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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66화 (66/325)

# 66

서류에 남아있어야 한다

회사가 내게 기대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감사팀과 법무부 에이스 직원들로 꾸려진 의전팀.

그 의전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장 영업에만 특성화 된 나란 사람을 이곳까지 데리고 올 때엔 그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손 팀장이야 앞으로 이곳에서 본사와의 소통을 이뤄내야 하는 핵심 인물이니 이번 기회에 따라오는 그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물론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손 팀장 역시 상무보가 추게 될 칼춤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이 확실하고.

그럼에도 나란 사람까지 이번 전사적 출장에 포함시킨 데에는 반드시 뭔가 이유가 있을 거다.

센젠.

한국에선 심천이라고도 하고 또 선전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중국 발음이 센젠이라고 한다.

중국 법인이 센젠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센젠이란 지역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나였다.

한국의 날씨는 이미 가을을 지나가고 있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여름이다.

가을을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여름같은 느낌이었다.

저녁이 되면 조금 쌀쌀해진다고 하는데, 우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복장은 하나같이 반팔 셔츠였다.

동남아와 비슷하지만 또 살짝 다른 느낌의 기후.

내 기준에서 텁텁한 습도는 약간 불쾌하기까지 했다.

우선 도시가 가진 특유의 냄새 자체가 나와는 맞지 않는 거 같았다.

공항에 도착을 하자 검은색 폭스바겐 파사트 차량 네 대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낙현의 말로는 현지 법인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차량이라고 한다.

법인 직원들이 운전대를 잡은 차량에 나눠타고 한국에서 출발한 전사적 출장팀이 처음 도착한 곳은 배였다.

배.

배로 만들어진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사실 정신이 없어서 옆에서 시티투어 가이드처럼 조잘거리는 안낙현의 설명 대부분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그 배 뒤로 펼쳐지는 바다 건너편이 홍콩이라는 것과 해당 레스토랑의 간판을 대신하고 있는 현판이 등소평의 글씨라는 건 확실하게 기억에 남았다.

식사 자리는 무척 불편했다.

상무보가 아예 입을 다물고 식사에만 집중을 했으니까.

의외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예전에 상무보 사무실에서 금일봉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금일봉을 주는 방법에 대해 전무님께 혼이 나던 상무보의 모습과 현재 무게를 잡고 식사에만 집중하는 상무보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지니 내 입장에선 조금 우습기도 했는데, 사실 지금처럼 침묵을 유지하는 게 맞는 거 같기는 했다.

그래서 난 속으로 나도 모르게 그런 상무보를 응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당시 전무님께 혼이 나던 당신의 모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니,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카리스마를 이번 출장이 끝날 때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으라는 뜻으로.

박 부장 역시 상무보의 눈치만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10인용 라운드 테이블 두 개가 들어가 있는 작은 방이었는데, 나와 손 팀장 그리고 안 대리는 의전팀에서도 거의 막내 정도 되는 인물 몇몇과 한 테이블을 썼고, 어느정도 위치가 있는 인물들은 상무보와 박 부장이 앉은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렇게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현지 법인 소속 주재원 근무자들과 식사를 끝내고 곧바로 법인 사무실 겸 장기 대여한 물류 창고가 있는 현장으로 향했다.

의외였다.

호텔에서 짐부터 풀 거라 생각했는데, 상무보의 일정 선택은 다이렉트였다.

“시작합시다.”

상무보의 건조한 한마디로 출장팀이 둘로 나뉜다.

나와 손 팀장, 그리고 안 대리는 독립적으로 법인이 해왔던 모든 업무를 파악하기 시작했고, 상무보와 박 부장의 지시 아래 의전팀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법인의 비리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분명히 뭔가가 있다.

이미 아웃이 확정된 법인장과 본부장.

짐을 싸고 있거나 아님 어차피 아웃이 확정된 상태이기에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어디 마실을 나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상무보의 호출에 곧바로 등장을 한다.

나였음 어떻게 했을까?

난 안 왔을 거 같다.

한국에 들어오면 곧바로 법적 절차를 밟는다고 했다.

그걸 그들도 당연히 알텐데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침착할 수 있지?

상무보에 대한 예의는 다하되, 자신들이 저지른 비리에 대한 반성이란 기본 예의는 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난 반드시 뭔가가 더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이렇게 백 마진을 쳤던 겁니다.”

안 대리의 말은 귓등으로 들렸다.

법인에서 하는 기본 업무를 설명하는 안 대리.

그리고 그런 안 대리의 설명을 꽤나 진지한 모습으로 듣고 있는 손 팀장.

하지만 난 고작 이걸 하라고 날 여기까지 부른 게 아니란 확신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내가 안 대리를 데리고 오겠단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럼 과연 난 지금 여기서 손 팀장과 뭘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주로 5퍼센트 내외가 관례처럼 되어있습니다.”

“근데 안 대리.”

“네, 손 팀장님.”

“이 5퍼센트가 본사에서도 그렇지만 진짜 재량이잖아.”

손 팀장의 말에 부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안 대리.

“재량의 멕시멈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황이 확실하잖아요.”

“그래서 묻는 거야. 만약 정황이 확실하지 않다면 과연 어디까지 재량으로 봐주고 또 어디까지 백 마진으로 봐야하는지 그 기준이 너무 애매모호 하잖아. 여기 이건 3퍼센트네. 이거 지금 한문으로 적혀있어서 확실하게는 모르겠는데, 3퍼센트라고 적혀 있는 거 맞지?”

“네, 그렇네요.”

“이런 경우는 어떻게 봐야 돼?”

서류만 가지고는 확인이 되지 않는 비리.

하지만 세상에 그런 비리는 그리 많지가 않다.

어지간 하면 또다른 이름, 모습으로 어떻게든 서류에 남아있어야 한다.

개인 업자들이 하는 사업이 아니지 않나.

명색이 대기업이 하는 사업인데, 그런 사업에 서류에 남지 않는 비리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들 역시 바보들이 아니기에 모든 백 마진에 다 증거들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부 고발을 한 안 대리의 말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고.

얼음보다 차가운 상무보의 눈빛.

난 손 팀장, 안 대리와 함께 독립적인 업무를 보면서도 수시로 먼발치에서 상무보와 박 부장의 표정을 살폈다.

분명 뭔가가 더 있다.

그리고 지금 상무보는 그걸 밝혀내겠다고, 한국에 있는 전무님은 그걸 밝혀내라고 지금 이 그림을 만드신 거겠지.

“그런데 안 대리님.”

“네, 팀장님.”

뜬금없이 발동하는 촉.

그리고 그 촉으로 가상의 그림을 그려보기 위해 안 대리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이렇게 한국 업체들로부터 백 마진을 쳐서 물건을 받은 다음 매장에는 어떤식으로 영업을 합니까?”

내가 생각했던 촉이 아슬하게 포인트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중국이 참 재미가 있는 게 각 성별로 그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성에 따라 다르다?”

“다르죠. 한국이랑 크게 다릅니다. 한국이야 시장 80퍼센트 이상을 롯데와 신세계가 나눠먹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중국은 그게 불가능하죠. 성에 따라서 들어가 있는 백화점의 브랜드가 다 다릅니다.”

“흐음...”

“물론 모든 성에 들어가 있는 대표적인 브랜드도 있죠. 하지만 이 성에 가면 이런 백화점이 있는데, 다른 성에는 그런 브랜드의 백화점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거기다 해외 백화점 브랜드에 워낙 관대한 나라가 되다보니 한국의 롯데를 비롯해 홍콩, 대만, 일본, 싱가폴, 독일...해외 백화점 브랜드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겠죠.”

“그렇다보니 영업 방식이 다 다릅니다. 마진 베이스도 표 안나게 조금씩 달리 잡아줄 수 밖에 없는 거고요.”

“그걸 법인 직원들이 직접 다 컨트롤하지는 못할 거 아닙니다.”

“불가능이죠. 그래서 중간 에이전트를 씁니다.”

“에이전트.”

“네, 각 성별로 퍼져있기도 하고, 여러 성을 한 업체가 통괄하기도 하는데, 그런 에이전트 몇 군데랑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업체를 안 통하면 여기 센젠에도 다 못 깝니다.”

“그런 에이전트 업체들과도 백 마진이 이뤄질 수 있습니까?”

“그 부분에 대한 로비는 받는 게 아니라 하는 쪽이죠.”

“그 부분에서도 백 마진이 이뤄진단 말이네요?”

“그런 게 없으면 현지 에이전트들이 홍성 법인과 같이 할 이유가 크게 있을까요? 널리고 널린 게 브랜드들인데.”

“이 부분은 100퍼센트 법인 사람들만 먹는 부분이겠네요?”

“받는 쪽이 아니라 하는 쪽이라니까요.”

“아니죠.”

난 답답하단 투로 말했다.

“백 마진을 크게 쳐준 다음, 또 그 안에서 일정부분 에이전트 관계자로부터 개인적인 퍼센테이지를 받을 수도 있는 거죠.”

“...!”

“직원들은 알지 못하는, 위에서만 할 수 있는 장난이라는 게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 대리가 아차하는 순간 손 팀장이 혀끝으로 입술을 적셨다.

지금까지 어떻게 현지 법인이 운영되어 왔는지에 대해선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난 앞으로 손 팀장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걸 짚어주고 싶었을 뿐이다.

“에이전트들에게 넘겨주는 마진 리스트 한 번 뽑아주세요.”

그리고 다음날.

나로 인해 출장이 하루 더 길어지게 된다.

간밤에 계속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법인장이 절대 바보는 아닌데 어떻게 주재원 근무자들이 관례처럼 행하는 백 마진을 전혀 모를 수가 있었을까 하는 게 일차적인 의심의 시작이었다.

자기들 말로는 본부장이 컨트롤을 하는 부분이라 법인장은 그저 업무 태만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절대 그건 있을 수가 없는 말이다.

상식만 가지고 생각을 해봐도 말이 안되는 소리다.

“이 에이전트들이...얼마나 됩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 중국에 이런 에이전트들이 얼마나 됩니까?”

“아이고...그걸 어떻게 다 파악을 합니까? 절대 다 파악 못합니다. 그건 현지 업계 관계자들도 모를 겁니다.”

“그럼 현지 법인과 함께 일하고 있는 에이전트들은 메이저 급입니까, 아님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수준의 업체들입니까?”

“섞여 있습니다. 메이저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메이저 빼놓고 아닌 업체들 상대로 연락을 한 번 해봐주시겠습니까?”

“뭐라고...”

“그냥 현재 법인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다른 불이익은 없을테니 법인이 쳐준 백 마진에서 별도로 법인쪽으로 다시 돌려준 퍼센테이지가 있는지까지만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없다고 하면요?”

“계약 연장은 없을 거라고 하세요.”

“...!”

“진짜 없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참에 싹 다 메이저 업체로 교체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 팀장님?”

“음...나쁘지 않네. 그렇게 해야 정상이지, 원래라면.”

그런데 여기서 촉이 한 번 빗나간다.

다른 불이익이 없을 거란 약속을 전제로 걸어놓고, 접촉을 시도했음에도 상대 업체는 자기들이 받은 백 마진에서 법인 쪽으로 다시 흘러들어가는 퍼센테이지는 단 0.1퍼센트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안 대리 역시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분명 뭐가 더 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또다른 촉이 발동을 한다.

“아까 그 인보이스 다시 한 번만 줘보시겠습니까?”

큰 별이 새겨진 빨간 도장이 쾅하고 찍혀있는 인보이스 한 장.

아마도 중국은 공용 문서에 반드시 이 도장을 찍어야 하는 모양이다.

어지간한 공용 문서에는 하나같이 이 별 도장이 찍혀 있었다.

“여기 이 항목은 정확하게 뭡니까?”

총 인보이스 금액의 2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항목.

“배송비입니다.”

“배송비...”

“네.”

“근데 이걸 왜 에이전트가 부담을 안하고 법인 쪽에 청구를 합니까?”

안 대리는 거기까지는 모르겠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껏 별 의심없이 결재를 했던 부분이라고 덧붙이면서.

처음 주재원 근무를 와서 배운 업무가 인보이스 확인인데, 처음부터 그렇다고 배웠다고 말했다.

“보통 배송비까지 포함된 액수가 마진으로 잡히는 거 아닌가요? 동네 구멍가게에서 물건 하나 주고받는 게 아니잖아요. 기본 화물 컨테이너 단위로 주고받는데, 이런 배송비까지 별개로 청구할 이유가 있나요?”

“흐음...”

“중국이라 다른 겁니까?”

“글쎄요, 이 부분에 대해선 전혀 생각을 안해봐서...”

뭔가를 잡은 거 같았다.

물론 확신은 아니지만.

난 곧바로 해당 인보이스를 들고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인사 숙청이 이뤄지는 상무보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박 부장에게 귓속말로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날 힐긋거리는 상무보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리고 박 부장은 그냥 여기서 이야기를 하라고 말했다.

“여기 이 배송비 부분 말입니다.”

“이게 왜?”

“이게 왜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건지 법인장님께 여쭤보고 싶어서요. 안 대리도 그렇고 다른 직원들 모두 처음부터 이렇게 인보이스 교육을 받아와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하는데, 보통 한국은 배송비 내역이 마진에 포함되지 않습니까. 마진까지 다 맞춰주고 에이전트를 상대로 백 마진까지 쳐주면서 배송비까지 법인이 부담한다는 게 제 상식에선 이해가 안가서요.”

현장 경험이 부족한 상무보와 현장에 대해선 아예 모르는 다른 의전팀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는 의심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재밌게도 박 부장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가는 순간, 법인장과 현지 본부장의 표정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박 부장이 법인장에게 물었다.

“혹시 배송 업체...법인이 선택한 겁니까, 아님 해당 에이전트가 선택한 겁니까?”

“그야 뭐...상황에 따라 우리가 선택할 수도 있고, 에이전시가...”

“그럼 이 인보이스에 들어가 있는 배송 업체는 법인이 선택한 업체입니까, 아님 인보이스를 보낸 에이전트가 선택한 겁니까?”

“...법인이 선택한 업체네요.”

“근데 왜 에이전트가 배송비 항목까지 인보이스에 청구를 한 겁니까?”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판이 한순간 바뀌기 시작한다.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여기에 뭔가가 있다는 걸 눈치챈 상무보와 의전팀.

곧바로 중국어가 가능한 감사팀 직원 하나가 해당 배송업체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감사팀 직원이 해당 배송업체와 통화를 이어가는 동안 박 부장이 다시 한 번 법인장에게 물었다.

“배송 업체를 선택하는 기준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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