭘 그렇게 걱정을 하느냐며 김 차장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김 차장은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몰아쉬며 답답하다는 투로 안 차장을 쳐다봤다.

“참 속 편한 소리 한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무너지거나 아님 우리 쪽으로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김 차장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빌어야 되지 않습니까.”

“뭘… 요?”

김 차장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알아서 무너지라고… 우리 쪽으로 아쉬운 소리를 해 올 때까지 기다리며 속으로 그렇게 빌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지금 그걸 하자고 하시는 겁니까? 그럴 가치가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지금까지 조금 전 상무님 방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다 설명해 드렸는데도?”

순간 김 차장의 두 눈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한번 붙어 볼 만한 상대다 싶었음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해서라도 그때 차장님께서 해주셨던 조언대로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안 봐도 그다음 스텝이 뭘지 뻔히 다 보이는데, 제가 그 짓을 왜 합니까?”

“하지만 부장님….”

“우리 뒤통수를 때린 상대를 잘되라고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렇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쳐낼 수 있는 상대를 앞에 놓고 그들이 하는 일이 잘못되라고 비는 추잡스러운 짓은 안 하고 싶습니다. 그냥 딱 제가 조금 전 상무님 방에서 했던 것처럼 선을 그어 주고 넘어오면 지져버린다는 경고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흐음….”

“남이 잘못되길 비는 게 우리의 일이 되어선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할 일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우린 그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더 중요하고 재밌는… 큰일을 하면 됩니다.”

장 본부장이 나의 팀장이었을 시절 내게 해줬던 말이었다.

남이 잘못되길 빌지 말고, 그럴 시간과 정성으로 우린 그냥 우리한테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을 하면 되는 거라고.

아마 당시 손 팀장 쪽에서 우리 팀이 작업 중이었던 브랜드를 우리 쪽 합의도 없이 물밑에서 작업했을 때, 크게 흥분한 날 진정시키며 장 본부장이 그런 말을 했을 거다.

우린 이미 그 외에도 다른 브랜드 몇 개를 동시 컨택 중이었고, 손 팀장 쪽은 컨택 중인 브랜드가 그게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손 팀장이 반칙을 한 건 아니었다.

비록 같은 홍성 영업부 소속이지만 엄연히 우린 경쟁이라는 걸 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해사 행위가 들어가지 않는 선에선 그걸 반칙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는 거였다.

물론 보기에는 안 좋지만, 그 정도는 허용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때 장 본부장은 고민을 하다가 그 브랜드에서 손을 떼자고 말했다.

우리에겐 그 브랜드 섭외 말고도 더 집중해야 할 브랜드가 있었고, 아마도 장 본부장 입장에선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 번질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을 했을 거다.

하지만 팀원들은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분명 우리가 먼저 컨택을 시작했고, 당시 장 본부장의 협상 능력이었다면 무조건 우리가 따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때 장 본부장이 내게 물었다.

아깝냐고. 왜 아깝냐고….

너무나 당연한 걸 물어봐서 솔직하게 대답을 하면 괜히 속물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그래서 답은 뻔한데도 불구하고 난 대답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게 장 본부장은 씩 웃으며 그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은 많다며, 손 팀장을 디스할 정신이 있으면 그럴 시간과 정성을 더 나은 가치를 찾는 일에 쓰는 게 어떻겠냐고 했었다.

큰 울림이었다.

분명 일할 때 부하 직원들을 부리는 것만 보면 씨바를 놈 멍멍이 새끼인데 한 번씩 보여주는 그런 통 큰 모습, 그리고 정의로움이 씨바를 놈 멍멍이 새끼이지만 믿고 따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이었다.

그랬던 장 본부장이 상무님 옆으로 가면서 왜 저렇게 자기 소신까지 침묵해야 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가 안타까울 뿐이고…

“양 차장님.”

“네.”

“영업 기획부는 지금 이 순간부로 폴앤크루에서 손 뗍니다.”

“그래야죠. 더 이상 홍성 기획 브랜드가 아닌 게 되어 버렸으니… 차 팀장 시켜서 이미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영업 마케팅부로 넘기면 되는 거죠?”

“네. 김 차장님.”

“네, 부장님.”

“똘똘한 팀장한테 맡기세요. 실적 보고 브랜드 분배하듯 나누지 말고 강 대표 성향 파악해서 상극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만한 팀장한테 맡아 보라고 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미 아까 상무님 방에서 강 대표한테 말은 해놨습니다. 앞으로 영업 기획부가 아닌 영업 마케팅부에서 컨트롤을 하게 될 거라고. 제가 아까 그렇게 한번 질러놨으니 마진 조율을 새로 하자고 덤비지는 못할 겁니다. 혹시라도 마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 나오면 차장님 선에서 결정하지 말고 저한테 바로 말하세요. 그 부분만큼은 타협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기획 브랜드가 아니라 마케팅 브랜드가 되었으니 저희 쪽에서 떠안는 게 맞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희 쪽에서 영업 기획부 쪽 SS 편집샵으로 매출을 쉐어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조금 복잡하지만 그렇게 해야겠죠.”

난 양 차장을 쳐다봤다.

역시 양 차장은 그 부분에 대한 준비를 이미 다 끝내놓고 있었다.

“매달 매장 직원들 인건비, 매장 수수료를 빼고 나서 순영업이익으로 잡힌 숫자에서만 나누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만큼만 단독 매장 진행되기 전까지 인건비, 수수료 명목으로 저희 쪽과 쉐어를 해주시면 됩니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긴 한데… 그럼 SS 편집샵 입장에선 남는 게 없잖아. 폴앤크루 컬렉션 늘어나는 것만 봐도 보통 자리를 차지하는 게 아닐 건데, 그 자리에 다른 브랜드 넣으면 좀 더 괜찮지 않나?”

“나중에 우리 애들 회식이나 한번 시켜 주십시오. 그럼 됐지, 뭐….”

“그럼 저는요?”

뜬금없이 안 차장이 날 쳐다보며 두 눈에 빛을 냈다.

“뭘요?”

“저는 뭐 하면 되냐고요.”

“안 차장님이 여기서 할 게 뭐가 있습니까? 해외 영업부랑은 겹치는 게 없는데…”

“그럼 전 마땅히 할 게 없으니까 오늘 회식이나 한번 준비해 볼까요?”

“회식이요?”

“뭐 전체 회식이라고 하기보다는 부장님이랑 여기 우리 차장들….”

“왜요?”

“왜라니요. 이런 날 아니면 언제 또 거국적으로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데 또 술이 빠진다는 건 말이 안 되고….”

“그럼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안 차장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김 차장이 다이어리를 챙겨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차장님 잠깐만….”

“그럼 저도 일어나 보겠습니다.”

양 차장도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제가 장소랑 시간 메신저로 보내드릴게요!”

“하이고….”

“오늘도 소고기 한번 먹습니까? 응? 응?”

“흐음….”

“아, 부장님… 우리 그동안 너무 뜸했잖아요. 아, 오늘 날 좋잖아. 이럴 때 마시지, 언제 마셔요? 안 그래요? 인정?”

“그럼 안 차장님은 지금 사무실 올라가서 민규 좀 데리고 오세요.”

“뭘 또 제가 직접 가서 데리고 옵니까. 그냥 전화로 내려오라고 하면 되지.”

“다른 직원들 눈치 못 채게 자연스럽게 어디 데리고 가는 척하면서 조용히 데리고 오세요.”

“….”

“다른 직원들이 이상한 오해 못 하도록….”

“…네.”

잠시 뒤 안 차장과 함께 민규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난 맞은편 의자를 눈짓하며 민규에게 앉으라고 말했고, 안 차장은 그런 민규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으며 나와 민규를 번갈아 쳐다봤다.

“민규 씨.”

“네, 부장님.”

“음… 쉽게 이야기할게요.”

“…네.”

“지금 회사 분위기 알고 있죠?”

“…네.”

“개인적인 감정이라고 하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잘 해내려고 하다 보니 벌어진… 뭐 그런 상황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안 불편하십니까?”

“….”

민규는 말이 없었다.

“사실 이 직장 생활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주어진 업무가 힘든 경우는 크게 없어요. 다 이런 상황들이 주어진 업무를 힘들게 만드는 거지.”

“….”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 그저… 민규 씨가 이런 의미 없는 감정 대치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을까 염려가 돼서 물어보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폴앤크루 셋업 멤버로 지원을 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

“영업부에선 한 명도 지원을 안 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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