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 몬스터 슬레이어 (1)
해안 절벽에 있는 작은 동굴에 몸을 숨기고 이신예에게 정보를 주고받았다.
동굴은 기어서 들어가면 앉았을 때 딱 맞을 정도의 크기로, 동굴이라기엔 좁은 공간이었다.
“일단 채하나 씨는 무사해. 신변은 우리가 확보하고 있어.”
“하아, 다행이네요.”
“다행이라니……!”
빼액 소리를 지르는 이신예 때문에 귀로 들리는 것도 아닌데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지금 네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알아?!”
“어느 정도는 자각하고 있어요.”
“아니, 너는 전혀 모르고 있어.”
힘이 없는 그녀의 목소리엔 걱정이 담겨 있었다.
“앙그라마이뉴의 길드 마스터, ‘유한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전혀 모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애초에 앙그라마이뉴는 잘 드러내지 않는 녀석들이었으니까요.”
“이번 사건 때문에 헌터 협회는 공식적으로 유한성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어.”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 말은 앙그라마이뉴에서 이번 일에 대해 제대로 반응한 건가요?!”
“반응 정도가 아니야. 이 자식들 완전히 날뛰고 있다고. 잔챙이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에 주요 전력들은 다 던전 쪽으로 빠져나갔어.”
“네?! 그건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데요.”
아무리 앙그라마이뉴의 전력이 강하다고 해도 지금 상태의 던전에 들어오는 건 도박이었다.
주교라고 불린 여자가 몬스터를 세뇌하는 걸 봤을 때 빠르게 수를 늘리는 건 무리다.
그렇다면 앙그라마이뉴는 그만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던전으로 들어오는 건가.
“한 층을 점령하려는 거지. 만약 그렇게 되면 천연 요새가 되는 거니까.”
“……!”
확실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1층부터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며 올라온다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전력이 바닥나겠지만, 몬스터를 무시하고 5층까지만 올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던전 한 층엔 많은 게이트가 존재하고 그만큼 많은 몬스터가 존재한다.
13층에서 최상층 공략을 할 때 던전 공략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 여자의 능력이 있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상황이 좋지 않아.”
교주라는 여자의 능력은 몬스터를 세뇌해서 조종할 수 있는 것.
단순히 5 대 5의 상황에서 4 대 5가 아닌, 4 대 6으로 만드는 능력인 거다.
적의 전력을 줄이고, 아군의 전력을 올리는 건 어마어마한 차이가 생긴다.
“그럼 놈들은 그 많은 몬스터를 데리고 던전으로 향하고 있는 건가요?”
처음에 그들이 했던 얘기를 떠올려 보면 확보한 몬스터는 200마리 이상.
엄청난 수다.
그 정도 수가 있으면 층 하나를 공략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게 유한성의 초월 능력이야.”
“네? 앙그라마이뉴의 길드 마스터요?”
유한성은 거대 길드의 마스터치곤 젊은 편에 속했다.
물론 신월의 길드 마스터인 하루를 보면 나이가 크게 의미가 없긴 하다.
워낙 베일에 싸인 인물이라 나도 사진을 본 것밖엔 아는 게 없다.
“유한성의 능력은 ‘공간 창조’.”
“공간… 창조라니… 그게 무슨 능력이죠?”
“말 그대로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창조하는 능력이야. 마치 네 인벤토리 능력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 깊게 들어가면 다르지만.”
초월 능력으로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능력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능력이니까.
“공간을 만든다는 건 마치…….”
“맞아. 던전의 ‘게이트’와 비슷한 맥락이지.”
게이트라는 공간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입구와 출구가 있으며 그 안으로 들어가면 본래는 없어야 하는 공간으로 갈 수 있다.
즉, 유한성의 능력은 아무것도 없는 게이트를 만드는 건가.
“유한성은 자신이 만든 공간의 입구와 출구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 분명 놈들이 데리고 있는 몬스터는 그 공간 안에 있겠지.”
“아…….”
“‘아’가 아니라! 지금 네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감이 와? 그 많은 몬스터를 풀면 아무리 너라고 해도 빠져나올 수 없을 거라고.”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놈들이 5층에 자리를 잡으면 우리가 지원을 가는 것도 무리야.”
“아무래도 그렇겠죠. 몬스터 수가 그렇게 많으니까요. 저는 어떻게든 해 볼게요.”
“그래! 그게 네 안 좋은 버릇이야!”
알고 있다.
혼자서 뭐든 다 하려고 하는 게 내 문제점이라는 걸.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렇게 사는 법밖에 모른다.
그리고 가장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당했던 경험은 여전히 내 깊숙한 곳에 가시처럼 박혀 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알려 줄게.”
“고마워요.”
이신예와의 통신이 끊기고 동굴 밖으로 조심스럽게 기어 나왔다.
던전만 아니라면 누구나 휴가를 오고 싶을 정도의 경관이 나를 반겼다.
푸른 빛의 바닷물과 시원한 바람, 끔찍한 지옥이라곤 믿기지 않는군.
“그 유한성이라는 인간이 오면 위험해지는 거 아냐?”
“오기 전에 끝을 내야지.”
일단 교주라는 여자만 처리하면 어쨌든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그러니 저쪽에서도 그 주변만 철저하게 방어하는 거지.
등지고 있던 해안 절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 지정 부활과 즉시 부활의 스킬 쿨타임이 남아 있지만,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절벽 위로 올라와 엎드린 채 주변을 살폈다.
“어때?”
“아까보다 숫자가 늘었어. 형씨를 의식하고 주변에 몬스터를 깔아 두기 시작한 거 같아.”
“차라리 이쪽이 나아.”
“몬스터 수가 늘었는데?”
발렌의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어진을 두껍게 만들수록,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크거든.”
스킬창을 열어서 쿨타임을 확인하고 절벽 반대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기회는 한 번.
“이쪽이다! 여깄다!”
발각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5층은 앙그라마이뉴 길드가 점령하고 있다.
아무래도 원래 5층에 있던 몬스터와 싸워서인지 곳곳에서 피 냄새가 진동했다.
게이트에서 새로 나오는 몬스터는 세뇌해서 다른 몬스터와 싸우게 만드는 건가.
시간이 갈수록 5층은 더욱 단단한 요새가 되겠지.
“……!”
카앙-!
내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던 헌터가 풀숲에서 튀어나와 날카롭게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각!
붉은 로브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방금 일격만으로도 그가 실력자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젊은이의 패기는 좋아하지만, 객기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로브 안쪽에서 들려온 걸걸한 목소리에 맞대고 있던 그의 검을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정말 혼자서 우리 길드와 싸우려는 거야?”
큼지막한 대검을 한손으로 자유롭게 휘두르는 그는 보통 근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대검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며 고개를 저었다.
“죽어도 살아나는 능력이라고 했나? 헌터로선 축복받은 능력이군.”
“…당신은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나요?”
그에게 화도를 겨눈 채 말을 이어갔다.
“헌터들이 서로 싸우고, 몬스터를 조종해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그 끔찍한 날을 반복하려고 하는 게 정상적이냐고 묻는 겁니다.”
“하하하하!”
그는 내 질문이 재밌었는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상적일 리가 있나. 세상은 이미 비정상이라고. 비정상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거야!”
말을 마치자마자 내게 달려든 그는 터프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쩌엉! 쩡!
양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과 한 손으로 휘두르는 건 차이가 크다.
양손으로 검을 들면 파괴력은 물론이고 자세도 안정된다.
하지만 한 손은 그만큼 검의 궤도가 자유로워진다는 장점이 있다.
“곱상하게 생긴 것치곤 제법인데?”
그는 즐거운 듯 신나게 검을 내리쳤다.
쩡! 쩌엉!
두 자루의 검이 맞부딪힐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힘으로 밀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를 압도하지도 못했다.
스킬을 안 썼다고 해도 이 정도 실력이면 A급 이상인가.
“아저씨랑 좀 더 놀고 싶지만, 방해꾼들이 많네요.”
“아저씨?! 아직 서른다섯이라고!”
시간이 끌리는 사이에 다른 헌터들이 이쪽으로 몰려들어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쪽으로 시선을 끌 생각이었으니 성공이군.
대검을 든 남자가 다시 한번 내게 달려드는 순간, 라이프 파워를 쓰며 앞으로 붙었다.
“……!”
기왕이면 이런 실력자는 처리해 두는 게 좋겠지.
그의 검에 힘이 붙기 전에 검 끝으로 튕겨 내며 단숨에 몸을 길게 그었다.
촤아악!
붉은 피가 허공에 터져 나왔지만,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찰나에 뒤로 몸을 뺀 건가.
“이 자식…….”
로브가 찢겨진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치명상이겠지.
“죽여!”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헌터들이 동시에 내게 달려들었다.
포위망이 넓을수록 한곳을 뚫고 나가는 건 편하다.
쌔엥-!
단숨에 세 사람을 쓰러뜨리고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역시 처음에 있었던 녀석들은 정예였던 건가.
나중에 합류한 다른 헌터들은 처음 나와 싸웠던 헌터들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쪽이다! 교주님한테 간다!”
“쫓아!”
뒤에서 들리는 헌터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숲을 가로질러 달렸다.
스킬 쿨타임은 거의 다 돈 상태다.
멀찌감치 해변이 보였고, 발렌이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 상황을 알려 줬다.
“정면 양옆에 몬스터 냄새가 나!”
“그대로 돌파한다!”
발렌의 말대로 수풀 속에 숨어 있던 스킬라 두 마리가 동시에 덮쳐 왔다.
기습을 알고 있었기에 공격을 피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송화’로 춤을 추듯 가볍게 스텝을 밟아 스킬라 두 마리를 지나쳤다.
“앞에 헌터들!”
이미 내가 여기로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한 무리의 헌터가 교주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원래 착용하고 있던 빙결의 갑옷에서 칠흑의 묵갑으로 장비를 바꿨다.
“막아!”
첫 번째 돌파.
블링크!
코앞에 있던 헌터들은 보이지 않고 바로 교주라는 여자 앞까지 이동했다.
부웅-!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향해 화도를 내리쳤다.
푹!
그러나 검은 중간에 나타난 방해물에 막혀 버렸다.
오히려 뚫린 쪽은 내 옆구리였다.
“컥… 커헉…….”
입에서 피를 토하며 옆구리를 쑤시고 있는 데스나이트를 노려봤다.
“너무 뻔한 거 아닌가요? 솔직히 조금 실망했어요. 최현 씨에 대한 무용담을 들었는데 많이 과장됐나 보네요.”
로브 때문에 씨익 웃고 있는 그녀의 입꼬리만 보였다.
“몇 번을 온다고 해도 최현 씨의 검은 저에게 닿을 수 없어요. 계속 도전하는 건 도전할 때마다 성과가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거죠.”
“…….”
흐릿해지는 시야와 함께 옆에 있던 다른 데스나이트가 한 번 더 가슴에 검을 꽂아 넣었다.
격렬한 통증과 불타는 듯한 감각.
격통 속에서도 나는 웃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 결국 망가진 건가요. 안쓰럽군요.”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두 번째 돌파.
[Game Over
System : 체력이 0이 되었습니다.]
[System : ‘지정 부활’을 발동하셨습니다!]
[System : ‘즉시 부활’을 발동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