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7/75)

27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있었던 지윤의 외박은 그녀와 나의 그 밤 이후 더 이상 이어지지 않자 안절 부절해지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그녀와의 만남이 미루어질수록 나의 조급함은 더해만 갔다.

그렇다고 동생을 만나라고 지윤의 등을 떠밀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동철과 나, 그리고 그녀. 셋의 만남은 그 후로도 계속 되었으며 더욱 잦아졌다.

나의 이해심이 고마워서인지, 아니면 그녀와의 관계를 인정받고 자랑하고 싶어서인지 동철은 그녀와의 외출이 있는 날이면 저녁시간에 어김없이 나를 불렀고 나는 용수철처럼 그들에게로 튀어 나갔다.

늘 그래왔듯이 동철과 그녀의 사랑 표현은 내 앞에서 거침이 없었고, 동철이 자리를 비운 잠깐의 시간은 어색함과 애틋한 감정이 그녀와 나의 사이에서 서성였다.

??요즘엔 참 밝아 보이세요...그래서....??

??미안해...경수씨...그리고...고마워....다 경수씨 덕이야....??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 둘의 사이를 세상 모두에게 숨겨야만 하는 동철과 그녀의 입장에선 나란 존재가 너무나 특별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관계를 잘 알고 인정해주며 응원해주는 그런 존재가 나...그녀의 사위, 그의 매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나에게 무언의 양해와 용서를 구했고 그래서 더욱 나의 앞에서 그들이 연인사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려 애를 써댔다.

술자리가 끝나갈 즈음이면 그들의 그런 행동은 더욱 과감해져만 갔고, 급기야는 나의 앞에서 그녀의 젖가슴에 손을 넣기까지 했다.

그럴 때면 동철 몰래 나의 눈치를 보는 그녀를 나의 옅은 미소로 안심시켜 주어야만 했다.

처남 동철이 원망스러웠고 더 이상 처남을 찾지 않는 지윤이 미워지기 까지 했다.

내 아내 지윤을 내버려두고 그녀만을 사랑해주는 동철이 원망 스럽다는...그런 말도 안되는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그들 못지 않게 나도 지윤과 그들 앞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그를 괴롭혀주고 싶었지만 그건 정말 생각일 뿐이었다.

지윤에게 같이 보자고 어렵게 말을 꺼내어 봤지만, 지윤은 너무도 완강히 거부했다.

내가 그들과 그런 만남을 갖는 것에 대해 지윤이 할 말이 없음은 너무도 당연했다.

지윤의 처지에선 그 만남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정말 안 갈거야? 같이 가자....응????

??아니야..나 피곤해...그리고....동철이 보면....좀 그럴거 같아서....미안해...오빠 재밌게 놀다와

늦으면 자고 와도 되..내걱정말고...나 정말 괜찬으니까...??

오늘도 역시나 나의 요청을 거부하는 지윤을 두고 동철과 그녀가 기다린다는 횟집으로 갔다.

??매형..오늘 우리 노래방이나 가볼까????

술기운에 기분이 한껏 들뜬 우리 셋은 횟집 인근의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더 이상 술을 마시기 싫어서 간단한 음료수만을 시켜 놓고 각자의 노래를 불렀다.

내가 오기 전 몇 잔의 소주를 마신 그녀는 어지러운 듯 동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나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나 혼자 몇곡의 노래를 불렀다.

--사랑했지만...그대를 사랑했지만...그냥 이렇게 멀리서 바라 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떠날 수 밖에...그대를 사랑 했지만...--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부르며 노래방 기계의 화면에 비춰지는 그녀를 훔쳐 보았다.

---그대 떠나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그대 떠나 보내고 돌아와 술잔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우리 이제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길.....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또다시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를 불렀다.

미친 듯 노래를 부르자...감정이 복 받쳐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의 눈물을 보았을까...그녀가 일어서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노래의 마지막 음악이 잔잔하게 흐를 때 그녀의 팔이 나의 허리를 감아왔다..

비틀거리며 나에게로 다가온 그녀가 나의 허리를 감아왔고, 반사적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또 불러줄 수 있어?...경수씨...???

그녀의 젖은 목소리가 내 귀에 속삭였고, 나는 다시 시작 버튼을 눌렀다.

애처럽고 서글픈 하모니카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녀는 나의 허리를 더욱 세게 휘감아 왔다.

하모니카 소리에 이끌렸을까..옆으로 나란히 서있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서 내쪽으로 돌리며 그녀을 안았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서 가사를 볼 필요가 없었다..

수 많은 밤 나를 눈물 짓게 했던 노래..

나를 위한 노래일거라는 생각에 들을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만든 그 노래를 조용히 부르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 품에 안겨있는 그녀에게만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의 귓속으로 나의 노래를 흘려 넣어주었다..

자리에 앉아있는 동철이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음을...

나의 입술에 닿아온 그녀의 젖은 입술을 통해 알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