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누나가 그러더라...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여자한테 보내야하는 고통을 아냐고....??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며 동철이 나에게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난 그런 고통을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느껴보진 못 한 거같아...??
??..........??
??누나나 엄마, 그리고 매형은 그런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 왔는데 나만이 알량한 고민이라는 걸 한답시고 힘든 척을 했던거 같아...그래서 누나, 매형..그리고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
??..........??
??그거 알아? 나 어렸을 적에 엄마가 내 옆에서 앓는 소리를 내며 신음하는 거 보고 처음엔 엄마가 많이 아픈줄 알았어...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응?...응...그래....그랬었지....??
새삼스레 먼 옛날 이야기를 꺼내는 동철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그의 잔을 채워주었다.
??매형 불러도 되지????
??어??,,응...그래....불러...지윤이는 안 오겠지???
얼떨결에 대답을 한 후, 곧 지윤의 이야기를 한게 후회되었다..지윤이 같이 오는것을 바라는 것인지 아닌지는 내자신도 알 수 없었다.
경수와의 통화를 끝낸 동철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열다섯 어린 나에겐 그런 엄마한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너무 고민스러웠어..결국 이렇게 되긴 했지만...내가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
??............??
나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고 그는 계속해서 술잔을 비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누나랑 그날 그렇게 싸우고 나서 지금까지 많이 생각했어....??
??...........??
??나란 놈도 그동안 엄마,매형,누나가 느껴왔을 고통을 느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그런 생각이 좀 드네....나 미쳤지?????
가슴이 내려 앉는 걸 느끼며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다른 남자에게 가버릴까봐 두려워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그래도...그래도 말야..난 아직도 엄마를 다른 사람한테 빼앗기고 싶지 않아...절대로....절대로 말야...??
??동철아.....??
아무런 대꾸도 생각 나질 않았다.
그와 보낸 그 밤 이후 또 다시 그와의 만남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던 나의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두근 거리던 나의 심장은 이어진 동철의 말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날 새벽에 현관에서 매형 신발을 봤어.....??
??동철아......??
??그냥....엄마 마음이 가는대로 해....난 정말 괜찬으니까....??
동철에게 구질구질한 변명을 하고 싶진 않았다..그냥 그가 비워가는 잔을 채워주며 경수가 오기를 기다렸다.
나의 바램대로 지윤은 역시 오질 않았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서운함보단 안도와 반가움이 더 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애써 밝은 표정과 큰소리로 반갑게 인사하며 동철과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맞은편에 있던 동철이 자연스럽게 나의 옆자리로 옮겨 앉으면서 그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가 오기 전에 급하게 마신 술 탓에 동철이 약간 비틀거린다.
??매형...누나는?....안온다지????
??응.......??
그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진다 싶더니 이내 환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술을 권한다..
??장모님...한 잔 하세요....??
??응...그래....경...아니...김 서방..??
그가 따라주는 술을 받은 후 그에게 다소곳하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가 술잔을 비울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들여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동철의 손이 식탁 아래에서 나의 치맛 속으로 들어오려 할 때 쯤 그만 나가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굵고 잔잔한 노래 소리는 내 귀를 파고 들며 그날 밤의 애처로웠던 그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그날 밤 현관문을 나서려는 그의 쓸쓸했던 뒷모습을 나에게 보여주며 나를 원망하고 있는 듯 보였다.
사정 직전 나에게 절규했던 사랑한다는 그 말이...그의 진심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두 달이나 지난 지금, 이 순간에서야 궁금해 졌다는 게 이상했다.
그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들의 품속에서 헐떡거리는, 더러운 욕정으로 사위에게 다리를 벌려주었던 나를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
오늘 밤은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은 나였지만 그의 노래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옆에 앉아 있는 동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그의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접어들 때 쯤 나는 그의 목소리가 젖어있음을 알았다.
무엇에 이끌리듯 그에게로 다가서는 나를 발견했을 때 이미 난 휘청거리며 그의 허리에 손을 감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나의 어깨를 감싸 주었고 그날 밤 그에게 보여준 나의 행동이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과 그에 대한 감정이 연민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그의 목소리가 나의 가슴을 적시기 시작했을 때, 나를 돌려세워 거칠게 안아주었을 때, 내가 어쩔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삼켜버리는 걸 느꼈다.
그의 입술은 그날 밤처럼 너무도 부드럽고 강인했다.
쓸쓸한 하모니카 소리에 감싸여진 그와 나의 혀가 엉켜들기 시작할 때 동철이 조용히 방안에서 나가는 것을 보았다.
노래가 끝나고 이어지는 팡파레 소리를 뚫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랑해요.....사랑합니다.....선생님...사랑해요...??
그의 목소리는 팡파레가 끝날 때 까지 내 귓속에 끝없이 흘러들어왔다.
음악이 끝나버린 방안은 묘한 정적만이 흘렀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중년 남자의 트롯트 노래소리와 미친 듯이 찢어지는 여자의 노랫소리만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가 나의 어깨를 감싸 쥐고 앉아 있던 자리로 이끌었다.
방금 전까지 자리에 앉아 있던 동철의 빈자리를 본 그가 잠시 망설이는 듯 한 숨을 쉬고 말했다.
??저....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아요...선...생...님....??
그제서야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가 조금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학원에서 늘 보아오는 많은 학생들...너무도 많은 얼굴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그랬을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접어버렸던 생각이 떠올랐다.
내 생애에 가장 힘들었던 순간...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멍하게 흘려보냈었던 그 시기에
나의 주위에 어지럽게 아른 거리던 많은 학생들의 얼굴 속에서 수줍은 듯 서있었던 열 여덜의 그의 모습이 또렷하게 떠올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