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프x9999-112화 (112/176)

112화 : 몬스터 슬레이어 (2)

흐릿해진 시야의 초점을 잡기도 전에 바닥에 누운 채로 화도를 휘둘렀다.

쌔엥-!

그녀의 배에서 나온 피가 누워 있는 내 얼굴에 튀었다.

“…허어…. 어… 어떻게… 대체 뭐가…….”

입가에 피가 흐르는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닥에 있는 나를 내려다봤다.

방금 뒤에서 데스나이트의 검에 찔려 있던 내가 멀쩡한 상태로 그녀 앞에 튀어나왔으니 이상할 수밖에.

어지러웠던 정신도 제대로 돌아왔고,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앙-!

“……!”

안타깝게도 두 번째 공격은 세 마리의 데스나이트의 검에 막혔다.

분명 치명상이지만, 제대로 끝을 내지 않으면 몬스터들은 계속 조종하겠지.

털썩.

그리고 배를 움켜쥔 주교가 바닥에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데스나이트들이 뒤로 물러났다.

“주교님! 젠장!”

“주교님이 당했어!”

“으아악!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어!”

본래 그녀가 조종하고 있던 몬스터들이 주변에 있는 헌터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으면 몬스터들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가?!

아니면 아까 공격으로 끝난 걸지도…….

“저 여자 아직 살아 있어.”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죽은 생물은 다른 냄새가 나거든.”

발렌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치유계 헌터도 있을 테니 마무리를 짓지 못한 건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

제대로 공격이 들어갔으니 금방 치료할 순 없겠지만.

카앙! 캉!

데스나이트는 주변에 있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받아 내는 동안 다른 데스나이트들이 헌터들과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이 새끼가! 감히 우리 계획을 망치려고!”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데스나이트를 밀쳐 내고 돌아봤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과 날렵한 턱선, 사나운 눈매가 마치 사나운 짐승 같았다.

로브를 걸치고 있긴 했지만, 뒤집어쓰진 않았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매섭게 나를 쏘아보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당신이 하려고 하는 짓은 미친 짓이야.”

“미친 짓?! 그래서?! 정의로운 척, 영웅 행세라도 하겠다는 거냐?!”

유한성의 말에 그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아포칼립스 이후로 던전 근처가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 봤잖아! 인간이 직접 그 지옥을 다시 만든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옥? 재밌네. 네놈부터 지옥에 처박아 주지.”

어쨌든 유한성이 그 많은 몬스터를 지닌 건 사실이다.

걸어 다니는 폭탄인 유한성도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이프 파워의 효과가 남아 있을 때 끝내야 해!

뒤에서 공격해 온 데스나이트의 검을 가볍게 피하며 유한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맘껏 맛보고 와라. 지옥을.”

유한성이 내 쪽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파아앗!

“……!”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아찔한 감각과 함께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감각은 내게 익숙한 감각이었다.

***

“형씨! 정신 차려!”

발렌의 목소리에 고개를 휘휘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봐.”

“…여긴…….”

“아무래도 그 인간이 형씨를 자기가 만든 공간에 집어넣은 거 같아.”

“……!”

주변을 살펴보는 순간, 몸이 굳어 버리고 나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마셨다.

수많은 몬스터가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찾은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많은 수준이 아니었다.

온통 빽빽하게 몬스터로 가득 차 있어서 몬스터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 바닥과 천장은 새하얀 공간이었다.

“그 자식… 설마 나를 여기로 집어넣을 줄이야.”

“형씨, 이거 위험해. 진짜 위험하다고… 이렇게 좁은 공간에 이만한 몬스터가 있어. 부활해도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해.”

내 몸의 감각도 현재 상황에 대해 위험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를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온다!”

“쿠에에엑!”

몬스터들이 일제히 굉음을 토해 내는 바람에 고막이 찢어질 뻔했다.

사방에서 덤벼 오는 몬스터를 피해 위로 뛰어올랐다.

어딜 봐도 하얀색으로 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넓이의 공간인지 알 수 없었다.

타악!

앞에 있는 골렘의 머리를 밟고 다른 곳으로 다시 한번 뛰었다.

주교를 쓰러뜨린 덕분인지 몬스터들은 평소대로 본능대로 날뛰고 있었다.

“대부분 그린 라벨에서 블루 라벨 몬스터야.”

“죽으면 끝장이라고 형씨! 살아나자마자 놈들 먹이가 될 거라고.”

꿀꺽.

몬스터에게 먹히는 걸 상상하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크엑!”

“끼이이익!”

다행히 몬스터들은 전부 같은 편은 아닌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나를 쫓아오는 몬스터가 있는 반면에, 서로 뒤엉켜서 싸우는 놈들도 있었고, 다른 놈에게 잡아먹힌 놈도 보였다.

“형씨 저쪽!”

발렌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조금 떨어진 곳에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창문도 없이 입구만 있는 건물은 새하얀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이었다.

“뭐야, 이 공간 안에 아예 건물을 만든 건가?! 제정신이 아니군.”

“지금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저기로 도망쳐!”

확실히 어떻게든 나를 죽이려는 몬스터들이 쫓아오는 상황에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라이프 파워의 효과가 남아 있어서 도망치는 건 어느 정도 가능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다.

건물을 향해 달리면서 공격해 오는 몬스터들의 모습이 내가 아는 것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이 자식들…….”

“방어구?!”

놈들의 몸에 입혀진 방어구는 헌터들이 착용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심지어 몬스터마다 사이즈에 맞게 만들어져 있었다.

골렘과 펜리르, 구울이 갑옷을 입고 있는 건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이 미친 것들이 몬스터한테 장비를 만들어서 입히고 있었던 거야.”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미친 짓을 꾸미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헌터 시장에서 재료들을 쓸어 왔던 것도 그런 이유였군.

어떻게든 검은색 건물 근처에 도착했지만, 주변을 돌아봐도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젠장, 문을 숨겨 놓은 건가.”

“형씨! 위쪽이야! 위쪽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어.”

발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높이만 보면 족히 3층 정도는 되어 보이는 한 번에 뛰어서 올라가는 건 무리가 있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나.”

여전히 뒤에서 쫓아오는 몬스터들을 피해 달리며 인벤토리에서 에렌 셀을 꺼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건물 중간쯤에 에렌 셀을 날렸고, 건물 벽을 뚫고 들어가 박혔다.

“발판 완성!”

몬스터들을 뒤로한 채 펄쩍 뛰어올라 에렌 셀을 밟고 다시 한번 건물 위로 올라갔다.

그제야 몬스터들은 건물에 붙어서 어떻게든 기어 올라오려고 했다.

“저 자식들 서로 밟으면서 올라오고 있는데?!”

“잠깐 숨돌리나 했는데…….”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자 발렌의 말대로 건물로 들어가는 작은 구멍이 보였다.

그곳에선 까만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저기에서 타는 냄새가 나거든. 몬스터 냄새는 지독하지만, 타는 냄새는 강해서 맡을 수 있지.”

“타는 냄새?! 들어가도 되는 거 맞아?!”

라는 말을 하자마자 건물 위로 기어 올라온 몬스터를 보고 바로 구멍에 몸을 날렸다.

“으아악!”

출입구가 맞는지 아래로 내려가는 긴 사다리가 구멍과 연결되어 있었다.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자 누가 봐도 단단해 보이는 강철로 된 문이 나를 반겼다.

“쿨럭쿨럭!”

발렌의 말대로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조금 내려오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연기가 나를 반겼다.

“이거 진짜 열어도 되는 건가? 안에 무지막지한 몬스터가 있는 거 아니야?”

“아무렴 바깥보다 위험하겠어?”

“…하긴.”

교주가 조종할 수 있는 몬스터는 블루 라벨이 최대였다.

그 이상의 몬스터가 충분히 혼자 쓰러뜨릴 수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두꺼운 문을 힘껏 안으로 밀었다.

쿠구구궁.

“으아앗!”

“……?!”

안에서 들려온 놀라는 목소리에 오히려 내가 화들짝 놀랐다.

“사람?!”

“누… 누구세요?”

건장한 체격에 웃통을 까고 있는 남자는 나를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겼고,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안쪽은 뜨거운 열기 때문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여긴… 뭐죠?”

“…….”

그들은 전부 내 반응을 살피며 이 상황을 난감해하고 있었다.

대부분 덩치가 크고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남자들이었다.

“당신은… 누구죠?”

아무래도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내가 먼저 자기소개할 필요가 있겠는걸.

“저는 최현이라고 합니다. 레이브 길드 소속 헌터입니다.”

“레이브?”

“최현? 들어 봤어?”

“아니…….”

웅성거리는 그들 뒤쪽에 있는 대장간 같은 모습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설마… 여긴 몬스터 장비를 만드는 곳인가요?”

“…….”

내 물음에 그들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떨궜다.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혹시 저희를 구하러 오신 건가요?”

“저는 유한성과 교주라는 여자를 막기 위해 싸우다가 여기로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은…….”

“저희는 이곳에 납치되어 있어요.”

“……!”

역시 그런 건가.

사람들을 이곳에 가두고 강제로 몬스터의 장비를 만들게 하고 있었던 거다.

“그 인간들은 정말로 미쳤어요! 몬스터로 인간을 죽이려고 하다니… 아무 죄 없는 사람들까지 죽일 셈이라고요.”

“일단 진정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내 물음에 가장 앞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그 여자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길드가 바뀌었어요. 몬스터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정신 나간 계획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거기에 광신도처럼 맹목적으로 따르기 시작했죠.”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그는 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저희는 그들의 말도 안 되는 말에 반대했고, 그 대가로 여기에 끌려왔습니다. 여기서 장비를 만들지 않으면 저희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어요.”

“이곳에서 나갈 방법은 없나요?”

다들 착잡한 얼굴로 눈을 돌렸고, 그들 가운데 가장 젊어 보이는 청년이 말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이 건물과 정반대 쪽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어요.”

“유한성의 능력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으로 연결된 출입구를 만드는 거죠. 약점이라면 모든 공간에 반드시 하나 이상의 출입구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럼 그 출입구는 어디랑 연결되어 있나요?”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유한성이 그곳을 통해서 이 안에 들어왔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어쨌든 나갈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역시 저렇게 많은 몬스터가 있으니 나가는 건 무리겠죠.”

힘없는 목소리에 내가 그들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아뇨. 가능합니다. 할 수 있어요.”

최대한 뻔뻔하고 당당하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지금 내겐 이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다.

“다들 여기서 나가고 싶은 거죠? 그럼 저를 도와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