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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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이하 스토리는 더블 데이트 루트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며 본편의 등장인물과 시간, 사건만 차용한다는 기분으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외전에서의 모든 이야기는 본편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고 진행됩니다.

───────── 더블 데이트 외전 카페 미리내 

뭐하긴, 좀 만져보고 있지. 왜? 만지면 닳기라도 하냐?

그녀의 전 남자친구. 결코 좋게 끝났다고 할 수 없는 관계의 최가람이었다. 그런 그를 여기서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은미의 곁에 바짝 다가오더니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흥. 뭐야. 씨발. 내가 그렇게 입으라고 갖다 바칠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더만.... 왜? 새로 생긴 그 놈이 이거 입으라더냐?

 무...무슨 소리야. 새로 생긴 놈이라니.

 이 년이 모른 척 하는 거 보게.

가람은 그녀의 귀에 자신의 입을 바짝대고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내가 니네 집 근처에서 다 봤거든? 맨날 니 데려다주던 그 키 큰 새끼?

 한석이 오빠....?

 한석인지 한돌인지 내가 알바 아니지만..... 씨발. 뭐야, 니 사람 가리면서 가랭이 벌리는 거냐? 엉?

가람은 그녀에게 바짝 붙은 채로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말하는 목소리 하나하나 은미를 공포에 젖게 만들었다. 가람의 손은 그녀의 팔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고 거의 감싸 안고 있다시피 하였기에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사이좋은 연인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은미의 파격적인 옷차림에 한번씩 시선을 보내긴 했지만 말이다.

오빠랑 난 그런 사이 아냐....

 그럼 이건 뭔데? 니 년이 평소에 원래 하고 다니던 차림을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런데 그 새끼가 이렇게 입으라고 시키던? 엉? 엉? 엉?

가람은 손가락을 세워 그녀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온 몸을 떨게 만드는 모멸감에 은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야, 이미 개통 끝났으면 어디 한번 대줘봐. 씨발. 내가 친구들이랑 내기해서 니 처녀라는 데 십만원 걸고 존나 따먹으려고 그렇게 애썼는데도 끝끝내 안 벌려주더만, 그 새끼한테는 바로 벌려줬나 보지? 응?

 아, 아니라니깐. 그런 거....

은미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가람의 모습이 마지막 헤어짐을 기점으로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천성이 착했던 그녀는 가람과의 연애를 애써 좋은 추억으로만 기억하려고 했었다. 남자랑은 말도 잘 못 하던 그녀가 한석이랑 그 정도 가까워진 것도 어쩌면 그동안 사귀었던 가람의 공이라고 생각했다. 한석의 앞에 그 메이드복인가 뭔가 하는 것을 입고 설 수 있었던 것도 좀 엇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가람의 덕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토록 사람이 많고 공개적인 곳에서 그녀에게 모멸감을 안겨주고 괴롭히는 이가 최가람이라는 사실이 그녀는 너무도 슬펐다.

야이, 씨발년아. 니가 울면 내가 또 쫄아서 물러날 줄 알아? 이번엔 어림없어. 너 다음 역에 나랑 내려. 씨발년아. 내가 방 잡고 바로 자빠트려줄게.

그는 숫제 떡 주무르듯이 은미의 가슴을 마구 주무르고 있었다. 가람의 입장에서는 갖은 수를 써보고 이상한 옷도 사다주고 나름 애를 썼다고 생각했는데도 전혀 먹히지 않았던 은미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여자들이라고는 대개 엉덩이가 가벼운 쪽이 많았기 때문에 이쪽에서 어느 정도 사인을 주면 알아서 대주는 편이었다. 아예 가방이라든가 옷을 사달라는 이유로 가랑이를 벌리는 여자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은미는 그런 쪽으로는 전혀 생각이 없었고 그게 가람과 그녀와의 간극이 벌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랬던 그가 헤어지고 난 은미가 도리어 더 섹시해지고 밝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리가 없다. 그의 손길은 이곳이 공공장야설넷는 것도 잊은 채 점점 더 난폭해졌다.

가람아, 제발....

은미는 눈물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가람의 팔을 떼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손 하나에는 이미 짐이 많이 들려있었고 나머지 손 하나만으로 남자의 힘을 당해내기는 무리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가람의 선의에 호소하는 것 뿐. 두 사람이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엉켜있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제지하거나 나무라지 않는다. 이쪽을 보게 된 이들은 그저 요즘 젊은 것들은...이란 눈빛을 보내며 혀를 가볍게 차고 넘어갔다. 

제발... 제발 좀....

 제발 뭐, 아아. 한 번 말고 두 번 해 달라고? 크크. 두 번이 뭐야. 내가 좆 꼴리는대로 계속 박아줄게, 그건 걱정 말어.

난폭하기 그지 없는 가람의 말이 하나하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은미의 마음을 후벼팠다. 너덜너덜해진 그녀의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갈 때쯤 손에 들린 쇼핑백이 보였다. 화려한 상자가 담긴 그 옷들을 보며 초향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펴고! 자신감을 가져요! 그게 당신의 매력이야.'

그제서야 은미는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다. 물론 가람이 분명 잘못한 것이다. 그가 가장 큰 문제다. 그러나 그걸 계속 받아주고 적절한 선에서 제대로 거절하지 못해 질질 끌고간 자신이 문제를 키웠다. 이제는 그것을 끝내야 한다. 우유부단한 자신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의 씨앗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그녀의 울음이 딱 멈추었다. 그녀는 잠깐 숨을 들이마시고 핸드백 속에 손을 넣어 손 끝의 감으로만 어떤 물건을 찾아두었다. 예전에 쓰려고 준비해 두었다가 쓰지 못하고 내내 담아두기만 했던 물건이다. 그게 손에 잡히자 그녀는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람을 향해 차분하게 말했다.

이거 놔.

 뭐라고?

 못 들었어? 이제 날 놓으라고. 이 팔도 그렇고 앞으로 날 잡지도 마. 너한테 휘둘리는 건 정말 지긋지긋 하니까.

갑작스러운 그녀의 선언에 가람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이내 이죽거리며 되받아쳤다.

그래서? 어쩌시려구요? 응? 어이, 이은미 씨. 뭘 어쩌겠다구요?

그는 이제 아예 대놓고 그녀의 가슴 한 쪽을 우악스럽게 틀어쥐며 비아냥거렸다. 가슴의 통증을 참고 은미를 이를 악물며 답했다.

난 분명히 경고했어.

은미는 아까부터 꼼지락거리며 찾아놓은 호루라기를 꺼내물었다. 그녀의 난데없는 행동에 가람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동안 은미는 가슴을 쑤욱 내밀며 폐부 가득히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마치 풍선처럼 튀어오른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순간, 그녀는 힘껏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익--------

가람은 경악하며 귀를 틀어막았고 이런 행동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의 모든 소음을 압도하고도 남을 커다란 소리에 모두 이쪽을 돌아본다. 벼락같은 호루라기 소리가 멈추자 사람들이 하나같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은미는 재빨리 호루라기를 입에서 떼고 힘껏 소리쳤다.

치한이야!!!!!!

그동안 참아왔던 그녀의 울분이 담긴 외침이었다. 억누르고 참고 견디기만 해온 그녀의 혼신의 외침이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이쪽을 보고 뭐라 한 마디씩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누구 하나 나서서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난데없는 호루라기 소리와 은미의 외침에 쫄았던 가람은 서서히 원래의 표정을 되찾아갔다. 

이 년이 미쳤나...

그러나 은미의 외침은 전혀 헛된 게 아니었다.

이봐, 자네.

어떤 아저씨 한 명이 무리 중에서 스윽 나와 가람의 팔을 붙들었다. 가람이 이게 뭔가 싶어 그를 쳐다보는 순간 사내는 품에서 뭔가 꺼내어 가람의 코 앞에 내밀었다. 경찰 배지였다. 가람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그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 아니야! 이 년... 아니, 얘랑 저랑은 원래 사귀는 사이라구요! 치한이 결코 아니라....

몸을 빼내려는 가람을 붙드는 경찰이 은미에게 시선을 던졌다. 은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랬는데 깨졌죠. 이제는 저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에요.

은미의 차분한 목소리에 사복 경찰은 가람의 연행을 계속했다. 가람은 은미를 보며 나중에 보자는 식으로 으르렁거리다가 경찰에게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았다. 다른 한 명이 더 있어서 가람은 두 명의 경찰에게 연행되어 끌려갔다. 나중에 온 경찰은 은미에게도 진술을 위해 함께 가달라고 했다. 은미는 어차피 현행범으로 체포된 케이스니까 그냥 가서 진술만 하면 끝나는 줄 알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아! 진짜라니까요! 얘랑 저랑 원래 사귀는 사이고, 같은 학교 같은 과라구요.

 아니에요. 같은 과인건 맞는데 예전에 이미 끝난 사이에요.

그러나 지하철 수사대 출장소에 도착하고 나니 가람이 자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각각 학생들이라고 했더니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다. 은미는 혹시나 싶어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어차피 엄마는 새벽이나 되야 들어올 게 분명하고 지방 출장을 갔다는 아버지에게는 지금 연락을 한들 도움이 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한석이 떠올랐지만 그에게 연락할 방도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예전에 효진에게 받은 휴대전화 번호가 기억나서 그걸로 걸었더니 연결이 되었다. 은미에게 자초지종 사정을 전해들은 효진은 걱정말라며 기다리라고 했다. 가람 역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그 다음부터는 은미에게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뭔 일인가 싶었는데 30분도 채 되기 전에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다. 가람의 엄마였다. 그녀를 본 가람이 울상이 되어 소리친다.

엄마!

 아이고, 가람아! 이게 무슨 일이야!

 그게....

경찰 한 명이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가람이 은미에게 성추행을 하다가 지하철 수사대에게 현장체포 되었고 만약 은미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여기서 조사가 끝나는대로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다는 일정까지 상세히 말해주었다. 가람의 모친은 입을 뻐끔거리며 황당해하다가 자기 자식과 은미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가 은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도끼눈을 하더니 은미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옆에 있는 경찰이 재빨리 제지를 하지 않으면 멱살이라도 잡을 판이었다.

야, 이 년아! 니가 누구 아들 신세 망칠라고 지랄이야, 지랄은!

은미는 깜짝 놀랐다. 가람의 어머니까지 불려오는 걸 보고 자기가 너무 심했나 싶어 고소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가람모의 행동은 거기에 아주 차디찬 물을 끼얹는 꼴이 되었다. 은미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이고, 형사님들! 저 년 입은 꼬라지를 보세요. 저게, 저게 정신 똑바로 박힌 년이 하고 다닐 차림입니까? 저러고 다니니 사내가 꼬이는 게 당연하죠. 지 년이 꼬리를 치고! 응? 어디다 대고 고소야 고소는! 콩밥은 니 년이 먹어야 돼!!!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버둥거리며 막말을 쏟아내는 가람모의 말에 출장소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사실 아까부터 은미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이었다. 피해자인 그녀와 피의자인 가람을 한 자리에 앉혀두는 것도 그렇고 가람의 변명, 그러니까 둘이 예전에 사귀었고 지금도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경찰들이 은미에게 딱히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경찰들이 은미에게 던지는 시선 중에는 묘한 시선도 분명 있었다. 은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사건의 본질은 전혀 보지 않고 난데없이 자신의 차림이 왜 문제가 되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젊은 것들이 저렇게 하고 다니니 나라가 이렇게 문란해지고 썩어빠지는 거 아니겠어요? 감방에는 저런 년들을 집어넣어야 된다구요, 경찰나리들. 응? 안 그래요?

가람의 모친이 난리를 치는 사이에 조서를 작성하는 경찰이 저쪽이 저렇게 나오고 있는데 합의를 보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넌지시 말을 꺼냈다. 은미는 기가 막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아뇨. 전 합의 안 해요. 그대로 고소하겠어요.

 아이고! 저년이 미쳤구나! 미쳤어!

가람의 모친은 숫제 발광이라도 하는 것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불쑥 나타난 이 때문에 그 행동은 차단되고 말았다.

미친 건 얘가 아니라, 아주머니죠. 아들 똑바로 못 키운 당신 말이에요.

 뭐? 이 놈은 또 뭐야?

가람모는 난데없이 나타나 은미를 감싸고 있는 키 큰 사내를 올려다 보았다.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은미 애인, 최한석입니다. 그 쪽 녀석 콩밥 먹일 각오 제대로 하세요. 난리 그만치시고.

조용하지만 강한 의지가 담긴 그 말에 다들 움찔했다. 유일하게 단 한 사람만이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그의 품에 안긴 은미는 한석의 말에 깜짝 놀라면서도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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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전은 파일날림을 싣고.....

 오...오빠....

은미는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석에게 안겼다. 한석은 그런 은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효진이에게 전부 들었어. 여긴 우리한테 맡겨.

한석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은미가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있었다. 20대 후반 정도 되었을까. 얼굴은 상당히 미인이었지만 꽤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서류 가방 하나를 들고 은색의 슈트를 위아래로 차려입은 그녀는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다가와 은미에게 무언가 내밀었다.

이은미 씨.

 네?

 박효진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전 변호사 손하영이구요, 여기 선임계와 전권 위임장에 사인을 해주시면 여기서의 모든 일은 제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와, 여기입니다.

빠르고 명료하게 말을 쏟아내는 그녀의 기세에 은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키는 대로 사인을 하고 만다. 하영은 서류를 갈무리하더니 그 위에 자신의 명함 하나를 얹어 조서를 쓰고 있던 경찰에게 제출했다. 그녀는 당당한 자세로 선언하듯 말했다.

이은미 씨에 관련된 모든 사안은 이제부터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제11조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으로 저기 있는 최가람 씨가 고소된 사안 말입니다.

엄청 빠른 말투로, 그러면서도 토씨 하나 틀리는 일 없이 또박또박 말하는 게 그녀의 원래 말투인 모양이었다.

아, 그렇죠. 그나저나 여기 이건....

경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명함과 하영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명함에 적힌 사명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법무법인 새암? 거기 법무팀장이시라구요?

 정확히는 제17법무팀, 팀장 대리입니다. 팀장님이 현재 해외출장 중이니까요.

 하아, 새암이라니....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은미도 새암이라는 이름에 깜짝 놀랐다. 가끔 뉴스 같은데서도 들어본 대형 법무법인 회사였기 때문이다. 그런 회사의 팀장이라는 사람을 효진이 자신에게 보냈다는 사실이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한석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기분 나쁜 이곳을 빨리 벗어나자고만 했다. 은미는 그 말에 크게 공감했다. 한석이 은미를 부축해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석은 하영에게 말했다.

하영 씨. 그럼 뒷일을 부탁해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한석은 하영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곤 은미를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 했다. 아까부터 난리를 치고 있던 양반이 문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가긴 어딜가! 이 년이 내 아들 신세 망치려는데 뭔 놈의 변호사고 자시고를 델따 놓고 뭔 지랄이야!

 신세를 망쳐요? 누가 누구 신세를요?

한석이 차분하게 가람 모친에게 대꾸했다. 그녀는 삿대질을 해가며 한석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대들었다.

당신이 이 년 애인이라고? 니 애인 이렇게 입히고 다니니까 그리 좋드나? 니 눈깔 있으면 함 봐라. 이게 어디 정상적인 사고 박힌 년이 하고 다닐 차림새야?

 왜요, 이쁘기만 하구만.

 뭐? 이 놈도 돌았구만. 둘이 아주 쌍으로 돌았어.

그녀는 삿대질을 하며 은미를 쿡쿡 찔렀다. 숫제 꼬챙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프게 찔리는 게 제법 아펐다. 그러나 그 동작은 오래 가지 못 했다. 한석이 거칠게 그녀의 손가락을 낚아채었기 때문이다.

이봐요. 아줌마.

한석은 은미를 살짝 당겨 자신의 뒤로 둔다. 그리고 가람 모친을 똑바로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나 지금 완전 빡돌아서 제정신 아니거든요? 이런 더러운 꼴 보는 건 이제 아주 신물이 나. 여기 들어오자마자 은미만 아니었으면 니 년 아들이라는 새끼 자지를 뽑아다가 지 에미 대가리에 쳐박아버리고 싶었는데 겨우 참고 있어. 알아? 남이야 어떻게 입고 다니든 말든 뭔 상관이야! 이 나라 이 땅에 표현의 자유는 있어도 범죄의 자유는 없어! 지 앞가림도 못하는 멍청한 새끼가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이런 더러운 소리를 지껄이는 년 보지에서 튀어 나왔구나! 엉??!

가람의 모친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여태까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던 한석이 돌변하고 나니 이건 뭐 조폭이 따로 없을 정도의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현직 경찰들도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마른 침을 삼킬 정도였다. 그냥 호리호리하고 평범하게 생긴 그의 어디에서 저런 박력이 흘러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평소 차분하기 그지 없는 한석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은미는 더욱 크게 놀랐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분노가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고 그녀는 내심 설레였다.

너... 너.....

놀라움에 할 말을 잊은 가람 모친은 손가락으로 겨우 한석을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한석은 예의 그 바른 표정으로 돌아가 여상스럽게 대꾸할 따름이었다.

왜 그러시죠, 아주머니?

 너 방금 나한테 뭐라고.....

 글쎄요. 전 기억이 안 나는데요? 혹시 제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나는 분 있나요?

한석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저런. 아무도 못 들은 소리를 아주머니 혼자 들으셨나 보군요. 아드님이 감방 간다니까 놀라서 이젠 환청도 들리시나 봅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난리를 치는 그녀를 뒤로 하고 한석은 은미를 데리고 출장소를 벗어났다. 지상으로 올라와 길 한 편에 세워둔 은색 차로 가서 은미를 조수석에 태우고 자신도 운전석에 올라탔다. 은미가 안전벨트를 매는 것을 기다려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은미의 집 앞에 도착했고 한석은 아직 시동을 끄지 않은 채 은미를 돌아보았다.

많이... 놀랐지?

그의 말투는 정말 걱정이 가득했다. 은미는 그의 말투에 다시 한번 가슴이 저려오는 걸 느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예. 조금요.

 휴우. 정말 미안하다... 저런 놈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남자의 수치야. 남자로서, 내가 사과할게.

고개를 푹 숙이는 한석을 향해 은미가 손을 내저었다. 

오빠가 왜 사과를 해요. 그러지 마요.

 하아... 나 신입생 때도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동기 하나가 그만두고 그랬거든. 부디 넌 그러지 말고 꿋꿋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한석이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본 그녀였지만 그것은 합당한 분노였고 그녀의 적을 향한 분노였기에 그녀는 딱히 무섭다거나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더 든든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걱정마세요. 전 당당하게 살기로 했으니까요.

 그래. 안 그래도 요새 밝아진 모습이라 보기 좋아.

 저...정말요?

생각치도 못했던 한석의 칭찬에 그녀는 얼어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응. 전에는 좀 주눅들어 있다고 할까. 그래보였는데 지금은....

 지금은요?

기대감 가득한 그녀의 재촉을 받고 한석은 위아래로 은미를 훑어본다.

옷도 예쁘게 입고 다니고 표정도 좋고...

그제서야 은미는 오늘의 불미스러운 일을 모두 잊고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녀가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거였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아 가슴 앞에 그러쥐고 말했다.

고마워요.

 응?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제가....아니, 전 굉장히 컴플렉스를 느끼며 살았거든요. 남들보다 좀 더 그렇고... 시선도 신경쓰이고.... 그러다 만났어요. 제가 예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요.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했어요. 오빠한테 지금 이런 칭찬을 듣는 건 순전히 다 그 사람 덕분이에요.

 그게 누군데?

은미는 그제서야 한석이 참으로 눈치코치 없는 인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평상시에도 효진이가 둔팅이 한석이, 얼빵이 한석이라고 놀리곤 하는데 이 정도면 가히 만성체질이며 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조금 샐쭉해져서 말했다.

누구겠어요?

 글쎄? 내가 아는 사람이야?

 에휴. 방금 전에 제가 누구한테 고맙다고 했죠?

 나한테.

 그럼 그게 누구겠냐구요.

 그게 누구냐고 내가 너한테 물어봤잖아.

 아이, 진짜!

은미는 한석의 오른손을 확 잡아당겨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왔다. 자신의 손을 감싸는 뭉글뭉글한 것의 정체를 깨달은 한석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보며 은미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는 느껴져요? 오빠 손길에 두근거리는 제 가슴이?

 크.....크게, 커다랗게, 아니, 많이 두근거리고 있구나.....

가슴골에 파묻혔는데도 꼼짝달싹도 하지 않고 뻣뻣하게 있는 한석의 손을 보니 은미는 조금 답답해졌다. 

만.....만져주세요.

 응?

나름 용기를 내어 말을 하긴 했지만 워낙 개미소리만하게 말한 터라 한석의 귀에 잘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은미는 아까 지하철에서 소리지른 기운을 박박 긁어모아 한석을 향해 소리쳤다.

제 가슴을 만져달라구요! 오빠!

 어억... 그...그래.

한석은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은미의 가슴을 덥썩 쥐었다. 

아까... 오빠가 제 남자친구라고 해주었을 때... 절 감싸고 그 아줌마에게 대들었을 때.... 정말 두근거려서 혼났어요. 사실 지금도 두근거리고 있고... 카페에서 오빠를 볼 때마다 두근거리고 그랬단 말이에요. 지금... 이렇게 단 둘이 차에 있는 것만 해도....하윽....

한석이 둔팅이이긴 하나 그렇다고 테크닉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의 손은 단순히 은미의 가슴을 만지고 있기만 하지 않았다. 가슴이 그려내는 라인을 손가락으로 조금씩 쓰다듬어 보고 단단한 캡 너머 담겨있는 뭉클함의 기원을 찾아 조금씩 압박을 가하면서 주물러 본다. 은미는 자신의 몸이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는 걸 느꼈다. 아주 예전에 가람이에게 억지로 가슴을 보여주고 나서 그가 치근거리며 만졌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사랑받고 있었고 그녀 역시 사랑받고 있었다. 온몸이 짜릿해져 오는 감각을 느끼며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런저런 옷을 입게 된거나.... 카페에서 그런 유니폼을 갖추게 된 것도...... 오빠에게 카페에서 책을 읽으시라고 한 것도...... 전부 다......

 은미야....

 사랑해요. 오빠. 정말로 좋아하고 있어요.

서로의 시선이 맞닿는다. 똑바로 한석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은미를 향해 한석이 상체를 기울였다. 둘의 입술이 엇갈려 맞닿고 입 안의 혀가 상대를 향해 그 끝을 놀린다. 키스가 전해주는 황홀함에 빠져버린 은미는 자신의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끄르고 있는 한석을 제지할 방도를 찾지 못한다. 검은색 바탕에 은색 실로 화려한 자수가 새겨진 하프컵 브래지어로 채 다 가려지지 못한 은미의 커대한 유방이 공기 중으로 노출되었다. 한석의 손길이 유방의 윗부분을 쓰다듬다가 그 선을 따라 내려와 천천히 브래지어 안쪽으로 파고든다. 풍만하고 몰캉한 그것의 첨단에 맺힌 유두의 꼭지를 살살 어루만지는 손가락의 애무에 은미는 마뜩한 한숨을 토해낸다.

하윽....흐읍....

 맛을 좀 볼게.

한석의 말이 무슨 의미일까. 그녀는 금방 그 의미를 깨닫는다. 브래지어를 아래로 끌어내리고 고스란히 드러난 그녀의 커다란 젖가슴 위로 한석의 머리가 다가온다. 그녀의 유두에 뭉클하면서도 촉촉한 무언가가 닿는다.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그녀의 몸이 짜릿짜릿하다. 

하악... 오빠....하아....제 가슴이....

 은미 가슴은 참 예뻐. 보기 좋고....

 저...정말요?

 응. 진짜야.

 너무 커서.... 흐으... 둔하거나.... 못 생기지 않아요.....?

 '아냐. 이 정도면 정말이지...

반대편 유두에도 한석의 입질이 와 닿는다. 은미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꼬았다. 어딘가 은밀한 부위에서 댐이 터지고 있다. 막혀있던 물이 흐르듯 그녀의 욕망이 터져나온다.

오빠....하아...하아.....오빠.....

쭈웁쭈웁 거리며 자신의 가슴을 빨고 주무르는 한석의 행위가 전혀 야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불결하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지금 그의 행위는 그녀의 감각 하나하나를 일깨워주는 탄산수 같았다. 그녀의 갈증을 채워주는 광천수였다. 자기도 모르게 한석의 머리를 잡고 자신의 가슴에 문대게 된다. 숨이 좀 막힌다며 한석의 고개를 들 ??까지 그녀는 한석의 얼굴 전체를 자신의 가슴 사이에 파묻으려 했다.

오...오빠....

 응?

 여기서는 좀.....하악.....

한석의 혀가 H컵의 가슴을 탐하는 동안 손을 결코 놀고 있지 않았다. 가슴으로 가지 못한 나머지 한 손이 허벅지를 타고 미니스커트 안으로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게다. 한석은 자신의 팔을 붙드는 은미의 제지에 군말없이 손을 뗐다. 한석의 손이 자신의 몸에서 떨어지자 은미는 어쩐지 좀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은미는 붉어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조용하게 말했다. 그녀 생애 최고로 대담한 말이었다.

저....저기.... 저희 집에 들어왔다....가실래요?

 응? 부모님 계실 거 아냐.

 늦게.... 오실 거에요. 항상 .... 그러거든요.

은미는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아무리 쑥맥인 그녀도 지금 그녀가 내뱉은 말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한석은 은미를 보며 씨익 웃더니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채워준다.

그럼, 커피 한 잔 타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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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부에 외전은 본편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명시했지만...... 저 손하영은 원래부터 본편에 설정 잡혀 있던 녀석입니다. 아직 효진 루트에 접어들지 않아 나오지 않았을 뿐이죠.

은미는 한석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예상대로 집은 텅 비어있었다. 복층으로 된 주택이었고 은미의 방은 2층에 있었다. 그녀는 한석을 방에 들여보내기 전에 먼저 방에 들어가 대충 정리를 했다. 평소에도 크게 어지르지 않는 편이라 치울 건 별로 없었다. 

여기가 제 방이에요.

 응. 실례할게.

 들어오세요.

한석이 침대 한쪽에 걸터앉았다. 남자가 자기 방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 사람이랑 자신이랑 방금 전까지 하고 있던 걸 새삼 떠올린 은미는 엄청나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뭐해, 이리와.

 자...잠깐만요. 마음의 준비 좀....

은미는 한참 주저하며 방을 왔다갔다 하다가 이내 결심을 내렸다. 

오...오빠. 잠깐 눈감고 뒤돌아 있어주세요.

 왜?

 암튼... 빨리요.

한석은 씩 웃으며 은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은미는 장농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상자 하나를 꺼냈다. 예전에 물랑루즈에서 받았지만 딱 한 번 열어보고는 바로 닫아버린 상자였다. 그 위에는 초향의 글씨체로 이렇게 씌여있었다. 비장의 승부속옷 대체 뭐와 승부를 벌이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입을 기회는 다시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큰 마음 먹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준비가 다 되자 방의 불을 끄고 책상에 있는 스탠드만 켰다.

이...이제 됐어요. 돌아보셔도 되요.

한석은 몸을 돌렸다가 이내 탄성을 내뱉았다.

이야.....

 어...어때요?

 어...그게.....

한석은 빙그레 웃기만 하고 쉽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위아래로 훑어보며 은미의 모습을 그의 눈에 아로새길 뿐이었다.

빨리 말해주세요. 저......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단 말이에요.

자기도 모르게 몸이 배배 꼬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몸을 가리면 이 모습을 한석에게 드러낼 수 없다는 생각에 팔을 뒤로 둘러 열중쉬어 하듯 하고 서 있다. 차마 한석을 바로 쳐다볼 수는 없지만 힐끔 바라본 그의 눈빛이 뜨겁게 자신에게 꽂히는 것을 확인하고 자기 자신도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고운 망사로 된 연한 분홍 색의 슬립이었다. 목을 두르고 있는 부분도 끈으로 되어 있었고 가슴부터 시작해서 배꼽까지 깊은 V자로 파여져 있었다. 양쪽의 천은 끈매듭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지금 한석에게 보이진 않지만 등은 아예 훤히 드러나 있다. 대부분의 부위가 살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시스루 재질이다 보니 그녀는 지금 옷을 아예 안 입고 있는 것과 진배없었다. 역시 끈으로 된 팬티 역시 훤히 비쳐보인다. 무릎 위를 살짝 덮는 롱밴드 스타킹은 조금 성긴 망사로 되어있었다. 그녀의 흘러넘칠듯한 가슴은 도무지 이런 옷으로 가릴 수 없었다. 오히려 살짝 가림으로써 그녀의 그런 부위가 더욱더 도드라지는 꼴이 되었다. 방이 조금 더 밝았다면 몸에 저절로 흘러넘치는 흥분 때문에 꼿꼿해진 유두의 모양을 한석이 눈치챘을 지도 모른다.

예뻐.

 저...정말요?

뛸듯이 기뻐하며 한석을 보고 있노라니 그는 씨익 웃으면서 은미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손을 뻗어 어깨끈을 벗겨낸다. 가벼운 재질의 옷이 마치 날개옷처럼 그녀의 몸에서 스르륵 흘러내린다. 삽시간에 나체가 되어버린 상체가 확 드러나버리자 은미는 깜짝 놀랐다. 기실 그런 슬립을 입고 있으나 벗고 있으나 노출도는 매한가지였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옷만 예쁜 게 아냐. 은미가 예쁜 거지.

 오...오빠.

 아까 내가 널 좋게 본다고 했던 건 그저 옷이 예뻐서가 아냐. 밝고 환한 네 얼굴이 보기 좋았다는 이야기였어.

 아아....

그녀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석의 품에 와락 안긴다. 그렇게 꼭 안고 한참을 있다가 이제는 아까 하던 키스를 마저 하기로 한다. 두 사람의 혀가 엉키고 한석의 옷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한석의 팬티를 벗기면서 은미는 꽤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효진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너..너무 커요.

 어? 그거야 은미가 워낙 섹시하게 입고 있어서....

 이...이걸 넣는 거잖아요.

 응. 무슨 문제라도?

 가...가능해요?

 문제 없어.

한석은 서 있었고 은미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상체를 세운 채로 있었다. 그녀의 눈 앞에서 꺼떡대고 있는 한석의 자지를 신기하다는 듯이 툭툭 건드려본다. 그리고 어디서 들어본 풍문대로 다음 동작을 행한다.

으으.. 은미야....

 으읍-- 추웁-- 후웁.....

서툰 동작이지만 그녀는 한석의 자지를 열심히 빨았다. 사실 은미에게는 비밀이지만 또 다른 곳에서도 열심히 빨림을 당하고 있는 한석이다. 그쪽의 프로페셔널한 동작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은미의 행위는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한참을 그렇게 빨고 있던 은미를 부른다.

은미야. 이리 누워.

한석은 은미를 이끌고 침대에 눕혔다. 그녀의 팬티 끈에 손가락을 걸고 아래로 끌어내린다. 은미는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한석은 망사스타킹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어때, 이건 벗기지 말까?

 네...에? 왜요?

 음... 좀 색다르잖아? 후후. 평소랑은 다르게 말야.

느끼하게 웃는 한석을 향해 은미는 살짝 눈을 흘겼다. 

치이.. .오빠는 다른 여자랑 평소에 많이 해봤다는 거군요.

그제서야 한석은 아차 싶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은미는 그렇게 크게 나무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로서는 은미가 이미 예전에 그와 지혜가 엉켜있는 장면을 보고 머리 속에서 수만번 그것을 반복 재생해왔다는 걸 알 도리가 없었다.

아아, 미안. 그런 의미가 아니야.

 몰라요. 전 정말 처음이라 떨리고 그런데 오빠는 너무 여유로운 것 같아.

살짝 투덜거리는 은미를 향해 한석은 몸을 눕혀 뺨과 귀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지금은 너와 함께 있잖아. 대신 부드럽게, 잘 할게. 믿어 줘.

 몰라요.... 몰라... 하윽....

은미의 목과 어깨를 따라 한석의 입이 이동한다. 누워있음에도 어지간한 언덕을 자랑하는 그곳에 한참 머물러 희롱하다가 이내 배꼽과 소담스러운 작은 수풀을 지난다. 망사로 감싸인 다리를 밀어올려 M자로 벌리게 하고는 그 꼭지점에 입을 갖다댄다. 아직 굵직한 무언가의 침입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곳을 꼼꼼하게, 정성들여 애무한다. 민감한 부위에 닿는 난생처음의 느낌이 은미가 파드득 떨긴 했지만 그렇다고 한석을 내치거나 그의 삽입을 거부하진 않았다. 곧 있을 삽입을 대비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안쪽에서 맑은 애액이 왈칵왈칵 쏟아지고 있었다. 

거기에... 혀를.... 하악... 아아.....

 맛있어. 은미는....

 모...몰라요.. 하악... 하음.....

은미는 두 손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불을 쥐었다가 한석의 머리를 움켜잡았다가 또 자기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한석의 손을 잡았다가 놓기도 한다. 충분히 젖었다고 생각한 한석이 몸을 일으켜 그녀의 다리 사이로 몸을 갖다댄다.

그럼, 들어갈게.

 네? 아아...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그녀의 대답이 조금 늦었다. 이미 입구까지 바짝 와 닿아있었다. 한석의 자지가 은미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은미는 바닥에 깔린 이불을 움켜쥐었다. 아프다고 들었지만......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인상을 확 찌푸리는 은미를 보며 한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많이 아파?

 모...모르겠어요. 견딜만 하기도 하고.... 흐읍....

 천천히 움직일게. 많이 아프면 말해.

 네에....

그러나 말할 기력도, 기운도,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얗게 비어버린 그녀의 머리 속은 보지가 전해오는 쾌감에 중독되어 미쳐가고 있었다. 한석의 몸이 들썩이며 그녀의 안으로 밀려들어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새된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더이상 고통의 비명도 아닌 쾌감의 환희였다. 온 몸의 리듬에 맞추어 함께 출렁이는 가슴을 자신의 손으로 붙들고 한석에게 들이민다. 한석이 고개를 숙여 유방을 베어물 때마다 온 몸이 쩌릿쩌릿 해진다. 보지로부터 올라오는 쾌감과 가슴에서 퍼져나가는 짜릿함이 한데 엉켜 그녀를 더욱더 쾌락에 중독시킨다.

하악....하응..... 오빠.....하악...하악....

 은미야... 은미야....

쑤컥거리는 음란한 소리가 줄기차게 이어지고 여태 사람 하나만의 무게를 받치고 살아오던 은미의 침대도 비명을 지른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잦아지다가 한석은 마지막 밀려오는 느낌에 자지를 쑥 빼어 은미의 배 위로 쏟아낸다. 갑작스럽게 쑤욱 빠져나간 중량감을 아쉬워하며 은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오빠...오빠....하악... 정말이지....

 괜찮아?

 네에.. 정말... 정말 좋아해요. 오빠....

은미가 팔을 벌려 한석을 끌어안고 키스를 요구했다. 두 사람의 결합이 아래가 아니라 위에서도 다시 이루어진다. 알몸으로 한데 엉켜 그렇게 뒹굴고 있다가 서서히 발동이 걸려 다시 하려고 하던 두 사람이 아래층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버둥거리며 옷을 다시 입은 건 그로부터 몇십 분 뒤의 일이다.

현지는 요즘 들어 매니저 언니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카페 미리내에서 알바한지 꽤 되었지만 매니저 언니를 같은 여자로서 단 한번도 요염하다거나 섹시하다는 쪽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슴이야 언뜻 보기에도 굉장히 크지만 늘 빅사이즈 박스티로 몸을 꽁꽁 가리고 있었고 몸을 늘 움츠리고 다녔으며 무엇보다 표정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 남친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 놀라긴 했지만 깨졌다는 이야기에 별로 놀라지 않은 건 남녀관계라든가 그런 쪽으로는 영 아니란 인상이 풍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여름을 들어 그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갑자기 이상하고 짧은 옷을 가져와 카페 유니폼이라고 내어놓지를 않나 가만 있어도 큰 가슴을 꽤 강조하는 모양새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좋아! 그렇게! 옳지! 이쪽을 보고!

지금만 해도 그렇다. 갑자기 어떤 잘 빠진 여자와 어린 여학생 둘이 들어오더니 은미와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고 카페 한 쪽에 조명이며 반사판 등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고 있노라니 매니저 언니, 그러니까 은미가 따라들어와 그 여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뭔가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게 안쪽에 들어가 좀 요란하고 섹시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더니 카페 한 쪽을 배경으로 무슨 화보 촬영 같은 걸 하기 시작한 것이다.

좀 더 가슴을 모으고! 창 밖을 봐. 옳지! 그래! 좋았어!

신이 나서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는 사진기사 여자는 목소리가 꽤 컸다. 가슴을 모으라는 둥, 엉덩이를 더 빼라는 둥.... 현지가 듣기에도 꽤 민망한 주문이 많았다. 그러나 은미는 전혀 꺼리는 표정 하나 없이 밝게 웃으며 촬영에 임했고 그걸 보고 있는 현지도 어느 정도 마음이 동했다. 그만큼 은미의 표정을 밝고 순수했으며 한편으로는 요염했다.

아, 벌써 시작했구나.

종소리가 들려 입구 쪽을 보니 요새 들어 뻔질나게 이 가게에 드나드는 남자가 나타났다. 은미가 이 쪽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빠, 좀 앉아서 기다리세요. 현지 씨. 커피 한 잔 타줄래요?

 네.

현지가 몸을 돌려 주방 쪽으로 가려는데 사진기사 하고 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시원한 레모네이드 부탁해요! 현지 씨!

 ........아, 예.

어차피 돈도 안 내고 먹을 거면서 주문은 꽤나 당당하다고 생각하며 현지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원래 조용하고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카페 미리내여서 일하기 참 편했는데 은미가 요상한 복장으로 카페 유니폼을 정하기 시작한 이래로 음흉한 표정을 한 남자 손님이 제법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저기 서 있는 멀대같이 큰 남자는 물론 시끄러운 숏커 머리 여자나 매니저 언니만큼이나 가슴이 커다란 젊은 여자, 가끔 교복을 입고 출몰하여 키 큰 남자를 갈궈대는 여학생까지 수시로 드나들면서 현지의 조용한 알바가 대번에 정신없이 변해버렸다. 여기에 무슨 촬영이니 어쩌니 하는 저 여자까지 더해지고 나면... 아이고. 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머신을 작동시켰다.

여기 있습니다.

 네, 고마워요.

현지에게 커피를 받아든 키 큰 남자 - 아마, 이름이 한석이라고 했던가. 그는 바에 걸터앉아 카페 한쪽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촬영을 하고 있는 은미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케이. 그럼 다음 의상 준비 좀 해줘.

이제 한 컷이 끝난 모양이다. 은미가 이쪽으로 날듯이 달려와 한석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현지는 못마땅했지만 애써 못 본 척하며 레모네이드를 쟁반에 담아가지고 사진기사와 그 조수에게 가져다 주었다. 사진기사 여자는 쾌활하게 고맙다고 외치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카운터 쪽으로 돌아가려는데 은미와 한석의 얼굴이 겹쳐 있는 걸 보고 다시 몸을 돌렸다. 정말이지 매니저 언니가 이상해졌다고, 현지는 생각했다.

뭐하는 거에요! 지금!

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누군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한석은 은미에게서 얼굴을 떼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유진이구나. 어쩐 일이야?

 어..어쩐 일이라니....

은미는 유진이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한석의 허벅지에서 내려오려고 하였지만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있는 한석의 팔을 풀어낼 수 없었다. 한석은 유진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인사해. 이쪽은 내 여자친구 은미라고 해.

너무도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한석을 보며 유진은 입을 딱 벌렸다. 은미는 부끄러워 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이쪽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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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루트에서만큼은 유진이에게 힘세고 강한 한석!

 만약 내게 묻는다면 더 이상 좋게 줄 수 없다!

 신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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