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이하 스토리는 더블 데이트 루트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며 본편의 등장인물과 시간, 사건만 차용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외전에서의 모든 이야기는 본편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고 진행됩니다.
───────── 더블 데이트 외전 카페 미리내
한석은 걸어가면서 목을 좌우로 꺾어 보았다. 뭉친 근육이 잔뜩이다. 나중에 지혜에게 마사지 좀 부탁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른 서비스도 같이.... 지난주에 시험이 끝나면서 간만에 지혜와 회포를 풀었다. 딱히 약속까지 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시험 공부를 하면서 몸을 쓰기는 좀 그랬기 때문에 한동안 소원했다. 오랜만에 하다보니 평소보다 더 불타올라서 이것저것 많이 했었다. 앞으로는 물론이고 뒤로 한다던가 입과 젖에 대고 쑤신다던가..... 지난 뜨거운 시간을 떠올리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묵직해진다. 걸음걸이를 조금 고쳐 본다. 카페 미리내에 도착했다. 여기서 일하는 은미와도 종종 이야기를 하고 지내고 있다. 지혜네 놀러올 때도 있고 너무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그가 집까지 데려다주기도 한다. 얼굴도 귀여운 편이고 늘 효진이가 주무르며 희롱하는 가슴 역시 훌륭한 아이였다. 지혜만 아니라면.... 음음. 한석은 요즘 들어 자신이 부쩍 문란해졌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성을 하진 않았다. 암튼 은미는 귀엽기는 하지만 조금 색기가 부족하다고 할까. 그런 게 좀 아쉬웠다. 그랬던 한석의 생각은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수정되고 만다.
어....어서 오세요, 오빠.
응? 어어....
평소처럼 카운터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 홀에 나와 있던 은미가 한석을 보고 꾸벅 인사했다. 그녀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동안 한석은 그녀의 가슴이 발사되는 줄 알았다. 평야설넷면 펑퍼짐하고 무채색 일색이며 마치 남자옷 같은 셔츠에 감춰져 있던 가슴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감을 엄청나게 어필하는 복장이었다. 가슴의 노출도를 퍼센테이지로 표시한다면 하단 50% 정도만 겉옷으로 감싸져 있고 그 다음 20%가 옅은 살구색의 브래지어로 가려져있다. 상위 30%는 맨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은미의 가슴이 어지간한 사이즈가 아니다보니 노출된 부분만으로도 어지간한 여자 엉덩이만큼은 되었다.
게다가 바짝 모아지고 올려진 가슴이 만들어 내는 깊은 계곡은 사람 하나가 빠져도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허벅지를 가리는 건 고사하고 팬티도 채 다 가리지 못한 짧은 치마는 은미가 아무리 손으로 잡아 끌어내리고 있어도 그 길이가 삼십센티가 되질 않았다. 안쪽에 받쳐입은 스팬츠가 속바지 역할을 해주곤 있기에 아예 그걸 드러내는 게 나았다. 허리춤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긴 하지만 그건 가리는 용도라기 보단 비쳐보이게 하여 더욱 섹시하게 만다는 효과가 있었다. 머리에는 레이스가 달린 헤어밴드를 두르고 있었고 치마 아래로는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롱스타킹에 매어진 가터벨트의 집게가 보였다.
뭐....뭘로 드릴까요?
어...어? 늘 마시던 걸로.
네에.
넋이 홀린 듯한 표정으로 한석이 바에 앉자 은미는 늘 하던 대로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팔토시까지 하게 되어있지만 이상하게 끈까지 달린 그걸 하고 있노라면 내어가는 커피에 죄다 한번씩 끈을 담그게 될 것 같아 그건 포기했다. 그러나 나머지 복장은 가람이 담아준 세트에 있는 그대로 전부 입었다. 이 옷을 입기 위해 그녀가 얼마만큼의 각오를 다졌는가는 그녀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평생 해오던 자신감을 모두 합한 만큼의 자신감을 쏟아부었다고나 할까. 만약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서 꽥하고 죽는다면 그 사인은 수치일 게다. 말 그대로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묘한 자신감이 붙었다. 평야설넷면 보던 책이나 꺼내놓고 거기에 몰두하고 있을 한석이 가게에 들어와 자리에 앉아서도 줄곧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뿌듯하기 까지 했다.
여기요.
응? 으응...
잔을 내놓을 때 일부러 팔을 몸에 붙이고 상체를 앞으로 푹 숙여 한석에게 바짝 다가갔다. 반쯤 노출된 가슴에 꽂히는 시선이 느껴진다. 어쩐지 짜릿하다. 옷을 입기 전까지는 그렇게 망설이고 힘들었는데 막상 입고 나니 그녀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점덤 더 그녀를 대범하게 만들었다.
어때요?
어? 어......뭐랄까. 파격적이라고나 할까....?
한석의 눈이 풀렸다! 은미는 평야설넷면 전혀 쓰지 않는, 살짝 놀리는 말투로 답했다.
네? 전 커피맛을 물어본 건데요? 늘 드시던 건데.
아. 그랬지. 아. 아. 어. 그래. 괜찮아. 좋아. 정말 좋아.
당황한 한석을 보면서 은미는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겼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건 것도 드문 일이지만 한석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예 바에 몸을 기대고 가슴을 바에 올려놓고 있었다.
시험 잘 끝나셨어요?
으응. 지난 주에. 너는?
저도요. 이제 방학인데 오빠는 뭐하세요?
뭐, 별거 있을라고. 그냥 공부나 하고 과외알바 하던거 계속 하고.
으음. 언니들이 어디 좀 놀러가자고 하던데요. 1박이나 2박으로.
그...그랬던가?
그랬죠. 어디가 좋을까요?
그...글쎄다. 계.......계곡?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야릇한 감정은 은미로 하여금 점차 대범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평야설넷면 절대 하지 않았을 동작, 그러니까 가슴을 좌우로 흔든다던가 몸을 앞으로 숙인다던가 하는 동작을 수시로 곁들였다. 은미와 이야기하는 중이니 그녀를 보긴 봐야겠고 그러면서도 얼굴이 아니라 점차 아래쪽의 어딘가로 향하는 시선을 보내는 한석의 표정을 보는 게 즐거웠다. 그렇게 담소 아닌 담소를 나누고 있노라니 다른 손님도 들어온다. 남자 손님들은 하나같이 카운터에 서 있는 은미에게 시선을 한번씩, 아니 두번씩 세번씩 던지고 갔다. 아예 목이 돌아가서 엑소시스트 저리가라 할 정도의 연출을 보이며 가는 인간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의 시선은 못내 부담스러웠지만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한석을 보면서 은미는 몹시 설레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 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죠? 거기 대체?
어? 유진이 왔구나.
늘 한석을 데리러 오는 여학생이 한석의 곁에 와 앉았다. 유진이라 불린 그 여학생은 날카로운 눈으로 은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이에 맞지 않게 엄청나게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유진이었던지라 기세에 눌린 은미는 다소 주춤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은미를 물리친 유진은 한석에게 따지듯 물었다.
전에는 창가 자리에 앉아있더니 전부터는 계속 여기 앉네요, 아저씨?
어? 어, 은미랑 이야기를 하다보니....
은미?
유진은 다시 은미에게 시선을 던졌다. 투시하는 듯한 눈빛에 은미는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치마와 가슴을 가려보았다. 그러나 그게 그녀의 팔로 가린다고 가려질 게 아니었다. 유진의 시니컬한 독설이 뿜어나온다.
아줌마는 언제부터 그렇게 복장이 문란해졌어요? 여기 원래 그냥 커피만 파는 게 아니라 그런 것도 하는 업소였어요? TC는 얼마나 받길래 그렇게 헐벗은 홀복을 입고 있어요?
은미로서는 알아듣지 못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마구 쏘아붙이는 유진을 한석이 간신히 뜯어말렸다. 한석은 은미에게 눈인사를 남기고 유진을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은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자신감이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조금 있으면 교대할 인원이 올 시간이었다. 얼른 옷을 원래대로 갈아입었다. 방금 전까지 한석의 뜨거운 시선이 꽂히던 옷을 손에 들고 내려다 본다. 아무래도 자기가 이런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정당화시킬 이유가 필요했다. 혹시나 싶어 이 옷이 담겨있던 쇼핑백을 살펴보았다. 가게 이름만 써있었다. 쇼핑백을 뒤져보니 바닥에 영수증이 있었다. 거기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 날 저녁, 은미는 동대문 의류상가에 도착했다. 전화로 위치를 미리 들어두긴 했지만 이곳은 마치 미로와도 같아 말로만 들어선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옷을 사러 많이 돌아다녀본 경험이 없는지라 더욱 헤맸다. 갔던 골목을 가고 또 가고를 반복한 끝에 가까스로 원하던 가게를 찾아냈다. 수입의류전문점이 죽 늘어선 골목의 한편에 놓인 그 가게는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옷만 해도 범상치 않았다. 분위기상 교복임이 분명한 옷인데도 상의는 배꼽이 보일 정도로 짧고 하의는 아까 그녀가 입었던 옷 만큼이나 짧은 치마였다. 그 옆에 있는 옷은 속옷은 속옷인데 입고 있는 마네킹의 살결이 그대로 다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놀랍기는 놀라웠다.
간판의 이름은 물랑루즈. 옆에는 빨간 선으로 풍차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간판을 한 번 더 올려다보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어서오세요.
아, 예에...
아까 전화를 할 때 전화를 받은 여자인 모양이다. 내심 이런 가게에서 일하는 여자는 또 얼마나 요란하게 입고 있을 것인가 궁금하긴 했었는데 막상 보니 생각보단 평범했다. 물론 쫙 달라붙는 호피무늬 원피스에 짙은 화장을 한 모습이 길거리에서 흔히 볼만한 모습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은미의 쇼핑백에 담긴 옷에 비하면 무난한 편이라고 할 만 했다. 중간 정도의 키에 나름 글래머스한 몸매였다.
아까 전화했었는데요....
아, 그러셨죠? 무슨 일이시죠?
은미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벽이나 행거에 걸린 옷들은 조금 야한 정도의 옷들이 대부분이지 그녀가 가져온 옷 정도는 아니었다. 은미는 들고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 옷을 여기서 산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거랑 같은 옷을 구하고 싶어요.
어디 좀 볼까요?
여자가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안에 있는 옷을 꺼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이 옷이군요. 왜요, 한벌로 부족하세요? 대체 어떤 플레이를 하시길래....
플레이? 은미로서는 요새 못 알아들을 소리가 많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일단 그건 아닌 것 같아 손을 내저었다.
그런 건 아니구요. 음... 저희 유니폼으로 쓸까 하구요.
아아, 그러시구나. 언니들이 몇 분이나 되세요?
저 포함해서 네 명이요.
꽤 오래 고민한 끝에 은미가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아까 유진이라는 학생이 추궁했듯이 나중에 누가 대체 왜 그런 옷을 입고 일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원래 이 카페의 유니폼이라고 말하기로 말이다. 다소 파격적이긴 하지만 웨이트리스 복장이라고 둘러대면 어찌어찌 넘어갈 것 같았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말도 안 된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든 이 옷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아까와 같이 계속 한석에게 어필하고 싶었다. 아까 느껴졌던 묘한 기분을.... 그리고 한석의 시선을 계속 즐기고 싶었다. 이건 건 여태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감정이었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겠어요? 조금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네.
주인이 이끄는대로 안쪽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가게 안쪽은 칸막이가 쳐 있었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간이 스튜디오 같은 설비가 되어 있었다. 조명설비와 커다란 카메라 같은 것을 구경하느라 은미는 연신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아아, 어떡하죠? 이 옷은 이게 마지막이었네요.
안으로 들어갔던 여자가 예의 옷을 도로 들고나오면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미는 깜짝 놀랐다.
네에? 그... 그런가요?
예. 원래 이런 종류의 코스튬은 미리 많이 만들지를 않거든요. 주문 들어와서 만드는 경우도 있고...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역시 없네요.
그럼 주문을 하면 얼마나 걸리죠?
적어도 1~2주는 주셔야죠.
그렇게나요....?
옷이라고 해봐야 늘 지하상가 같은 곳에서 티셔츠 정도만 사입던 은미였다. 그러다보니 이 가게에만 오면 당연히 옷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자 은미는 크게 낙담했다. 그런 은미를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던 가게 주인이 묻는다.
굳이 이 옷이 필요한 이유라도 따로 있으신가요? 유니폼으로 하긴 좀 쎈데요. 대체 뭐하는 업소시길래?
에? 저흰 그냥 커피숍이구요..... 그....그야.....그게 예쁘고.......노출도도 있고........
흐음? 커피숍에서 이런걸 유니픔으로 하신다구요?
사실 솔직히 처음부터 말하려면 자신이 생각해도 참 말도 안 되는 이유이긴 하다. 어떤 남자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데 혼자 입으면 난감해서 가게 점원 전체에게 유니폼처럼 입히려구요. 속에서는 맴도는 데 막상 남에게 설명하려니 꽤 난감했다. 버벅거리는 은미를 보면서 가게 주인은 종이컵 두 잔에 차를 타가지고 왔다.
뭔가 사연이 있으신 것 같은데 급하게 말씀하실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이 시간에는 저도 꽤 한가한 편이거든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래도 이렇게 차까지.....
바쁘신가요? 바로 가보셔야 되요?
아뇨, 그런 건....
은미는 종이컵을 만지작거렸다. 그런 은미의 맞은 편에 주인이 앉았다.
저희 가게 이름 보셨죠?
네? 네에.
무슨 의미인지 아세요?
아뇨. 처음 보는 이름이라....
물랑루즈는 19세기 프랑스에 있었던 극장이었어요. 당시로는 파격적인 의상과 쇼를 선보이는 곳이었죠. 거기서 공연하는 언니들의 의상은 전 사회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큼 파격적이었다고 해요.
아, 예.
난데없는 역사 공부에 은미를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저런 이름을 내걸고 장사를 하고 있는 이유를 말씀드려도 될까요?
뭔데요?
저는 여자를 좋아하거든요?
......에엑?
은미는 깜짝 놀라 주인을 쳐다보았다. 자신을 보며 생글거리는 그녀를 자기도 모르게 경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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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이하 스토리는 더블 데이트 루트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며 본편의 등장인물과 시간, 사건만 차용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외전에서의 모든 이야기는 본편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고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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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역시 표정이 귀여우시네요. 놀리는 보람이 있는 분이에요.
아, 예에.
역시 농담인가. 농담치고는 수위가 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나서 그런가, 주인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어째 느낌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는 은미였다. 예전에 효진이의 말투나 은미 가슴 만지며 희롱하는 짓이 아저씨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쪽은 말 그대로 아저씨 같은 사람이고 이쪽은 그냥 눈빛부터가 아저씨같다고 생각하면 좀 지나치려나. 은미는 설마 하는 생각을 얼른 지워버렸다. 눈빛이 자신을 탐색하는 빛이긴 하지만 그래도 행동은 친절한 사람이었다.
혹시 성함이....?'
이은미입니다.
아, 은미 씨구나. 전 초향이라고 해요.
아, 예.
난데없는 통성명에 어리둥절 했다. 초향? 본명인가? 성도 이야기 해주지 않고 그냥 초향이라니.... 은미가 고민 하고 있는 동안 초향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녀는 은미가 가져온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옷이 예쁜 옷인건 맞죠. 제가 만들었으니 노출도도 꽤 되구요. 근데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에 저 옷을 여러개 원하시는 건가요? 다른 이유는 없고?
그게 그러니까.....
솔직히 예쁜 건 모르겠고 은미가 바란 건 은근한 노출이었다. 물론 저 옷은 그런 측면에서 좀 과하긴 하지만 효과는 좋다고 생각했다. 초향은 좀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처음에는 예쁜 여자를 좋아했어요. 보기만 해도 즐겁고 기분 좋고..... 누가 보더라도 반박을 할 수 없게 정말 잘 짜여진, 그런 이쁜 여자들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죠. 원래 모든 여자는 예쁜 거라구요. 참, 예쁘죠. 주머니에 확 넣어가지고 싶을 만큼요.
네에....
아까 그게 농담이 아니었던 걸까. 여자를 좋아한다는? 은미는 다시 긴장했다.
여자들은 그런 순간이 와요. 예뻐지고 싶다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순간이. 그런 순간이 찾아온 여자들이 모두 이 가게를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에는 가게 이름을 그렇게 지었죠.
언뜻 봐서는 모를 이상한 네이밍센스라고 생각했다.
물랑루즈의 공연을 두고 당시 유럽사회가 들썩였다고 해요. 일개 공연이라고 하기에는 당시로 엄청난 인기였죠. 다리와 속옷을 대놓고 드러내는 의상도 파격적이고. 그걸 두고 세상이 망한다 어쩐다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죠? 지금 프랑스는 최고의 패션 리더인 나라라고 할 수 있죠. 이탈리아 사람들이 들으면 배가 좀 아프겠지만.... 난 그들의 그런 패션 감각의 밑바닥에는 물랑루즈와 같은 퇴폐적 아름다움도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래서 나도 나만의 물랑루즈를 열었어요. 이렇게 코스튬, 홀복 전문 매장 말이죠.
막상 초향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어쩐지 수긍도 갔다. 은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미 씨라고 했죠? 은미 씨도 예뻐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기 오신 게 맞다면, 잘 오신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은미 씨는 저에게 좀 솔직해지셔야 되요. 이건 그저 순전히 제 짐작이지만..... 은미 씨의 유니폼 이야기는 아무래도 변명이신 거 같은데 말이죠.
아니요. 정말 유니폼 할.......거예요.
어째 말 끝에 기운이 좀 없었다. 초향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꼭 그거일 필요는 없잖아요. 제가 추천 좀 해드릴게요.
초향은 남은 차를 홀짝 다 마셔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은미에게 다가왔다. 손을 내밀어 은미를 잡아 일으키고는 아까 본 스튜디오 설비 옆에 있는 거울로 데려갔다. 2미터 가량 되는 높이에 폭만 해도 1미터가 족히 되어보이는 대형거울이었다. 난데없는 거울 속 자신과의 대면에 놀라 뻣뻣한 자세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은미의 양 팔을 붙든 초향의 모습이 비쳐진다.
판 지 좀 되긴 했지만 저 옷이 기억이 나네요. 사가신 분은 한 남성 분이었는데 브라 부분을 좀 고쳐달라고 하시더라구요. 70에 H컵으로요. 전 또 무슨 이상한 사람이 그냥 전시용으로 쓰려나 싶었는데 지금 보니 딱 맞을 사이즈였네요. 어때요, 괜찮던가요?
거울을 통해 초향의 시선이 은미의 가슴에 못 박혔다. 은미는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아까 그 옷을 입고 느꼈던 자신의 이런저런 느낌을 말해버리고 싶었지만 그 이야기까지 하기는 심하게 부끄러웠다. 은미의 몸 전체를 훑어보면서 또 구석구석 뚫어져라 쳐다보던 초향이 한참만에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사실 저 옷은 남자들의 판타지만 가득한 거지 정말 여자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는 못 해요. 은미 씨가 예뻐지고 싶다면 저 옷보다 중요한 게 따로 있답니다.
뭔데요?
설마 저것보단 더한 옷이 또 있단 말인가? 은미는 초향의 다음 말이 너무 궁금해졌다.
바로 자신감이에요.
초향은 그렇게 말하며 은미의 어깨와 목을 뒤에서 잡아당겼다.
자, 어깨 펴시구요. 목 드세요. 예. 그렇게요. 항상 그렇게 구부정하게 하고 있으면 다가올 남자도 도망가겠어요. 안 그래요?
그....그래도.....
자신의 컴플렉스를 가리기 위해 그녀는 항상 약간 구부정한 자세를 짓고 있었다. 가슴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도록.... 그러나 초향은 그걸 당당히 드러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호호호. 이렇게 훌륭한 것을 가지고 계시면서 어째서 애써 가리고 숨기려고 하는 거죠? 이건 단순한 살덩어리도 아니고 지방 덩어리도 아니에요. 은미 씨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매력 덩어리인 거죠.
하윽.... 초....초향 씨. 소...손이....
그렇게 좋은 것을 이런 멋대가리 없는 셔츠에 감추고 잘 뻗은 다리를 밋밋하기 짝이 없는 청바지에 숨기고 있군요. 이러면 절대 예뻐지지 않아요.
어깨로부터 시작된 초향의 손길이 목과 등을 지나 허리 뒤를 가볍게 눌러 은미를 자세를 바로 잡더니 어느새 앞으로 돌아와 가슴의 아랫부분을 받쳐들고 있었다. 은미는 기겁을 하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두 팔로 뒤에서 안다시피한 초향에게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초향은 숫제 마사지라도 하는 것처럼 은미의 허리와 언더바스트를 주물러주었다. 그러나 그건 효진이 하는 것처럼 성희롱 같은 손길도 아니었고 그녀의 신체를 함부로 다루지도 않았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달콤했다. 은미는 다리에서 힘이 좀 풀린다고 생각했다.
잠깐 기다려봐요. 아까 업소 종류가 뭐라고 하셨죠?
업야설넷니.... 그냥 커피숍인데요.
흐음. 커피숍인데 유니폼으로 하신다라.....
초향은 뭔가 생각하는 눈치더니 한쪽 벽에 가서 무언가를 가져왔다. 검은 색으로 된 원피스 같았다.
이걸로 갈아입어 보세요.
네? 갑자기....
일단 절 믿고 입어보세요.
은미는 그것을 받아들고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탈의실 같은 건 따로 보이지 않았다.
저기, 탈의실은....
뭐, 어때요? 같은 여자끼리.
네? 그...그래도.....
자, 얼른요. 다른 옷도 준비하고 있을테니까요.
초향이 몸을 돌려 행거로 간 사이 은미는 칸막이 뒤에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탈의실도 아닌 곳에서 옷을 벗으려니 꽤 부담이 되긴 했지만 일단 가게 밖에서 보일 염려는 없었기에 셔츠와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여름이긴 하지만 브래지어와 팬티 차림으로만 있으려니 좀 쌀쌀했다. 얼른 원피스에 발을 넣어 올려 입으려는데,
잠깐요. 브라는 빼고 입으세요.
꺄악!!
갑자기 칸막이 뒤로 쑤욱 들어온 초향이 은미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어냈다. 그 동작은 마치 닌자와도 같이 신속하고 한 큐에 이루어졌기에 자신의 브래지어가 풀렸다는 걸 은미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컵에서 풀려난 가슴이 서늘한 공기에 완전히 노출되고 난 후였다. 은미는 팔로 자기 자신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자...잠깐만요.
팔 떼세요. 브라 빼야죠. 치파오 안에 캡 달려 있어서 그냥 입으시면 된다니까요?
그...그래도요. 잠깐만요.
두 팔로 자신의 상체를 끌어안아 보지만 이미 그녀의 터질듯한 유방은 초향의 시선에 완전히 노출된 후였다. 초향은 은미의 부끄러움에 전혀 개의치 않고 위아래로 훑어보며 살짝 미소까지 지었다.
역시 좋은데요.... 암튼 빨리 입어보세요. 다른 것도 준비했으니까요.
알았어요. 저기, 너무 가까이 오지 말아주세요.
어머, 제가 잡아먹기라도 하나요?
눈빛만으로는 이미 은미를 여러번 잡아먹고도 남을 듯한 초향이었지만 씨익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은미가 옷을 모두 끌어올려 입고나자 초향이 뒤에서 지퍼를 올려주었다.
어때요. 이런 느낌도 괜찮죠?
예? 예에... 어쩌면요.
초향이 권한 옷은 중국 전통 의상인 차이나 드레스의 개량버전이었다. 대개 롱드레스 형태인 전통형식과는 달리 무릎 위 20센티 가량에서 끝나는 치렁치렁 하게 나풀대는 미니 원피스 형태였다. 잘록하게 허리를 감싸고 들어가더니 위쪽으로 가슴의 풍만함을 한번 강조하고는 다시 어깨와 목을 감싸고 올라가는 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가슴의 가운데에는 아주 작은 예쁜 하트 모양으로 노출된 부분이 있어 그녀의 깊은 계곡을 생중계하고 있다. 어깨부분에는 중국 전통 매듭처럼 되어 있는 라인이 어깨를 은근히 드러낸다.
여기에 블랙 하이삭스를 코디하시면 전체적인 노출도는 최소로 하면서도 은근한 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죠. 어떠세요?
은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보면 조금 허풍같았던 모든 여자가 예쁘다라는 초향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자기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자화자찬도 아니고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본 자신에 대한 평가였다. 가슴의 윤곽이 도드라지는 것에 지레 겁먹고 여태까지 이런 ? 붙는 종류의 옷은 한번도 입어보질 못 했다. 그러나 지금 거울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은 충분히 여성적이고 또한 매력적이다. 가슴을 보고 칭찬하던 초향인지라 당연히 가슴만 엄청나게 노출된 의상을 권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팔과 어깨를 덮는 부분도 정성이 들어가 있고 목까지 올라온 모양새라 정숙하면서도 발랄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실크재질의 검은색은 빛을 받아 살짝 여릿한 문양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 또한 나쁘지 않았다.
자,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어깨 펴시구요. 등 곧게 유지하세요. 좋아요. 그렇게요. 자신감 잊지 마세요. 자신감.
그 다음에 초향이 권한 옷은 미니드레스였다. 숄더리스로 처리되어 있어 브라끈이 노출되었지만 초향은 도리어 번쩍거리는 체인으로 된 브라끈으로 바꿔달아주었다. 시선을 분산시킨다나 어쨌다나. 가슴에서부터 허리 아래까지 일자로 내려가는 핏이라 그녀의 컴플렉스인 가슴이 그렇게까지 부각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앙증맞고 귀여운 라인이다. 머리에는 아기 손바닥만한 장식용 모자를 얹어준다. 말 그대로 귀여움, 그 자체다. 은미는 살짝 감동했다.
교복도 한 번 해보겠어요? 이게 의외로 괜찮거든요?
자신이 학교를 다녔을 때는 일부러 큼직한 사이즈의 블라우스와 재킷으로 상체를 뒤덮고 다녔었지만 여기서는 초향이 권하는대로 몸의 핏을 살리는 교복으로 입어본다. 단추가 튀어나갈 것 같은 상의 블라우스는 맨 위 단추 두개를 풀어 가볍게 걸치듯 하고 깡충한 치마 아래로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밴드스타킹을 입어본다. 노골적으로 야해지려는 의지가 전해진달까. 은미는 다른 의미로 가슴이 뛰었다. 어쩐지 한석을 이 자리에 불러 그녀의 이런 모습들을 마구 선보이고 싶었다.
자, 어떠세요? 다른 것도 많이 권해보고 싶지만 아까 말씀하신대로 네 벌을 바로 구비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랍니다. 그리고 커피숍이라고 하셨죠? 거기서 이런 복장도 나쁘진 않잖아요? 조금 쎄긴 하겠지만요.
초향의 웃음에 은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미는 한참 고민하다가 아까 맨 처음 입었던 치파오를 집어들었다. 초향이 은미의 선택을 칭찬했다.
그걸로 하시게요? 좋은 선택이세요.
은미는 자기를 빼고도 카페 점원들의 사이즈를 어림하여 불러주었다. 초향은 사이즈를 찾아오겠다면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카페 점원들에게 이 옷을 보여주며 이제부터 카페 근무복이라고 한다면.... 과연 쉽게 납득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자신의 욕심, 그러니까 한석에게 이런 모습을 선보이겠다는 본인의 야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사실 구차하게 카페 근무복이니 유니폼이니 하는 변명을 굳이 하지 않고도 그냥 자신이 좋아서 이렇게 입고 있다고 항변한다면 뭐라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원래 자기 자신의 주장이 강하지 못한 은미의 사고는 거기까지 이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아까 자신을 몰아세우던 유진에게 할 변명거리를 궁리하다보니 이렇게 까지 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까 유진이라는 여학생이 내뿜는 기색은 소심한 은미가 쉽게 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내 초향이 옷들을 가져왔다.
포장해드릴까요?
그래주세요.
초향은 화려하게 생긴 상자를 꺼내 옷을 일일이 포장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포장까지 다 끝내고 막상 계산을 하려고 보니 네 벌 모두 합한 가격이 은미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비쌌고 그녀가 준비해온 예산을 아득히 초과하는 것이었다.
그.... 가격이면 전 한 벌 밖에 못 사겠는데요?
어머, 저희 옷이 대부분 수제라서 좀 단가가 나가요. 모르셨나보네요. 먼저 가져온 옷도 좀 비싸긴 했어요.
그...그래요?
아주 잠깐, 자기가 준비해온 옷을 입지 않는다고 성질을 내던 가람이의 심정을 알것도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황급히 털어버렸다. 난처한 은미를 보며 초향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요, 은미 씨라면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해요. 제 제안을 들어보고 수락하신다면 이 옷들은 그냥 다 드릴게요.
전부 다요? 뭐...뭔데요?
혹시 이상한 제안은 아닐까 불안함 마음이 들었지만 초향의 제안은 다른 방향으로 은미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음...... 그러니까, 저희 모델이 되어보지 않겠어요?
모...델이요? 제가요?
은미는 깜짝 놀라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항상 수더분한 차림의 자신이었는데 난데없이 모델이라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초향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희 가게는 단순히 여기서만 물건을 팔지 않아요. 혹시 인터넷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인터넷?
네. 저는 거기서 쇼핑몰도 하나 운영하고 있죠. 아직 초창기이긴 하지만 앞으로 꽤 성장가능한 사업이라 생각하고 나름 공부도 하고 투자도 하고 있거든요. 여태까지는 그냥 마네킹에 입힌 채로 옷 사진을 찍어서 업로드 하곤 했는데 아까 은미 씨를 보면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바로 은미 씨가 저희 옷을 입고 모델이 되어주는 거예요. 어때요? 제 생각이?
그래도 키도 작은 제가 모델이라니.....
어머. 세상 여자들이 전부 전문 모델처럼 키크고 늘씬늘씬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적당히 중간 키에 볼륨감이 있는 은미 씨라면 사진으로 봤을 때 라인이 꽤 예쁘게 잘 나올 거예요. 좋은..... 걸 가지고 계시니 조회수도 꽤 높아지겠죠.
인터넷은 물론 초향이 늘어놓는 단어의 대부분은 은미로서 전혀 생소한 것들 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옷들을 꼭 가져가고 싶었고 돈은 모자랐으며 초향이 내어놓은 제안이 그리 썩 나쁘게 들리진 않았다. 은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초향이 활짝 웃었다.
다음에 정식으로 계약서를 들고 한번 찾아갈게요. 커피숍이 어디있는 거죠?
은미는 카페 이름과 위치를 알려주었다. 초향은 그것을 받아적더니 이내 포장된 것들을 담은 쇼핑백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은미는 뭔가 하나 빠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기, 세 벌 뿐인데요?
한 벌은 입고 가셔야죠. 손님.
네엣?
화들짝 놀란 은미를 향해 초향은 아까 벗어두었던 치파오를 건넸다.
마음에 드신 옷이잖아요? 이걸 입고 돌아가도록 하세요. 그 멋대가리 없는 옷은 당장 벗어서 저 주시구요.
그...그래도요.....
저희 모델도 해주실 분인데 이 정도 담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정 안되겠다면 그냥 다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만?
아, 안돼요!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초향은 은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자, 그럼 이제 벗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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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이하 스토리는 더블 데이트 루트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며 본편의 등장인물과 시간, 사건만 차용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외전에서의 모든 이야기는 본편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고 진행됩니다.
───────── 더블 데이트 외전 카페 미리내
좋아! 이쪽을 보고! 옳지! 그렇게!
화려하고 가슴이 강조된 배색의 원피스를 입은 은미가 몸을 돌리고 카메라를 향한다. 환한 조명 아래 포즈를 취하고 초향의 요구대로 자세를 바꾸어 가며 촬영에 임한다. 초향은 디지털 카메라와 수동 카메라를 번갈아 사용해가며 은미의 모습을 연신 담았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미야설넷는 여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옷을 갈아입고 또 새로운 촬영을 준비한다. 옷을 벗고 입을 때 초향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처음에는 참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은미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다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다.그렇게 한참을 하고 나니 온 몸에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얼굴이야 미소가 계속 신경 써가며 땀을 닦아주고 화장도 고쳐주고 했지만 몸 전체를 그렇게 할 순 없었다. 준비된 옷의 촬영이 다 끝나고 나자 초향이 종료를 선언했다.
아아, 우리 은미. 정말 수고했어.
초향 언니두요. 미소도 수고했어.
미소는 늘 그렇듯이 말없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곤 초향에게서 카메라들을 받아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사진 후보정 및 편집 작업 등을 하는 게 미소의 담당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촬영과 의류 준비, 화장, 조명 배치 등을 담당하는 등의 초향 전용 조수역할도 하고 있다. 은미와 초향은 조그만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았다. 초향은 얼음이 담긴 잔을 가져다가 시원한 음료수를 따라 은미에게 권했다. 은미가 그걸 마시는 동안 가방에서 뭔가 꺼내어 내밀었다.
이거 이번에 나온 우리 가게 브로슈어야. 지난 주에 은미가 찍은 게 실렸지.
정말요? 어디 봐요.
은미가 받아든 것은 작은 책자처럼 꾸며진 홍보물이었다. 표지에 빨간 풍차가 그려져 있고 세로로 Moulin Rouge라고 씌여 있었다. 넘겨보니 지난 주에 그녀가 찍었던 사진들이 빼곡하게 실려있었다. 은미가 입고 찍은 것도 있고 초향이 직접 입고 촬영한 것도 제법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초향이 입고 나온 건 그녀의 얼굴까지도 고스란히 나왔지만 은미의 컷은 그녀의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는 거다. 아무래도 옷이 좀 노출도가 있고 몸매가 많이 강조되는 편이다 보니 초향이 먼저 그렇게 하지 않겠냐고 권했다. 페이지 수가 많지 않아 실린 은미의 사진은 스무 장 남짓 했지만 처음으로 만져보는 모델 활동의 결과물에 은미는 나름 뿌듯해졌다. 끝까지 다 보고 난 은미는 초향에게 물었다.
지난 주 내내 촬영했는데 겨우 요 정도만 실려요?
응. 아무래도 인쇄비도 고려를 해야 되니까 말야. 페이지가 많아지면 가격이 쎄더라구. 나도 맘 같아선 은미가 입었던 모든 의상을 싣고 싶긴 했는데.... 흐음.
그렇구나. 그런 것도 생각하긴 해야 겠네요....
은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은미를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보며 초향이 말했다.
모델비도 많이 못 주는데 고생 시켜서 미안해.
아뇨. 언니한테 받는 옷들만 해도 꽤.....
은미가 뿌듯한 표정으로 브로슈어를 다시 처음부터 보기 시작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눈 이후 나이를 알아보니 초향이 은미보다 훨씬 많았다. 그후로 은미에게서 언니라고 불린 초향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꽤 뭐? 효과가 좀 있디?
에? 예에..... 뭐랄까. 조금은요?
은미는 배시시 웃었다. 이제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상당히 자리잡고 있었다.
2주 전, 이 가게에 처음 온 날, 말 그대로 무자비한 초향의 손 아래 은미는 무참히 발가벗겨졌다. 주어진 옷이라고는 앞서 입었던 치파오뿐. 은미는 그걸 입고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가게를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된 일인지 벗기고 입히는 일을 하며 무척이나 즐거워 하는 초향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섰지만 그녀의 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지는 거리에 이런 노골적인 차림으로 나서본 적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힐끔거리며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리곤 가게 앞에서 한 걸음도 못 떼어 바들바들 떨고 있노라니 결국 초향이 다시 나와 어깨를 짚는다.
제가 얘기 했잖아요. 여자의 매력은 당당함에서 나온다고. 이렇게 약한 모습이면 생기려던 매력도 사그라 들겠어요. 자, 허리 펴고! 어깨 펴고!
초향이 등을 떠민다. 은미는 원망섞인 눈으로 초향을 바라보았지만 초향은 은미가 들고 있는 쇼핑백을 향해 눈짓을 하곤 빙긋 웃을 따름이었다. 별 수 없이 은미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날 집까지 향하면서 어떤 정신으로 지하철을 타고 또 어떤 얼굴을 하고 역에서 집까지 걸어 온지도 모를 정도로 넋이 나갔던 그녀였다.
그러나 초향의 그런 하드코어 트레이닝은 나름 효과가 있었다. 카페 점원들에게 치파오 유니폼을 권했을 때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지만 이미 은미가 입고 있었고 꽤나 강경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다들 궁시렁거리면서도 입어주었다. 덕분에 한석의 시선과 유진의 잔소리에도 은미는 당당할 수 있었다. 이거 원래 우리 카페 의상이야.라고. 유진은 어이없어 했지만 은미가 그렇게 나오니 딱히 태클은 걸지 않았다. 그저 은미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한석의 정강이를 한번 차고 밖으로 나가버릴 뿐이었다.
초향은 은미에게서 이런 사정을 많이 전해듣고 있었다. 한석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여러가지 측면에서 초향은 은미의 좋은 상담사가 되어주었다. 효진은 워낙 세게 말하는 바람에 은미가 좀 버거웠고 일종의 연적이라 할 수 있는 지혜에게 한석에 대한 걸 털어놓을 수 없으니 말이다. 초향은 빙긋 웃으면서 은미에게 말했다.
효과가 있다니 다행이네. 그래서, 그 한석인가 한돌인가 하는 녀석은 확실히 꼬신 거야?
확실히라뇨...?
으이구, 이 숫처녀야. 이걸 했냐, 안 했냐는 거지!
뭔가 넣었다 뺐다 하는 초향의 손동작을 보고 은미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옷 입는 거야 나아졌다고는 하나 속은 원래 은미 그대로였다. 은미는 잔을 내려놓고 손사레를 쳤다.
거...거기까지는.....
어휴. 내가 다 답답하다. 단 둘이 있을 때 확 앵기라니깐!
그.....그래도, 요새는 카페도 자주 오고 저녁에는 저 집에도 데려다 주시고.....
초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주 오는 거야 방학해서 낮에 니네 카페에 와서 공부한다며? 그리고 요새 예전 남친이 다시 또 얼쩡거리는 것 같아서 걱정되어서 데려다 주는 거고.
계약서를 쓰러갔다가 초향도 한석을 보았다. 초향은 예전에 자신의 가게에 옷을 사러왔던 이를 기억하고 있기에 은미를 콕 찔러보며 물었다.
그때 그 놈이 아닌데?
은미는 깜짝 놀라 초향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가게에 옷을 사러갔던 사람은 가람이었고, 지금은 잊고 싶은 그녀의 전 남친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석에게 그 소리가 들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오전 시간이면 은미는 물랑루즈에 가서 모델 일을 했고 오후에는 카페로 돌아와 한석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해보아야 그건 순전히 은미 생각이다. 한석은 냉방이 잘 되고 공짜 커피와 쿠키를 제공하는 카페 미리내의 한쪽 자리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고 있고 은미는 카페 일을 하느라 둘이 대화를 많이 하거나 하진 못 했다. 그러나 한석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미는 항상 설레는 기분이었다. 손님이 없을 때는 한석의 맞은 편에 앉아 조금씩 대화를 하기도 했다. 요새는 그런 대화 시간이 많이 늘어난 편이다. 처음에는 말도 못하고 나란히 걷기만 해도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지금은 마주 앉아 농담까지 주고 받을 수 있으니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지난 번 데려다 줄 때는 손도 잡았노라고 은근히 자랑하는 은미를 보며 초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이건 무슨 애들 소꿉놀이도 아니고.... 이젠 업그레이드를 좀 해야겠어.
업그레이드요?
응. 좀 더 쎈 의상으로 놈의 눈을 확!! 홀리는 거지.
초향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레그 비키니 수영복을 가져오는 걸 보고 은미는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초향은 그런 은미를 추격했고 둘은 그렇게 한참을 애들처럼 장난치다가 남은 촬영 일정을 시작했다. 미소가 나와서 돕기 시작했다.
수고했어요.
그래. 너도 수고 많이 했어.
남은 촬영이 모두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 것까지 다 도운 은미는 초향에게서 쇼핑백을 건네받았다. 초향은 윙크를 하며 말했다.
이건 내가 야심차게 준비한 네코미미 메이드 코스튬. 이걸 입고 한석이 앞에서 무릎꿇고 커피라도 대접해봐. 아니면 바지 위로 커피를 왕창 쏟은 다음 식혀주겠다며 바지를 일단 벗기고 입으로....
도무지 뭔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입을 벌리고 뭔가 어찌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는 초향을 보고 은미는 대번에 눈치를 챘다.
언니!
으음? 내가 뭘? 호호 불어주란 소리였는데 넌 대체 뭘 생각한 거야?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하는 초향의 배웅을 받으며 은미는 물랑루즈를 나섰다. 바로 집으로 갈까 하다가 다음 주에 지혜, 효진과 함께 놀러갈 생각에 휴가 때 입을 옷을 사러 가기로 했다. 물랑루즈에서도 옷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휴가 때 입을 옷이라고 하면 분명 초향이 또 엄청난 디자인의 옷을 가져와서는 기어코 입히려고 들기에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며 옷 구경을 하면서 적당한 비치웨어 두 벌을 구했다. 전 같으면 이런 어깨와 가슴이 드러난 탑 같은 건 꿈도 못 꾸었을 테지만 지금만 해도 상당히 짧은 미니스커트에 차이나 드레스를 변용한 스타일의 딱 붙는 블라우스를 입고 거리를 누비고 있는 은미였다.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흥정을 마치고 원하는 옷을 사서 가방에 넣었다.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조금 있으면 한석이 올 시간이라 발걸음을 서둘렀다. 전철역에 들어서자마자 난감했다.
'이...이렇게 짧은 데 계단이라니....'
내부로 향하는 기나긴 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만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지 좀 되었지만 여전히 이럴 때마다 난감했다. 은미는 들고 있는 쇼핑백으로 자신의 치마를 가리며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아래로 향했다. 지나가는 모든 이의 시선이, 남자만 아니라 여자들의 시선도 죄다 자신에게 꽂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가 못 살아.'
이렇게 짧은 미니스커트를 내어주며 빙긋 웃는 초향의 얼굴의 떠올라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녀 나름의 철학이 있고 그에 입각한 행동을 철저히 행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함부로 욕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아니, 내심으로는 약간 존경도 하고 있었다. 그녀 덕분에 자신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었으니까....
간신히 표를 끊고 플랫폼에 다다른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탑승을 기다렸다. 주변의 남자들이 자신을 한번씩 돌아본다. 처음에 이렇게 입고 거리에 나설 때만 하더라도 그 시선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해 그녀는 내심 불안에 떨었다.
'자신감! 자신감!'
자신의 구부정한 허리와 어깨를 바로 펴주며 끊임없이 주입하던 초향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감이 없으면 매력도 없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진정성이 있었다. 은미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가진 매력에 대해 한석이 돌아봐주길 원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선들은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좋아. 해보는 거야.'
그녀는 몸을 곧게 펴고 바른 자세로 섰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나서 비로소 그녀는 자신을 향해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 남자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속으로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러는 동안 전철이 왔다. 원래 서 있던 줄이 무너지며 사람들이 우루루 문가로 몰린다. 그 와중에 은미의 몸도 인파에 휩싸이게 되었다.
'사람 진짜 많네....'
인파에 떠밀려 반대편 문쪽에 간신히 기대선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으려는데 누군가 그녀의 등에 바짝 붙는 게 느껴졌다. 사람이 많이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다. 짧은 미니스커트 아래 드러난 그녀의 허벅지에 누군가의 손길이 자꾸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냥 사람이 많고 밀리다보니 닿았나 보다 싶었지만 결코 그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손등으로 툭툭 건드리다가 지금은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허벅지 라인을 어루만지고 있다. 소름이 돋았다.
'이...이게 치한?'
겁이 덜컥 난 그녀는 그대로 바짝 얼어버렸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몸을 비틀어보지만 그 손길은 집요하게 그녀의 허벅지를 따라왔다. 들고 있는 쇼핑백으로 다리를 가리려고 해보았지만 사람이 원체 많아 그걸 들어올리기도 쉽지 않다. 간신히 좁은 바닥에서 발을 움직일 공간을 찾아 몸을 옮겨본다. 그제서야 손이 떨어졌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런 놈들이 정말 있구나....'
뉴스 같은 데서 볼 때 어떻게 사람 많은 데서 저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왜 당하는 여자들이 가만히 있나 싶기도 했는데 막상 당하고 나니 온 몸을 덮쳐오는 공포감에 입조차 벙긋하기도 어려웠다. 한숨을 내쉬려던 그녀는 다시금 얼어붙고 말았다.
'또!!!'
그녀는 지금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전철 연결 통로 문 바로 옆에서 인파로부터 등을 돌리고 서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엉덩이에 아까와 같은 손길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는 숫제 스커트를 걷어올리고 안에 있는 팬티까지 집적거리고 있었다. 놀라움과 부끄러움, 창피와 공포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똑바로 바라보고 소리라도 질러 그 행동을 차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의 뒤에 바짝 붙은 이를 노려보게 되었다. 생각치도 못 했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뭐하는 짓이야,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